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인생은 짧다. 그러나 '시'라는 형식을 빌리면 21세기의 일본 사회를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80년 전의 루쉰, 60년 전의 나카노 시게하루, 그리고 조국의 과거 시인들과 교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50년 전에 쓴 시(비슷한 것)까지 되살아나 나를 채찍질한다. 이러한 정신적 영위는 모든 것을 천박하게 만들고 파편화하여 흘려버리려 드는 물길에 대항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이다. '저항'은 자주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패배로 끝난 저항이 시가 되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장소의 '저항'을 격려한다.


p.55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일본과는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답답한 벽을 느끼는 일이 간혹 있다. 나는 그것을 일단, 한국과 일본의 메이저리티(majority)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국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국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면서 자신이 '국민'으로서 국가의 비호 - 그것은 동시에 구속이기도 하다 - 를 받는 것을 당연시하며 의심치 않는 심성을 가리킨다. 이런 심성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p.209 <증언불가능성>

(프리모 레비 저)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수용소에서 밤마다 꾸었던 악몽에 관한 글이 나온다. 석방되어 돌아온 후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니 가족들조차 무관심하고 누이동생은 슬쩍 일어나 옆방으로 가버린다는 악몽이었다. 한 40년 후, 죽기 바로 전해에 출간한 에세이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는, 아무리 증언해봤자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데 대한 허탈감이 배어 있다.


p.216

요컨대 '홀로코스트' (책에선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말함) 경험을 '유대인의 경험'으로서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 등의 '다른 고난'과 연결하여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자신의 고난'을 철저하게 응시하는 것이 '타자의 고난'을 향한 상상으로 열릴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 작품이 '세계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는지 판단하는 분기점이리라.


p. 253

'I was born'이라 말하듯, 태어난 아이는 절대적 무방비 상태라 부모나 가족(넓게 말해 어른)의 보호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이를 만든다는 행위에는 (굳이 그의 직접적 부모라는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아이를 보호할 어른들의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낱말로 표상되지만, 실은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 하지만 아이는 무방비하기 때문에, 성장할 때까지는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 여기서 권력관계가 생긴다. 원래는 사회적 단위의 구성원 전원에게 필요해서 생겼을 가족적 유대가 권력관계라는 형태를 띠는 것이다. 아이, 노인, 여성 등 가족 안의 약자에게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탈하기가 극히 어려운 구속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일가의 '가장'에게 가족이란 자신이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는 집단인 것이다. 가정 내 폭력이나 아동학대 사례는 이런 면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민은 하나의 가족'이라거나 '피를 나눈 우리'와 같은 식으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족관계나 혈연관계에 비유하는 것은, 구성원 각자의 자발적인 참가를 전제로 해야 할 사회조직을 마치 '운명 공동체'인 양 묘사하여 구성원들을 권력관계로 묶어둘 위험을 내포한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것이 각 개인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단위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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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4

우리가 누군가의 꿈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그 사람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는 거지요.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손쉽게 자기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며 지냅니다. 하지만 정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느낌, 그 아픔을 겪어보는 데서 공감이 일어나요. ... (꿈 작업을 통해) 진짜 다른 사람 입장이 되어보는 것. 자비심이 거창한 게 아니에요. '내 꿈이라면'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면'. ' 바로 이게 자비심의 실현이에요.


p.269

8주 간의 작업으로 트라우마가 치유되었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1980년 이후 30년 이상 계속되어온 트라우마예요. 저는 광주가 치유되려면 최소한 30년은 치유 작업에 매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첫발을 내딛었어요. 센터는 계속 있을 거고요.

사회에서 그만하자는 말 많이 들으시지요? 라디오에서 들은 그런 배려 없는 말들이 수도 없이 여러분을 아프게 해왔겠지요. 이제 그만하자는 말을 그만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하는 것은 아픈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지 외부에서 할 소리가 아니에요. 상흔의 크기나 깊이에 비해 치유를 위한 노력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난 30여 년 간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매달렸지 아픈 것은 개인의 몫이었지요. 우리는 참 인내심이 없는 사회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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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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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이 오면 반가운 한편 불안하다. 처음엔 내가 보고 싶다느니, 연락 좀 하고 지내자느니 하면서 살갑게 굴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면 결혼한다(그러니까 축의금 내라), 살기가 팍팍하다(그러니까 보험 들어라, 카드 하나 해라) 같은, 좀처럼 편하게 들어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순수하게 언제 보자는 말만 남기면 고마울 정도다.


영국 작가 루스 웨어의 첫 소설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의 주인공 노라도 어느 날 반갑지만은 않은 연락을 받는다. 연락의 내용은 십 대 시절 노라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클레어가 곧 결혼을 하니 싱글 파티에 초대한다는 것이다. 노라는 클레어가 오랜만에 소식을 전한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하다. 불미스러운 일로 헤어진 이후 십 년도 넘게 연락하지 않았던 클레어가 이제 와 자신을 찾는 이유가 뭘까 싶다. 결국 노라는 싱글 파티가 열리는 별장으로 향한다. 한편, 소설의 한 축에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가 있다. 기억나는 것은 깊고 깊은 숲 속을 사력을 다해 달렸던 것. 온몸이 상처투성인 것만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할 뿐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 여자는 누구이며 그녀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연락이 끊긴 친구한테 갑자기 연락이 와서 싱글 파티에 가게 된 것만으로도 황당한데 하필이면 싱글 파티가 전파도 안 터지는 깊은 산속에서 열린다. 그뿐인가. 공통점이라고는 클레어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뿐인 사람들과 며칠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내가 노라와 같은 처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턱턱 막힌다. 나라면 이런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노라는 옛정을 생각해 친구 결혼 축하해준다고 먼 길을 간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황당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하다. 급기야는 노라가 숨겨왔던 과거가 모두의 앞에서 까발려지고 힘들게 봉합했던 상처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시작된 악몽 같은 시간. 기억나는 것이라곤 깊고 깊은 숲 속을 달렸던 것뿐인 여자의 이야기까지 겹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즐겁고 유쾌해야 할 싱글 파티가 끔찍한 악몽과도 같이 변하는 반전이며, 현실에서 고대로 따간 듯한 인물 설정까지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소설이다. 리즈 위더스푼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녀가 소설 속 긴장감을 어떻게 재현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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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 이야기 - 페이스북을 만든 꿈과 재미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움직이는 서재) 7
주디 L. 해즈데이 지음, 박수성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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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들의 롤모델은 누구일까? 김연아? 엑소?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롤모델로 삼은 청소년도 있을 것이다. 타임지 선정 2016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016년 포춘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CEO 마크 저커버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저커버그의 삶을 청소년의 시각에 맞게 재구성한 책 <저커버그 이야기>를 읽으며 어른인 나도 많은 점을 배웠다.

 

저커버그는 1984년 미국 뉴욕 주에서 컴퓨터 마니아인 치과 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컴퓨터 덕후였던 저커버그는 고등학교 시절 이미 '시냅스'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에이오엘에서 1백만 달러에 프로그램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커버그는 집안도 좋고 우수한 두뇌까지 갖춘 전형적인 '금수저'로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저커버그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저커버그는 어느 날 클럽에서 한 여학생과 격렬한 말싸움을 벌였다. 기분이 상한 저커버그는 그날 밤 하버드 대학교의 온라인 학생 명부를 해킹해 재학생들의 증명사진을 구했고, 하버드 여학생들의 얼굴을 비교하는 '페이스매시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학생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건 하룻밤 실수도 아니고 '악동 기질'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도 없는 범죄다. 하버드 대학교의 수재 쌍둥이 윙클보스 형제와 디브야가 구상한 '하버드커넥션'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혐의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실수를 알았고 반복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성공하자 하버드를 그만두면서까지 사업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개발자에서 경영자로 변신하기 위해 애썼다. 최고 경영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보다는 도널드 그레이엄, 셰릴 샌드버그 등 유력 인사들에게 배움을 청했다. 딸 맥스가 태어나자 자신의 전 재산인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자신이 세운 자선 재단에 기부했고, 인터넷의 영향력을 활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서도 그랬고 이 책을 읽을 때도 마크 저커버그라는 인물에 대해 마냥 좋은 평가만을 내리긴 어려웠다. 하지만 좋은 집안 배경과 명석한 두뇌와 세계 최고 명문 출신이라는 '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나간 점, 과거의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나은 경영자,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점만큼은 좋게 평가하고 싶다.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도 젊은 시절 크고 작은 과오를 저질렀고 이를 통해 더욱 성장하지 않았던가. 마크 저커버그도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발전하길 기대한다.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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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
샤를 와그너 지음, 문신원 옮김 / 판미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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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들뜨고 갈증으로 목이 타는 환자는 자면서 서늘한 개울물에 몸을 담그거나 맑은 샘물을 벌컥 들이켜는 꿈을 꾼다. 마찬가지로 복잡다단한 현대 생활에 지친 우리의 영혼도 단순함을 꿈꾼다.


정리법을 다룬 책이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는 최소한의 소유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대세다. 기업에서도 단순함의 원리를 도입한 경영 전략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에 프랑스에서 단순한 삶의 아름다움을 전파한 사람이 있다. 프랑스 개혁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친 진보적인 목사 샤를 와그너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파리 바스티유 빈민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며 스스로 단순한 삶을 실천하고 사람들에게도 단순한 삶을 권했다.


1895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점점 복잡해지는 삶에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단순함의 본질과 단순함을 실천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유물을 전부 처분하고 직업도 버리고 사회적 지위도 내놓아야 하는 줄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조언한다. '단순함은 이런저런 특별한 경제 조건이나 사회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삶의 유형을 부추기고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우리의 정신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무력하게 움츠러들어 후회하기는커녕 이 기회에 단순해지기로 마음먹고 일상에서 활기차게 실천할 수 있다.' 단순한 삶은 물질적 조건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상태다. 단순해지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누구나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다.


집고 들어갈 작은 틈새를 노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면, 다른 누군가도 우리를 따라서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회에 얼마나 많은 불행과 음침한 증오, 불화, 악이 존재하는지 아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약간의 선을 불어넣게 된다. 그러면 비록 우리와 같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선은 늘어나고 악은 줄어든다.


단순함은 생각, 말, 의무, 욕구, 기쁨, 돈에 대한 생각, 명성, 인간관계, 교육 등 비물질적인 영역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선하고 진실한 것만 빼고 악하고 거짓된 생각이나 말은 버리라고 충고한다. 선한 행위를 하다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칠 수 있다. '내가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책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행을 하는 것은, 아주 조금일지라도 사회 전체의 선을 늘리고 악을 줄인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삶 또한 거창한 봉사는 아니지만 우리가 기꺼이 실천해야 할 선행 중 하나이며, 추구해야 할 단 하나의 단순한 삶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님을 가장 훌륭히 증명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똑같은 힘, 똑같은 동작으로 일하는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빚어낸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 사람은 돈에 좌우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 가지 목적에 성실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임금을 받지만 한 사람의 노동은 헛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일에 자신의 혼을 담는다. 전자의 노동은 영원히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모래알과 같고, 후자의 노동은 땅에 뿌린 살아 있는 씨앗처럼 싹이 터서 수확물을 빚어낸다.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돈이다. 언제부터인가 돈은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사고팔기 위한 수단을 넘어 자신이 가진 재산의 규모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자는 돈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돈에 좌우되는 정신'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이 그렇다.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밑바탕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행위로 노동을 하는 사람은 돈 이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노동 그 자체에서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없다. 반면 영혼을 담아 노동을 하는 사람은 돈 말고도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획득하는 등 어마어마한 부산물을 얻게 된다. 


단순함이라는 원리가 물건을 정리하고 집안의 인테리어를 바꾸는 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말하기, 라이프스타일, 인간관계, 교육 등에 두루두루 적용된다니 흥미롭다. 이제껏 단순한 삶을 동경해 심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고 실천도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은 것은 정신적인 '변혁'이 없었기 때문일까. 단순함이라는 원리의 속살은 보지 않고 껍데기만 본 것 같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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