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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18세기 소품문 ㅣ 낭송Q 시리즈
이용휴 외 지음, 길진숙 외 옮김, 고미숙 / 북드라망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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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낭송 18세기 소품문
지은이: 이용휴,이덕무,박제가/ 길진숙, 오창희 풀어 읽음
제 목: 낭만전승(浪漫傳乘)
낭만 배드민턴,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배드민턴 금메달을 목에 걸은 안세영 선수가 한 말이다.
그녀는 2022년 항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이미 세계 랭킹 1위로 올라 서긴 했지만 아직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질 못했었다.
그래서 안세영 선수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내 그랜드슬램을 이루어 '낭만' 있게 여정을 마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결국 그녀의 희망대로 올림픽에서 금메달를 쟁취하여 자신의 '낭만 배드민턴' 인생에서 화룡정점을 찍는 빛나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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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빛나는 천하무적(天下無敵) 안세영.
낭만을 떠올리니 방금 일독을 마친 <낭송 18세기 소품문>을 언급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나의 일년간 독서 활동 중에서 손 꼽을 만한 가장 좋은 책 중 한권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18세기 조선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만난 이용휴, 이덕무 , 박제가의 소품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무슨 남자들이 이리도 섬세하지? 그들의 글은 너무나 참신하고 정갈하다.
글과 사람의 마음, 인격의 진실됨이 그대로 일치하다니....
글이 곧 그 사람이 된다는게 신기했다.
보통 조선시대 문장은 고문(古文)이라 하여 중국의 선진(先秦)시대, 약 2000년전 사용하던 문체를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글을 써왔다.
더구나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는 고문외에 다른 어떤 문체는 존재 하지도, 아니 존재 할 수도 없었다.
그 깐깐한 유학자들 사이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불리는 이단(異端) 으로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고문체만을 써야 했다.
그런 철옹성 같은 당시의 유학 시스템은 18세기에 이르러 실사구시(實事求是) 실학이 떠오르면서 소품문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소품문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 책
<낭송 18세기 소품문> 에서 소개하는 해환 이용휴(1708~1782), 무관 이덕무(1741~1793), 초정 박제가(1750~1815) 이였다.
그들이 즐겨 사용했던 소품이라 불리는 문장은 당시의 주류 문체였던 고문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글쓰기였다고 한다.
고문은 화려하지만 형식적이고 긴 글인데 반하여
소품문은 글이 짧다.
글은 짧지만 글의 내용은 오히려 풍성하고, 파격적이지만 잔잔하고, 강렬하지만 평범하다.
소품은 한가지 고정된 시각이 아닌 참신한 마음으로 자유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책만 보는 바보' 라서 간서치(看書痴)란 별칭이 붙은 이덕무의 '책을 팔아 배고픔을 면하다' 는 글에서 이덕무는 오랜 굶주림 끝에 결국 집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맹자> 7권을 200냥에 판다.
그 돈으로 쌀을 사서 밥 지어 실컷 먹고 친구 유득공에게 자랑한다.
그 소리를 들은 유득공도 <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와 둘이 함께 먹고 마신다.
이에 이덕무는 맹자가 밥지어 주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주었다며 기뻐한다.
또한 혹독하게 시린 겨울밤에 <한서> 로 이불을 삼고, <논어>로 병풍 삼아 추위를 견뎌내는 삶도 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선의 18세기를 두고 ' 낭만의 시대' 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노론과 소론 같은 정쟁이 끊이지 않아 당시를 살았다면 당파 싸움에 치를 떨었겠지만... 그건 뭐 지금도 다르지 않나? 시대가 바뀌어도 정치권과 권력을 향한 마음은 어찌 그리 변함이 없는지.... 참.... 한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낭만의 시대라 부를만 한 이유가 있다.
이 시대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들이 살았던 시기였다.
이들 인물들의 관계는 서로 좌우종횡으로
연결 되어 이어져
있다.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이용휴, 이덕무, 박제가를 비롯 하여 조선 제일의 무사(武士) 야뇌 백동수(1743~1816),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소품의 일화에 등장 한다.
어느날 연암이 박제가에게 편지를 보내 먹을 것과 술을 구한다.
이때 연암은 박제가 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임에도
"내 자네에게
구차 하더라도 무릎 꿇어 먹을 것을 구하네. 벼슬을 구하는 것 보다 그게 더 낫네. 여기 호리병을 보내니 술을 가득담아 보내
주심이 어떤가"
하고 구차
하다면서 전혀 구차 스럽지 않은 글을 보낸다.
이에 초정 박제가는 " 하인편으로 이백냥을 보냈습니다만 호리병까지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먹을 것을 얻고 양주에서 학까지 즐기는 복락을 한꺼번에 누리는 일은 없는 법이지요" 란 글로 답한다.
즉 먹을 것은 줄 수 있지만 술까지는 못 주겠다는 초정의 익살이 담겨 있다.
요즘 시대 꼰대와 MZ 젊은 세대간의 갈등이나 차별이 없는 낭만이 느껴진다.
또한 이들은 조선에서 절대 음감을 지녔던 홍대용(1731~1783)과 조선의 명탐정이기도 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 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더구나 당대 조선 제일 화가 김홍도(1745~1816)와 신윤복(1758~1814) 도 이 시대에 함께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들은
결국 마지막 단 한 사람에게로 연결이 모아진다.
이 연결의 정점에는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정조(1752~1800)가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 하나하나가 현대에 재창조 되어지는
드라마,영화, 소설 속에서 주인공 급들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이들 인물중 가장 끝판왕은 정조 였던 셈이다.
사실 정조는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자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다.
그래서 18세기 조선은 실학과 소품의 시대로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운다.
확실히 조선 후기에 우리식의 문예 부흥을 맞이 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 였다.
글이 곧 그 사람이 되었고 삶의 태도와 가치관 마저 변화 시켜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소품문을 통해 접한 그 시대를 살다간 인물들의 소탈함과 글 속에 담긴 청초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책 속에 소개된 소품을 여러번 낭송을 할 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영혼이 정화가 되는 듯 하다.
어찌그리도 정갈한 마음을 가지고 담백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이제 파리 올림픽도 마무리 되어간다.
안세영 선수의 낭만 배드민턴 여정에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어른의 한 사람, 또 동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해 미안스럽다.
그저 모든 것이 잘 매듭지어
지길 마음으로만 조용히 응원할 따름이다.
권력의 카르텔에 대항하는 것이 마치 조선시대 성리학 체제를 전복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철옹성 같은 성리학도 결국엔 무너졌다.
지금은 난공불락(難攻不落) 같아 보이는 고인물들이 지키는 권력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것이다.
모든 시대 역사의 주인공인 용기있고 빛나는 젊은이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의 실학자들의 낭만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앞으로도 이어질 것 임을 믿는다.
<뒷날 성품과 기질이 이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있어 책을 통해 만난다면 서로 감동하고 끌리게 될 것이다. 이렇듯 신령스런 인연을 맺어 마음이 합치된다면, 그 신비스럽고 오묘한 경지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리라. > - 이용휴: 참된 소리,참된 색깔, 참된 맛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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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그렇게 전승 된다.
이 방안에서 몸을 돌려 앉으면, 방위가 바뀌고 명암이 달라진다네. 구도(求道) 란 생각을 바꾸는데 있다네....중략... 그대가 나를 믿는다면, 그대를 위해 창을 열어 주겠네. 한 번 웃는 사이에 어느새 환하고 툭 트인 경지에 오를 것이네.<구도란 생각을 바꾸는 것> - P36
마음은 눈을 잊고, 눈은 팔뚝을 잊고, 팔뚝은 손가락을 잊고, 손가락은 먹을 잊고, 먹은 벼루를 잊고, 벼루는 붓을 잊고, 붓은 종이를 잊는다.이때에는 팔뚝과 손가락을 일컬어 마음과 눈이라 해도 되고..중략... 먹과 벼루를 일컬어 붓과 종이라 해도 된다.<손가락은 먹을 잊고 먹은 벼루를 잊고> - P174
사람에게 벽이 없으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중략... 벽(癖)이 있는 사람만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며 수준 높은 기예를 익힐 수 있다.<꽃에 미치다> - P245
두보를 배운자는 두보만 최고로 여기고, 그 나머지는 보지도 않고 무시해 버린다. 문장의 도는 그 마음을 크게 열고 견문을 넓히는 데 있을 뿐, 어떤 시대의 문장을 배웠나에 달린 것이 아니다.<시의 도를 터득 하려면> - P253
나의 벗 형암 이덕무, 그의 시 몇 수를 뽑아 놓고, 목욕한 뒤 향을 피우고 읽었다.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이 시일세!>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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