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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4

오늘의정진: 震法雷擊法鼓진법뢰격법고 / 법의 우레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 100일 정진, 6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여덟 번 째 구절은

<非但能摧外道心 비단능최외도심/다만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早曾落却天魔膽 조증락각천마담 /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려도다.


   보리수 아래 싯다르타가 정각을 이루기 전에 마왕파순(魔王波旬)의 끈질긴 방해가 시작 되었다.

마왕의 군대를 보내 싯다르타를 공격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딸들을 보내 유혹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결국 마왕의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 등장하는 마왕파순을 다른 말로 마라(Mara) 또는 천마(天魔)라고도 부른다.

파왕파순은 정각을 이룬 붓다를 향해 깨달음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붓다는 결가부좌 상태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오른손바닥을 오른무릎에 포개고 오른손가락 을 땅을 향하게 한다. 이러한 손동작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이라는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붓다가 항마촉지인을 행하자 땅속에서 과거 칠불, 즉 과거 생의 일곱 부처님이 나타나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천마는 우리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번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헤메게 하고 정신 못 차리게 하며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가 바로 마왕파순이자 천마이다.

넓게 보면 마음의 또 다른 형태인 것이다. 외도의 마음이든 천마의 마음도 내 본래 마음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니 본래 마음을 찾는 것, 번뇌를 녹이는 길이요, 천마에게 항복 받는 길이다.


오늘은 예순 아홉 번 째 구절

震法雷擊法鼓/ (진동할 진, 법 법, 우뢰 뢰, 칠 격, 법 법, 두드릴 고 )

진법뢰격법고 / 법의 우뢰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布慈雲兮灑甘露/ ( 베 포, 자비 자, 구름 운, 어조사 혜, 뿌릴 쇄, 달 감, 이슬 로)

포자운혜쇄감로 / 자비의 구름 펴고, 감로수를 뿌리는 도다.


구름이 하늘을 가리자

하늘은 북이 되었다.

두들겨 울려 퍼지는 북 소리에

흩 뿌려지는 물방울들

감로수가 되어 대지의 생명들을 일깨운다.

떨어지자 솟아난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번쩍이자 울린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하고 그러하니 그리되어지다.

, 우르르 쾅 이다.


<일일 소견>

3월 봄 비는 언제 쯤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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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3

오늘의 정진: 非但能摧外道心 비단능최외도심 / 다만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 100일 정진, 68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일곱 번째 구절은

<大丈夫秉慧劍대장부병혜검/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般若鋒兮金剛焰반야봉혜금강염/반야의 칼날 이요, 금강의 불꽃 이로다.>


깨달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지혜를 기르고 자비를 키우는 것이야 말로 수행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지혜를 기르지 않고, 자비를 키우지 않는 수행으로는 도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가 없는 가르침은 모두 외도에 불과하다.  


오늘은 예순 여덟 번째 구절

非但能摧外道心/ (아닐 비, 다만 단, 능할 능, 꺽을 최, 바깥 외, 길 도, 마음 심 )

비단능최외도심 / 다만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早曾落却天魔膽/ ( 일찍 조, 거듭 증, 떨어질 락, 물리칠 각, 하늘 천, 마귀 마, 쓸개 담 )

조증락각천마담 /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려도다.


수행자가 지니는 검은 지혜와 자비의 쌍검이다.

진리의 길을 가다가 만나는 대상이 무엇이든 전부 베어 버린다.

지혜의 칼로 무명업식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 정도(正道)를 벗어난 외도의 마음까지 썰어 버린다.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부처나 조사를 만나도 베어 죽이는 데 하물며 외도나 천마를 가만히 놔 두겠는가?

지혜의 칼과 자비의 칼은 그렇게 쓰는 것이다.


<일일 소견>

본래 외도(外道)는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의 가르침을 일컫는다.

하지만 선지식들 께서는 외도에도 걸리지 않아야 한다고 전하신다.

세상에 불법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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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2

오늘의정진: 大丈夫秉慧劍 대장부병혜검 /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 100일 정진, 6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여섯 번째 구절은

<是以禪門了却心시이선문료각심/그러므로 선문에서 마음을 물리치고

頓入無生知見力돈입무생지견력/태어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가도다.


()에서는 말이나 글자가 그다지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 라 한다.

직지인심(直指人心), 즉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킨다.

견성성불(見性成佛), 즉 마음의 성품을 바로 보면 부처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마음 하나 깨우치면 바로 태어남이 본래 없음을 단박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은 마음으로 곧장 들어가는 문() 이다.


오늘은 예순 일곱 번째 구절

大丈夫秉慧劍/ (큰 대, 어른 장, 사내 부, 잡을 병, 지혜 혜, 칼 검  )

대장부병혜검 /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般若鋒兮金剛焰/ ( 돌릴 발, 반야 야, 칼끝 봉, 어조사 혜, 쇠 금, 굳셀 강, 불꽃 염 )

반야봉혜금강염 / 반야의 칼날 이요, 금강의 불꽃 이로다.


불자라면 오계(五戒)를 수지(受持) 하도록 하고 있다.

오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음주(不飮酒), 불망어(不妄語) 이다.

오계중 첫번째가 불살생(不殺生)의 계이다. 남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불교의 첫번째 계율이 불살생인 이유는  생명의 소중함을 실천하는 것이고  이 생명들이 r곧 부처의 또 다른 모습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체대비라고 한다.

동체대비(同體大悲)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한 몸인 듯 함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즉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생명으로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비(慈悲)이다.


칼은 남의 생명을 헤치는 도구이다. 날카로운 금속의 예리함으로 닿는 모든 것을 동강 내버린다. 고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살상을 저지른 도구가 바로 칼이었다. 장수는 칼로 적들을 베어버린다. 생명이 따뜻함을 상징한다면 죽음은 차갑다. 전장에서는 죽음처럼 차가운 칼의 속성에 빗대어 냉병기(冷兵器)라고 부르기도 한다. 칼은 따뜻한 생명의 기운을 차갑게 만들어 버리는 도구인 것이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지만,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듯이, 칼도 마찬가지로 남을 해치려 한다면 살인 무기가 되지만 의사가 칼을 쓰면 남의 생명을 살리게 된다. 이누야사에 나오는 셋쇼마루가 쓰는 칼 천생아(天生牙)는 한번 휘두르면 백명의 목숨을 살린다.


이처럼 불교에서 칼은 생명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깨달음을 가로막는 무명(無明)을 베어버리는 용도로 쓰인다.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지배하는 나의 업식을 지혜의 칼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수행자는 대장부가 되는 것이다. 대장부가 쥔 지혜의 칼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만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거침없이 베어 버린다.

금강은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강한 물질을 상징한다. 반야는 지혜를 상징한다. 금강경(金剛經)의 원래 제목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多經)이 바로 이런 뜻에서 나왔다. 금강경의 영어 제목이 바로 ‘Diamond Sumatra’ 이유도 바로 이와 같다. 그래서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함께 추구하는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일일 소견>

길가에 서있는 메마른 나무 가지에 연두 빛이 보인다. 봄은 이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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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31

오늘의정진: 是以禪門了却心학시이선문료각심 / 그러므로 선문에서 마음을 물리치고


- 100일 정진, 66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다섯번 째 구절은

<損法財滅功德 손법재멸공덕 / 법의 재물 덜고, 공덕을 없앰은

莫不由斯心意識 막불유사심의식 / 심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 였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않고 서는 법의 재물이나 공덕을 가지고 있다 해도 유한하다. 

아직도 상()이 남이 있는 탓이다.

무아(無我)’, 라는 상이 남김없이 사라져야 한다.


오늘은 예순 여섯번 째 구절

是以禪門了却心/ (바를 시, 써 이, 고요할 선, 문 문, 요달할 료, 물리칠 각, 마음 심)

시이선문료각심 / 그러므로 선문에서 마음을 물리치고

頓入無生知見力/ ( 조아릴 돈, 들어갈 입, 없을 무, 날 생, 알 지, 볼 견, 힘 력 )

돈입무생지견력 / 태어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 가도다.


어제 심의식을 다루면서 마음은 모두 8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었다.

성철 스님은 마지막 제8야뢰야식을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풀이하셨다. 깨달음의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업식(業識)에 의한 뿌리 깊은 분별을 뽑아내야 된다는 의미이다. ()물리치다는 뜻으로 해석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마음 심()을 제8야뢰야식, 무명업식으로 봐도 맞지만 우리의 근본 마음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각()은 현대 중국어에서 쓰는 (que) 오히려'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마음을 요달해야’, 즉 마음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마음을 물리치고' '마음을 요달하고' 라는 뜻은 분명이 겉으로 볼 때는 완전히 상반된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모두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수행의 목적은 마음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일 소견>

오직 마음만 지켜볼 뿐이다.

마음 이외에는 모두가 신기루 같이 사라지는 것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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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28

오늘의정진: 損法財滅功德 손법재멸공덕 / 법의 재물 덜고, 공덕을 없앰은


- 100일 정진, 65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네 번째 구절은

<學人不了用修行학인불료용수행 / 배우는 사람은 마치질 못해서 수행을 하나니

眞成認賊將爲子진성인적장위자 / 참으로 도둑의 아들이 됨을 인정하는 꼴이다.> 였다.


산 골짜기에 있는 물이 바다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곡절을 거쳐야 비로소 도달하게 될 까?

우리의 수행도 그와 같아서 깨달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헤메야 하는 것일까?

파도는 바다를 떠나지 않듯이, 우리의 중생심은 부처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수행은 비록 도둑의 아들에서 시작했지만 마침내 부처의 아들로 여정을 마칠 것이다.


오늘은 예순 다섯 번째 구절

損法財滅功德 / (덜 손, 법 법, 재물 재, 멸할 멸, 공 공, 큰 덕)

손법재멸공덕 / 법의 재물 덜고, 공덕을 없앰은

莫不由斯心意識 / ( 없을 막, 아닐 불, 말미암을 유, 이 사, 마음 심, 뜻 의, 알 식 )

막불유사심의식 / 심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


   부처의 아들이 되었다면 당연히 부모인 부처로 부터 상속을 받는 재물이 생긴다.

부처에게 물려 받는 유산인 셈이다. 부처에게 받는 유산이란 법의 재물과 공덕이다. 법은 다르마(Dharma) 라 부르고, 즉 진리를 뜻한다. 공덕(功德)은 선()을 쌓음으로 생기는 결과물이다. 이러한 유산은 물질적으로 물려 받는 세속적인 유산과는 전혀 다르다. 법의 재물과 공덕은 무위세계에서 상속되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심의식은 쉽게 말하면 마음을 통칭하는데 심(), (), () 각각 모두 마음을 뜻한다.

불교에서 모든 것을 마음 하나로 퉁 치지만 사실은 깊이에 따라 달리 구분한다. 그렇게 인간의 의식을 8개로 나누었는데 가장 마지막이 제 8식이다. 이를 '아뢰야식' 이라고 부르는데 현대 심리학에서는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심은 바로 이 근본 마음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의는 8식중 7식에 해당하는 '말라식'으로 우리의 마음중에서 항상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에 해당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의식' 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식은 8식중에 6식에 해당하며, 육식은 눈, , , , , 뜻을 지닌 의식을 말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영역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부르는 그냥 '의식'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심의식이라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면 부처의 유산인 법재와 공덕을 까먹게 된다는 뜻이 된다.

   ()의 깨달음은 부처의 유산을 받아 법의 재물을 얻고 공덕을 쌓는 것을 넘어선다. 궁극의 깨달음은 바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완전한 열반에 이른 경지를 적멸(寂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절학(絶學) 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적멸이라는 불교의 용어를 도교식의 용어인 절학으로 풀이했던 것이다. 붙여진 이름과 용어는 달라도 그 뜻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일일 소견>

보이는 재물이나 보이지 않는 재물도 결국 유한하다.  유한함은 무상(無常)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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