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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ㅣ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평점 :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 성대모사를 하다가 목소리 연기에 재미를 느껴 성우가 된 손열매는 전과 다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심한 날엔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는 증상을 겪는다. 원인은 아마도 십 년 넘게 룸메이트로 지내며 월세며 생활비를 함께 냈던 수미 언니(고수미)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졸지에 일자리도 잃고 룸메이트도 잃어버린 열매는 수미 언니의 고향인 완주로 간다. 처음엔 수미 언니한테 받아야 할 돈을 수미 언니 어머니한테 받을 심산이었지만, 막상 항암 치료 중인 어머니가 장의사 일과 매점 일을 병행하며 힘들게 살고 계신 모습을 보니 좀처럼 말문이 안 열린다.
결국 열매는 수미 언니 집에서 한동안 살면서 어머니 일도 거들고 수미 언니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좋게 말해 한가롭고 나쁘게 말해 아무 것도 없는 이 시골 마을 살이가 의외로 열매의 적성에 맞는다. 수미 언니 어머니가 장의사 일을 하러 나가면 가게를 지키면서 어쩌다 오는 손님 상대하며 믹스 커피를 타 드리고, 꽃과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걸어 다니며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이 때로는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즐겁다. 그렇게 열매는 외계인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옆집 남자 어저귀, 등교 거부 중인 중학생 양미, 활동이 뜸한 배우 정애라 같은 새 친구들을 사귀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간다.
<첫 여름, 완주>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답게 잘 읽히고 재미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레 요코, 오가와 이토 같은 일본의 여성 작가들이 쓴 소설 느낌도 나는데, 그러한 일본 소설의 여성 주인공들은 말투가 나긋나긋하고 성격도 온화한 반면, 이 소설의 주인공 열매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때로는 거친 욕도 불사하며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화통해서 일본 소설보다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웃음을 유발하는 대화나 장면이 많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배우 박정민이 만든 출판사 무제에서 펴낸 '듣는 소설' 시리즈 첫 권이기도 하다. '듣는 소설' 시리즈는 시각 장애가 있는 독자들을 위해 오디오북을 먼저 펴내는 시리즈이다. 그러한 특징이 있는 소설인 만큼, 소설을 읽는 동안 각 장면을 글자가 아닌 소리로 만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며 읽었는데 그 재미가 쏠쏠했다. 소리뿐 아니라 냄새나 촉감 등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들을 묘사한 문장들에도 다른 소설을 읽을 때에 비해 더욱 눈길이 갔다. '듣는 소설' 덕분에 소설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