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quest of Happiness (Paperback) - 『행복의 정복』원서
Russell, Bertrand / Liveright Publishing Corporation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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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왕이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에 대한 패러디가 많다. 나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고전은 언제나 옳다’라고. 명불허전이란 수식어도 꼭 들어맞지 않나 생각한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거장의 책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행복의 정복’을 읽으며 행복했다는 나의 표현이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책에서 기쁨을 얻었다는 것인가?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읽음이 항상 기쁠 수 없고 고통스럽게 끝내는 경우도 있으나, 이 책은 들기 시작하면서 내내 즐거웠고 아껴 읽었다. 예전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Alain De Botton)’를 읽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운전 중 대기 신호일 때도 짧게 짧게 읽곤 했다. 어쩌면 다소 우울한 순간을 지나던 나의 심리 상태와 맞닿아서 그 답을 이 책에서 구하려 몰두했는지, 아님 내 슬픔을 잘 읽어내고 가려움을 적절히 긁어주는 수사력에 매료되었는지도. 독서도 때와 상황의 심리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감동의 또 다른 이유은 영어 표현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재능을 선물 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의 원인과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식과 혼란의 상태에 무질서한 상태로 잠들어 있는 무지한 언어들을 잘 건져내어 이렇게 세련되고 정제된 상태로 포장하여 잘 배열할 수 있다니 작가 본인뿐 아니라 읽는 독자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들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책이다.

나는 앞부분 불행의 원인 파트가 더 좋았다. 작가도 행복의 원인보다 불행의 원인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사랑만큼 추상적인 어쩌면 평생 찾아도 손에 잡히지 않을 행복의 실체는 그만큼 파악하기 힘든거 아닐까? 아니면 불행의 원인이 이 세상을 더 많이 잠식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행복의 원인에 덜 감동했던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서술된 불행의 원인에 행복의 비결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했으니 그것을 피하면 행복한거 아닌가? 불행과 행복의 원인이 외적으로 보면 다른 단어로 서술되어 있으나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요지는 같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양날의 검처럼 불행의 원인은 곧 행복의 출처가 되기도 했다.

불행의 원인 모두 다 감동 그 자체였으나, boredom(지루함)과 envy(시기)부분이 백미였다. 권태를 견디지 못함은 권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만 이런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이고 이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 늘 자극적이고 흥미 본위의 활동을 쫓는 삶의 끝이 무엇인지 알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삶의 유익한 많은 활동은 불가피하게 지루한 요소와 영역을 내포하고 있다. 비교, 경쟁, 피로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Envy(시기심)는 불필요한 겸손을 가진 사람이 더 쉽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표현도 크게 들어 왔다. 겸손은 미덕으로서 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시기심, 억압, 열등의식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책 제목에 conquest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했음을 강조한다. 행복은 신에 의해 저절로 얻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정복해서 얻어야만 하는 성취물인 것이다. 마치 산을 정복하고 나라를 정복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정복하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껍질에 쌓인 자기몰두의 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내 안의 세계에서 자성과 비활동적 삶만을 사는 경우는 죄의식, 나르시즘, 과대망상에 사로잡히는 불행한 삶을 유발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사물에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를 갖고 객관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한가지에 편협하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많은 관심을 돌리며 여러가지 부수적인 것들에도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한다고. 이런 폭넓은 관심은 행복한 시기에 배양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이런 노력은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 책 제목에서 강한 의지와 메세지가 나오듯이 이성적 코드와 확신를 통한 정신훈련이다. 나를 괴롭히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세계에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심어 부정적 사고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mental hygiene(정신 위생)도 여러 번 반복된다. 몸을 깨끗이 하듯 수시로 정신적 위생관리에 힘써야 부정적 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것 중 몇가지가 부족한 것도 행복의 필수 요소라는 표현에 겸허해졌다. 남들처럼 다 갖고 싶었는데 내 삶에 한가지가 빠져있어서 불만족과 불평의 원인이었는데 부족한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다 가짐이 행복의 조건도 아니고 오히려 바이런적 불행(Byronic Unhappiness)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깨달음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나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어 불안했었다. 왜냐하면 책 읽는 순간조차 침해하며 자꾸 새 취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의 충고로 안도하게 되었다. 사실 일중독이었던 내가 책, 환경, calligraphy에 관심을 돌린지도 몇 년 안되었다. 그래서 일중독으로 사는 동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것일까?

마지막에 행복한 삶(to be happy)이란 선하게(to be good) 사는 것이라 했다. 선한 삶, 행복, 유의미한 삶, 이유있는 삶 자체에 자꾸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질문은 언제쯤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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