벌집을 발로 찬 소녀 1 밀레니엄 (뿔)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소년이 여러 명의 남성이 한 여성을 윤간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용감하게 뛰어들어가 그 여성을 구하면 가장 좋겠지만, 섣불리 끼어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다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못 본 척 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스티그 라르손은 후자였다. 열다섯 살 때 스티그 라르손은 윤간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대신 두고두고 후회했다.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며 고통에 시달렸다. 저널리스트가 된 후에는 평생을 여성 폭력, 학대 문제에 바쳤다. 소설도 썼다. 제목은 <밀레니엄>. 여주인공의 이름은 당시 피해를 입은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리즈베트. 그녀가 적어도 소설 속에서만큼은 연약한 피해자가 아닌 당당한 여전사로 살기를 바라며.


밀레니엄 시리즈의 마지막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는 지난 1,2부에서 여전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리즈베트 외에도 수많은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3부의 줄거리는 이렇다. 2부 마지막에서 어린 시절 리즈베트의 어머니를 의식불명의 상태가 될 때까지 폭행했던 아버지 살라첸코와 마주한 리즈베트는 니더만이라는 괴력의 사내에게 폭행을 당한 뒤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극적으로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진다. 겨우 의식을 찾고 회복이 된 그녀는 살라첸코가 탄 차에 불을 질렀을 때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을 넘게 끌어온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그녀는 병원에 갇힌 신세. 혼자이고, 완전히 무력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녀를 위해 미카엘 볼룸크비스트와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리즈베트를 돕는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여성들이 많다. 밀레니엄의 편집장이자 미카엘의 오랜 친구인 에리카 베르예르를 비롯하여 경찰 소니아 모디그, 안보 경찰 모니카 피구에롤라, 밀턴 시큐리티 요원 수산네 린데르, 변호사이자 미카엘의 여동생인 안니카 잔니니 등이 그렇다. 하나같이 여성적인 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머리도 좋고, 체력도 좋고, 인간성까지 좋다. 강자에게는 당당하며 약자에게는 우호적이고, 일에 있어서는 공평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롭다. 작가는 소설의 매 장(章) 앞머리에서 아마조네스를 비롯해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고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여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할 때마다 이 여전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제까지 무시되고 억압되어 온 여성의 힘과 지혜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2부가 리즈베트의 과거와 살란체코 일당, 살란체코를 비호하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파헤치며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부분이라면, 3부는 리즈베트가 살란체코 일당과 비호 세력을 응징하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조금씩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재미있기로는 3부보다는 2부가 낫다. 하지만 2부와 3부가 이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2부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3부를 읽어야만 할 것이다. 2부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겨진 문제들은 3부에서 거의 다 해결이 되지만, 리즈베트의 배다른 여동생인 카밀라의 행적과, 좀처럼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리즈베트와 미카엘의 사이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3부에서 이미 스웨덴 수상까지 다 나온 마당에 10부까지 갔으면 대체 어떤 내용이 나왔을지(EU의장? 미국 대통령?) 이제는 알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연인 미만 친구 이상에서 멈춰버린 리즈베트와 미카엘의 관계만큼은 비록 알 수는 없지만 해피엔딩인 걸로 상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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