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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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인기는 엄청났지만, 솔직히 나는 그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 이상의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랬던 내가 지난해 <베어타운>을 읽고 프레드릭 배크만을 다시 보게 되었고, <베어타운>의 후속편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프레드릭 배크만에 홀딱 반했다. 보통 작가가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면 전작을 뛰어넘는 신작을 선보이기 힘들어지는 법인데, 어떻게 프레드릭 배크만은 전작보다 훌륭한 신작을 계속해서 선보일까. 그의 멈추지 않는 성장이 놀랍다.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의 결말 직후 시점에서 시작된다. 아이스하키를 제외하면 자랑거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쇠락한 소도시 베어타운. 청소년 아이스하키 팀이 극적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하며 베어 타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우승을 앞두고 하키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인 케빈이 하키팀 감독의 딸 마야를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을 일대에 파란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시합 직전 케빈을 팀에서 쫓아낸 감독을 비난하고, 성폭행 피해자인 마야를 가리켜 '걸레', '창녀'라고 욕한다.

<베어타운>이 사건의 발생과 진행을 그린다면, <우리와 당신들> 사건의 심화와 증폭을 그린다. 마야의 아버지이자 아이스하키 팀의 단장인 페테르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쫓겨나 실업자 신세가 된다. 마야는 학교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 아나와 함께 섬으로 떠난다. 아이스하키 팀 선수들 대다수가 베어타운 팀의 라이벌인 헤드 팀으로 이적한다. 케빈의 친구 벤이는 헤드 팀으로 이적하지도 않고 베어타운 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은 채 방황한다. 이 와중에 또 한 사람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마을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6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읽어내릴 수 있었던 건, 프레데릭 배크만의 서술과 묘사가 훌륭해서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그린 베어타운이라는 한 커뮤니티의 모습이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과 비슷해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쉽게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입에 올리지만, 현실에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판가름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하다. 가해자를 옹호하기 위해선 눈 닫고 입 막으면 그만이지만, 피해자를 돕기 위해선 제 팔이나 다리 한 쪽이라도 잘라야 한다. 마야처럼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쉽게 무시되고 묵살되는 이유다.

이 소설에는 여느 남성 작가의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여성 캐릭터도 다수 등장한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예요."라는 말로 벤이에게 용기를 준 마야, 위기에 빠진 친구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아나, 하키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과 맞서 싸우는 신임 하키팀 감독 샤켈, 교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녀들에게 호신용 무술을 가르치는 교사 예아네테, 남동생 벤이를 강하게 키우면서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누나들,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라모나 할머니 등이다. 소수자, 가난한 자, 낮은 곳에 있는 자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가 다음엔 어떤 소설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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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08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분량이 어마 무시하군요...

620쪽이라, 전작도 읽어서 이번 작품은
또 어떨 지 기대가 되네요.

키치 2019-02-12 19:50   좋아요 0 | URL
전작도 분량이 어마어마한데 이 책까지 쓰다니 대단하죠 ^^

han22598 2019-02-1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베라는 남자 솔직히 중간에 읽다가 관뒀는데 ㅎㅎㅎ 요거 한번 읽어봐야겟네요^^

키치 2019-02-12 19:52   좋아요 0 | URL
저도 <오베라는 남자>는 그냥 그랬는데 최근작들은 정말 좋아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