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 코코
정미진 글, 안녕달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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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을 자도 자도 부족한데 어릴 때는 잠드는 시간이 그렇게 싫었다. 자고 있는 동안 나 모르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고, 한 번 잠이 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자서 키가 쑥쑥 크기는 했지만.


<잘 자, 코코>는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이는 이부자리에서 잠드는 대신 코코라고 이름 붙인 옷장 안에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나도 도라에몽처럼 벽장 안에서 자는 게 소원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옷장을 타고 날아서 모두가 잠들 때에만 갈 수 있는 쿠루의 나라에 가게 된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한테 쿠루의 나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믿어주지 않고 아빠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왜 자꾸 화만 내고 아빠는 왜 자꾸 시간이 없다고 할까. 아이는 궁금해하지만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아이는 그저 밤마다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다. 쿠루의 나라에선 엄마도 화를 내지 않고 아빠도 시간이 없다고 보채지 않는다. 얼마 후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잠만 자기 시작한다. 아빠도 아이처럼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에서 신나는 모험을 하는 걸까. 얼마 후 아이는 아빠와 긴 이별을 하게 된다.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에게 옷장은 더 이상 코코라고 이름 붙인 친구도 아니고, 쿠루의 나라로 통하는 입구도 아니다. 옷장 안에는 비슷비슷한 무채색의 정장이 걸려 있고, 아침이 되면 그중 하나를 골라 입고 출근해 저녁이 되면 혼자 텔레비전을 보면서 끼니를 때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오랜만에 쿠루의 나라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빠를 만난다. "아빠,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두려워요. 이 순간이 지나고 난 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거죠?"


아이는 코코와 함께 쿠루의 나라를 모험하는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모험에서 돌아오면 엄마 아빠가 다정한 얼굴로 맞아주는 날들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아이에게 가르쳐줬다.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고, 한 번 지나가면 좀처럼 다시 오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였을 때가 그립다.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그때가. 언제부터 나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희망과 멀어지고 절망과 친해지는 일일까.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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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은 손톱
정미진 지음, 김금복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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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깎은 손톱>은 손톱 하나로 여자의 생애와 자연의 질서를 포괄하는 장대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친다. 동화는 손톱을 깎는 세 사람의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소녀는 좋아하는 소년이 혹시나 자신의 손을 잡을까 봐 손톱을 깎는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할아버지의 손톱을 대신 깎는다. 엄마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손톱을 깎는다.





깎은 손톱이 자라나는 동안 소녀는 사랑을 경험하고, 할머니는 죽음을 경험하고, 엄마는 탄생을 경험한다. 소녀의 사랑은 이별로 이어지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할머니의 성찰로 이어지고, 아기의 탄생은 엄마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소녀는 언젠가 엄마가 되고, 엄마는 언젠가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깎은 손톱이 자라나고, 자라나면 다시 깎이는 것처럼.





이야기의 결을 따라 그림도 결이 바뀐다. 처음에는 손톱을 깎는 모습만 단출하게 비췄다면, 나중에는 소녀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밥을 먹는 모습, 엄마가 아기를 돌보다가 지쳐서 잠드는 일상적인 풍경까지도 환상적인 연출을 더해 화려하게 표현한다. 깎은 손톱 하나로 이렇게 장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탄생시키다니.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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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맘 2017-06-3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소재와 상상이네요
 
있잖아, 누구씨
정미진 글, 김소라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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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극장에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나는 눈물 콧물을 다 흘렸다. 특히 나를 울린 건 주인공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이었다. 라일리는 어렸을 때 상상 속 친구인 빙봉에게 열광했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빙봉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빙봉은 라일리의 두뇌 속 기억 저장소 한구석에 있으면서 언젠가 라일리가 자신을 다시 떠올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있잖아, 누구씨>는 빙봉처럼 누구에게나 한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상상 속 친구에 대한 동화다. 아이는 부모의 이혼과 학대를 겪으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혼자일 때가 많은 아이는 어느 날 벽에 있는 작은 얼룩을 발견하고 '누구씨'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날 이후 아이는 누구씨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누구씨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누구씨와 모험을 떠나는 꿈을 꾼다. 누구씨는 아이가 가장 아끼는 형제이자 친구가 된다.


얼마 후 아이는 사람들에게 누구씨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상처받은 아이는 누구씨를 잊기로 한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누구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된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조차 생기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선 물건이 없어질 때마다 의심한다.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마음이 짠했다. 첫 번째는 친구들한테 외면당하는 아이를 볼 때였고, 두 번째는 누구씨와 정답게 지내는 아이를 볼 때였고, 세 번째는 마침내 누구씨를 떠올린 (어른이 된) 아이를 볼 때였다. 비록 상상 속 친구이기는 해도 누구씨는 아이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를 잊으려 했으니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가 더욱 힘들었을 터. 아이와 누구씨를 떼어 놓은 사람들이 밉기까지 했다(저렇게 좋아했는데). 


나에게도 빙봉이나 누구씨 같은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열광했던 만화, 표지가 닳도록 읽었던 책, 늘어지도록 들었던 테이프, 아니면 그전에 만나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추억 속의 내 친구들. 이 책을 읽으니 그 친구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만나고 싶어도 이제는 만날 수 없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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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자 오사의 일본 재발견 로컬여행
오사 엑스트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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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 엑스트룀은 이른바 '성공한 덕후'다. 1983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오사는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세일러문>과 만화 <이누야샤>를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해 스웨덴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로서 활약하다가, 2011년부터는 도쿄로 이주해 2015년 일본에서 만화가로 데뷔하는 꿈을 이뤘다. 


<북유럽 여자 오사의 일본 재발견 로컬여행>은 성공한 덕후 오사가 일본 각지를 여행하고 다양한 일본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은 여행 만화다. 도쿄에서 출발해 미나미토호쿠, 후쿠오카 현 오카와 시, 오키나와, 히로시마, 교토 등 일본의 작은 소도시부터 유명 관광지까지 일본 각지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스웨덴 사람의 일본 여행기인 만큼 스웨덴과 일본의 문화 차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신칸센의 승강장에서 줄 서는 방식이나 버스 정류장마다 근처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의자와 방석 등은 한국인의 눈에도 낯설고 신기한 문화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은 한국과 일본도 이렇게 다른데 스웨덴과 일본은 오죽할까. 한국인이기에 무심히 지나쳤던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저자가 콕콕 집어내니 재미있다. 


일본 만화가 좋아서 일본에 온 오사인 만큼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적응도 잘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음식 문화다. 특히 어패류는 스웨덴에선 생긴 그대로 통째로 먹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멸치나 생선, 오징어 등을 통째로(심지어 날 것으로) 먹는 일본의 음식 문화로 인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어패류를 통째로 먹기 때문에 몰랐는데, 오사처럼 서양에서 온 외국인들은 일본의 음식 문화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과일의 경우, 일본에서는 대개 과일 껍질을 제거하고 먹는 반면, 서양에서는 과일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생선 머리는 먹는데 사과 껍질은 안 먹느냐는 오사의 질문에 나까지 뜨끔. 나도 앞으로는 과일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단단한 껍질을 씹어 먹으면 이와 잇몸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오사 덕분에 알게 된 스웨덴과 일본의 문화 차이는 이것만이 아니다. 스웨덴에는 대리운전 같은 시스템이 없거니와 타인에게 자기 차의 열쇠를 맡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대리운전은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일까? 일본인과 한국인은 왜 타인에게 자기 차의 열쇠를 맡기는 걸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스웨덴 사람과 일본 사람의 안전 의식 차이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오키나와에 간 오사는 오키나와의 풍습에 따라 술을 마시기 전에 울금가루를 먹게 된다. 현지인이 준 울금가루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은 오사는 나중에야 처음 만난 남성의 차에 타서 가루를 받아먹었다는 사실에 오싹함을 느낀다. 어쩌면 위험한 약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타인이 주는 음식이나 음료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거나 거절하면 사람 민망하게 만든다고 싫은 소리를 듣는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이 음식이나 음료를 줄 때 의심부터 하는 것이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듯. 일본과 스웨덴의 문화 차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까지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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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9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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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카오루는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작가다. 대표작 <엠마>를 보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와 풍습을 충실히 반영할 뿐 아니라, 의상은 물론 건축과 실내 장식, 자잘한 소품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하는 등 놀라운 완성도를 보인다. 모리 카오루의 최신작이자 2014년 일본 만화대상 대상 수상작인 <신부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 


<신부 이야기>는 19세기 후반의 중앙아시아의 결혼 풍습을 다룬 만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화를 다루는 만큼 고증에 신경을 쓴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여인들이 옷이나 모자를 직접 만들고, 공동 화덕에서 각종 문양을 새긴 빵을 굽고,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풍습이 자세히 나온다. <신부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신간 9권의 주인공은 '파리야'다. 선머슴 같고 쑥스러움도 많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순박하고 진실한 파리야에게 혼담이 들어온다. 상대는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은 우마르. 파리야는 혼인 상대가 우마르라서 몹시 기쁘지만 막상 우마르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평소보다 더듬어서 우마르의 오해를 산다(우마르가 없을 때 선머슴 같은 모습과 우마르가 있을 때 수줍어하는 모습의 차이를 보면 오해할 만하다 ^^). 


우마르의 걱정과 달리 파리야는 우마르를 좋아하다 못해 우마르에 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 상태다. 각종 문양을 새겨 직접 구운 빵을 우마르한테 잔뜩 전해주지 않나, 우마르가 쓰고 다닐 모자를 만드느라 밤을 꼴딱 새우지 않나, 우마르가 수차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는 어떻게든 우마르와 함께 수차를 보러 가려고 하지 않나. 귀엽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야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먼 마을까지 가게 된다. 갔다가 돌아오는 데 한나절은 걸리는 먼 거리. 가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며 발을 뗐더니 마을 입구에서 우마르가 파리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갈 때는 멀기만 했던 길이 우마르와 함께 가니 어찌나 짧은지. 심지어 두 사람은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여인과 아이를 구하느라 시간이 늦어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먼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우마르를 좋아하는 파리야의 마음은 부풀기만 하는데... ^^ 


모리 카오루의 大팬인 동생이 전부터 재미있다고 여러 번 말했던 작품답게 직접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었다. 파리야의 어리숙하지만 순박한 모습이 마음에 쏙 들었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문양을 새긴 빵을 준다든가, 직접 만든 모자를 선물한다든가 하는 풍습도 신기했다. 혼수를 마련하기 위해 신부가 혼인하기 훨씬 전부터 옷이나 이부자리,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그에 비해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요즘이 더 나아진 건지 더 나빠진 건지...). 


<신부 이야기> 9권 초판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있다. 바로 모리 카오루 작가의 러프 스케치 집이다. 러프 스케치 집이란 작가가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스케치 해왔던 실사 그림들을 담고 있는 책자로, 작가의 연습장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엠마>, <셜리>, <신부 이야기> 등을 통해 모리 카오루가 이미 선보인 그림 외에도 다양한 인물과 의상을 볼 수 있어서 모리 카오루의 팬은 물론,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그림을 연습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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