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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일기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5년 1월
평점 :

최민석 작가의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다. <베를린 일기>, <40일간의 남미 일주>, <기차와 생맥주> 등 최민석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마드리드 일기>는 출간된 지도 모르고 있다가 구독하는 전자책 서비스에서 발견하고 뒤늦게 읽었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멋진 사진이 많으니 종이책으로 읽는 편을 권한다. <베를린 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느낄 부분이 많으므로 <베를린 일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은 저자가 토지문화재단과 스페인 문화체육부가 협정한 '교환 작가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2022년 8월 31일부터 두 달간 마드리드에 머무르고 그 후 보름을 자비로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여행' 에세이로 분류된 책이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여행보다 스페인어 공부를 더 많이 한다. 뜻밖의 일은 아닌 게, 최민석 작가의 팬이라면 다 알겠지만, 저자의 취미는 여행과 외국어다. 다른 사람들은 취업이나 진학을 목표로 외국어를 공부할 때 저자는 그냥 좋아서 공부할 만큼, 외국어 공부 자체를 좋아한다. (저자의 외국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의 전작 <기차와 생맥주>에 자세히 나온다.)
이미 한국에서 오랫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해왔던 저자는 이번 마드리드 여행을 기회로 자신의 스페인어 실력을 향상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어학원에 등록해 레벨 테스트를 치르고, 매일 성실하게 수업을 받고 과제를 해낸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틈틈이 원고도 쓰고 마감도 하고, 어학원 동기들과 현지 식당과 술집, 카페도 다닌다. 아이리시 펍에서 축구도 보고, 스페인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도 만나러 간다. 책 후반부에 저자는 나이가 들어서 더는 예전처럼 여행을 못하겠다고 썼는데 젊은 사람도, 한국에서도, 이렇게 살면 번아웃 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시간도 좀 가지셨으면.)
그래도 덕분에 그동안 어디에서도 못 읽은 스페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스페인어 가능자가 아니었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어떻게 중고 거래를 하는지, 스페인 사람들은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한국인과 다른) 어떤 특징이 있는지 같은 이야기를 내가 어디서 읽을 수 있었을까. 몇십 년 전에 스페인으로 이민 가서 일가를 이룬 교포 어르신들이 당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저자가 소설가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최민석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여행 에세이가 있는데 더는 못 읽을까봐 두렵다. 바르셀로나 일기, 파리 일기, 기대하면 안 될까요... (물론 소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