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양들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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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쓴 이정명 작가가 2019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모두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서, 이정명 작가가 성경에 기반한 소설을 썼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외라고 생각했다. 막상 읽어보니 어딘지 모르게 전작들과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원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처음에는 나도 마티아스와 같은 입장이 되어 범인을 찾는 데에만 골몰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범인인지'보다도 '누구를 범인으로 하고 싶은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이나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그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령 유대 총독 빌라도는 이참에 예수를 없애서 자신이 진정한 유대의 왕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예수의 제자들 중 일부는 예수가 죽어서 부활함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조나단은 마티아스에게 예수를 범인으로 지목하면 처형을 면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마티아스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를 죽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갈등한다. 마티아스 자신을 포함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남을 죽게 해서라도 자신이 살고자 한다. 그런데 예수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하니 그 자체로 비범하고 신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수는 정말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아닐까. 살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던 마티아스가 죽기 위해 범인을 자처하는 예수를 만남으로써 생의 이면을 발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성경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예수가 활동했을 당시의 시대상을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당시 로마 제국은 예루살렘을 유대 지방을 지배하기 위한 거점으로 정하고 통치했는데, 이는 20세기 초 일본이 조선을 아시아 지배의 거점으로 삼고 통치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빌라도는 일본에서 파견한 조선 총독으로, 조나단은 조선 총독 밑에서 일하는 친일파 조선인 관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해 애쓰다 순교한 독립투사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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