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는 故 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는 의미로 박완서 작가님이 생전에 발표한 여러 책들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중에서 나는 박완서 작가님의 연작 자전소설 2부에 해당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었는데, 현대문학에서 나온 <그 남자네 집>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후속편인 걸 알고 이 책도 구입해 읽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주인공 '나'가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적군은 물론이고 아군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나이 든 어머니와 올케, 조카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기 위해 장사든 도둑질이든 무엇이든 해야 했던 처절한 상황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이때 '나'의 나이가 겨우 이십 대 초반. 꽃다운 나이였던 만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연정을 품었던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그 남자네 집>에 나온다. 


이야기는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흘러 노년에 접어든 '나'가 첫사랑 '그 남자'네 집으로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나'와 '그 남자'는 한 동네에 살아서 식구들끼리도 잘 알고 음악이나 문학 취향도 잘 맞아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하지만 '나'가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세상 물정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둘의 사이가 조금씩 어긋난다. 결국 '나'는 아직 학생이고 돈 감각이 부족한 '그 남자'가 아니라 번듯한 직장도 있고 사회 경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데, 순조로울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예상외의 변수들로 인해 점점 힘들어지고, 우연히 '그 남자'와 재회한 '나'는 '그 남자'와의 일탈을 꿈꾸다 급기야 일탈을 실행할 마음을 먹는다. 


아무리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소설'인 만큼 어느 정도 허구가 많이 가미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친딸인 호원숙 작가님이 쓴 후기에 따르면 시어머니가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박수무당에 의존해 작가가 힘들어했던 것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격차가 심했던 친정과 시가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도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읽기가 괴로웠는데,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그 남자'에 대한 분노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하다는 이유로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를 버린 '나'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환경에 대한 분노로 보였다. 이런 식의 갈등, 이런 식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이 (지금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얼마나 더 많았을까. 곱씹을수록 마음이 아픈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