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 - 어느 경계인의 책방 답사로 중국 읽기
박현숙 지음 / 유유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저자가 중국 각지의 이색적인 서점들을 직접 가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점 이야기만큼이나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여성으로서, 중년으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외국인으로서, 프리랜서 작가로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새롭게 알게 된 점도 많고 공감한 점도 많다. 


언론 출판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심한 중국이지만, 그런 중국에도 자기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지닌 서점들이 있다. 저자는 유난히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런 서점들을 찾는다. 대책 없이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 어느 날, 저자는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으로 떠났다. 그렇게 만난 서점이 쿤밍의 옛 거리, 원밍제에 있는 '동방서점'. 이곳은 다른 서점에서 파는 흔한 책들은 팔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 책일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 서점. 이곳에서 저자는 불행을 행운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웠다. 


최근 베이징에는 '랑데부'라는 이름의 세련된 서점이 생겼다고 한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이곳은 서점이지만 커피도 팔고 와인도 팔고 치즈도 팔아서, 언뜻 봐서는 카페인지 프랑스 식당인지 상점인지 분간이 안 된다고. 한때는 정부 사상에 위배되는 책들을 전부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우기까지 했던 나라의 수도에 이렇게 호화로운 서점이 생기다니. 그만큼 자본주의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보면 될까. 아니면 그만큼 이데올로기의 힘이 알량하다고 보면 될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는 故 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는 의미로 박완서 작가님이 생전에 발표한 여러 책들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중에서 나는 박완서 작가님의 연작 자전소설 2부에 해당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었는데, 현대문학에서 나온 <그 남자네 집>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후속편인 걸 알고 이 책도 구입해 읽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주인공 '나'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적군은 물론이고 아군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나이 든 어머니와 올케, 조카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기 위해 장사든 도둑질이든 무엇이든 해야 했던 처절한 상황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이때 '나'의 나이가 겨우 이십 대 초반. 꽃다운 나이였던 만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연정을 품었던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그 남자네 집>에 나온다. 


이야기는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흘러 노년에 접어든 '나'가 첫사랑 '그 남자'네 집으로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나'와 '그 남자'는 한 동네에 살아서 식구들끼리도 잘 알고 음악이나 문학 취향도 잘 맞아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하지만 '나'가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세상 물정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둘의 사이가 조금씩 어긋난다. 결국 '나'는 아직 학생이고 돈 감각이 부족한 '그 남자'가 아니라 번듯한 직장도 있고 사회 경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데, 순조로울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예상외의 변수들로 인해 점점 힘들어지고, 우연히 '그 남자'와 재회한 '나'는 '그 남자'와의 일탈을 꿈꾸다 급기야 일탈을 실행할 마음을 먹는다. 


아무리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소설'인 만큼 어느 정도 허구가 많이 가미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친딸인 호원숙 작가님이 쓴 후기에 따르면 시어머니가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박수무당에 의존해 작가가 힘들어했던 것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격차가 심했던 친정과 시가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읽기가 괴로웠는데,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그 남자'에 대한 분노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하다는 이유로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를 버린 '나'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환경에 대한 분노로 보였다. 이런 식의 갈등, 이런 식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이 (지금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얼마나 더 많았을까. 곱씹을수록 마음이 아픈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애하는 20세기 - 오늘의 클래식, 시대의 아이콘, 나의 취향이 된 20세기 걸작들의 문제적 탄생기
김재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세기 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분야의 아이콘들을 그래픽 노블로 소개하는 형식의 책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라이프, 전쟁 포스터, 디저트, 자전거, 철도, 2부에는 바우하우스, 타이프페이스, 펭귄북스, 솔 바스, 의자, 자동차, 마터호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3부에는 도무스, 위스키, 로버트 크럼, 팝아트, 비저네어,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나온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라이프, 펭귄북스처럼 지금도 유명한 잡지, 책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자전거나 의자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겨 사용하는 물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는지를 그림으로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이 책을 보니 20세기 문화의 특징은 산업, 상업과의 연계인 것 같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라이프 같은 잡지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언론 및 광고 산업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자전거, 철도, 의자, 자동차 등이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토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따르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디저트나 위스키처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주로 소비되던 아이템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 역시 교역의 발달, 세계화 등과 관련이 있을 터. 콘셉트도 좋고 내용도 좋고 작화도 좋아서 2권, 3권도 계속해서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편집자k님 유튜브에서 보고 구입했습니다. 너무 귀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들이에요. 쓰신 분, 펴내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애하는 미스터 최 - 사노 요코가 한국의 벗에게 보낸 40년간의 편지
사노 요코.최정호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남해의봄날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 사노 요코가 베를린 유학 중 만난 한국인 남성 '미스터 최'(최정호)와 40여 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서 만든 책이다. 


처음에는 책의 콘셉트에 대해 반감이 없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사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남은 한 사람이 그 편지들을 세상에 내보인다는 게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책을 읽고 오래전부터 미스터 최가 사노 요코에게 편지들을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음을 알 수 있었고("사노 요코의 편지는 혼자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편지의 모양을 빙자한 하나의 에세이다"), 사노 요코가 세상을 떠난 후라도 출간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 정권의 박해를 피해 도망치듯 베를린으로 유학 온 남자. 나이를 먹고 남편이 있어도 미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 두 사람은 한 송년 파티에서 만나 둘 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친해졌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후에도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오로지 예술만 생각했던 여자는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을 대신 사과하고 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때문에 고초를 겪는 남자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나라 걱정과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매사에 심각했던 남자는 여자 덕분에 웃음을 되찾고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운다. 


40년 동안 친구였다고 해도 실상 자주 얼굴을 본 건 베를린 유학 시절 몇 년이 전부일 텐데, 아무에게나 털어놓기 힘든 내밀한 이야기들도 나눈 걸 보면 우정의 농도가 꽤 진했던 것 같다. 사노 요코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 "서투른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서투른 글도 쓰고 있"다며 "이러다가 제 에세이집이 나오면 어떡하지요? 사람은 수치를 모르는 동물이에요"라고 걱정한 대목이라든가, 출산과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한 대목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두 사람 모두 틈만 나면 당신의 재능이 부럽다며, 쉬지 말고 책을 쓰라고 독려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노 요코는 한국어를 못해서 미스터 최가 쓴 책을 읽지 못할 텐데도 그런 말을 하니 재미있었다. 사노 요코가 말년에 한국 드라마에 심취했던 것으로 아는데, 오랫동안 미스터 최를 통해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했던 사노 요코의 눈에 드라마 속 한국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지도 궁금하다. 한국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던 그가, 한국에서 이토록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는 걸 알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