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글쓰기의 쓸모
김종원 지음 / 서사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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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지은이:  김종원

   :  삶과 글은 둘이 아니다.



작년 9월 중순 부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제 딱 일년이 되었다.

일년 동안 75권 정도 책을 읽었고 그중에서  독후감 69편을 올렸다.  (일주일에  평균 1.4권을 읽고 독후감을 쓴 꼴이 되네.)

애초에 중국에서 한국의 책을 어떻게 구매할 줄도 몰랐던 내가 이제는 알라딘을 통해 책을 주문하고 있다.

게다가 책을 읽고 또 서재에 글을 올릴 정도가 되었다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내 글 뿐만 아니라 친구로 청한 21명의 알라딘 선배님들의 서재 글을 통해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눈여겨 보고 배운 일년 이었다.(지금까지 내가 오프라인에서 만났던  친구들 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다.)

대신에  책에 대한 금전적, 시간적 소비가 많아졌다.

한달에 한번,  DHL  배송되는  책에 대해 아내에게서 이제 그만 좀 주문하라는 잔소리 성화를 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욕 먹더라도 꿋꿋하게 눈치를 보며 구매를 한다.

(중국에서 하는 알라딘 책 주문은 인민폐 1000위안(18만원)을 넘지 않게 주문해야 한다. 금액이 넘으면 반송이 된다고 해서 매번 아슬아슬 하게 금액을 맞춘다. 운비는 대략 한화로 4~5만원이 나온다. )



구매는 보통 10권 좌우로 하는데  읽기는  반도 채 못 읽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 독서 하지 않았던 시기와 비교 하면 일주일에 평균 1권 이상 읽는 것은  결코 느린 속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책 표지를 뜯지 않은 것도 수두룩 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터 나는 여러 책들을 동시 다발로 읽기로 했다.  사무실에 10권 정도 쌓아 두고 조금씩 따로 따로 읽고, 집에서도 전혀 다른 책들을  조금씩 건드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읽다가 재미가 있는 것은 그대로 쭉 읽어 버리고, 흥미를 잃은 책들은 그냥  휴독(休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식으로 장기휴독에 들어간 책도 꽤 된다.

언제 다시 집어들게 될 지 요원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읽게 되겠지'  하며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읽어 내는 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사실 제일 어려운 것은 글쓰기라 생각 된다.

글쓰기는 독서보다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알라딘 서재 선배 이웃님들의 잘 썼다고 생각 되는 글들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공감도 한다. 그걸 보며 나도 어찌 되었든 일주일에 한편은 꼭 쓰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역시 글쓰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글이란 원래 쉽게 써지지 않는게 맞다고 동의 해주는 책이 있다.

사실 오늘 리뷰하는 책<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은 나의 일년간 독서 활동중 '내가 꼽은 최고의 책' 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싶다.

바로 이 책<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은 읽는 내내  나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 그리고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은 작년 11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데만 거의 10개월이 소요가 된 셈인데 이는 나의 일년간의 독서 활동 내내 옆에 끼고 읽은 책이라 보면 된다.

하루에 천천히 몇 페이지만 읽거나 마음에 와닿은 부분을 포스트잇에 한자한자 또박또박 사경(寫經)하는 마음으로 읽고 새겼다.

농밀(濃密)한 글쓰기가 되야 한다는 저자 김종원 작가의 격언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는 내게 큰 지침이 되었다.



김종원 작가는 괴테(1749~1832)가 사용했던 글쓰기 방식을 적용하여 자신만의 글을 써야 함을 강조 한다.

그러한 글쓰기가 되려면  '글 하나에 심장을 이식 한다' 는 마음으로 쓰라고 한다.

글에다가 심장을 이식 시키라니?  글에다 심장을 달아 주라는 말인가?

전혀 생각 지도 못한 발상이다.

어떻게 글을 쓰면 글자 하나하나에 심장을 달아 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또 심장이 파닥파닥 뛰는 글은 도대체 어떤 글인가?

참 멋지다. 글쓰기의 의미가 이처럼 멋있게 느껴지다니?

내가 쓰는 글 한자한자에 심장을 달아 놓는것과 같이  글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글에다 생명을 부여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글쓰는 자들은 자신의 글에서 생명을 창조 하는 것과 같은 보람을 느낀다.

또한 자신이 잉태한 글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쓰면 쓸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게 되리라.

그러니 왜 많은 작가들이 고통속에서도 글을 쓰고, 또 그들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러한 경지까지 이르려면 작가의 경험상으로는 최소한 30년의 시간이 걸리단다.

작가가 말하는 30년이라는 시간은 평범한 일상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의 시간을 뜻하는 것 같다.

일상속에서 글쓰기,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글쓰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성장하는 글쓰기가 되는 과정의 시간의 총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보는 것을 그대로 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고 한다.

화려한 문체나 근사한 주제가 아닌 나의 일상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어야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 이러한 위안을 준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버거운 일은 아니다. 할 수 있다. 쓰다가 쓰다 보면 글에 어느덧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내가 품었던 마음이 글로 흘러나오는 순간, 그것은 단어가 되고 문장을 이루며 비로소 나의 글은 그렇게 써지는 것이란다.

남의 글을 보고 감탄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는  나의 글을 통해 내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을 인식 해야 한다.

내 삶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임을 자각할 때  바로 곧 내 삶이 되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삶과 글은 둘이 아니다.

이렇게 보니 글쓰기는 참나를 찾는 구도(求道)의 여정과 비슷하다.

지난 일년간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준 독서와 글쓰기는 문해력을 높이고 몰입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지금의 바램은 죽을 때 까지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렇게 글은 내게 삶이 되고 나를 변화 시키고 있다.




질문은 오직 생각하고 그걸 글로도 쓸 수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일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 P23

쓰는 일은 곧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중략....
그게 바로 글이 ‘마음을 쓰는 일‘인 이유다. - P35

당신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쓴 글을 굳게 믿어라.
그건 당신이 도움을 주기로 생각한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도 같으니까. - P69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 생각이 넘쳐서 흘러내린 것을 언어로 변환해서 글로 쓴다. .....중략.....
늘 사람을 생각하며 억지로 쓰지 말고 흘러서 넘친 것이 곧 글이 되도록 한다면, 그 글은 세상을 빛낼 수 있을 것이다. - P79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 수 많은 그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비난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모른다는 사실에 아파하라. - P117

가족도 당신의 글은 읽지 않으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쓰고 싶은 글은 다 써라.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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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9-04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힐님,
알라딘 서재 입성 1주년 축하드려요.
아, 중국에 거주하고 계시는군요~~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걸 매번 느끼는데
그래도 읽고 쓰다보면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글이 삶이 된다는 책 제목이 좋네요^^

마힐 2024-09-04 18:58   좋아요 2 | URL
네. 감사 합니다.
어쩌다 보니 중국에서 25년 째 살고 있네요....
네 저도 일주일에 꼭 한편 글을 쓰자고 다짐하고 있지만 쓰기는 정말 쉽지 않네요...
그래도 글이 삶이 되어 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페넬로페님께서 올려 주시는 좋은 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사리뿟따 이야기 법륜 14
냐나뽀나까 지음, 이준승 옮김 / 고요한소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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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사아리 뿟다 이야기

지은이:  냐나뽀니까 스님/ 이준승 옮김

   : 위대했던 제자 사리 붓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위대한 대각 세존이시여!

저는 곧 이 삶에서 풀려납니다.

다시는 오고 감이 없으리니 세존을 우러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레만 지나면 짐 다 벗고 이 몸을 누이게 될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들어주소서! 세존이시여! 허락하소서!

마침내 제가 열반할 때가 되었나이다.

이제 저는 삶의 의지를  놓았습니다.>



사아리 뿟다(번역에 따라서는 '사리 붓다' 라 하기도 하고 '사리불' 또는 '사리자' 로 표기 한다)는 스승이신 부처님을 찾아갔다.

상수(上首)제자인 사리 붓다는 스승 고타마 붓다 보다 먼저 열반에 들기를 청하였다.

"저는 세존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기 까지 무량겁에 걸쳐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아왔습니다. 제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는 만날 일도 스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 두텁던 인연도 다하였습니다. 저는 곧 늙음도 죽음도 없이 평화롭고 복되고  번뇌 없이 안온한 곳, 수만의 부처께서 들어가셨던 그곳, 열반으로 들어 갑니다.

저의 말이나 행동이 세존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있다면, 세존이시여, 용서하소서! 이제 가야 할 시간 입니다. "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은 모든 인연이 다했다는 뜻이다.

인연이 다 했으므로 스승 곁을 떠난 다는 말이 내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승보다 먼저 열반에 들어야 하는 상수제자의 숙명이란 어떤 것인지?

상수제자가 대체 무엇이길래?  왜 제자가  스승보다 먼저 떠나야 한다는 것인가?

거의 동시대 다른 공간이었던 중국에서는 공자의 수제자 안회 또한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또한 상수제자의 숙명 이었을까?

상수제자, 우두머리 제자? 수 많은 제자들중 우두머리 였던 사리 붓다는 어떤 삶을 살았나?

이 책< 사아리 뿟다 이야기>는 부처님 당시 상수제자로 살았던 사리 붓다의 일생을 조명한 책이다.

불교 경전들 속에 등장하는 사리 붓다의 일화를 중심으로 스리랑카 승려인 냐나뽀니까스님이 재구성하여 저술 한 것이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리 불에 대한 일화들을 이 책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각인 시키게 되었다.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 새벽 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후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는 사건을 불교용어로  초전법륜(初轉法輪)’ 이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렸다는 뜻이다.

그 당시 붓다의 첫 제자들은 고타마 시절 함께  고행을 했었던 다섯명의 비구 수행자들 이었다.

초전법륜이후 다섯 제자를 비롯한 수 많은 제자들이 붓다의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사리불은 그들보다 뒤늦게 제자가 되었음에도 그의 친구였던 목건련과 함께 교단의 상수 제자로  호명되어 졌다.


어떻게 사리불과 목건련은 먼저 제자가 된 다섯 비구 같은 장로 비구들을 제치고 우두머리 제자가 될 수 있었을까?

붓다 당시 많은 제자들이 이처럼 의구심을 품었다.

이에 대하여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여래는 어떤 제자도 편애하지 않고 각자 서원대로 성취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안냐 꼰단냐의 서원은 누구보다 먼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 하는 것이었고 결국 그리되었다. 그러나 여러 겁 전 아노마닷시 부처님 때에  사리불과 목건련은 상수 제자가 되고자 원을 세웠다. 이제 그 서원이 성취될 조건이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니 여래는 서원했던 바를 성취토록 한 것이지 편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스승 붓다는 의심을 품은 제자들에게 자신과 사리불 그리고 목건련이 얽힌 전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그들은 과거 500생이 넘는 생애 동안 한 때는 거위, 토끼, 원숭이 코끼리 등의 동물로 살았던 적이 있었고 , 또 한 때는 고행자, ,  성자 등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수 많은 환생을 했다.

<본생경> 에는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550번의 전생에 대한 행적이 남겨져 있다.

오랜 과거생 전 부터 이어져 온 인연으로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길 서원을 세웠던 것이었다.


본래 사리 붓다와 목건련은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유행승 산자야의 제자 였으며 그의 교단을 이끌고 있는 상태였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초전법륜때의 첫 제자 오비구중의 한명인 앗사지의 모습을 보고 단박에 자신이 모셔야 할  참스승이 고타마 붓다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스승이 누군인지를 아는 것은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게 사리붓다와 목건련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어  수행 공동체를  훌륭히 이끌며 교단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 했으니 모든 수행자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사리 붓다는 지혜의 상징으로  목건련은 신통력의 상징으로 붓다를 협시하게 된다.

이는 부처의 법신(法身) 비로자나불 옆의 상수보살인 지혜의 상징인 문수 보살, 실천력의 상징인 보현 보살처럼  본존불을 협시(夾侍:끼고 모시는)하는 면에서 똑같이 짝을 이룬다.



사리 붓다는 우리나라 불자라면 모두 외우는 반야심경에도 등장한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  이는  “사리자여 물질과 마음이 다르지 않고 마음은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나니, 색이 즉 공이요, 공이 즉 색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반야경의 핵심 사상을 260자로 압축한 반야심경에서는 관세음 보살의 깨달은 바를  사리 붓다에게 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관세음 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다. 지혜의 상징인 사리 붓다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 보살에게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참 신묘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는 참다운 지혜는 자비로운 행에서 나온다는 수행의 도리와 일치하는 것이다.

 


열반에 이르기 전, 사리 붓다는 선정을 통해 자신의 친어머니를  자기 외에는 깨닫게 해 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스승보다  먼저 열반에 들기를 그리고 어머니의 은혜를 갚길 청하며 붓다의 허락을 받고 열반할 장소로 떠난다. 그곳은 어머니가 계신 곳이며 자신이 태어난 곳이다.

이는 사리 붓다에게는 태어난 곳이 곧 무여열반 자리 라는 것을 뜻한다.  

사리 붓다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깨달음에 이르게 해준 후 자신의 이번 생의 은혜를 갚았다.

그는 지금까지  과거생으로 부터 이어온 세속의 모든 인연의 불꽃을 완전히 소멸 시켜 버리며  무여열반에 들어갔다.

넓은 지혜, 밝은 지혜, 민첩한 지혜,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가졌던 자, 사리 붓다는 그렇게 떠났다.



책을 읽으며  상수제자의 숙명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지만 그것이 전생의 오랜 인연에 의한 서원이었음에는 의심이 없이 느껴진다.

지금은 불교는 하나의 종교이지만 2600년 전 당시에는 수행 공동체에서 출발 했다.

교조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을 섬기라고 하지 않았다. 그 분이 무여열반에 들때의 유훈은 법을 등불 삼아 의지하고 스스로 자신을 등불 삼아 의지하고 정진 하라고 하셨다.

이는 곧  자신의 불성(佛性)을 믿으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주체적이지 못한 나약한 태도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래서 선()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것 까지도  서슴없이 할() 을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바탕에는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혜를 가져야 한다.

사리 붓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나의 내면이 정화가 되는 것 같다.


사리 붓다. 그는 위대한 제자 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일주일 내내 존경심으로 당신의 머리 위에 꽃의 차양을 받쳐드린 공덕이 있다면 신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도 대범천의 지위도 그 어떤 보답도 아니고 다만 미래에 정득각자의 상수제자가 되기를 서원할 뿐 입니다. - P33

제가 모르는 사이에라도 이 스님을 편치 않게 했다면 이 분도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P74

왜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성공하며 어떤 사람은 기대한 것 보다 더 발전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비구들을 위한 보시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 P137

우리를 존재에 묶어두는 족쇄는 감각도 감각대상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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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 - 5년 뒤 나를 바꾸는 퓨처 셀프의 비밀
할 허시필드 지음, 정윤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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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

지은이:  할 허시필드정윤미 옮김

   :  지금 이 순간나를 찾는 시간여행

 



대상 포진에 걸렸다.

2주전,  아침에 일어나면서  왼쪽 팔뚝신경에서 미세한  꿈틀거림이  자꾸 거슬렸다.

급기야 토요일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손바닥팔꿉치로 수포가 올라왔다.

전에 부터 다녔던 병원 피부과 의사는 대상 포진이라고 푹 쉬라고 한다.

어릴 때 수두를 겪었다면  수두균이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몸의 면역력이 약해 지면 다시 올라 오는 것이라고 했다

면역력 약화라...  결국 노화 현상이란 뜻 이겠지.  

치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푹 쉬는 것 밖에 없단다

잘 먹고잘 싸고잘 자란다그래서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올 여름 휴가는 대상 포진과 함께 보내란 뜻인가 보다

그래 뭐 좋다일주일 동안 쉬면서 나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자구.

 


때마침 읽고 있는   <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라는 미래 자아(future self) 에 관한 책이 참고가 되었다

책의 저자 '할 허시필드'  가  18세기 철학자이자 신부였던  '조지프 버틀러(1692~1752)'   "만약 오늘의 자아가 내일의 자아와 동일하지 않다면오늘 당신은 내일 자신에게 닥칠 일을 타인에게 닥칠 일처럼 무관심하게 생각할 것"  이라고 쓴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미래 자아 연구를 시작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일의  자아란 곧 '미래의 나를 뜻한다.

이 책의 주제는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에 대해 유대감을 갖고 동일시 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됨을 말하고 있다.

 


먼저 현재의 나’, ‘미래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 , 과연  ‘모두 동일한 나 일까?’ 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설전을 벌였던 일화를 들어 묻는다

아테네를 세운 영웅 테세우스는 자신의 배를 타고 신화속에서 수 많은 모험을 겪는다.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배는 파손되어 조금씩  수리를 하거나 부품을 교체하며 항해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배의 모든 부분은 원래 테세우스가 타고 다니던 배와는 전혀 다른 부품으로 교체가 되어져 버렸다

이때 고쳐진  ‘테세우스의 배는 원래의 배와 다르므로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릴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 나 미래의 나와 분명히 다른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와 같다면 '미래의 나도 같아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러한 흥미로운 질문에 대해 저자는 '미래의 나를 알기 위해  '현재의 나'가 떠나는 시간 여행을 추천한다.

 


시간여행’ 하면 나에게는 두 편의 시간여행 소재의 영화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먼저  <백 투더 퓨처>  어렸을 때 본 이 영화는 당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이클 J폭스가 열연했던 주인공 '마티'가 부모님 시대의 과거로 가서 벌이는 소동들 중학교 축제 무대에서  'Johnny B. Goode' 를 부르며 전자 기타를 멋들어 지게 치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최고의 명장면이다. (당시엔  폭스가 오두방정 떠는 걸로 생각했었지만...)

 


영화 속에서 마티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분주하게 오고 가며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며 마침내  자신을 비롯한 자신 가문의  운명까지 바꾸고야 만다

그 당시 내가 생각 했던  시간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과거를 바로 잡고 현재를 수정하여 미래에는 행복해지는 희망을 꿈꾸게 해주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에 본  유진위 감독주성치 주연의 <서유기 선리기연(仙履奇緣)>   은 시간여행의 소재를 활용하여  <백 투더 퓨처를 능가하는  깨달음에  가까운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원래  어릴 때 부터 홍콩 무협영화는 좋아했지만 주성치식 코미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 일부러 보질 않았었다그런데  40이 훨씬 넘어 우연치 않게 본 그의 서유기를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렀다. (너무 웃겨서 흘리게 되는 그런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라니... )

중년의 나이에  이런 B급영화를 보면서 우는 나 자신에 대해 나도 황당했다


 

 

 

영화속에서  손오공의 전생이었던 지존보는 자신이 진짜 손오공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자신을 믿지 않듯이...)

지존보는 자신이 사랑했던 백정정을 살리고자  '월광보합이라는 불교식 타임머신을 사용하여 과거로 가서 자하선인을 만나게 된다

지존보는 자하선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오욕칠정을 버린 후, 비로소 손오공으로  각성을 하게 된다

배우들의  유치한 장난 같은 장면을 생각없이  보다가 어느 순간 사랑이란 감정과 후회에 대한 고찰을 난데없이 깨달음으로 승화 시켜버린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OST ‘일생소애(一生所爱일생의 사랑)’의 여운은 끝이 없다

분명 B급 감성으로 시작했는데  A급 연기자들의  S 급 철학으로 마무리 된다

그래서 나에겐 시간 여행은 재미있는 소재를 넘어선 그 이상의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만일 진짜로 시간여행 하게 된다면 반드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야 한다

<백 투더 퓨처 >에서는 시속 88마일(140킬로미터)  속력으로 달리는 드로리안’ 으로 시간 여행이 가능했고서유기에선 월광보합을 열어 반야바라밀(지혜로 피안으로 도달한다)’ 을 외쳐야 시간을 초월하여 이동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 미래의 나를 만난 후 오늘이 달라졌다저자가 제안하는 시간여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는 시간여행이 아닌 정신적인 시간여행 (mental time travel) 이다.

현재 나의 마음속 상상으로 미래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말한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나의 미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흥미롭다.

책의 핵심은 미래의 나를 만나는 시간여행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바뀐 자신을 보려는 것이 아닌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나 다운 나’ 가 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의 나가 아직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여행 안내서라 보면 될 듯 하다.  


 

한편, 대상포진은 점점 팔 위로 번져갔다밤에는 통증 때문에 자다가 자주 깨어났다.

이때 드는 생각지금의 나는 이렇게 아픈데 20년 뒤의 나의 미래는 어떨까?

그때쯤 이면  노화때문에 온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을 텐데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20년 뒤의 나'와  '지금의 나' 모두에게 측은해 진다.

왜 하필이면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가야 되는 거지차라리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오면 안되는 건가?  과연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온 밤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일어나자 마자 드는 한 생각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글쎄...

나는 불행한가? 나는 지금 생활이 불만족 스러운가

아니그렇진 않은 것 같다몸은 비록 아프지만 견딜 만 하다.

우선 내 가족이 건강하게 잘 있고부모님과 비록 많이 떨어져 살지만 다 건강하시다.

또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과도 괜찮게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스스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시간이야 말로 정말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굳이 20년 뒤의 나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지금  내가 행복하다면 미래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지금 행복을 지켜가면서 이대로 쭉 이어만 진다면

지금의 행복함을 이어가는 것그렇게 되면  미래의 나는 자연히 행복해 지는 건데...

 


금강경에서는 과거심 불가득미래심 불가득현재심 불가득 이라고 했다

과거 미래 현재의 마음도 모두 현재의 마음으로 공하게 가득차 있다고 큰스님께서는 뜻으로 풀이 하셨다.

결국 과거 미래 현재 모두 공하다는 것이다

공하다는 것은 시간과 마음은 고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현재 내가 행복한 마음이라면 과거도미래도 행복한 것이다.

사실 모든 시간여행은 현실 불만족과 강한 후회의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이러한 시간여행의 문제점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는데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잡아야 할 과거가 생기고 바꿔야 할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된다.

그게 사실 공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1초 전은 과거요, 1초 후는 미래다.

먼 과거나 먼 미래도 지금 이 순간,1초 전,후에 있다.

공함을 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자리에서 내 마음을 먼저 세워야 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 시간 여행의 출발은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이루어 진다.

   

 

                                                                  

<예전에 진정한 사랑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소..

그걸 잃고 나서야 난 크게 후회를 했소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후회였소.

만일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당신께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 

만일 다시 기한을 정한다면 일 만년으로 하겠소>    서유기 선리기연 대사 중

미래의 자아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낄수록 큰 보상을 얻기 위해 기꺼이 기다리는 태도를 보였다... 중략...
미래 자아에 대한 유대감이 강할수록 저축을 많이 했고 전반적인 재정 상태가 양호했다. - P84

우리는 종종 현재 자아에 지나치게 집중하려 든다. 지금 이 순간의 배의 닻처럼 우리를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미래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 P105

현재의 자아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미래의 자아도 하기 싫을 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저는 미래의 자아에 공감하려고 노력해요. 미래의 자아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해버리는 거죠. - P134

미래의 나를 시각화하면 저축, 윤리적 행동, 건강 관리 등 여러 가지 행동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 P200

현재와 미래의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히려면 ‘미래를 더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미래의 자아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나이 변환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미래의 자아와 편지를 주고받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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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에디터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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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안톤 체호프의 에로티시즘 단편선)

지은이:  안톤 체호프/ 이항재 옮김

제   목:   성성연애(聖性戀愛) , 체호프식의 사랑 




마힐: 안녕하세요. 안톤 체호프(1860~1904) 선생님. 저는 마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선생님을 모시고 사랑과 욕망이란 주제를 가지고 가상 인터뷰를 진행 하려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신가요? 



체호프: 쁘리 벳(안녕)!  괜찮아요. 그런데 주제가 사랑과 욕망이라고요?



마힐: 네,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이란 책이 있는데요. 

선생님 생전에 쓰신 사랑과 욕망에 관련된 소재의 단편들을 작품의 시간순으로 따로 모아 출판한 책이에요.  

책 표지만 보면 19금(禁) 같았는데.…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제가 상상했던 그런 것은 전혀 없더라구요. 



체호프: 하하. 참나. 뭘 상상 했나요?  초면에 미안 한데... 순진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하여간 남자들이란... 욕망,에로티시즘이란 말이 들어 가면 상상하길  좋아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 같네요.



마힐:  음....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번에  이 책<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의 자극적인 표지와 선전에  낚였다고 생각 했습니다. 



체호프: 아니죠.  사랑과 욕망의 감정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중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감정이 아닐까요?



마힐: 네. 그렇긴 한데요. 사랑과 욕망 하면은 사실상 전혀 다른 이미지가 떠 올라요. 

사랑은 성(聖) 스러운 이미지가 있고요. 욕망은 성(性) 적인 이미지가 연상 되거든요. 

성(聖)과 성(性)의 차이는  구분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사실 애매 하기도 하는데요. 

선생님은 그 둘의 관계를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체호프:  사실 사랑의 범위는 광범위 하죠. 그래서 나는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지 않아요.

욕망도 사랑의 일부라 생각 하거든요. 

나는 말이죠.  사랑은 순수해서 좋고 욕망은 부정(不貞)이나 불륜을 나타내는 거라고 해서  나쁘다는 구분을 가지고  작품을  써내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이런건  순수한 사랑이고, 저런건 불륜이야 하는 식의 분별을  나누고 싶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도록 유도 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하여>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작품 읽었죠? 

읽으면서  작품속의 사랑이 비도덕적이라고 해서 비판하는 마음이 들었나요?



마힐: 음…  솔직히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두 작품속의 주인공인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 '구루프' 와 '안나 세르게예브리나' 의 사랑은 확실히 불륜이죠.

그런데  작품속에서 그 당사자들 서로는 아주 절절해요. 

알료힌과 안나가 기차에서 헤어지는 장면이나 구루프가 안나를 못 잊어서 안나를 찾아가는 장면은 연인들의 찐 사랑이 맞죠.  

그래서 그네들의 사랑은 비정상적인 연애 이긴 한데  뭔가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그들이   '썸' 을 타는게 이해가 되더라구요. 

아마 그래서 위의 두 작품들을 선생님의  대표적 단편으로  손꼽는게 아닐까요?



체호프: 내가 방금 사랑과  욕망을 구분 하지 않는다고 했죠?



마힐: 네. 아까 욕망도 사랑의 일부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체호프: 내 작품속의 사랑은 인간이 본래 가진  천성이라고 보는 거죠.

사랑은 아름다워야 하고 욕망은 추한 것이라는 관념은 사회 제도가 만들어 낸 거 잖아요?

제 작품 <불행> 에서 '소피야' 가 변호사 ‘일리인’의 사랑 고백에 흔들리는 가운데 처음에는 가정의 '기초' 를 지키려고 하죠. 

소피아는 가정이 파탄나는 것을 막으려고 이성으로 막 붙들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성적인 판단보다 더 강한 끌림은 막을 수가 없었죠.

현실적으로  보면  머리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본능이 이성 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 하지 않았나요?




마힐: 네  그렇긴 한데...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본능이 이성을 압도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지 아닐까요?




체호프: 아니죠. 이성이 본능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인 설정일 뿐이죠. 

개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욕망의 힘이 압도할 경우 이성은 아무 맥도 못 써요.

제 작품속의 등장 하는 사람들의 일탈이나 부정한 관계는 사회적으로 불륜으로 취급 당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관계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잖아요?  

순수하지 않은 부분을  애써 외면 하지 말라는 거죠. 

그것도 삶의 일부분이고 사랑의 일부분이라고 나는 보는 거죠.

비록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당사자들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 할 꺼예요.

내가 살았던 삶이 그랬으니까요. 



마힐: 그럼 작품속의 불륜..앗. 아니 사랑들은 선생님  본인의 사랑관이 반영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체호프:  네, 잠깐 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나는  원래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위치한 항구 도시 '타간로그' 의  농노 집안에서 태어 났죠. 

어떻게 해서든 농노 신분을 벗어나고자 할아버지 때 부터 노력 했데요. 

그러다 우리 아버지때에 이르러서야 잡화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죠.

그때 우리집 형제가 7남매 예요. 내 위로 형 2명, 아래로 남동생 2명, 여동생 2명이 있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결국 빚만 잔뜩 지고 파산하고 모스크바로 혼자 야밤도주를 해버리죠.

술만 먹으면 가족들에게 손찌검을 해댔으니 오히려 처음엔 잘 됐다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머니 혼자서 우리 7남매를 돌봐야 했는데  끝내 감당이 안되는 거죠.

이번엔 나만 혼자 남겨두고 결국 온 식구가 전부 아버지가 있는 모스크바로 가버려요.




마힐: 아니, 그럼  혼자 집에 남게 된 거예요?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요?



체호프:  그때가 16살 이었어요. 사실 모스크바에 가면 우린 빈민촌에 살아야 했어요. 

그래서 나는 고향에  남아 공부를 학업을 마치기로 한 거죠.  

솔직히 나 한테는 그게 더 좋았거든요.  가정 교사 아르바이트로  와  공부를 병행했죠. 

결국 난  모스크바 의과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마힐: 혼자 고학(苦學)을 했었군요. 대단하시네요.  

이 시기가 선생님에게는 고난의 시기였지만 반면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체호프: 맞아요. 고립된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나의 내면이 이때 각성하게 된 셈이죠. 

모스크바로 대학을 다니면서 이때 부터  우리집의 모든 생계를 내가 다 맡게 되죠.  

위에 형들이 있었지만 모두 제 구실을 못해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내가 하게 된거죠.

사실 나의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 된 거예요.

처음엔 가명으로 단편을 써냈죠. 그 당시 작품을  몇 백편을 썼는지  나도 잘 몰라요.  

먹고 살자고 쓰기 시작한 글들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대학 졸업후 의사가 되긴 했지만 작가 수입이 더 좋으니 아예 전업 작가로 전향 해버렸죠.



마힐: 아, 그래서 실제 의사 였기 때문에 작품속 의사에 대한 묘사가 그토록 생생한 현장감이 있는 거군요.  자. 그럼 이번엔  선생님의 본격적인 연애관으로 넘어가시죠. 



체호프:  네.네. 알았어요.  너무 재촉 하지 말아요. 곧 들어 갑니다.(휴~ 한숨 쉬고)

난 말이죠.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타간로그 시절의  고향 사람들,  모스크바  시절의 빈민촌 사람들. 의사 시절 돌봐준 환자들, 나중엔 사할린 섬의 감옥에 갇힌  죄수들 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그런데 귀족,부자 같은 상류층 사람들 보다  평범하거나 오히려 밑 바닥 삶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어요. 

어쩌면 내가 농노 출신 집안으로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나와 비슷한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연민(憐愍)이 갔어요.  

그래요.  제가 깨달은  인간의  마음속에 가장 밑바탕에 깔린 감정은 연민이라고 생각 해요. 난 사람들을 만날때 마다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이 먼저 생겨요.



마힐: 아니,   그런데요.  연민하고 선생님 연애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요? 

그럼 연민이 불륜의 출발선 인가요? 욕망이 아니고요? 



체호프: 뭔가 훅 들어오는 질문 같은데... 

아마도 내가  출생 신분이 고귀했다면 연민이란 감정에 대해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하위 계층의 사람 속에서 비교적 뛰어난 머리와 글재주로 신분 상승을 한 셈이죠. 

그래서 전 고귀한 사람들이 하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건 내  주위에 없더라구요.  아니 적어도 나 한테는 눈에 띄이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순수한 사랑이든 비정상적인 사랑이든 그런 구분이 중요한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제 작품속의 사랑은 불륜이지만 연민도 같이 묻어 있어요. 




마힐: 아, 선생님의 사랑관을  듣고보니  이제야 이해가 조금 되네요.

그런데 결국 연민이란 감정도 따지고 보면 평등한 관계가 아닌 내가 좀더 우월한 입장에서 상대를 동정하는 심리도 있는 거라 어찌보면  연민을 기초로 한 사랑은 동등한 입장의 감정은 아니지 않나요?

그래서 연민에서 시작하는 사랑이란 것도  결국엔 다 불행으로 끝나지 않을까요?




체호프: 사실 그렇다고 봐야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젊은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내 가정을 꾸릴 생각을 못했죠.  대신 그 시절 수 많은 여자들을 만났죠. 

작품 <아가피야>,<여자의 복수>,<나의 아내들>같은 것은 그때의 경험에서 나온 거죠.

그러다가  내가 20대 후반(1889)에 만난 '리디야 아빌로바(1864~1943)' 와 10년 정도 비밀 연애를 했었죠. 그때 난 이미  유명 작가였었죠. (톨스토이가 많이 날 아꼈었죠.) 

내 작품들 속의 비밀 연애 경험은 리디야와의 실제 경험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이것도 어느 정도 연민의 감정 있었죠. 당시 리디야는 작가 지망생이었거든요.

결국 그런 연애는 끝까지 이어지질 못하죠.

내 작품속의 수 많은 주인공들의 사랑은 결국 나의 현실을 벗어 나지 않았던 거죠.

실제도 연민에 바탕을 둔 삶과 사랑이었단 말이 되는 거죠. 

그래서 불륜의 감정 또한 인간 또 다른 본성이었구나 하고 이해했던 거죠.




마힐: 그런데 그건 선생님 한테만 해당 되는게 아닐까요?

그런 감정 까지도  인간이 지닌 순수한 본성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일탈과 불륜에 대한 비난은 피 할수가 없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연애관이 통용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체호프: 그럴지도요. 내가 41살(1901) 에 당시 러시아에서  유명했던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1868~1959) '와 결혼했고 3년 뒤(1904)에  이번 생을 아쉽게도 마감하게 되죠. 

아마 내가 더 오래 살았다면 나의 연애관이나 사랑에 대한 관념은 변했을 수도 있었겠죠.




마힐: 네, 이번 가상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사랑관에 대해 확실히 이해 했습니다.

결국 선생님의 모든 작품은 실제 삶속에서  연민에 바탕을 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요. 

그래서 작품속에 항상 위트가 있고 따뜻함이 있는 거였군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무덤을 벗어나  이렇게까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 하고요. 

다음 또 다른 작품을 읽게 되면 다른 주제로 모시도록 할 께요. (손을 흔든다)



체호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불러 주세요.  noka (빠까: 안녕~)(사라진다)






마힐: 성성연애(聖性戀愛) , 성스러움과 속됨이 공존하는 체호프식 사랑이었다.




음식뿐만 아니라 사프카의 옷에도 여자의 ‘연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아가피야> - P164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야기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늘 마음속에 있기 마련이다.

<사랑에 대하여> - P257

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랑을 논하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죄나 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하고 가장 높은 것에서 출발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절대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 P270

어떻게? 어떻게 하면? .... 좀 더 시간이 지나 해결책을 찾으면 그땐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끝은 아직 멀고도 멀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을 두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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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18세기 소품문 낭송Q 시리즈
이용휴 외 지음, 길진숙 외 옮김, 고미숙 / 북드라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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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낭송 18세기 소품문

지은이: 이용휴,이덕무,박제가/ 길진숙, 오창희 풀어 읽음

   : 낭만전승(浪漫傳乘)


 

낭만 배드민턴,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배드민턴 금메달을 목에 걸은 안세영 선수가 한 말이다.

그녀는 2022년  항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이미 세계 랭킹 1위로 올라 서긴 했지만 아직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질 못했었다.

그래서 안세영 선수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내 그랜드슬램을 이루어  '낭만' 있게  여정을 마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결국 그녀의 희망대로 올림픽에서 금메달를 쟁취하여  자신의 '낭만 배드민턴' 인생에서 화룡정점을 찍는 빛나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되었다


금 빛나는 천하무적(天下無敵) 안세영.

 


낭만을  떠올리니 방금 일독을  마친  <낭송 18세기 소품문>을 언급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나의 일년간 독서 활동 중에서 손 꼽을 만한 가장 좋은 책 중 한권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18세기 조선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만난 이용휴, 이덕무 , 박제가의 소품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무슨 남자들이 이리도 섬세하지?  그들의 글은 너무나 참신하고 정갈하다.

글과 사람의 마음, 인격의 진실됨이 그대로 일치하다니....

글이 곧 그 사람이 된다는게 신기했다.



 

보통 조선시대 문장은 고문(古文)이라 하여 중국의 선진(先秦)시대, 2000년전 사용하던 문체를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글을 써왔다.

더구나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는 고문외에 다른 어떤 문체는 존재 하지도, 아니 존재 할 수도 없었다.

그 깐깐한 유학자들 사이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불리는 이단(異端) 으로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고문체만을 써야 했다.

그런 철옹성 같은 당시의 유학 시스템은 18세기에 이르러 실사구시(實事求是) 실학이  떠오르면서  소품문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소품문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 책 <낭송 18세기  소품문> 에서 소개하는 해환 이용휴(1708~1782), 무관 이덕무(1741~1793), 초정 박제가(1750~1815)  이였다.

그들이 즐겨 사용했던  소품이라  불리는 문장은 당시의 주류 문체였던 고문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글쓰기였다고 한다.

고문은  화려하지만  형식적이고 긴 글인데 반하여 소품문은 글이 짧다.

글은 짧지만 글의 내용은 오히려  풍성하고, 파격적이지만 잔잔하고, 강렬하지만 평범하다.

소품은 한가지 고정된 시각이 아닌 참신한 마음으로 자유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책만 보는 바보' 라서 간서치(看書痴)란 별칭이 붙은 이덕무의  '책을 팔아 배고픔을 면하다' 는 글에서 이덕무는 오랜 굶주림 끝에 결국 집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맹자> 7권을 200냥에 판다

그 돈으로 쌀을 사서 밥 지어 실컷 먹고  친구 유득공에게 자랑한다.

그 소리를 들은 유득공도 <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와 둘이 함께 먹고 마신다.

이에 이덕무는 맹자가 밥지어 주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주었다며 기뻐한다.

또한  혹독하게 시린 겨울밤에   <한서> 로 이불을 삼고, <논어>로 병풍 삼아 추위를 견뎌내는  삶도 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선의 18세기를 두고 ' 낭만의 시대' 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노론과 소론 같은 정쟁이 끊이지 않아 당시를 살았다면 당파 싸움에 치를 떨었겠지만... 그건 뭐 지금도 다르지 않나?  시대가 바뀌어도 정치권과 권력을 향한 마음은 어찌 그리 변함이 없는지.... .... 한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낭만의 시대라 부를만 한 이유가 있다.

이 시대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들이 살았던 시기였다.

이들 인물들의 관계는 서로  좌우종횡으로  연결 되어 이어져 있다.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이용휴, 이덕무, 박제가를 비롯 하여  조선 제일의 무사(武士) 야뇌 백동수(1743~1816),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소품의 일화에 등장 한다.

 



어느날 연암이 박제가에게 편지를 보내 먹을 것과 술을 구한다.

이때  연암은 박제가 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임에도 "내 자네에게 구차 하더라도 무릎 꿇어 먹을 것을 구하네.  벼슬을 구하는 것 보다 그게 더 낫네. 여기 호리병을 보내니 술을 가득담아 보내 주심이 어떤가" 하고 구차 하다면서 전혀 구차 스럽지 않은 글을 보낸다.

이에 초정 박제가는 " 하인편으로  이백냥을 보냈습니다만 호리병까지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먹을 것을  얻고 양주에서 학까지 즐기는 복락을 한꺼번에 누리는 일은 없는 법이지요" 란 글로 답한다.

즉 먹을 것은 줄 수 있지만 술까지는 못 주겠다는 초정의 익살이 담겨 있다.

요즘 시대 꼰대와  MZ 젊은 세대간의  갈등이나 차별이 없는 낭만이 느껴진다.

 



또한 이들은 조선에서 절대 음감을 지녔던 홍대용(1731~1783)과  조선의 명탐정이기도 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 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더구나  당대 조선 제일 화가 김홍도(1745~1816)와 신윤복(1758~1814) 도 이 시대에 함께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들은 결국 마지막 단 한 사람에게로 연결이 모아진다.

이 연결의 정점에는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정조(1752~1800)가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 하나하나가 현대에  재창조 되어지는  드라마,영화, 소설 속에서 주인공 급들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이들 인물중 가장 끝판왕은 정조 였던 셈이다.

사실 정조는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자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다.  

 



그래서 18세기 조선은 실학과 소품의 시대로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운다.

확실히 조선 후기에 우리식의 문예 부흥을 맞이 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 였다.

글이 곧 그 사람이 되었고 삶의 태도와 가치관 마저 변화 시켜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소품문을 통해 접한 그 시대를 살다간 인물들의 소탈함과 글 속에 담긴 청초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책 속에 소개된 소품을 여러번 낭송을 할 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영혼이 정화가 되는 듯 하다

어찌그리도 정갈한 마음을 가지고  담백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이제 파리 올림픽도 마무리 되어간다.

안세영 선수의 낭만 배드민턴 여정에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어른의 한 사람, 또 동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해  미안스럽다.

그저 모든 것이 잘 매듭지어 지길 마음으로만 조용히 응원할 따름이다.

권력의 카르텔에 대항하는 것이 마치 조선시대  성리학 체제를  전복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철옹성 같은 성리학도 결국엔 무너졌다.

지금은 난공불락(難攻不落) 같아 보이는 고인물들이 지키는 권력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것이다.

모든 시대 역사의 주인공인 용기있고  빛나는 젊은이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의 실학자들의 낭만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 임을 믿는다.

 


 <뒷날 성품과 기질이 이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있어 책을 통해 만난다면 서로 감동하고 끌리게  될 것이다. 이렇듯 신령스런 인연을 맺어 마음이 합치된다면, 그 신비스럽고 오묘한 경지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리라. > - 이용휴: 참된 소리,참된 색깔, 참된 맛 중에서..




낭만은 그렇게 전승 된다.

이 방안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바뀌고 명암이 달라진다네. 구도(求道) 란 생각을 바꾸는데 있다네....중략... 그대가 나를 믿는다면, 그대를 위해 창을 열어 주겠네. 한 번 웃는 사이에 어느새 환하고 툭 트인 경지에 오를 것이네.<구도란 생각을 바꾸는 것> - P36

마음은 눈을 잊고, 눈은 팔뚝을 잊고, 팔뚝은 손가락을 잊고, 손가락은 먹을 잊고, 먹은 벼루를 잊고, 벼루는 붓을 잊고, 붓은 종이를 잊는다.이때에는 팔뚝과 손가락을 일컬어 마음과 눈이라 해도 되고..중략... 먹과 벼루를 일컬어 붓과 종이라 해도 된다.<손가락은 먹을 잊고 먹은 벼루를 잊고> - P174

사람에게 벽이 없으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중략...
벽(癖)이 있는 사람만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며 수준 높은 기예를 익힐 수 있다.<꽃에 미치다> - P245

두보를 배운자는 두보만 최고로 여기고, 그 나머지는 보지도 않고 무시해 버린다. 문장의 도는 그 마음을 크게 열고 견문을 넓히는 데 있을 뿐, 어떤 시대의 문장을 배웠나에 달린 것이 아니다.<시의 도를 터득 하려면> - P253

나의 벗 형암 이덕무, 그의 시 몇 수를 뽑아 놓고, 목욕한 뒤 향을 피우고 읽었다.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이 시일세!>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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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8-09 1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정조와 정약용이 나왔죠...그러게요 그럼에도 낭만의 시대였나 봅니다 힘들지라도 여유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마힐 2024-08-10 22:31   좋아요 3 | URL
네. 아무리 암흑 같은 시대라도 낭만은 늘 있었을 겁니다. 다산 정약용의 6대 직계손이 탤런트 정해인이라고 하더라구요. 과거와 현재가 어쩌면 그렇게 이어지는가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시대의 낭만도 응원하게 됩니다. 서곡님 이번 주말 잘 지내시고요. 감사 합니다.

모나리자 2024-08-13 19: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8세기를 살았던 독서가, 문장가들의 이야기를 읽으시는군요.
저도 오래전 이덕무에 관한 책을 읽고 정말 감동했던 적이 있어요.
가난하고 추운 시절 책만 읽어도 행복해하던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접하고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각박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야말로 한 조각이라도
낭만을 떠올리는 여유가 필요할 듯합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마힐님.^^

마힐 2024-08-14 10:54   좋아요 4 | URL
안녕하세요. 모나리자님, 네, 18세기 실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여유를 가지고 낭만있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독서도 낭만독서 하려구요. 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