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셋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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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자인 아키코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운영한 식당 자리에 자신의 가게를 연다. 메뉴는 매일 바뀌는 빵과 수프뿐이지만 그 날 새벽에 구입한 식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 것이 통했는지, 아키코의 가게는 금세 단골이 생기고 오픈 전에 줄이 생기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아키코는 그 날 준비한 식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하는 원칙을 오픈 첫 날부터 고수한다. 초기에는 아키코의 방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키코 자신조차 불안해 한 적도 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매출에 큰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무레 요코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몇 해 전 동명의 일본 드라마로 먼저 만난 작품이다. 드라마를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는데 원작 소설도 너무 좋아서 2권도 읽었고, 이번에 나온 3권도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3권은 아키코의 반려묘 타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래로 새롭게 아키코의 반려묘가 된 아기 고양이 두 마리와 보내는 일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은 '타이'와 '론'인데, 각각 타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다. 이것만 봐도 아키코가 타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첫 고양이 하쿠에게 "너는 내 인생의 첫 고양이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 고양이는 너 하나야. 우리의 사고뭉치 티거도, 하쿠의 한 종류인 거야."라고 쓴 김하나 작가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키코의 가게는 오픈 초기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잘 운영되는 중이다. 그러나 아키코의 가게가 잘 되는 걸 눈여겨본 대기업이 비슷한 콘셉트의 훨씬 더 저렴한 가게를 근처에 열면서 위기감을 느낀다. 아키코의 가게 직원 시마에게는 시오라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키코의 지인 두 사람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아키코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삶의 유한함을 다시금 확인하며 더욱 정성껏 자신의 일상을 돌보는 아키코의 모습이 좋았다. 4권도 나왔으면(드라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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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2 - 백제, 신라, 그리고 비화가야 국토박물관 순례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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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답사기에 미처 담지 못한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를 전국 각지에 위치한 박물관을 중심으로 풀이하는 형식의 책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마찬가지로 답사기 형식을 따르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지역별로 구성되어 있다면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는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중에서 고구려사를 다루고, 2권은 백제와 통일 전 신라의 역사, 그리고 가야의 일부였던 비화가야의 역사를 다룬다.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와 약 30년 간의 시차가 있는 만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실리지 않은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 금관총이다. 금관총을 오랫동안 신라 왕족 또는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다가 2013년 발견된 검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이 확인되면서 고분의 주인이 이사지왕임이 밝혀졌다. 비디오아트, 라이트아트, 키네틱아트, 디지털아트 등 첨단 기술과 최신 예술을 응용한 박물관의 전시 디스플레이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새롭다. 서울 출신인 저자가 부여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주중 닷새는 서울에서, 주말 이틀은 부여에서 지내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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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헨닝 만켈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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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고, 북유럽 범죄 소설의 원조인 스웨덴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시기적으로 두 시리즈 사이에 놓인 작품이 스웨덴 작가 헨닝 망켈의 '발란데르 시리즈' 아닌가 싶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케네스 브래너 주연의 영국 드라마 <월랜더>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영 월랜더>는 월랜더 형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다. <월랜더>도 <영 월랜더>도 아직 못 봤는데, 앞으로 헨닝 망켈의 발란데르 시리즈를 읽으며 찬찬히 보는 것으로.


<피라미드>는 발란데르 시리즈 1권 <얼굴 없는 살인자>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서문에 따르면 발란데르 시리즈의 성공 이후 작가는 독자들로부터 헨닝 망켈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얼굴 없는 살인자>에서 주인공 발란데르가 마흔 두 살의 중년이었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청년 시절의 발란데르가 궁금할 만하다고 여긴 작가는, 발란데르가 순경이던 시절부터 <얼굴 없는 살인자> 직전까지의 일들을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덕분에 독자들은 발란데르의 가족사와 연애사 등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고, 발란데르가 형사로 재직하는 동안 스웨덴 사회의 변화상도 알 수 있다.


제목인 <피라미드>는 발란데르의 아버지와 관계 있는 단어로 보인다. 정부에 적대적인 발란데르의 아버지는 아들인 발란데르가 정부의 파수꾼인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발란데르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이집트로 떠나 버리고, 아버지가 걱정된 발란데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이기도 한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은 발란데르 시리즈의 시작인 <얼굴 없는 살인자>의 마지막 부분과 연결된다. <얼굴 없는 살인자>를 먼저 읽고 이 단편을 읽으면 전율을 느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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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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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수 베스트셀러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국내편 전체 12권 중에서 독자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글 14편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 1부에는 한국의 자연풍광과 역사,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국토예찬을 담은 글 7편이 실려 있고, 2부에는 한국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화유산 명작을 해설하는 글 7편이 담겨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독서 체험이 될 것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핵심을 예습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미덕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미덕은 문화유산 답사의 경계를 넓힌 것이다. 예전에는 문화유산 답사라고 하면 옛 왕조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하는 일에 그쳤는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출간된 후로는 전국 각 지역에 남아 있는 선조들의 흔적과 그들이 살았던 자연 환경, 문화 예술이나 사회 풍습 등 무형의 문화유산까지 두루두루 살펴보는 일을 포괄하게 되었다. 답사기의 시작을 옛 왕조의 수도인 서울이나 경주, 부여가 아닌 남도에서 한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아주 적절했던 선택으로 보인다.


책에는 영암, 강진을 비롯해 안동, 담양, 청풍, 정선, 설악산, 한라산, 영주, 경주, 서산, 부여, 서울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유산이 소개되어 있다. 이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역은 제주 한라산 영실이다. 저자는 "지금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어디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무조건 '영실'이라고 답하겠다고 할 만큼 영실의 아름다움을 극찬한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자는 답사를 할 때 이미 지나온 길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영실에서는 지키지 않는다(같은 길을 여러 번 걸어도 매번 아름답다는 뜻이리라). 언젠가 반드시 영실에 가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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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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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말들>의 저자이자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크루였던 엄지혜 작가님의 두 번째 책 제목이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인 걸 처음 알았을 때, 이보다 정확하게 엄지혜 작가님을 표현한 문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책읽아웃>의 청취자였다면 알겠지만, 엄지혜 작가님은 아무 책이나 함부로 좋다고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다. 베스트셀러라도, 유명 작가의 책이라도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추천하는 법이 없고 빈말조차 얹지 않았다. 그 점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실제로 엄지혜 작가님이 추천하는 책을 읽었을 때 불만족한 적이 없기에, 지금도 엄지혜 작가님의 글과 엄지혜 작가님이 추천하는 책은 믿고 읽는다.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은 엄지혜 작가의 첫 책 <태도의 말들>과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오랫동안 기자, 에디터, 인터뷰어로 일했고, 직장인인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그동안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아무 책이나 함부로 좋아하지 않는 저자는 사람도 아무나 함부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작 몇 번 만났을 뿐이지만 작은 배려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좋은 인상을 품게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만났지만 무성의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관심이나 애정이 식어버린 사람도 있다.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진짜 좋은 사람 아닌가." (15쪽) 저자는 불의나 부정을 보았을 때 침묵하기 보다는 표현하는 사람을 신뢰하며 자신 또한 그런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이는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불의를 보고도 눈 감은 나, 부정을 바로잡지 않고 침묵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낮고,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침묵하는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고 나와의 관계보다 더 소중한 관계는 없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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