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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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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소년 윤재는 '아몬드'라고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누가 친절을 베풀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길 위에 여자애가 넘어져 있어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지만, 겉보기엔 멀쩡하고 엄마와 할머니가 살뜰하게 돌봐서 한동안 별문제 없이 지냈다. 그런데 윤재의 생일이기도 한 크리스마스이브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윤재는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을 꾸리며 근근이 먹고산다. 


그런 윤재 앞에 곤이라는 녀석이 나타난다. 세 살 때 괴한에게 납치되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친부모를 만났으나 어머니는 이미 죽고 아버지는 냉담해 괴로워하는 녀석이다. 분노로 가득 찬 곤이는 분노는커녕 사소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이상하게 여기고 급기야 대놓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윤재는 그런 곤이 때문에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진심으로 부딪치는 곤이의 노력이 가상하고 곤이의 존재가 소중하게까지 여겨진다. 과연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인가. 


이야기가 길지 않고 문장이 쉬워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를 잇는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답게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매끄럽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상당한 울림을 느낄 듯. 감정이 없는 소년과 감정이 있다 못해 넘치는 소년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과정도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에게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을 나눠가지는 모습도 흐뭇하다(도라가 왜 나왔는지 의문이라는 독자 리뷰를 읽었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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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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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려면 반드시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와야 할까? 신춘문예를 통과하지 못하면 소설가가 될 수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 인간> (전 3권)이다. 


작가는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2006년 서울로 상경해 그 후로 10여 년을 액세서리 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다. 작가는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올렸다. 거의 매일 새벽 시간을 그렇게 보냈더니 자그마치 300편의 짧은 소설이 모였고 그중에 66편을 추렸더니 소설집 세 권이 완성되었다(잘은 모르지만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전공자 중에도 소설을 300편이나 써본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책을 한 번에 세 권 낸 사람도). 


공포 게시판에 올린 글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괴이하고 섬뜩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란츠 카프카나 아베 코보를 연상시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가 많다. 표제작 <회색 인간>은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지저(地低) 세계로 끌려간 인간들은 강제 노동에 투입되고,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실컷 잠도 못 잔 채 여기저기서 쓰러지고 죽어간다. 천저(天低) 세계, 즉 여기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에둘러 표현한 듯하다. 


이 밖에도 <무인도의 부자 노인>, <낮인간, 밤인간>, <아웃팅>,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디지털 고려장,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등 제목만 보아도 호기심이 샘솟는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짧아서 읽기가 부담스럽지도 않다.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 곳곳에 슬그머니 숨어 있는 유머와 희망도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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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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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출산>은 <편의점 인간>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 문학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집이다. 표제작 <살인 출산>은 10명을 낳으면 합법적으로 1명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피임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수정이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출산은 살인을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사람만 한다. 이는 역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쿠코는 언니 다마키가 10대 때 살인을 결심하고 스스로 출산자가 되기를 택한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살인 충동이 있었던 언니에게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다행인지 몰라도, 사람 하나를 죽이겠다고 그 힘든 출산을 열 번이나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이쿠코의 앞에 살인출산 제도를 비판하는 단체의 회원이 나타나고,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살인출산 제도의 우수성, 합리성만을 교육받은 사촌 동생 미사키가 이쿠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쿠코는 이들과 지내며 살인출산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0명을 낳으면 1명을 죽일 수 있는 사회라니.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설정 자체가 아니라 생명은 신성하다느니, 살인은 절대악이라느니 하는 가치관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지, 아니면 사회적, 정치적, 법적 합의에 의한 구성물에 불과한지 같은 의문이다. 생명은 신성하다고들 하지만 피임이나 낙태 문제를 생각하면 태아의 생명권보다 산모의 건강권, 행복권이 더 중요한 경우가 분명 있다. 살인은 절대악이라고들 하지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회는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하에 안락사, 존엄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작가는 <편의점 인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극단적이고 괴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상태가 결코 당연하지 않고 정상이지도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2명이 아닌 3명의 연애가 유행하는 사회를 그린 <트리플>, 육체와 감정의 교류 없이 오로지 법적, 경제적, 사회적 공동체로만 기능하는 부부의 생식 문제를 다룬 <청결한 결혼>, 영원히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의 모습을 묘사한 <여명> 등에서도 나타나는 표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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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양장 특별판)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콩(책과콩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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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다고, 소설이든 영화든 꼭 보라고 여러 사람에게 추천받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열 살 소년 어거스트 풀먼. 어려서부터 줄기차게 치료를 받고 큰 수술도 여러 번 한 덕분에 지금은 특수 보청기와 얼굴 기형만 빼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어거스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거스트와 눈도 맞추지 못하고 어거스트를 괴물이라고 놀린다. 


줄곧 홈스쿨링을 받으며 자란 어거스트는 언제까지나 가족의 보호 아래 지낼 수만은 없다는 엄마의 판단 아래 난생처음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어거스트가 예상한 대로 전교생 대부분이 어거스트를 피하거나 괴물이라고 놀리고, 어거스트에게 잘해주는 몇 안 되는 친구들마저도 얼마 후 다른 속셈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거스트는 크게 실망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주눅 들지도 않고 묵묵하게 학교에 나간다. 


이야기는 어거스트를 비롯해 비아, 서머, 잭, 저스틴, 미란다 등 어거스트의 주변 인물들의 시점을 하나씩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거스트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누나 비아가 실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어거스트에게 전부 빼앗겨서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든지, 어거스트를 배신한 줄 알았던 잭이 실은 어거스트가 생각한 것보다 어거스트를 더 많이 걱정하고 있었고 배신한 것도 어거스트의 오해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감동을 자아낸다. 


장애를 지닌 사람도 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도 저마다 결코 만만치 않은 1인분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겁고 특히 콤플렉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추천할 만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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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8-03-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후기 감사해요. 읽고 싶어지네요 :)
 
검은 꽃 (리커버 특별판)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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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은 물론 자기 집 한 채 가지기도 힘든 이 나라를 가리켜 청년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탈한국'을 목표로 해외 취업이나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1905년 인천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기선에 올라탄 조선인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은 멕시코로 떠난 제1세대 조선인 이민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 수작이다. 


이들은 먼저 하와이로 떠난 조선인 이민자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산다는 거짓 소문에 속아 겨우 멕시코행 배표를 구해 태평양을 건넌다. 이들 중에는 몰락한 왕족인 이 씨 일가도 있고 일제가 장악한 군대에서 쫓겨난 군인들, 얼마 안 되는 논밭마저 일제에 빼앗기고 도망친 농민들, 궁을 떠난 내시, 천주교 신부와 사기꾼도 있다. 이들은 출신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지만, 고국인 조선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은 건 똑같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고국에서보다 비참한 삶, 고독한 미래다. 


이들은 멕시코 땅을 밟기가 무섭게 멕시코 전역에 있는 에네켄(애니깽) 농장으로 끌려가고, 생전 처음 보는 꼬부랑글씨로 적힌 계약서에 의해 에네켄 농장의 채무 노예가 된다. 선박용 로프를 만드는 재료인 에네켄은 선인장과 비슷하게 생긴 작물로, 표면이 거칠고 가시가 많아서 잘못 만졌다가는 손바닥이 긁히고 까져서 피투성이가 된다. 그런 에네켄은 하루에 수백 개씩 수확하고, 조금만 일을 게을리해도 농장주한테 채찍질 세례를 당하고, 그렇게 굴욕을 당하며 하루 종일 일해도 배불리 먹거나 마음 편히 잘 수도 없고. 얼마나 끔찍한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자살을 택하는 이도 많았다는 말이 납득이 된다. 


다만 작가는 이들의 생애를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죽어나가는 배 안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사랑에 빠지고, 농장주 허락 없이 농장 밖으로 나가면 총살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사랑을 속삭이고 몸을 섞는다. 제물포에서 신부의 십자가를 훔쳤던 도둑은 신심을 인정받아 농장주의 심복이 되고, 십자가를 잃어버린 신부는 가혹한 노동으로 인해 그동안 억눌렀던 신기(神氣)가 튀어나와 무당이 된다. 농장주의 감시를 피해 모인 조선인들끼리 굿판을 벌이고 잔치를 즐기기도 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작가의 상상에 불과할까. 


작가는 농장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몇몇이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과 내전의 바람 속에서 또다시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모습도 자세히 그린다. 이 또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과 일본, 멕시코에 모두 적을 두었으나 어느 나라로부터도 마땅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한 이들이 끝내 자기들 힘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결말은 감동뿐 아니라 통쾌함마저 준다. 한민족의 역사를 그린 민족 문학, 역사 소설로 시작해 민족이나 국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고발하며 끝나는 점도 김영하 다운 파격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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