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ian (Paperback) - 『데미안』영문판
헤르만 헤세 지음 / HarperPerennial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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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로 하여금 데미안을 읽게 했는지 정확히 모르나, 출판사의 마케팅이나 온라인 서점의 과도한 홍보 등에 빚이 있는 듯하다. 가끔은 귀가 얇은 것도 뜻하지 않은 행운을 던져 주는구나. 똑같은 책이라도 언제 어떤 심정으로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을 시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 데미안을 내가 예전에 읽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새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린 학창 시절에 한글 버전으로 읽었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나의 고통스런 부분은, 읽는 내내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에 감동하고 또 감동했는데 리뷰를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얇은 분량이나 결코 쉽지 않은 책이고,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고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철학을 배제하고 읽으면 쉬울 수도 있는 책이다. 내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나 쉽게 정리되지 않는 책이라 책 앞 뒤 서평까지 모두 읽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인 1916년에 시작해서 대전이 끝난 1919년에 출간된 책이고 반전운동을 했던 헤세의 작품이지만 과도한 상징적 표현으로 인해 예민한 시대적 문제 즉, 반전에 관한 내용이 묻혔다는 비난도 있다는걸 이번에 알았다. 반전활동 캠페인을 벌인 평화주의자 Romain Rolland 작가와의 관계가 Demian에 끼친 영향, 책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꿈이야기는 헤세가 Carl Jung의 제자와 시작했던 정신분석 연구의 산실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위 배경을 배제해도 한 가지 선명한 그림은 보인다. 헤세는 서문에서, 자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추구하는 사람(seeker)이라고 시작한다. 무엇을 추구하는가?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히 철저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서문을 지나 첫 장을 열기 전에도 왜 그리 진실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짜 나로 사는 것이 그리 힘든가로 시작한다. 책 전반에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 유일한 삶의 소명이라고 몇 번씩 반복하고 있다.

왜 그렇게 우리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까? Sinclair가 대학생이 되어 Demian과 나눴던 군중심리/ 무리 본능(herd instinct) 때문이 아닐까? 남들 처럼 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러나 군중 속에 있다는 것은 기존의 관습을 인정해야 하기에 자유와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며 진정한 교감이 어렵다.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만 두려워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불안해 한다. 더불어 사는 삶과 순응하며 같이 가는 삶을 얼마나 많이 강조하는가?

너무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Sinclair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빛과 어둠의 두 영역사이에서 고뇌했다.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의도치 않게 Franz Kromer의 폭력에 눌려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Sinclair에게 구세주로 Demian이 나타났고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랐으나 예민하고 조숙한 청년 Sinclair에게는 외로움과 내적 갈등이 너무나 익숙했고 혼자있는 시간을 더 편안하게 느꼈다. 그 스스로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 빗장을 걸고자 자처했으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아니던가? 어쩌면 거의 선천적 심약한 우울증을 앓던 Sinclair라 할지라도 그가 걸어가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를 아름다운 청년으로 살아가게 하는 양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연 Demian, Alfons Beck(반 친구), Pictorius(오르간 연주가), Knauer(그를 따랐던 반 친구), Frau Eva(데니안의 엄마) 등. 물론 철학자 니체, 그림, 음악도 그의 자양분이었다.

Demian의 각 챕터 제목도 반드시 사람 이름은 아니지만 요지는 누가 Sinclair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하며 가치관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 사색적이고 우울하던 지적인 청년 Sinclair가 Demian을 만나 자신 본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 그 이상의 깊이와 무게가 있는데 그걸 여기에 다 담아내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그저 Demian을 만난 Sinclair가 부러울 뿐이다. 나의 데미안, 나만의 데미안을 어른은 가질 수 없는가? 누구의 데미안이 되어줄 수도 없는데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은 어디서 데미안을 찾아야 하는가? 이런 의존적 사고로는 진실한 나로 원래의 내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늘 가면을 쓰고, 군중에 묻혀 그저 살 수밖에 없다고 책 속의 데미안이 걸어 나와 비난할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아니 나는 타인의 해석과 판단에 길들어져 있다. 말이 아닌 내 머리 속 생각조차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염두해 두는 나에게 놀란다.

미래 언젠가 다시 Demian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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