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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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인 <시스터 후드>를 통해 알게 된 소설이다. 왓차에서 드라마로 먼저 보고 최근에야 소설로 읽었는데, 드라마와 소설 모두 훌륭하고 각각의 장점이 있으므로 둘 다 볼 것을 권한다. 


제목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서 수학 교사로 일하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과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결코 호감형의 인물이 아니다. 몸집도 여자치고는 거구인 데다가 표정은 항상 뚱하고 입은 거칠어서 남들이 싫어할 만한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한다. 이웃들은 물론 남편과 아들조차도 올리브를 좋아하지 않는다. 올리브 자신도 남들과 잘 지낼 마음이 없어서 그의 주변에는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 드라마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를 봤을 때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남편 헨리는 얼마나 다정하고 배려심도 많은지. 대체 어쩌다 저렇게 극과 극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올리브의 삶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이유'를 알게 되고, 올리브의 까칠함과 무뚝뚝함이 실은 올리브가 삶이라는 투쟁에서 버티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방어구 혹은 무기임을 알게 되고 나서는 올리브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과연 나라면 올리브와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드라마에서도 소설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올리브 키터리지와 성인이 된 아들 크리스토퍼 사이의 갈등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올리브는, 아들에게는 그와 같은 고통을 주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살았다. 올리브로서는 최선을 다해 아들을 키우고 뒷받침해줬다. 하지만 성인이 된 아들의 생각은 다르다. 크리스토퍼는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어머니 때문에 고생했고,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던 어머니 때문에 지금도 정신과를 드나든다고 고백한다. 대체 이들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같은 사건이나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 작품 전체를 흐르는 기조이기도 하다. 이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보다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그리는 소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올리브의 삶에서 올리브는 주연이지만, 타인의 삶에서는 스치듯 언급되는 조연이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올리브에게 중요한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 올리브는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간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어떤 사람을 '안다'고 말하고, 인생과 세상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작품에서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는 마지막에 올리브가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는 것이다. 남편은 죽고 자식과는 소원해진 마당에 새롭게 나타난 사랑이라니! 두 사람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때마침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편 <다시, 올리브>가 출간되어 너무 기쁘다. 얼른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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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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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몇 가지 단서를 설렁설렁 훑어보고는 다른 사람의 심중을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긴다. 낯선 이를 판단하는 기회를 덥석잡아버린다. 물론 우리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하니까. 하지만 낯선 사람은 쉽게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책에서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를 설득할 수 있다면, 이런사실일 것이다. 낯선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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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 1줄 중국어 쓰기 수첩 : 중급문장 100 나의 하루 1줄 중국어 쓰기 수첩
SD어학연구소 지음 / 시대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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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문형씩 책에 직접 쓰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하나의 문형마다 총 세 개의 문장이 나오는데, 첫 번째 문장은 여러 번 반복해서 쓸 수 있고, 첫 번째 문장의 응용 표현에 해당하는 두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은 각각 한 번씩 반복해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책에 직접 문장을 쓰면서 문형과 단어를 암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중국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형을 빈도 순으로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 나온 단어는 따로 배치해두어 암기하기에 좋고, 한 챕터가 끝나면 그동안 공부한 문형을 총정리하는 코너가 있어서 복습에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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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는 도련님
도대체 지음 / 동그람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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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웃게 될 줄 알았는데 펑펑 울면서 책장을 덮었다. 도대체 작가와 동거 12년 차인 개 '태수'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유쾌한 만화인데, (적어도 나에게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목이 의외로 많았다. 


이를테면 밖에서는 실수도 곧잘 하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푸대접을 받기도 하는 별 볼일 없는 나인데, 태수는 이런 내가 좋다고 집으로 돌아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기뻐하는 장면. 나는 이제 겨우 태수와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태수는 벌써 개로 치면 노견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장면. 내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할까 생각하다가 '나는 개처럼 사랑해본 적도 없다'고 자책하는 장면. 


이런 장면들을 보고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개는 어쩌면 이럴까. 사람은 어쩌면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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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양들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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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쓴 이정명 작가가 2019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모두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서, 이정명 작가가 성경에 기반한 소설을 썼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외라고 생각했다. 막상 읽어보니 어딘지 모르게 전작들과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원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처음에는 나도 마티아스와 같은 입장이 되어 범인을 찾는 데에만 골몰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범인인지'보다도 '누구를 범인으로 하고 싶은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이나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그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령 유대 총독 빌라도는 이참에 예수를 없애서 자신이 진정한 유대의 왕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예수의 제자들 중 일부는 예수가 죽어서 부활함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조나단은 마티아스에게 예수를 범인으로 지목하면 처형을 면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마티아스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를 죽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갈등한다. 마티아스 자신을 포함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남을 죽게 해서라도 자신이 살고자 한다. 그런데 예수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하니 그 자체로 비범하고 신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수는 정말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아닐까. 살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던 마티아스가 죽기 위해 범인을 자처하는 예수를 만남으로써 생의 이면을 발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성경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예수가 활동했을 당시의 시대상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당시 로마 제국은 예루살렘을 유대 지방을 지배하기 위한 거점으로 정하고 통치했는데, 이는 20세기 초 일본이 조선을 아시아 지배의 거점으로 삼고 통치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빌라도는 일본에서 파견한 조선 총독으로, 조나단은 조선 총독 밑에서 일하는 친일파 조선인 관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해 애쓰다 순교한 독립투사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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