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이백 여 권의 책을 읽었다. 읽은 책의 목록을 보니 어려운 책, 깊이 사유하며 읽어야 할 책보다는 쉬운 책, 금방 읽을 수 가벼운 책이 대부분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해 목표는 책 '느리게 읽기'로 정했다. 천천히, 깊이 사유하며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해 일정 분량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따로 서재에 적어두고 코멘트를 달 셈이다.


첫 번째 책으로 리영희 선생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를 골랐다. 오래 전에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이 책의 초판은 1974년에 나왔다. 책에 실린 글은 대부분 베트남 전쟁 직후, 닉슨 대통령 방중 전후에 쓰였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주는 의미는 크다. 특히 맨 처음에 실린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리영희 선생이 한참 전에 내다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의적절하다.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략) 그 보이지 않는 비단옷이라는 것을 팔러온 형제 상인은 어째서 그토록 맹랑한 술책이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임금에게 있지도 않은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임금 측근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해 있던 것일까. 임금이란 으레 아첨배에 속게 마련인 것일까. 그리고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가 측근 아첨배의 것일까.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들의 속성이어야 하는가.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어떤 것일까.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임금의 알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왜 모두들 입을 다물고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또는 못했을까. (13~14쪽)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임금', '보이지 않는 비단옷이라는 것을 팔러온 형제 상인', '임금에게 있지도 않은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임금 측근자'와 같은 비유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다. 저자는 이들이 만들어낸 '허구와 허위'를 규탄하는 동시에 그 '허구와 허위'를 보고도 못 본 척한 수많은 백성들의 잘못도 질책한다. 백성들의 눈에 임금님의 알몸이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왜 백성들은 소년이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저자는 알렉시스 토크빌이 남긴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라는 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와같이 위기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의 내면적 자질에 관해서 또끄빌은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월남전쟁 비밀문서를 에워싸고 일어난 미국 내의 사태는 법적 구조의 굳건함과 아울러 정치의 내적 정신의 건전함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국가나 국민의 생활원리가 되어주는 일반적 정치의 내적 정신이 건전하지 못할 때 법적 구조의 건전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17쪽)

한 작품의 해피 엔딩은 과정의 줄거리가 가열찰수록 더욱 행복하게 느껴진다. 고뇌와 비참과 과오가 아무리 처절했어도 종말이 행복하면 그 과정은 그것으로 잊혀진다. (중략) 그러나 해피 엔딩으로써 슬펐던 과정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관객의 경우다. 슬픔을 겪은 주인공은 종말의 행복보다도 불행했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그 차이는 불행을 체험한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의 차이이다. (19쪽)


저자는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려면 '관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당사자'였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하루에 몇 개씩 알바를 뛰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학점을 따는 대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학점 문제를 들춰낸 것이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수감되고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이 이들에게 '해피엔딩'일까. 그야 '새드엔딩'보다는 낫겠지만, 교수에게 속고 학교에 배신당한 상처는 학생들의 마음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태를 바라보는 관객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가 당사자임을 깨달은 것,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밝힌 것 또한 그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억이 하나둘 쌓이고 합해질 때 비로소 정치의 내적 정신이 건전해지고 법적 구조도 굳건해진다.


소위 국가기밀이나 국가이익이라는 것이 민주사회의 국민을 시종일관 기만하는 정부체제와 세력에 의해서 이용될 때 그 집권자와 집권세력의 기만을 폭로하는 것 이상으로 애국적인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지성인의 최고의 덕성은 인식과 실천을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26쪽)

비난받아야 할 일은 엘즈버그 박사가 허위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극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것은 그 장막의 뒤에서 이루어져온 일들, 음모에 관한 모든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치를 살피거나 그에 방조하거나 갈피를 못 잡거나 침묵했을 뿐 그것을 밝혀내려 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이다. 진실로 놀라운 것은 엘즈버그와 같은 고위관료들 속에서 더 많은 엘즈버그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즈 위클리> 7월 18일) (27쪽)


당사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관객에 머무른 죄는 그 주체가 관료, 언론인, 지식인일 때 더욱 무겁다. 저자는 월남정책의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를 시작으로 정책수급과정에서는 핵심적 지위에 올랐다가 기밀문서를 전 세계에 폭로한 다니엘 엘즈버그의 공을 높이 치하한다. 엘즈버그의 행동에 대해 미국 내 우익적 여론과 군부에서는 비난과 인신공격, 중상이 쏟아졌지만, 저자는 그의 폭로가 국가기밀이나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이었다고 평가한다. 


누가 문제를 폭로하면 폭로한 문제를 보지 않고 폭로 자체의 선정성과 유해성에만 집중한 예는 너무나 많다. 폭로한 자가 관료, 언론인, 지식인일 때는 공무원의 의무, 언론인의 윤리, 지식인의 소명을 들먹이며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개별 사건만 보면 찬성측과 반대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난제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너무나 쉬운 문제다. 이를테면 잘못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잘못을 묻는 행위 자체를 죄로 만드는 사람들. 이런 방식으로 몇십 년에 걸쳐 권력을 농단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람들. 그들의 이름과 민낯을 뻔히 알면서도 입을 닫고 있는 사람들. 


미국의 반지성, 반이성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대의 반공 활동을 한 사람도 안전할 수가 없었다. 1953년 10월 당시의 검찰총장(법무장관)은 전 대통령 트루먼이 소련의 간첩을 은닉했다고 주장, 정식으로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로즈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등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이 나왔고 얼마 전까지도 미국의 지적 풍토 속에서 웬만한 학자, 작가, 교수, 기자들은 추방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어용으로 화했다. 이것이 <뉴욕타임즈>와 같이 훌륭한 언론기관을 가지면서도 미국 내에 진정한 사상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게 됐던 경위의 일부다. 위대한 반공주의자 매카시는 10년 후 미국사회의 분해를 초래한 셈이다. (36쪽)

정부의 독선과 비밀주의는 국민 전반의 성격과 지식을 변칙적일 만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독선과 비밀주의는 본래 사회를 위해서 이용될 수 있을 국민의 정력과 능력의 광범한 해방을 저해한다. 또 모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당연한 결과로서 다수의 욕구, 견해, 필요, 복지가 버림을 받는다. 이 두가지 결과는 사회의 손실일 수밖에 없다. (46쪽)


'웬만한 학자, 작가, 교수, 기자들은 추방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어용으로 화했다.' 국정 교과서, 문화예술인 블랙 리스트 사건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관련 지원 사업들을 아예 폐지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생각난다. '모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당연한 결과로서 다수의 욕구, 견해, 필요, 복지가 버림을 받는다.' 지난 두 정권 동안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의 생활 수준과 복지 혜택은 얼마나 저하되었던가. 그것은 과연 우리의 '노오력'이 부족해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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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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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전 10시 20분. 강변 둔치에서 여성의 오른팔이 발견된다. 수사 1과 가미다이 신이치 경부는 현장에 투입되어 수사를 진행한다. 한편 현장 근처의 빵집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 여성의 팔 모양을 한 바게트를 만드는 소동이 벌어진다. 팔 바게트는 입소문을 타게 되고 급기야 방송에 소개되며 빵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일해주었으면 하는 빵집 주인의 바람과는 달리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두고, 빵집 단골이자 팔 바게트를 처음 발견한 유이노 미대 교수의 거동이 이상해진다. 


고마쓰 사쿄, 호시 신이치와 함께 'SF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일본의 대표 SF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신작 <모나드의 영역>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다. 첫 부분만 보면 전형적인 추리소설이다. 여성의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노련해 보이는 형사가 등장하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범인을 잡으면서 이야기가 결론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는 팔 바게트를 만들었던 아르바이트생이 자취를 감추고 유이노 미대 교수의 거동이 이상해지면서 생각지도 못 했던 방향으로 튼다. 유이노 미대 교수는 자신을 '신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예언 비슷한 발언을 반복하는데 그 발언이 줄줄이 적중한다. 처음에는 교수를 무시하고 비웃던 사람들도 점차 교수의 주장을 믿게 되고 교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급기야 교수는 언론과의 대형 인터뷰에 응하고, 스스로를 'GOD'로 칭하며 종교, 정치, 사회, 역사 등 여러 문제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이쯤 되면 SF 소설이 아니라 거대한 풍자 내지는 담론이다. 


쓰쓰이 야스타카가 쓴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신선했다(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안 읽었다. 영화, 만화, 드라마로도 안 봤다). 올해로 84세(1934년생)인 작가가 이 정도로 기발하고 독창적인 소설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50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과학, 철학, 종교, 예술, 사회 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이 소설에 녹여냈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나의 최고 걸작이며 아마도 마지막 장편일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런지,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나서 판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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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엄 촘스키 지음, 구미화 옮김, 조숙환 감수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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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가 이렇게 생겼나?' 책 표지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촘스키 이름만 알았지 얼굴은커녕 사진도 본 적 없다. 그의 생애나 이론은 더욱 모른다. 이럴 때는 검색이 답이다. 위키백과를 찾았다. 


노엄 촘스키. 1928년 12월 7일생(내 생일과 하루 차이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정치 운동가, 아나키스트, 저술가, 진보적 교수이자 좌파 학자이며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언어학과 교수다. 그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히브리어 학자이며 어머니는 벨라루스 출신이다. 그가 처음 접한 언어는 이디시어이고, 유대인 집단 거주 지역에 살면서 히브리어 문화와 문학에 노출되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과 독일계 가톨릭 그리고 반유대주의 등을 경험한 바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한 것이 그를 언어학으로 이끈 것 같다. 


(잘 모르는 관계로) 촘스키가 언어학에 기여한 바에 대한 설명은 건너뛰고 정치적인 행보를 보았다. 촘스키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부터 미디어 비평과 정치적 행동을 활발히 했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비판적이며, 부시 정부 때 네오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촘스키의 저서 <패권인가, 생존인가―미국의 세계 전략과 인류 미래>를 보이며 "미국 국민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했고, 그 다음날 이 책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08년 대한민국 국방부는 촘스키의 책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두 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자유를 두려워하고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늘 있게 마련이며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마도 국방부를 '자유,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국방부'로 개명해야 할 것 같다."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책들은 고르바초프 이전 소련에서도 금지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상 위키백과 '노엄 촘스키'편 참조) 


노엄 촘스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이 책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언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언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각을 하고, 언어는 인간이 하는 무한한 생각 그 자체다. 


문제는 인간의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장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논증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신체 능력과 유사하다. 신체 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지 능력 또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이해는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3장에서는 '공공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논한다. 언어를 논하다가 갑자기 공공선을 논하다니.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당연한 전개다. 인간은 인지적 동물인 동시에 사회, 문화, 제도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다면 언어와 인지능력만 살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도 함께 살피는 것이 지당하다. 저자는 아나키스트이지만 국가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로커가 말한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는 조직적인 관리"는 지지한다. 나아가 자치공동체와 일터의 폭넓은 연합도 지지한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권력이며,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로부터 배제할 필요도 있다고 믿는 엘리트주의다. 저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실상 귀족정치체제라고 본다. 이런 체제에서 대중의 처지는 노예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혁명은 가격에서 임금으로의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노먼 웨어는 생산자가 자기 상품을 일정한 가격을 받고 팔 때는 "그의 인격이 유지가 됐지만, 그가 자신의 노동을 팔기 시작했을 때는 그의 인격도 함께 팔렸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노예, 흔히 말하는 '임금 노예'가 되었다. (147쪽) 


4장의 제목은 '자연의 신비 :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이지만 실상 2장에서 논의한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고찰로 돌아온다. 저자는 4장에서도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철학과 물리학, 뇌 과학을 넘나들며 설명을 시도해도 결론은 동일하다. 인간의 사고, 우주의 작동, 뇌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어떠한 존재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니!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을 알기 위해 이만큼의 철학적 논고가 필요한가 싶지만 의의는 있다. 저자의 언어학, 정치학, 철학, 물리학, 뇌 과학적 성찰을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따라가면서 인간은 결코 완벽하거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인을 억압할 권리도 없고 타인에게 억압당할 의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언어학자인 촘스키가 그동안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해온 것이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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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의 나이가 구순이군요. 리영희 선생은 촘스키 일년 동생입니다. ^^
 
궁극의 생명 Life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최첨단 생명과학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5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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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경제인이 모이는 모임이라고 하면 뭔가 권력과 돈의 냄새가 풀풀 나지만,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철학자, 예술가, 기술자들이 모이는 모임이라고 하면 고도의 지식과 교양의 향연(이라고 쓰고 '덕후'들의 정모라고 읽는다)이 연상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모임이 있다. 1996년에 출범한 엣지 재단이다. 엣지 재단에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제레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니스벳,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대니얼 카너먼 등이 속해 있다. 매년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만찬회를 열며 활발하게 교류도 한다. 


엣지 재단은 책도 낸다. <마음의 과학>, <컬처 쇼크>, <생각의 해부>, <우주의 통찰>에 이어 최근에는 <궁극의 생명>이라는 책을 냈다. <궁극의 생명>에서 다루는 학문 분야는 생물학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데이비드 헤이그, 로버트 트리버스, 에른스트 마이어, 스티브 존스, 에드워드 윌슨 등 진화생물학, 유전학, 정보과학,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현재 최고의 업적을 자랑하는 학자들의 강의와 대담을 합해 17편의 글이 실렸다. 엣지 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https://www.edge.org/)에 접속하면 이 책에 담긴 강연을 포함해 지난 15년 동안 엣지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볼 수 있다(물론 다 영어다).


글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생물학을 포함해 과학 전반에 무지한 나로서는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글도 있고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글도 있다. 가장 편하게 읽은 글은 현존하는 최고의 진화 이론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트리버스의 글이다. 그는 이제까지 해온 유전학 연구를 마무리하고 지금은 심리학 쪽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관심 있는 주제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편향된 정보 흐름이다. 그가 풀이한 바에 따르면 '무의식에서는 지극히 정확히 또는 어쨌거나 더 정확히 현실을 파악하면서 의식적인 마음에는 그 현실을 왜곡해서 전한다'는 것. 쉽게 말해 무의식이 아는 것을 의식이 모르는 (척하는) 현상이다. 


그는 이러한 '자기 기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들려준다. 어릴 때 그는 장난감 칼을 가지고 싶었는데 가격이 6달러였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장난감 가게에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6달러가 아니라 6.98달러라고 했다. 가격표에는 6.98달러라고 쓰여 있는데 장난감 칼을 사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나머지 98이라는 숫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아주 작게 쓰여있기도 했다). 그는 이후 대학에 진학해 여러 번 전공을 바꾸고, 출판사에 입사했다가 대학원에 진학해 '나 자신의 번식에 성공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고생을 하면서 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동안 그는 '그 문제를 생각하는 대신에 실천해왔기 때문에 그 문제를 강의하기가 난처하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기만과 자기 기만을 반복했다고 고백한다. 


로버트 트리버스의 글을 읽고 나서 책의 맨 처음에 실린 리처드 도킨스의 글부터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과학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과학자라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과학에 문외한인 게 부끄러워서 과학 공부해야지, 해야지 말만 했는데, 과학자가 쓴 자서전이나 과학자에 대해 쓴 평전을 읽는 걸로 시작해 봐야겠다. 아마도 그것이 나에게는 '궁극의 공부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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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Orange
토키우미 유이 지음, 강동욱 옮김, 타카노 이치고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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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 뒤의 미래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왜냐하면, 고등학교 2학년인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야."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첫날, 타카미야 나호에게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10년 뒤의 나호 자신. 미래의 나호는 현재의 나호에게 오늘 전학 오는 나루세 카케루라는 남학생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때마침 교실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 뒤로 날렵한 몸매의 남학생이 따라 들어온다. 전학생의 이름은 나루세 카케루. 편지에 나온 '예언'이 이루어졌다. 


편지에 나온 또 다른 예언대로 나호는 카케루를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안타까움도 커진다. 편지에 따르면 카케루는 2학년 겨울에 사고로 죽어 10년 뒤에는 이 세상에 없다. "네가 나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편지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그때 네가 선택해 주었으면 하는 길을 적어 둘게." 나호는 미래의 자신이 편지에 일러둔 내용을 참고해가며 카케루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연 나호는 카케루를 잃는 '실수'를 피하고 카케루를 지킬 수 있을까. 


타카노 이치고의 인기 만화가 원작인 소설 <오렌지>에는 '시간 이동'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한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로 이동하는 이야기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흔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한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현실에서 바꿀 수 없는 문제를 시간 이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시간 이동'이 흔한 소재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에 공감한 건 주인공 나호가 평범한 여고생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호는 용기가 없었고 솔직하지 못 했다.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카케루의 마음을 신경 쓰지 못 했다. 카케루를 좋아하고 걱정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 했다. 그 결과 카케루는 나호의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현재의 나호는 여전히 용기가 없고 솔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미래의 나호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카케루가 슬퍼 보이면 언제든지 도와주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한다.


친구한테 먼저 말을 걸까 말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같이 밥 먹자고 할까 말까. 좋아한다고 고백할까 말까. 당장은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작은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 인연이 달라지고 인생이 바뀐다. 용기를 내기가 힘들어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잘못된 선택을 한 죄로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린 나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 과거에 내린 선택을 돌릴 수 없다. 이는 오히려 이 소설을 더욱 환상적이고 애잔하게 만든다.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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