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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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읽고 <블러드 차일드>를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이 먼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한 여자아이가 영문을 모른 채 낯선 세계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라서 <킨>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웬걸 여자아이의 정체는 (<킨>의 다나처럼) 평범한 인간 여성이 아니라 사실은 53세인데 10세 정도의 외모를 지닌 이나(뱀파이어)였고, 성별을 불문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성관계를 맺고 그들과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복잡한 존재였다. 


책을 다 읽고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서 다른 분들이 쓴 리뷰를 살펴봤는데, '뱀파이어 물로 폴리아모리 이슈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글을 읽고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을 일컫는 폴리아모리는, 한 번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벅찬 나에게는 아직 어려운 개념이다. 생각해 보면 <킨>에서 다나는 현실에선 남편 케빈을 사랑하고, 타임 슬립한 과거에서는 백인 농장주의 아들 루퍼스와 연인 비슷한 관계를 이루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떤 장애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사랑이라면, 오직 한 번에 두 사람끼리만 사랑할 수 있다는 상식 역시 사랑으로 넘어서야 할 편견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낯선 개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아나가는 일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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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고서야 - 일본 천재 편집자가 들려주는 새로운 시대, 일하기 혁명
미노와 고스케 지음, 구수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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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유튜브 <편집자k> 채널을 보면서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다. <편집자k> 채널을 운영하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의 책을 읽고, 내친김에 편집자가 쓴 책을 한 권 더 읽었는데 그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쓴 미노와 고스케는 2010년 출판계에 입문한 이후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대표작으로는 겐조 도루 <전설이 파는 법>, 호리에 다카후미 <역전의 업무론>, <다동력>, 마에다 유지 <인생의 승산> 등이 있는데, 대체로 유명 인사를 저자로 섭외해 그의 인생철학이나 업무 기술을 담은 책을 펴내는 것이 그의 방식인 듯하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출판보다는 콘텐츠 기획, 실행 쪽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출판업계가 내리막길을 걷는 추세다. 유튜브, 트위터 같은 SNS를 사용하는 인구가 점점 늘면서 뉴미디어가 독자들을 빼앗아가는 상황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기회'라고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신간이 나오면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는 '미노와 편집실'(https://community.camp-fire.jp/projects/view/34264)이라는 회원제 커뮤니티를 만들어 출판 당시까지 13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다(편집자 수입의 수십 배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종래의 방식이나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흐름에 기꺼이 편승하라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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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3 세트 - 전3권 (무선)
류츠신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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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과학을 다루는 장르가 아니라고 하지만, SF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어려움을 느끼는 건 역시 과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류츠신의 대표작 <삼체>를 읽으면서 여러 번 한숨을 내쉬었던 것도 역시 과학 때문이다. 과학의 비중이 엄청 높은 소설은 아니지만, 과학으로부터 손을 뗀 지 오래된 나로서는 읽기 힘든 대목이 상당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끝까지 읽은 건, 서사 자체의 재미 덕분이다. 


나노 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 왕먀오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경찰 조사를 받는다. 얼마 전 국제 과학 학술 단체 '과학의 경계' 회원들이 잇달아 사망했는데, 혹시 이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지 물으러 온 것이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과학자 중에 학계에서 촉망받던 여성 과학자 양둥이 있음을 확인한 왕먀오는 충격을 받고 경찰에 협조하기로 한다. 경찰은 왕먀오가 '과학의 경계' 회원들과 접촉해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아내는, 일종의 스파이 역할을 하길 바란다. '과학의 경계' 회원들과 접촉하는 데 성공한 왕먀오는 '과학의 경계' 회원들이 하는 가상현실 게임 '삼체'에 몰입한다. 대체 이 게임은 무엇이고, '과학의 경계' 회원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1권은 왕먀오의 이야기와 양둥의 어머니 예원제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왕먀오의 이야기보다는 예원제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로웠다. 문화대혁명 당시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반혁명 분자로 몰려 강제 노동을 하게 된 예원제는 대학 때 쓴 논문을 인정받아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원제는 우주에 인류 이외의 생명체가 있고 문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2,3권은 예원제가 처음 알아낸 '삼체 문명'과 인류가 생존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외계인이 있다고 해도 외계인과 인류가 평화롭게 공생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이야기한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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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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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빨리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아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그 작품, <천일야화>의 '천일야(千一夜)'다. 이야기는 1195년,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가 자기 고향에서 쫓겨나 작은 마을 루세나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시작된다. 의술을 펼치며 근근이 살아가던 이븐루시드는 두니아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고 곧이어 사랑에 빠진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두니아는 잠자리에 든 이븐루시드에게 "이야기 하나만 해줘요."라고 졸랐다. 


그때부터 이븐루시드는 두니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둘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다. 이븐루시드는 철학자답게 이성, 논리, 과학 등을 중시했다. 반면 마족(魔族) 출신인 두니아는 이성이나 논리,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두니아가 지닌 마족으로서의 본성 때문일까, 아니면 믿음 때문일까. 두니아는 이븐루시드와 함께 보낸 천 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세 번이나 수태해 최대 열아홉 명으로 짐작되는 아이를 낳았고, 가뜩이나 가난한 이븐루시드는 이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보다 몇 배의 노동을 해야 했다. 생활고에 지친 그들은 결국 헤어졌고, 두니아는 마족 세계로 돌아갔다. 


팔백 년 이상이 흐른 후, 거대한 폭풍우가 뉴욕을 강타해 인간세계와 마족 세계를 잇는 통로가 뚫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정원사 제로니모는 항상 지면에서 9센티미터 이상 떠 있는, 공중부양 상태의 몸이 된다. 제로니모가 자신의 후손임을 확인한 두니아는 제로니모에게서 오래전 사랑했던 이븐루시드의 얼굴을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로니모를 구하기로 한다. 제로니모 역시 두니아에게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마족의 본성을 깨워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마족의 본성은 또 다른 불안과 갈등을 나을 뿐이고, 결국 제로니모는 해결의 실마리는 마성이 아니라 이성임을 깨닫는다. 


<천일야화>로 시작해 <어벤저스>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니. 이런 이야기는 본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다. 어쩌면 허무맹랑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묘하게 납득되는 건, 이야기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성 대 비(非) 이성'에 관한 논의 때문이다. 철학자 이븐루시드로 대표되는 이성과 가잘리, 흑마족으로 대표되는 비이성 사이의 대립. 그 사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건, 이성을 사랑한 마족 여왕 두니아와 마성을 타고났지만 이성을 택하는 인간 제로니모다. 작가는 인간을 괴롭히고 유린하는 흑마족을 통해 이성에 반하는 가치관이나 통념이 인간을 얼마나 괴롭게 만드는지 폭로한다. 이 같은 통찰은 종교(이슬람교)로 인해 긴 시간 고통받은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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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귀환 용사가 현대최강! 1
사메다 코반 지음, 케이 타카야 그림, 시라이시 아라타 원작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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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인간이 이세계에서 환생하는 이야기는 많이 봤는데, 이세계에서 환생했던 인간이 다시 현대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적어도 나로서는) 이 만화가 처음이다. 나처럼 신선한 설정에 흥미를 느낀 독자들이 많았는지, 소설 연재 당시 일본의 유명 소설 투고 사이트 <소설가가 되자> 로우 판타지 부문에서 일간, 주간, 월간, 분기 랭킹 1위를 달성했고,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순조롭게 코미컬라이즈 되었다. 


주인공 모리시타 다이키는 이세계에서 환생해 우여곡절 끝에 마왕을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강해진 다이키는 지금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세계에는 엄마가 만든 카레가 없기 때문이다 ^^)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다이키는 예전에 자신을 괴롭혔던 학교의 불량배들이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지금의 다이키는 예전의 다이키가 아니다. 예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신, 이세계에서 획득한 능력과 약간의 지혜(!)를 활용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이키가 상상도 못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대에도 의외로 많은 요마나 영능력자들이 평범한 인간들 몰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키의 능력을 감지한 영능력자들이 다이키 주변으로(물론 학교에도) 몰려들면서 평범할 터였던 다이키의 일상은 이세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참신한 설정과 깔끔한 작화, 시원시원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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