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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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흡에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여러 호흡으로 나누어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은 단연 후자다. 책의 분량 자체는 적은 편이다. 이야기도 단순한 편이라서 한 호흡에 읽으려고 하면 충분히 그렇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문장이, 나로 하여금 여러 번 호흡을 멈추게 만들었다. 


소설은 백석 시인의 7년을 그린다. 한국전쟁 후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모두가 땀 흘려 일해 얻은 바를 즐거이 나누는 새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믿고 북으로 갔을 때만 해도 백석은 밝은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원하는 시를 마음껏 쓰고 틈틈이 외국 시를 번역하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백석이 처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국가에 등록된 문인으로서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이 요구하는 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야 했다. 당이 원하는 대로 시를 쓰지 않으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시를 쓰지 않고 번역을 하겠다고 하면 사대주의자라는 또 다른 오명이 씌워졌다. 백석과 벗으로 지냈던 문인들은 하나둘 숙청되거나 벽지로 추방되었고, 지인에게 편지 한 통 마음 편히 보낼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백석의 친구 준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인가 봐." (30쪽) "시바이(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31쪽) 


백석은 점점 더 조여드는 당의 압박 때문에 괴로워한다. 당의 뜻을 따르면 시인으로서의 자신은 저버리는 게 된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저버리면 가족들과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무엇을 택할 수도 없고 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백석은 양강도 삼수군의 협동농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형(刑) 아닌 형'을 받게 되고, 거기서 그는 농사를 짓고 양을 치고 남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낸다. 이후 백석이 삼수에서 어떤 시를 썼는지, 시를 쓰기는 했는지 밝혀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작가는 백석이 어떤 식으로든 시심(詩心)을 지켰을 것이며, 시 쓰는 사람은 시 쓰지 않는 것으로도 시를 쓸 수 있으며 때로는 삶 자체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 번 멈추어 곱씹게 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이 표면적으로는 백석 시인의 생애 중 한 시기를 그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리 지어 사는 인간의 숙명을, 사람들의 압력과 원초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문제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85쪽) 


아무도 해치지 않는 시조차 쓸 수 없는 삶. 그 삶을 형벌처럼 견뎌야 했던 시인. 마지막으로 눈 감을 때, 백석은 웃고 있었을까 울고 있었을까. 가닿을 곳 모르는 마음이 허공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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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처럼 쓴다 - SF·판타지·공포·서스펜스
낸시 크레스 지음, 로리 램슨 엮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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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공포, 미스터리 등의 장르물을 잘 쓰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미국의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66인이 참여했으며, 소설가이자 출판 편집자인 로리 램슨이 책을 엮었다. 원제는 'Now Write! Science Fiction, Fantasy and Horror'로, 한국어판 제목과 다르다. 


각각의 글은 본문과 실전연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실전연습에 실용적인 팁이 아주 많다. 판타지 소설 작가 데이비드 앤서니 더럼은 소설 속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3분 글쓰기'를 제안한다. 3분 동안 특정 시대와 장소의 건물이나 실내 모습을 묘사하고, 또다시 3분 동안 방금 묘사한 방 안의 인물을 묘사하는 식이다. 전혀 말도 안 되는 문장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일단 쓰고, 잘 모르는 소재나 단어라고 해도 쓴다. 그런 식으로 의식의 간섭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글을 쓰면 평소에 하지 않는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이야기의 디테일도 높일 수 있다. 


SF와 판타지 장르는 중심을 이루는 세계관이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허구적인 만큼 디테일이 중요하다. 특히 캐릭터의 디테일이 중요한데, 캐릭터의 디테일을 높이고 싶을 때는 다음의 연습법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아무 사건도 없는 평범한 날 인물은 무엇을 할까?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가 주어진다면 인물은 무엇을 할까? 이런 식으로 상상하다 보면 인물의 캐릭터가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해질 뿐만 아니라, 에피소드도 보다 풍성해지고 작품 전체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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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반딧불이 (양장) 마음산책 짧은 소설
손보미 지음, 이보라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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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고(이런 즐거움, 오랜만이다!) 앞으로 손보미 작가의 작품을 더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기존의 한국 소설보다는 미국 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번역투의 문장이라든지 이국적인 소재를 많이 차용한다는 점에서 두 작가를 모두 좋아하거나 혹은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이 많아 보인다(나는 당연히 전자다). 


공교롭게도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님의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에 손보미 작가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그것부터 읽었다. 반가운 내용이 많았는데, 일단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실물 찾기의 대가>라는 연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내용이 이미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는 것. 2019년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출간된 <우연의 신>이 바로 그것인데, <분실물 찾기의 대가> 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최후의 조니워커>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분실물 찾기의 대가>는 제목 그대로 의뢰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설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탐정 소설이라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었다.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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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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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말을 한다. 그래서 말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중략) 혹시 몸은 마흔 살, 쉰 살이 되었는데 말은 20, 30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말도 성장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며 말도 자라야 한다. 말이 그 사람이다." (6쪽)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 '글쓰기' 관련 책을 주로 써온 작가 강원국이 이번에는 '말하기'에 관해 썼다. 저자는 2020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KBS1 라디오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을 진행하며 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말이란 무엇일까. 어떤 말이 좋은 말일까. 좋은 말을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저자가 생각하기에, 좋은 말은 좋은 사람에게 나온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좋지 않은 사람이 좋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좋은 말의 모범으로 '어른다운 말'을 제시한다. 어른다운 말은 징징대거나 어리광 부리지 않는 말이다. 감정을 절제해 의젓하게 하는 말이다. 누구를 따라 하지 않고 나답게 하는 말이다. 내 말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주의하는 말이다. 내 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늘 깨어 있는 말이다. 


말은 습관이고 버릇이다. 어른답게 말하고 싶으면 본받고 싶은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의 말을 반복해 듣는다. 주의를 기울여 지속적으로 듣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말투를 본받게 된다. 어떤 사람 말을 들으면 믿음이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목소리나 발음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특징도 있을 수 있다. 어른답게 말하는 사람은 말꼬리를 흐리지 않는다. 급하게 말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다. 어디서 보거나 들은 말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을 전한다. 뻔한 말은 삼가고,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배려해서 할 줄 안다. 


말은 전염성이 강하다. '고맙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같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주변에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싫다', '힘들다', '네 탓이다' 같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주변에 나를 꺼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말을 잘할 자신이 없으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상책이다. '대화란 상대편이 점수를 많이 내야 내가 이기는 게임'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습관처럼 감탄사를 달아주고 질문을 많이 하면, 상대방은 충분히 공감받고 자기 할 말을 다 했다고 느낄 것이다. 그만큼 당신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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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 한국문학의 정상성을 묻다
오혜진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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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출판사에서 나온, 믿고 읽는 저자의 책이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문학 연구자는 더더욱 아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없지 않았지만,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와 조선희의 <세 여자>처럼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나 역시 흥미롭게 읽은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은 수월하게 읽혔고, 여성 서사와 퀴어 서사 등 현재 한국 문학계에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에 관한 글이 많아서 어려워도 읽을 만했다.


누군가를 착취해야만 성장 가능한 이 시대에 '자아실현'이라는 신화에 스스로를 기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최은영의 인물들이 앓는 "우울증"의 정체다. 최은영의 소설은 '성별, 학력, 나이, 지역, 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실력만 있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어진 '알파 걸'의 시대에 '성장'을 일종의 '외상(trauma)'로 경험해야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268쪽) 


누가 봐도 엄연히 동성애서사를 써놨는데 그게 동성애서사로 읽히지 않아서 좋다니, 그게 무슨 미덕이고 칭찬이겠는가. (4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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