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선물로 하도 많이 받아서 집에 이 책이 쌓여 있었다.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으련만, 잘 팔리고 인기 많은 책은 왠지 꺼려지는 못된 심보(!) 때문에 통 읽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지인이 대화 중에 이 책의 어느 구절을 인용했는데, 그 구절이 좋아서 이 책을 제대로, 그야말로 '각 잡고' 읽어보았다. 읽어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스님이 쓰셔서 잠언집, 명상집 같은 책일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저자인 혜민 스님의 출가 전후의 이야기도 많고(특히 출가 전 학생 시절의 경험담과 첫사랑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잠언 비슷한 구절들도 저자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서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스님이 쓴 책인데도 불법(佛法)에 대한 인용이 많지 않고, 명상이나 수련 같은 마음 공부법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일반 대중을 겨냥한 책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적기는 해도, 마음공부를 하는 자세,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마음 공부는 일반 공부와는 정반대로 해야 해요. 일반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워서 지식으로 채워가지만, 마음공부는 반대로 '안다'는 생각을 쉬고 또 쉬면서 텅 빈 채로 이미 충만한 마음자리를 밝히는 것입니다.(p.41)" 마음 공부는커녕 그냥 공부하기에도 바쁜 보통의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구절도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을 보면 욕심이나 욕망을 경계하라는 구절이 많다. 가령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중략)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p.71)",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은 베풂만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없이 사라질 재물이 받은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p.84)" 등 인간관계에 있어서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든, 돈 관리에 있어서든 욕심을 버리고 나누고 베풀라는 내용이 많다. 먼 듯 하지만, 앞서 말한 '마음공부는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다'라는 내용의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식으로 각 장의 내용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점도 좋았다.  



물론 저자의 역량이 컸겠지만, 이만한 내용으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회적으로 '혜민 스님 신드롬'까지 낳은 것을 보면 편집자, 출판사의 공이 컸겠다 싶다. 책의 만듦새와 엮임새 면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절들을 혜민 스님의 독특한 경험 - 평범한 학생에서 불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고, 출가 후 평범한 불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점 등 - 과 잘 조합해서 읽기 좋게 잘 만들었다. 마치 안 그래도 귀한 옥을, 더 값이 나가도록 잘 연마하듯이 만든 책 같달까? 어쩌면 그 연마하는 마음이 마음 공부하는 자세와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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