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7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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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공연 <바보와 공주>의 오디션 준비가 한창인 매란국극단. 원래는 오디션을 포기했던 정년은 이번 공연에서 옥경의 아역을 연기하면 차기 국극 스타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부용의 말을 듣고 뒤늦게 초록과 짝을 이뤄 오디션을 준비한다. 연기는 괜찮은데 소리가 별로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정년은 패트리샤 선생님과 임진 선생님까지 만나며 소리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결국 연습이 중요하다는 도앵의 말을 듣고 산 속 동굴로 들어가 독공을 시작하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목에 이상이 생긴다.


한편 주란과 짝을 이룬 영서는 이번에야말로 어머니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좀처럼 연습에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정년도 영서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디션을 치르게 되고, 오디션 결과 영서가 옥경의 아역을 연기하게 된다.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오디션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한 정년은 그 길로 국극단을 나와 고향으로 향하고, 영서는 영서대로 자신에게 온달을 연기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으며 방황한다. 


정년과 영서는 극과 극의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둘 다 각각 국악과 성악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소리를 뛰어넘고 싶어 하는 정년과 어머니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며 인정 받고 싶은 영서의 노력이 다소 무리해 보이지만 무모하게 보이지만은 않고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 사람의 내적 갈등은 이어지는 8권에서 해소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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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5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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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아이다 유의 만화 <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를 보면, 영생은 축복보다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오니우다 하루야스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수도인 에도로 왔다가 불사의 능력을 지닌 소녀 시노의 권속이 된다. 시노는 어머니로부터 불사의 능력을 물려받았는데, 문제의 어머니 미치토세는 열다섯 살 이후로 늙지도 않고 계속해서 불사인 아이들을 출산했다. 시노는 어머니를 불사의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하지만, 오빠인 이쿠마츠는 어머니를 피신시키고 싶어 한다. <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5권은 이쿠마츠가 미치토세의 신병을 되찾기 위해 정부 고관과 대치하는 과정을 그린다.


시노는 불사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요도 '살생석'을 탈환하기 위해 신센구미 출신의 경시청 순사 후지타 고로, 도서계 간부 야마노우치 아리노리 등과 협력한다. 시노의 권속인 하루야스는 이쿠마츠의 권속인 키쿠지와 대결을 벌인다. 어릴 때부터 키쿠지를 자신의 부하이자 친구이자 검술 스승으로 여기며 아꼈던 이쿠마츠는 그가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시노 역시 자신의 권속인 하루야스가 자신의 오빠인 이쿠마츠의 권속과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불사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따로 있는데, 그렇지 않은 자들이 피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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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 - 예민한 나에게 필요한 반경 5m의 행복
나오냥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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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나오냥의 책이다. 나는 이 작가를 X(구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푸근한 인상의 토끼 캐릭터가 너무나도 내 취향이라서 눈길이 갔는데 만화 내용도 공감이 가서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팔로우했던 당시만 해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기 전이었는데 얼마 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어 매우 반가웠다. 이 책 외에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빠른 시일 내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면 좋겠다.


이 책은 심리적으로 외부 자극에 취약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한 저자는 직장 생활이 맞지 않아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했다. 직장이 문제인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로부터 HSP(Highly Sensitive Person, 무척 민감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HSP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척 민감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소개하는 만화를 그려서 X(구 트위터)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화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여러 권의 책도 내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든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이든,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다.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민감해서 쉽게 지치거나 상처 받는 성격이라면, 지치거나 상처 받을 일을 피하거나 덜하는 건 어떨까. 대인 관계가 힘들다면 사람 좀 덜 만나면 되고 아예 안 만나도 된다.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면 업무 시간을 줄이거나 그만둬도 된다. 관계도 일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좋아하는 동물을 키우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는 건 어떨까.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까지 나를 힘들게 하면 누구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시간은 물리적이고 객관적이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설령 삶의 낙이 '잠'이라 해도 오늘도 마음껏 자서 행복하다고, 온종일 뒹굴뒹굴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느꼈다면 알찬 하루였던 거다. 그렇다면 누가 뭐라 하든 오늘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128쪽)


이 책에는 저자가 X(구 트위터)에 연재하는 만화가 다수 실려 있지만, 만화에는 담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자세히 나온다. 팬데믹 시기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우울증을 진단 받은 아버지와 어머니 간의 갈등,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에게 느낀 복잡한 감정 등 진솔한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평생 간직할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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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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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출판사 창비와 함께 만든 <호시탐탐>은 이번 탄핵 촉구 집회 같은 책이다. 노동, 성소수자, 지역, 여성, 환경, 이주민, 교육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주제 아래 한 데 모인 점, 각자의 입장을 여러 톤과 방식으로 다채롭고 유쾌하게 풀어낸 점 때문에 그렇게 느꼈다. 


김보통의 <최후의 보호막>은 던전이라는 광산에서 일하는 마법사 광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문제들을 풍자한다. 서이레, 요니요니의 <청첩장 도둑>은 이혼한 여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게 산 엄마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를 통해 정상 가족 신화의 폐해를 보여준다. 김금숙의 <섬>은 서울의 비싼 월세를 감당 못하고 지방의 섬으로 이주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심각한 부동산 문제와 그로 인해 서민들이 겪는 고충을 묘사한다.


김정연의 <수수께끼>는 사람이 태어나 죽기 직전까지 필요로 하는 그것, 즉 돌봄의 문제를 각기 다른 세 인물의 입장을 통해 보여준다. 구희의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기후 위기가 가까운 미래에 청소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한다. 정영롱의 <끄나빠>는 양친 또는 부모 중 한쪽이 외국인인 청소년들이 외적, 내적으로 겪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보여준다. 최경민의 <참교육>은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가 사적제재를 원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교육 현장의 사례로 풀어낸다.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김금숙의 <섬>이다. 처음에는 도시에 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친 주인공이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시골에 갔다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 많은 이웃들과 생활하며 점점 기력을 회복해 서울로 돌아오는, 비유하자면 <리틀 포레스트> 풍의 내용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반전을 보고 등골이 서늘함을 넘어 오싹했다. 경제 문제로 생각하기 쉬운 부동산 문제를 인권 문제로 풀어낸 점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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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 2
신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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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에서 일하는 아카기 쿄코는 단골손님인 미도리를 남몰래 짝사랑 해왔다. 그러다 미도리가 바람둥이인 전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게 도와준 걸 계기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가게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미도리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친구로서 계속 만나고 쿄코와 만나는 자리에도 데리고 나온다. 쿄코는 처음에 뭐 이런 남녀 관계가 다 있는지 황당해 했지만, 정말로 두 사람이 더는 서로에게 미련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한편 미도리는 그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가게 점원이자 새로 사귄 친구 정도로만 여겼던 쿄코에게 점점 다른 감정이 생기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데...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 2권은 점점 달라지는 네 사람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가장 반가운 변화를 보이는 인물은 미도리이다. 이른바 뼈헤녀인 미도리는 그동안 쿄코의 호감을 알아채지 못하고 점원 이상 친구 미만 정도로 대하다가 조금씩 자기 안에서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는 것을 자각한다. 마찬가지로 뼈헤남인 바바는 미야코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인드가 좁았다는 걸 깨닫는다. 근데 그렇게 상대의 감정을 배려한다는 사람이 왜 미도리의 감정은 배려 안했던 건지...? (미야코, 저런 남자한테 마음도 몸도 주지 마...) 그냥 얼른 남자들 치우고 쿄코-미도리 이야기나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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