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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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흑역사'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순위를 매겼던 일, 중학교 때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팬픽을 썼던 일, 고등학교 때 생애 처음으로 미팅에 나가 남학생들 앞에서 록을 불러젖혔던 일 등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대체 내가 왜 그랬나 싶은 일들. 


<문학소녀>의 저자 김용언은 흑역사란 말로 운을 뗀다. 한때는 책 좀 읽는다는 문학소녀들의 우상이었지만 이제 와선 '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는 전혜린. 과연 그는 찬사와 열광의 대상인가, 아니면 비웃음과 비난의 대상인가. 애초에 전혜린은 왜 자신의 내면과 세상을 관찰한 내용을 말하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주로 남성 작가와 평론가에 의해 평가받고 단정 지어지는 '객체'로서 자리매김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전혜린의 생애와 작품 세계, 한국 문단 안팎에서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의 지위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논의를 펼친다. 


전혜린은 어떤 인물인가. 1934년생인 전혜린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학업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랑수아즈 사강, 루이제 린저 등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이후 귀국해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만으로 서른한 살의 나이에 자살했다. 이렇게만 보면 험난한 시대에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엘리트, 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수재로만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전혜린이 '그 시대에' 책을 읽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전봉덕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봉덕은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의 최고 엘리트이자 경찰 관료로서 고위직에 오른 뼛속 깊은 친일파다. 해방 후에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뒤를 봐주었으며,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도 깊이 관여했다. 전혜린의 글 속에는 이런 아버지에 대한 비판은 물론 일말의 아쉬움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신은 예술가의 길을 택해 가난하게 사는데 아버지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정도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평생 자기 작품을 가지길 소원했지만 수필만 남기고 소설을 쓰지 않은 것도 전혜린에 대한 평가가 박한 이유다.


하지만 왜 전혜린만 유독 이런 박한 평가를 받아야 할까.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에 협력했던 문인, 독재 정권 치하에서 권력 앞에 무릎 꿇은 문인은 무수히 많다. 수필만 남기고도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은 문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많고, 결코 수필이 소설에 비해 문학성이 떨어지는 장르인 것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비단 전혜린만이 능력과 성취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문단에 여성 작가가 등장한 것은 1910년대이다. 통상 '1세대 신여성' 또는 '제1기생 여류 문사'로 불리는 이들은 '여성', '여류'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작가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여성으로서 분류되고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작품이 아니라 사생활, 주로 남녀 관계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결국 하나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34년생인 전혜린이 활동한 시기에도 한국 문단의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여성 작가들은 감성적인 글을 쓰면 '여성적이다'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감성적이지 않은 글을 쓰면 '여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박용숙이라는 작가는 군인을 소재로 한 전쟁소설을 썼다가 문단으로부터 "여성의 지나친 섬세 감각은 섬세하기 때문에 오히려 리얼리티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박용숙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진 남성 작가였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전혜린은 분명 좋게만 평가할 수 없는 작가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환경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엄혹한 사회를 직시하지 않았으며, 소설을 남기길 갈망했지만 단편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과오를 저지른 남성 작가들에 비해 전혜린은 더욱 박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압록강은 흐른다>, <데미안> 등을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하고 빼어난 수필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공(功) 조차 이제는 흐려지고 있다. 


과연 전혜린은 한국 문학의 흑역사인가, 두고두고 재평가되어야 할 역사인가.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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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7-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혜린 부친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과연
그녀에 대한 흑역사가 존재하나 싶네요.

그녀 자체가 흑역사의 소산이라는 느낌.

오늘 프레시안에서 읽은 모리사키 가즈에
라는 인물과 상당히 대조가 되는 캐릭터
인 것 같습니다.


키치 2017-07-19 17:24   좋아요 0 | URL
부친이 빼도박도 못할 친일파인 데다가
전혜린 자신도 그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이 별로 없어서
전혜린을 좋아했던 독자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전혜린을 몰랐던 저조차도 충격을 많이 받았을 정도이고요...

모리사키 가즈에, 어떤 인물인지 꼭 알아보고 싶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긴 글 읽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sprenown 2017-07-2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벌위주의 우리사회(서울법대,독일유학,교수라는 학력과 경력)와 남성들이 주도하는 우리문단의 분위기 때문에 주목받았으며 이를 이용한 출판사의 상업적 마케팅이 맞아 떨어진 결과가 아닐까요?

키치 2017-07-25 15: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전혜린이 당시에는 드물었던 고학력, 유학파 여성이라는 점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고 분석합니다. 아울러 작품이 아니라 학벌, 직업, 남녀 문제 같은 작품 외적인 사항 때문에 평가받는 것은 전혜린을 포함한 여성 작가들 전반이 경험하는 차별이라는 점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