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자이언트 모멘텀 1
이시즈카 신이치 지음, Number 8 스토리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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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신기하다. 현실에서는 해본 적 없고 접해본 적도 별로 없는 분야나 장르를 이렇게 사랑하게 만들다니. 재즈에 관해선 <블루 자이언트> 시리즈가 그렇다. 재즈를 들어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광적인 팬도 아닌 내가 이 만화를 볼 때만큼은 열렬한 팬인 듯한 기분을 느낀다. 재즈에 대해 전혀 몰랐던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가 우연히 재즈의 매력에 눈을 떠 자신의 인생을 건 도전을 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쭉 지켜봐 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랬던 다이가 이제 일본, 유럽, 미국 전역을 거쳐 재즈의 중심지 뉴욕에 입성했다. '모멘텀'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신의 팀과 함께.


<블루 자이언트 모멘텀> 1권은 그동안 미국 전역을 돌면서 만난 재즈맨들을 모아 마침내 자신의 팀을 꾸린 다이가 뉴욕에 입성해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이는 리더로서 멤버들이 편안하게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싶지만, 애초에 다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많지 않았던 데다가 뉴욕 물가가 그야말로 살인적이라서 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다. 인지도도 부족해 괜찮은 공연 기회를 잡기도 힘들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인 면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이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천성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인 걸 알고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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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당쇠르 19
조지 아사쿠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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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GP(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를 1위로 마친 '준페이'는 오이카와 발레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에 남아 '블랑코'의 사사를 받기로 한다. 그동안 준페이를 후원해준 오이카와 발레단의 수장 '오이카와 아야코'의 분노를 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러나 무술 소년이었던 자신을 춤의 세계로 인도한 장본인인 블랑코를 만난 데다가 자유롭고 즐거운 뉴욕의 분위기에 푹 빠진 준페이는 아야코의 반대나 방해에 눈 하나 깜짝 않고 뉴욕 체류를 고집한다. 문제는 준페이가 가진 비자로는 뉴욕에 오래 머물 수 없고, 준페이가 가진 돈으로는 유학은커녕 생활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속이 타들어 가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속 편하게 지내는 준페이를 보다 못한 블랑코는 자신의 전 후원자인 '게리 스튜어트'를 소개한다. 20여 년 전 아르헨티나의 한 공원에서 춤을 추는 블랑코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게리는 블랑코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물심양면으로 블랑코를 지원해 주었다. 준페이의 춤을 아직 본 적 없는 게리는 다가오는 주말에 있을 자신의 가족 파티에서 준페이가 추는 춤을 보고 지원을 해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미국 체류 가능성이 달린 중요한 기회를 앞두고 열심히 연습하는 준페이. 자신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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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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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단서를 조합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06년에 발표한 소설 <붉은 손가락>은 이 재미를 포기한 듯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 소설은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에게 확실히 알려준다. 그러면 범인이 누구인지 찾는 재미는 포기했구나 싶은데,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독자들과 달리)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형사가 뒤늦게 나타나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범인과 형사의 추리 대결인 동시에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독자와 형사의 추리 대결이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 결국 형사가 범인 찾고 끝,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의 명성을 얻었을 리가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범인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노력한 범인의 가족은, 경찰의 수사망이 거의 다 좁혀진 것을 눈치채고 범인이 아닌 다른 인물을 범인으로 내세우는 대담한 수를 쓴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반전인데 얼마 후 하나의 반전이 더 나온다(!!). 그전까지 솔직히 좀 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드렁한 기분으로 이 소설을 읽던 나도 이 반전 앞에서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전의 내용상 단순히 독자를 놀래키려고 이런 반전을 생각해냈다기보다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의 심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그걸 통해 자신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인간 심리의 일면을 보여주려고 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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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강의 시간 4
요시다 아키미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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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우타강의 시간>은 쇠락해 가는 온천 마을을 지키려고 분투 중인 세 명의 청년 가즈키, 루이, 다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즈키는 오랜 역사를 지닌 여관 '아즈마야'에서 온천수 관리자 견습생으로 일을 배우는 중이다. 다에는 아즈마야의 큰여사장님의 손녀로서 여관 일을 배우고 있다. 루이는 마을사무소 관광과에서 일하며 마을을 외부에 알리고 있다. 이 마을은 겉보기에 조용하고 평화롭고 사람들도 다 선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이 이 마을에도 문제가 있고 주인공들에게도 남모를 고민과 갈등이 있다. 가즈키에게는 그것이 복잡한 가족사이다. 


가즈키의 어머니가 여러 남자를 만난 바람에 가즈키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도 있고(현재 함께 살고 있는 마모루), 피가 섞이지 않은 누나도 있다(<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넷째 스즈). 가즈키의 친형제는 도모키 하나인데, 몇 해 전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고 마을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런 도모키가 양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오랜만에 형 앞에 나타나는데, 용서를 빌기는커녕 뻔뻔한 말들을 늘어놓는 도모키에게 가즈키는 평소 모습과 다르게 크게 화를 낸다. 도모키의 잘못도 있지만, 이들이 싸우는 건 결국 부모들이 지은 죄 때문인데... 부모가 만든 허물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 이야기는 언제 봐도 가슴 아프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고, 얼마 전부터 연락하고 지내게 된 스즈네 가족과의 인연이 가즈키에게 큰 힘을 준다(스즈의 셋째 형부가 많은 활약을 한다). 마을에서 신뢰 받는 공무원으로 열일 중인 루이는 도쿄에서 사업을 하는 다에의 이모의 눈에 들어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다. 다에는 어른답지 못한 엄마 때문에 고생인데, 그러고 보면 세 주인공 모두 (아빠가 아닌) 엄마 때문에 고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루이는 아빠라도 있지 다른 둘은 아빠도 없다). 오래전 마을의 산에서 실종된 청년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사항이 발견된다. 잔잔하지만 잔잔함뿐이지만은 않은 이 만화. 가끔씩 나와도 좋으니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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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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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찬양할 만큼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는 못 되어도 스스로 생각할 때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살다 보면 모르고 그런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고, 알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아무도 안 보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 돈이 되니까, 귀찮으니까 등등)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김애란 작가가 8년 만에 발표한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그러한 상황이 다양하게 나온다. 


<홈 파티>의 '이연'은 이른바 '사회적 주류'라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되어 그중 한 명인 오 대표의 집에서 열리는 홈 파티에 참석한다. 이연은 대화에 드러나는 그들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온전히 공감하진 못했지만, 손님으로 온 처지이기도 하고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시종 온화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대화가 어느 대목에 이른 순간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를 뜨게 된다. 이연이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면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순 있었겠지만 이연 자신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순 없었을 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과, 반대로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들이 얻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숲속 작은 집>의 '은주'는 결혼 후 계속해서 미룬 신혼여행을 대신해 남편과 동남아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난다. 한국보다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음에 만족해하던 은주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겪는다. 매일 숙소를 관리해 주는 메이드에게 팁을 주어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편과 달리, 은주는 메이드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데다가 메이드를 볼 때마다 청소 일을 하며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은주가 호의를 베풀수록 은주가 기대한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은주는 자신의 선의가 그들의 존엄을 건드렸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부끄럼을 느낀다. 


이어지는 단편 <좋은 이웃>에서는 독서지도사로 일하는 '나'가 내심 자신의 가족보다 형편이 안 좋다고 여겼던 학생의 가족이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걸 알고 시기한다. <이물감>에는 전처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하고 직장 후배들에게 꼰대짓을 하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은행원 '기태'가 나온다. <레몬케이크>의 '기진'은 자신이 운영하는 책방의 중요한 행사 날짜가 시골에 사는 엄마가 병원 검진을 받으러 오는 날짜와 겹치는 걸 뒤늦게 알고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좋은 사람답게 행동하려고 했던 사람이 결코 좋은 사람이라면 가질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을 때 느낄 법한 당혹감, 실망감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돈이나 계급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보여준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는 원어민 강사 로버트와 화상 영어 수업을 하면서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단어로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빗방울처럼>의 '지수'는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는 도배사의 모습을 보면서 삶을 이어갈 용기를 얻는다. 부끄러운 일이 많다는 건 말 그대로 부끄러운 실수나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부끄럼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나에게는 부끄럼을 느끼는 양심이 남아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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