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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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을 위태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어바웃 타임>의 배우 캐서린 스테드먼의 데뷔작이자, 배우에서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화를 결정해 화제가 된 장편소설 <썸씽 인 더 워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소설은 한밤중 깊은 산속에서 무덤을 파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여자의 이름은 에린. 불과 얼마 전까지 촉망받는 신예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잘생기고 능력 있는 은행가 마크의 아내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랬던 에린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보라보라 섬으로 떠난 신혼여행부터다. 이직을 준비하던 마크는 신혼여행 직전 동료의 착오로 이직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무직 상태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린은 남편이 직장을 잃어서 속상하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둘의 사랑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보라보라 섬에 도착한 에린과 마크는 모든 걸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며칠 후 에린과 마크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놀다가 자물쇠가 채워진 가방 하나를 발견한다. 에린과 마크는 발견 즉시 호텔에 가방을 전달한다. 하지만 호텔의 착오로 가방이 두 사람에게 돌아오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에린과 마크는 가방을 열어본다. 그리고 그 가방 안에 엄청난 양의 지폐와 다이아몬드, 권총 한 자루와 USB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안 그래도 마크의 실직 이후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했던 두 사람은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을 차지하기로 한다.


이때부터 가방 안의 것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에린과 마크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된다. 스위스에 차명계좌를 개설해 돈을 입금하고, 다이아몬드를 현금화해줄 중개인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에린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완전 범죄를 꿈꾸던 에린은 자신의 실수로 일이 어그러질까봐 걱정한다. 마크는 그런 에린을 격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에린을 힐난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급기야 에린이 경찰과 내통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에린은 자신의 실수를 벌충하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벽한 커플이 주인공이라서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와 비슷한 전개를 따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절반만 맞았다. 비슷한 설정이라도 <나를 찾아줘>가 에이미와 닉 커플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썸씽 인 더 워터>는 에린과 마크 커플의 이야기와 에린이 촬영을 위해 출소를 앞둔 죄수 세 명을 인터뷰하는 과정이 겹쳐지며 훨씬 복잡한 전개를 보인다. 그 결과 에린이 끝내 보게 되는 풍경과 깨닫게 되는 진실은 통쾌하다기보다 잔혹하고 애달프다. 과연 에린은 행복해졌을까. 영화화된다면 극장에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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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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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은 국적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이다지도 비슷한 걸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을 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2003년 데뷔작이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 책으로 영연방 작가상과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수상했고, 이후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지리아 상류층 가정의 십 대 소녀 '캄빌리'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현재는 공장을 몇 개나 거느린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인물이고, 캄빌리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두 자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현모양처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캄빌리의 오빠 자자와 캄빌리는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며, 캄빌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겉보기엔 지극히 모범적인 '정상 가족'으로 보이지만, 이 집안의 실상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벌준다. 아내의 배를 차서 유산을 시킨 적이 여러 번이고, 1등을 놓쳤다는 이유로 아들의 손가락을 망가뜨리고, 하교할 시간에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어린 딸의 뺨을 손자국이 날 만큼 때린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행동들을 기독교와 서구화, 자본주의로 합리화한다. 자신이 가족들을 벌주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계명을 따르는 것이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부조리한 규칙과 규율을 강요하는 것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캄빌리의 어머니와 오빠 자자, 캄빌리는 아버지의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버지의 여동생, 이페오마 고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페오마 고모는 남편과 사별한 후 대학에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페오마 고모는 캄빌리의 아버지를 설득해 자자와 캄빌리가 자신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하고, 얼마 후에는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게 한다. 자자와 캄빌리는 고모의 집에서 지내며 많은 것에 놀란다. 식사 시간에 자유롭게 대화해도 되고, 집에서 편하게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되고, 종교와 사회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져도 되고 부모에게 질문해도 된다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네 머리가 몇 개냐, 그보?" 

아버지가 처음으로 이보어를 섞어서 물었다. 

"하나요." 

"저 애도 머리가 하나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 

(63쪽) ​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 


봉헌 행렬을 위해 나올 때 보니 어떤 여자들은 속이 비치는 검은 베일을 머리에 쓰기만 했고 어떤 여자들은 바지를, 심지어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여자가 하느님의 집에서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지, 특히 하느님의 집에서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91쪽) 


소설의 배경인 나이지리아는 한국과 지리적으로도 멀고 문화적으로도 가깝지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많은 장면이 한국 소설의 장면들과 많이 겹쳐 보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족들을 억압하는 장면들이 특히 그랬다. 아내에게는 무조건적인 순종과 정절을 강요하고, 아들에게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능력이 충분함을 입증하길 기대하고, 딸에게는 그저 귀엽고 말 잘 듣는 인형 같은 존재로 남길 바라는 모습은 나이지리아의 아버지들이나 한국의 아버지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이 소설에서 전통을 상징하는 할아버지와 근대를 상징하는 아버지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갈등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거의 비슷한 입장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페오마 고모에게 '딸은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나, 여자는 바지를 입으면 안 되고 아버지나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나 여성 혐오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가 이들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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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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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어피치에 이어 튜브를 테마로 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에세이 책이 나왔다. 제목은 <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직전에 나온 <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가 어피치의 귀여움을 주력으로 한 힐링 에세이 성격의 책이었다면, 이 책은 평소에는 겁 많고 소심해도 화가 날 때는 시원하게 화낼 줄 아는 튜브의 강단 있는 성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시쳇말로 '뼈 때리는' 조언들이 가득하다.


이런 통쾌한 조언들을 누가 썼나 봤더니 국민 '시팔이' 하상욱 작가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강렬한 문장으로 SNS에서 인기를 얻어 <서울 시>, <시 읽는 밤 : 시밤>, <어설픈 위로받기 : 시로> 등의 책을 펴낸 하상욱 작가만큼 이 책에 어울리는 저자가 또 있을까. 평소에는 겁 많고 소심하지만 극도의 공포를 느끼거나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미친 오리'로 변신하는 튜브와 짧고 단순하지만 깊고 강렬한 울림이 있는 하상욱 작가의 글이 참 많이 닮았다.





이 책은 주로 '관계'로 인한 갈등을 다룬다.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상대가 좋아서 생기는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가 싫어서 생기는 고민이다. 대부분은 후자다. 성격이 잘 안 맞는 사람이나 대화가 잘 안 통하는 사람과는 웬만해선 안 만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싫어도 가족이라서,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서, 먹고살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직장 상사라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운 경우가 태반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어울리면 나를 싫어하게 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좋은 점도 미워 보이기 마련이라고. 싫은 마음이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차라리 관계를 끊어버리라고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실패'를 다른 말로 하면 '정리의 성공'이다. 지금 당장 관계를 끊을 수 없다면 표면적으로만 관계만 유지하고 심리적으로는 마음을 주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타인을 미워하고 원망하기 전에 나도 그런 미운 사람이 아닌지 돌아보라는 조언도 나온다. 예전에는 어른들을 보고 꼰대라고 욕했는데 어느새 나도 그 꼰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안 해야 할 말을 해서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신경 쓰느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영혼 없는 칭찬보다 영혼 없는 지적을 할 때도 있다.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들을 읽으며 잘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남들한테 피해 안 끼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 주고 사랑받으며 사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데 그걸 잊고 산다. 나처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잊고 사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의 귀여운 일러스트도 잔뜩 있으니 다들 좋아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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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즈
린다 라 플란테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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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이렇게 멋진 범죄 소설을 쓰는 여성 작가가 있다니! 린다 라 플란테의 소설 <위도우즈>를 읽고 든 생각이다. 린다 라 플란테는 이력부터 대단하다. 리버풀 출신인 그는 영국 왕립 연기 아카데미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졸업 후 각종 연극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배우로 활약하다 1974년 드라마 작가로 변신했다. 1983년 영국 템스 텔레비전 드라마 <위도우즈>의 성공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는 것은 이 소설이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에 발표되었다는 건데 그렇게 오래된 작품 같지 않고 최근에 발표된 작품처럼 참신하다.


1984년 런던. 현금 수송 차량을 턴 세 남자가 도주 중 차량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고, 세 남자의 아내는 졸지에 남편을 잃는다. 세 남자 중 리더였던 해리 롤린스의 아내 돌리는 남편이 죽을 때를 대비해 남긴 메시지를 읽는다. "사랑하는 달, 대여 금고 때문에 함께 은행에 갔던 일 기억나? 이제 그거 다 당신 거야. 열쇠는 리버풀 스트리트 근처 창고 거야. 그 안에 뭐가 있을 텐데, 그걸 없애야 해." 돌리는 메시지를 태우고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해리가 없애라고 한 것을 찾으러 간다. 그것은 그동안 해리가 조직하거나 저지른 범죄들을 기록한 명부였다. 명부의 마지막 장에는 해리를 죽게 한 강도 계획이 쓰여 있었다. 돌리는 사랑하는 남자의 목숨을 앗아간 계획을 스스로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혼자선 그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돌리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을 두 여자를 부른다. 강도단의 일원이었던 조 파이렐리의 아내 린다와 테리 밀러의 아내 셜리다. 돌리가 애용하는 고급 스파에서 만난 세 사람. 돌리는 린다와 셜리에게 남편들이 이루지 못한 강도 계획을 완성하자고 제안한다. 안 그래도 남편을 잃고 생계를 해결할 길이 막막했던 린다와 셜리는 돌리의 계획에 동참하지만,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세 사람이 생전 해본 적 없는 강도를 하자니 힘에 부친다. 이에 막강한 힘이 돼줄 네 번째 멤버를 찾는 한편, 남편들이 죽게 내버려 두고 도망간 네 번째 남자의 존재를 알고 그를 찾기 시작한다.


(비록 나쁜 일이기는 해도) 남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일을 여자들이 해내는 모습,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자들은 남편들이 죽기 전까지 자신들은 약하고 무력한 여자라고, 남자 뒤에 숨어지내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들이 죽고 생계를 위해 범죄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범죄를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자신들조차 몰랐던 힘과 능력을 깨닫고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는다. 나아가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했던 남자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흉악했는지를 알게 된다(그동안 일부러 모른 척한 건 아니었을까?).


돌리, 린다, 셜리, 벨라 각각이 마냥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점도 좋다. 기존 소설들이 여자를 성녀 아니면 창녀로 묘사했다면, 이 소설은 성스러우리만치 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욕망 덩어리인 것만도 아닌 보통의 여자들을 보여준다. 왜 그동안 이 멋진 여성 작가의, 멋진 여성 소설을 몰랐을까. 2018년 <노예 12년>을 만든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출연진이 무려 미셸 로드리게즈, 엘리자베스 데비키, 비올라 데이비스, 콜린 파렐, 리암 니슨 등등이다. 다가오는 주말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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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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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쓴 지 올해로 10년째다. 대학교 2학년 때 생활도서관이라는 대학 내 자치기구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제법 많은 책들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뭐라도 쓰고 싶어졌고, 그렇게 쓴 글을 누구라도 읽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책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리뷰라고 해도 처음에는 책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이런 감상이 전부였다. 책이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안 좋았다면 무엇이 안 좋았는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안 썼다. 아니,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다. 그걸 알아보고 적확한 문장으로 풀어낼 깜냥이 부족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쓴 리뷰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이렇게 충실하고 근사한 리뷰를 오랫동안 꾸준히 써온 프로 리뷰어인 저자도 글을 쓰기 전에는 싫고 괴롭고, 글을 쓸 때는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며 쓴다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어릴 때 천재성을 발휘한 예술가나 학자들보다는 나이 들어 뒤늦게 꽃을 피운 예술가나 학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데 나도 그렇다. 어릴 때는 모차르트처럼 성인이 되기 이전에 주목받은 천재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박완서나 박경리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 데뷔해 죽기 직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사노 요코도 그렇다. 사노 요코도 무사시노 미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그림으로 돈을 벌어 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는 이들에게 글과 그림이 도달해야 할 예술이나 취미로 하는 유희가 아니라 경제 활동을 위한 수단,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천재를 꿈꾸던 어린이 상태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게 제1목표인 때묻은 어른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록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한 때묻은 어른이 되었을지라도 할 말은 하자는 저자의 주장에도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보고 '불편했다기보다 약간 씁쓸했던 장면'이 딱 하나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시를 쓰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저녁 산책을 하다가 양아치스러운 십 대들을 마주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저자는 패터슨이 아무 거리낌 없이 십 대들에게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 없이 각자 갈 길 갈 수 있었던 것은, 패터슨이 '190센티미터 가까운 키에 떡 벌어진 어깨에 해병대 출신인 유럽계 인종 남자'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패터슨이 여자였다면, 남자라도 소수 인종이거나 왜소했다면 해당 장면의 인상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떠올릴 때마다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 성폭행이나 학교 폭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의 행실 운운하는 사람들이 꼭 있는 것도 불편하다.


프로불편러가 열 명이 모이고 백 명이 모이면 세상에 없는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도 믿는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다. 이 영화는 기존 영화들이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 묘사하던 관례를 완전히 무시한다. 착하고 온순하지도 않고 통상적인 미녀도 아니고 남성의 욕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여성 주인공 '일라이자'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얼마나 여성을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여성이고, 가난하고, 장애로 말을 못 하는 일라이자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괴생명체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묘사했던 '사랑'이 얼마나 주류 중심적이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떤 영화가 기존의 통념이나 관례를 답습하는 방식으로 게으르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아니면 다른 영화들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거나 일부러 무시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성실하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제대로 보게 해준다. '다시 보게(re-view)' 해준다.


그동안 나는 리뷰를 쓰는 데에만 급급해 정작 독자가 리뷰의 대상을 '다시 보게' 만들지는 못했다. 독자가 놓칠 만한 점을 찾아내거나 불편했던 점을 용감하게 지적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을까. '광대함'은 없고 '게으름'만 있는 지금의 나로선 힘들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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