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브랜딩 공부하라 지금 당장 경제 시리즈
엄성필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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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백화점에서 몇십만 원에 파는 유명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통관 가격이 고작 몇 백원, 몇 천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텔레비전 보도를 보았다. 가격에 거품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몇배, 몇십배 수준이 아니라 몇백배, 몇천배 수준이라니...... 거품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거품이 생기는 이유로는 유통구조의 문제라든가 임대료, 인건비, 홍보비, 모델 출연료 등을 들 수 있지만, 소위 말하는 '브랜드 값'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비싼 줄 알면서, 거품인 줄 알면서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일까? '낙인'이라는 브랜드의 뜻처럼, 명품을 쓰면 마치 나한테 명품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서일까? 비싼 제품을 쓰면 내 몸값도 비싸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지금 당장 브랜딩 공부하라>의 저자 엄성필 역시 유명 해외 브랜드 화장품의 사례처럼 브랜드의 힘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힘이 제대로 쓰일 때의 무한한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브랜딩을 좋게 말하면 '마법', 나쁘게 표현하면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예를 든 에비앙도 솔직히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브랜딩을 사기가 아닌 마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강점은 부각하고, 약점은 감추며, 소비자에게 감정적 애착을 끌어내는 것이 브랜딩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처럼 대단한 마법이 어디에 있을까요?" (서문 중에서) 사실 값비싼 명품 브랜드만 브랜드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니클로, 자라 같은 SPA브랜드 제품이나 로드샵 화장품 등 명품에 비해 훨씬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이들은 저렴하지만 품질 좋고 유행에도 뒤떨어지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이미지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비싼 제품은 비싼 대로, 싼 제품은 싼 대로, 소비자는 제품을 구입할 때 제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브랜드까지 함께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랜드를 마냥 사기다, 거품이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하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것으로 너그럽게 보아도 좋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에르메스, 구찌, 프라다, 루이비통 등 유명 패션 브랜드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잘 구축하여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로 에르메스를 들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어서 화제가 된 '켈리백'과 영국 출신 프랑스 여배우 제인 버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버킨백'은 지금도 사려면 적어도 2년은 대기해야 하는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 중의 브랜드다. (막상 버킨백의 뮤즈인 제인 버킨은 무거워서 버킨백을 안 쓴다고 하니 아이러니다.)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떠오른 명품 브랜드로는 멀버리가 있다. 멀버리는 오랫동안 품질은 좋지만 인기가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영국 출신 모델 알렉사 청이 들어서 일약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가 애용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주가가 급등했다.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유명한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거나 그들을 통해 강력한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을 보면 브랜드 이미지의 형성에 스타 마케팅의 몫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출판계에서도 어떤 연예인이 읽었다더라, TV에서 애독서로 소개했더라 하는 것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홍보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는데, 홍보가 되어서 좋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좋기만 한 일일지는 모르겠다.  



뜨는 브랜드가 있으면 지는 브랜드도 있는 법. 저자는 신규 브랜드에 밀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브랜드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노키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 수위를 점하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업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노키아가 여기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은 물론 기업의 존속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어디 노키아뿐이랴. 식품, 화장품 같은 저가의 일용품도 인기 브랜드가 몇 년 사이에 휙휙 바뀐다. 경영, 브랜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 브랜드에 애착을 가지면 오랫동안 충성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점점 그 추세가 빨라지니 아쉬움이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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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좀 빠진 것 같은데? 오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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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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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하도 많이 받아서 집에 이 책이 쌓여 있었다.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으련만, 잘 팔리고 인기 많은 책은 왠지 꺼려지는 못된 심보(!) 때문에 통 읽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지인이 대화 중에 이 책의 어느 구절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이 좋아서 이 책을 제대로, 그야말로 '각 잡고'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스님이 쓰셔서 잠언집, 명상집 같은 책일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저자인 혜민 스님의 출가 전후의 이야기도 많고(특히 출가 전 학생 시절의 경험담과 첫사랑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잠언 비슷한 구절들도 저자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서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스님이 쓴 책인데도 불법(佛法)에 대한 인용이 많지 않고, 명상이나 수련 같은 마음 공부법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일반 대중을 겨냥한 책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적기는 해도, 마음공부를 하는 자세,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마음 공부는 일반 공부와는 정반대로 해야 해요. 일반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워서 지식으로 채워가지만, 마음공부는 반대로 '안다'는 생각을 쉬고 또 쉬면서 텅 빈 채로 이미 충만한 마음자리를 밝히는 것입니다.(p.41)" 마음 공부는커녕 그냥 공부하기에도 바쁜 보통의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구절도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을 보면 욕심이나 욕망을 경계하라는 구절이 많다. 가령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중략)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p.71)",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은 베풂만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없이 사라질 재물이 받은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p.84)" 등 인간관계에 있어서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든, 돈 관리에 있어서든 욕심을 버리고 나누고 베풀라는 내용이 많다. 먼 듯 하지만, 앞서 말한 '마음공부는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다'라는 내용의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으로 각 장의 내용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점도 좋았다.  



물론 저자의 역량이 컸겠지만, 이만한 내용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회적으로 '혜민 스님 신드롬'까지 낳은 것을 보면 편집자, 출판사의 공이 컸겠다 싶다. 책의 만듦새와 엮임새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절들을 혜민 스님의 독특한 경험 - 평범한 학생에서 불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고, 출가 후 평범한 불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점 등 - 과 잘 조합해서 읽기 좋게 잘 만들었다. 마치 안 그래도 귀한 옥을, 더 값이 나가도록 잘 연마하듯이 만든 책 같달까? 어쩌면 그 연마하는 마음이 마음 공부하는 자세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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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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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는...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여자에요.(p.211)" 남자는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했다. 친구는 동정으로 시작된 사랑은 무관심이나 증오보다 더 나쁜 것이며 말렸다. 남자도 자기 자신을 의심했다. 유난히 잘생겼던 그의 아버지는 유난히 못생겼던 그의 어머니를 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용기를 내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할 줄 알았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사실 몇 달 전 책을 구입하자마자 읽기를 시도했는데 문체가 생경하기도 하고 작중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몇 장 읽고 덮어버렸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창비 라디오 책다방> 박민규 작가님 편을 듣고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당장 읽기 시작했는데, 오 마이 갓! 내가 이 책을 그냥 포기했다면 큰일 났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 같기도 하고,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 같기도 하고, 세 남녀의 젊은 시절을 그린 청춘물 같기도 한 이 소설은 그냥 읽으면 마치 80년대 청춘 영화를 보는 듯 그저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읽으면 그 속에서 2010년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여성의 미(美)'에 대한 사회의 야박한 시선과 이로 인한 사회적인 계급의 형성, 외모에 대한 비관 때문에 생긴 내면의 장애 같은 것에 대한 저자의 일갈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보는 <렛 미 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방송에서 외모 때문에 각종 사회적 차별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외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러한 차별과 고통이 성형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 여배우나 걸그룹 같은 외모를 가짐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프로그램의 시각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그 방법밖에 선택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고, 출연자 중에는 외모와 관련하여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어서 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외모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자본처럼 다뤄지고, 외모가 아름다우면 자본이 있는, 소위 말하는 갑(甲)이고, 아름답지 못하면 자본이 없는 을(乙)처럼 취급되는 현실 자체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단 외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넓게 보면 외모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자본화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폐해, 또한 그러한 자본의 유무를 통해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의 폐단,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무시하고 살아가는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일반 시민들의 아이러니를 이야기 하는 것이 이 소설이다. "고대의 노예들에겐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한다." (p.310)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들은 그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잘해야 하고, 외모도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세상의 눈에 고깝게 보이지 않도록 때 되면 대학가고, 때 되면 취직하고,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낳고, 때 되면 퇴직하며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은 왜 고달플까? 못생겨서?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을 못나와서? 직장이 별로라서?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해서? 애가 없어서?... 그런 것들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 사회와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두 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런 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서서 5분 회전바퀴,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 우와, 거의 하루인 걸. 한적한 느낌의 참으로 시시한 회전 커피 잔에 앉아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p.200)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열린 결말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해피엔딩이었다면 현실에서는 평생을 응달에서 살아야했을 여자의 운명을 비현실적으로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새드엔딩이었다면 못생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운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한탄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모두 취하는 독특한 결말을 통해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끔 결말을 열어두었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운명도 열린 것일까? 마냥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극적이지도 않을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팍팍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더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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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과의 대화 - 세계 정상의 조직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시아의 거인들 2
톰 플레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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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좋아하고 존경하는데도 그에 대한 책을 이제까지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아동, 청소년용 도서인 탓도 있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그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한 책보다는 영웅시하고 미화하는 책이 많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서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과의 대화>는 읽기에 적절했다. 일단 저자가 톰 플레이트라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에 물들지 않고 제 3자의 시선으로 반기문의 공과 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또한 그는 <타임>, <뉴스데이>, <뉴욕> 등에서 활동한 바 있는 전문 언론인이자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유력한 '아시아 정보통'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기문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기 전부터 만남을 가져온 사이라서 오랫동안 그의 경력과 업적을 지켜봐 왔다는 점도 좋았다. 또한 반기문도 지난 2년 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십여 차례 이상 저자와 만남을 가지며 책의 인터뷰이로서 성실하게 참여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공식 인정한 유일한 책'이라는 광고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저자는 먼저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설명한다. 국내에서는 유엔사무총장을 '세계의 대통령'이라느니 '대통령 중의 대통령'이라느니 하는 말로 찬양하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눈에는 "정신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하고 싶어할 리도 없지만 할 수도 없"는 일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유엔 사무총장 같은 직업은 없다. 독특하다는 말이 딱 맞는 직업이다. 사무총장이 되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지만, 동시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은 관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 유엔 회원국 수를 감안하면 200여 명의 보스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몇 분 안에 음식을 요리해내는 전자레인지처럼 바로바로 성과를 내놓길 바라는 서구 언론들까지 그를 주시하고 있다. 그뿐이랴. 유엔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제적인 규모로 움직이는 폭력단들 간의 싸움도 그중 하나다." (p.23) 일반인들은 신경도 안쓰고 사는 재해와 테러, 전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루 24시간 내내 전세계를 누비는 것도 모자라, 일을 잘 못하면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여가, 취미는커녕 하루에 몇십 분 쉬지도 못한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처럼 엄청난 부를 실컷 누리고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부르는 미국인들의 눈에는 반기문처럼 똑똑하고 능력있고 야심도 있는 사람이 고작 20만 달러의 연봉과 관저만 받고 이런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관료를 우대하는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공무원으로서나 외교공무원으로서나 최고위직에 오른 반기문을 가장 성공한 한국인 중 하나로 여기는데, 외국인들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돈만 잘 벌면 장땡'이라는 식의 미국식 사고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직책이 높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기만 하면 됐지 일의 본질이나 실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나라의 정서도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유엔사무총장이 하는 일의 실체는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계속 읽어보았다.



저자는 반기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력과 업무 스타일, 유엔이라는 조직 내에서의 문제, 여성 문제, 북한과 일본, 중국 등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정치 문제에 대한 생각 등을 낱낱이 밝혔다. 그의 이력이야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고, 지독한 워커홀릭에,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전형적인 '외교가'라는 업무 스타일 또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유엔이라는 조직 내에서 그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대외적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유엔의 수장으로서 어떤 고충이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바로 유엔사무총장이 하는 일의 실체다) 먼저 유엔이라는 조직은 전세계 백여 개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나 일반 사조직과는 시스템과 문화가 매우 다르다. 반기문은 사무총장이기에 앞서 유엔이라는 조직의 리더로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하기 좋은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의 관행이 무너지는 것이 싫어서 저항했던 직원들도 차츰 그의 노력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유엔이라는 조직의 틀과 속을 모두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형적인 '외교가'인 그는 그것을 자신의 덕으로 돌리지 않고 한국 문화의 공으로 돌렸다. "유엔은 각양 각색의 문화를 모두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도 중요한 문화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문화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성공신화만큼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훌륭한 관리방식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저는 그런 좋은 관행을 유엔에 도입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 부분에서 몇 가지 진전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p.127) 한국의 조직관리방식이 '훌륭한'지는 모르겠지만 효율적이라는 점은 공감한다. 그것이 자신의 덕이 아닌 한국 문화의 공으로 돌린 점도 인상적이다.



대외적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그가 느낀 고충은 더욱 컸다. 임기 초반부터 선진국의 수장과 언론들은 그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출신이라는 것과 카리스마와 언어 실력 부족을 대놓고 조롱하며 무시했다. 재해, 전쟁, 테러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의 개입을 주권 간섭이라며 거부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전세계 리더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이었다. 외교,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리더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그 중에는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걸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엔사무총장도 사람인지라 그런 사람을 대할 때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멸사봉공의 자세로 개인적인 감정을 누르고 공적인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런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약점으로 지적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면 사람들은 놀랍니다. 이런 사무총장을 본 적이 없다면서요. (전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에게 물러나라고 처음 말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죠." (p.183)



이밖에도 여성 문제, 북한과 일본, 중국과 미국 등 동아시아 정치 문제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내용이 다뤄져 있고,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반기문의 하버드 케네디 스쿨 재학 당시의 일화도 소개한다(무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과 조지프 나이의 회고록이 담겨 있다!). 여러 차례 부부 동반 모임을 가졌기 때문인지 저자는 반기문의 부인 유순택 여사에 대해서도 여러 번, 그것도 매우 자세히 언급한다. 유명 인사의 평전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눈에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부인의 모습과 행동이 신선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첫만남에서 부인의 다소곳하고 조신한 몸가짐을 묘사하는 대목이라든가, 사서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위해 헌신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서술한 대목에서 놀라워하는 작가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편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인이나 가족이 그림자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정서로 보면 낯설지 않을 이야기가 외국인에게는 이런 식으로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만약 이 책을 한국인 작가가 썼다면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현모양처다 라는 식으로 일축했을텐데...... 그런 부인을 둔 반기문이 유엔 안팎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저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직접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성 정치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닌지 캐물은 것을 보면 그저 곱게만 보지는 않은 것 같다.  



어느 곳 하나 반기문을 찬양하거나 영웅시하는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쿨'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의 눈에는 반기문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비치는지, 아울러 미국인에게는 한국인 관료의 업무 스타일이나 정치적인 행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핫'하다. 또한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위대한 한국인' 반기문으로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커리어를 설계하고 자신의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외교 전문가, 일과 개인적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주변과 타협하는 사회인, 한 인간으로서의 반기문을 만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치외교학 전공자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될 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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