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외모를 가꾸고, 내면을 채우고, 소개를 받고, 새로운 곳을 찾아 다녀도 운명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책도 비슷하다. 좋은 책을 읽고 싶어서 인터넷서점을 들락날락 하고, 이웃 블로거의 추천을 받고, 책 관련 팟캐스트를 찾아듣고, 대형서점을 찾아 다녀도 '인생의 책'을 만나기란 어렵다. 세상에 좋은 책이 별로 없는 걸까, 내가 보는 눈이 없는 걸까. 나보다 먼저 인생의 책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책을 '발견'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애서가로 유명한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었다.




박웅현이 2011년에 진행한 강독회의 강연록을 엮은 이 책에는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등 장르와 국적, 시대를 불문하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나온다. 여덟 번의 강의를 통해 소개된 작가만 총 18명, 책은 42권에 이른다. 인생의 책을 벌써 이만큼 만난 것도 대단하지만, 이만큼의 작가와 책을 추려내기 위해 몇십 배, 몇백 배의 책을 읽었을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니 머리가 숙여진다. 저자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 라고 말했지만, 많이 읽지 않으면 어떤 책이 좋은지,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지 알 수 없다.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많이 읽을 것. 단,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지는 말 것. 이는 연애 경험이 많을 수록 자신의 이상형과 연애 패턴을 알게 되어 좋은 사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마구잡이로 만나다보면 진짜 내 사랑을 못 알아보거나 알아보고도 놓칠 수 있는 것과 같다.




더 놀라운 건 저자가 '다독'하는 동시에 '정독'하고 '숙독'하는 점이다. 


_ 한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는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여기 제가 써놓은 것들을 프린트해왔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강의의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여러분이 제게 '울림'을 준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저는 광고하는 사람이니까요. (웃음) (p.14)




한 번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 읽는 것도 대단한데 문장 한 줄 한 줄을 눌러 읽고, 줄을 긋고, 메모하고, 따로 옮겨쓰기까지 한다니 굉장하다. 똑같은 책을 읽고도 저자만큼 느끼고 깨닫지 못한 건 문장을 입에 들어가는 대로 삼키기만 했지, 저자처럼 천천히 꼭꼭 씹고 음미하지 않은 까닭일까. 저자가 김훈의 글을 읽고 김소월의 <산유화>라는 시를 다시 보게 되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피카소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은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김훈, 밀란 쿤데라 같은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고 작품을 더 꼭꼭 씹어 먹으리라 결심했다. 아, 내가 그토록 찾아다닌 '인생의 책'은 이미 읽은 책들 중에 있었구나. 혹시 사랑도 그럴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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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같은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책을 읽으려면 집중력과 인내심이 많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

키치 2015-06-20 16: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보다 쉽고 재미있는 읽을 거리, 볼 거리가 많아졌죠... ^^

간서치 2015-06-2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나서 부터 필사 방식이 아니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몇번을 계속 반복해서 꼭꼭 씹어 내책을 만든다는 것도 어렵고요.. ㅜㅜ

키치 2015-06-20 16:4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쉽고 재미있는 게 엄청 많은데
일부러 어렵고 불편한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는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죠.
그래서 저자의 책 읽기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