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B.
데즈카 오사무 지음, 조민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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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루드비히 B.

지은이:  데즈카 오사무

 : 돌아온 아톰과 돌아오지 않을 루드비히 B.


나의 세대에서 '아톰'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텔레비젼에서 방영했던 아톰은 우리 초딩들에게는 희망이자 꿈이었다. 

"번개 주먹 번쩍이며~랄라라, 용감하게 싸우는~랄라라, 돌아온 아톰~아톰,돌아온 아톰!"

저녁 시간, 동생과 함께 텔레비젼 앞에 모여서 아톰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흥분했던 그 기억들...

자그맣고 귀여운 외모에 감춰진 엄청난 힘, 그리고 무지하게 덩지가 큰 로봇들을 상대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싸우는 모습은 그 당시 우리에겐 아톰은 영웅이었다.

아톰의 라이벌 이었던 형 아틀라스와의 대결, 그리고 10만 마력의 아톰이 100만 마력의 프루트와 대결을 벌이는 에피소드는 지금도 기억난다.

(아주 훗날 도리야마 아키라(1955~2024) <드래곤 볼>을 보면 전투력 설정이 나오는데 프리저의 전투력 53만 이란 수치가 이걸 참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어린이날 선물로 아톰 장난감을 받았던 것은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훗날 아톰이 우리나라 만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의 동심(童心)은 파괴되었다.

아톰 뿐만 아니라 70~80년대 방송에서 방영했던 대부분의 만화가 일본 만화 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가 되서야 우리의 국산 만화들이 방영 되기 시작했다.

88서울 올림픽 즈음 하여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머털 도사, 아기 공룡 둘리' 같은 만화가 방영 된 것이다.

어쨌든 내 동심을 파괴 했던 충격적인 추억이었지만 지금도 아톰은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남긴 만화인 것은 변함이 없다. 


아톰의 원작자는 일본 만화계에선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手冢治虫 Osanmu Tezuka 1928~1989)  란 작가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의 작품은 아톰외에도 '사파이어 왕자' 라는 남장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과 디즈니 만화 라이언 킹의 모티브가 된 '밀림의 왕자 레오' 같은 작품등이 국내 T.V에서 방영 되었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루드비히 B.>는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악성(樂聖)'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에 대한 만화이다.

오늘날 우리는 보통 베토벤을 지칭할 때 그냥 통상적으로 '베토벤' 으로 부른다.

베토벤, 그 이름 하나에 그에 대한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베토벤은 성()이다. 그의 이름은 '베토벤' 앞에 붙여진 '루드비히' 가 된다.

이번 데즈카의 작품에선 '베토벤' 이라는 성으로 불려지기 보다는 이름인 '루드비히' 로 불려지는데  그 이름이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 '루드비히 B.' 인 것 이다.

작품에서는  '루드비히' 이란 이름 때문에 베토벤과 적대적 관계가 된 '프란츠 크로이츠 슈타인' 이란 귀족이 등장한다.

프란츠 크로이츠 슈타인은 루드비히를 평생 괴롭히는 악인인 동시에 사실상 주인공급 으로 캐릭터에 대한 입체적 당위성을 작가는 잘 살려 냈다고 본다.

작품은 평민 루드비히와 귀족 프란츠 간의 대립과 갈등이 만화의 중요한 맥락을 형성한다.

또한 베토벤에게 음악가로서 평생 고통을 주었던 청각 상실의 원인이 프란츠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는 작가의 해석은 흥미롭다.

이런 설정은 만화 작가의 상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라 생각 된다.

그리고 평민 출신인 베토벤이 귀족들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호기로움도 주목할 만 하다.

베토벤의 탄생에서 부터 실제 역사의 순간 마다 발생했던 에피소드 위주로 역사적 사실과 만화적 상상이 잘 조화롭게 그려졌다.

특히 음악 소리가 표현이 되지 않는 지면(紙面)의 한계를 만화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자가 그림을 통해 소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들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월광 소나타나 전원 교향곡 같은 작품을 만화로도 충분히 표현해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각을 통해 청각을 이해하게 하는 작가의 역량을 보면 역시 만화의 신이란 호칭이 절로 나온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만화의 신이라는 칭호가 결코 허언이 아니였던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 했는데 너무나 황당하게도 마지막에는 그냥 미완으로 끝나버린다.

작가는 이 작품을 1987 6월에서 1989 2월까지  <코믹톰>이라는 잡지에 연재를 했는데 2 9일에 갑작스레 서거를 하게 되어 미완으로 절필이 된 것이란다.

작가 나이61,  이 작품이 작가의 마지막 유작(遺作)이 된 것이었다.

아마도 작품의 흐름상 작가는 뒤의 스토리를 충분히 짰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너무도 아쉽게 되어 버렸다.  

,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무척 아쉽게 끝을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아쉽다.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는2차 대전으로 패망한 당시의 일본의 암울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목적으로 만화를 그렸다고 알려졌다.

혹자는 그가 미키 마우스의 아버지 월트 디즈니(1901~1966)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전세계 수 많은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데즈카는 루드비히를 통해 또 한번의 희망과 용기를 보여 주려 했을 것이라 나는 믿고 싶다.

이제 미완을 통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내 마음 속에다 홀로 그려 넣어야 겠다.




루드비히!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라...네가 내 눈에 든 것은 운이 나빴어...
방금 전에 너라는 인간은 내 평생의 적이 되었어.
오늘 부터 생판 남이 아니야. - P61

음악은 인간 모두의 것이에요.
귀족만의 것이 아니라고요. 음악가도 귀족의 하인이 아니에요.
저는 .... 살아 았는 동안 반드시
제 음악 앞에 귀족을 무릎 꿇게 만들 겠어요! - P131

나는 언젠가 이 <환희의 송가>를 전부 작곡하겠어.
그래. 나의 최고의 걸작으로 만들 거야. - P189

<이 인생에 불별의 존재는 없지만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은 결코 변치 않을 것입니다. 루이 베토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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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6

오늘의정진: 幾廻生幾廻死(기회생기회사) 몇 번을 태어나고 몇 번을 죽었던가


- 100일 정진, 4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마흔 두 번째 구절은 

<我師得見燃燈佛多劫曾爲忍辱僊 /아사득견연등불다겁증위인욕선

나의 스승 부처님께서는 연등불을 만나뵙고는다겁생 동안 인욕선인이 되셨다> 였다

 

과거생에 연등불에 대한 지극한 공경심으로 인해 선혜 수행자는 연등불에게 내세에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게 된다

결국 그가 인욕선인을 거쳐 붓다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마음 가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지극한 마음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이다.

지극한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를 만나든 상대를 스승으로 삼아 배울 것이고,

둘로 보지 않는 마음을 지닌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 덕목이야 말로 수행자가 지녀야 하는  최고의 마음 가짐이 아닐까?

 

오늘은 마흔 세 번 째 구절

幾廻生幾廻死 (기미 기돌 회날 생기미 기돌 회죽을 사)

기회생기회사 몇 번을 태어나고 몇 번을 죽었던가

生死悠悠無定止  (날 생죽을 사멀 유멀 유없을 무정할 정그칠 지)

생사유유무정지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다.

 

다겁생은 수 없이 돌고 도는 윤회(輪廻)의 바퀴를 표현한 것이다.

육도(六道즉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에서 태어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생사를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

윤회의 수레 바퀴를 멈추는 길은 오로지 헤메는 나를 이제는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한 없이 돌고 도는 나의 실상을 여실히 알아야 한다

그러한 생사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견성(見性)을 해야 한다

그리고 본래 '무아(無我)' 임을 완전히 증득해야 한다.

내가 없음을 확연히 깨달았을 때 비로소 윤회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한 도리를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붓다는 우리에게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아득한 경지이긴 하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이미 그러한 세계로 건너가신 스승님들과 선지식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승 저승 없는 마음어서어서 벗어나세우리 함께 벗어나세!

 

<일일 소견>

아무리 윤회의 바퀴를 멈추기 어렵다 하여도

내 기필코 윤회를 벗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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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5

오늘의정진: 我師得見燃燈佛(아사득견연등불)나의 스승 부처님께서는 연등불을 만나뵙고


- 100일 정진, 4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마흔 한 번째 구절은

<縱遇鋒刀常坦坦, 假饒毒藥也閑閑 /종우봉도상탄탄, 가요독약야한한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 만일 독약을 마실지라도 한가롭고 한가롭다.> 였다.


생사로 부터 자유로워지면 어떠한 사지(死地)에 있더라도 걸림이 없게 된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 해도 털 끝 만큼 해를 입힐 수 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탄탄한한(坦坦閑閑)한 마음이 저절로 들 수 밖에 없다.


오늘은 마흔 두 번 째 구절

我師得見燃燈佛 (나 아, 스승 사, 얻을 득, 볼 견, 불탈 연, 등잔 등, 부처 불)

아사득견연등불 /나의 스승 부처님께서는 연등불을 만나뵙고는

多劫曾爲忍辱僊  (많을 다, 위험할 겁, 거듭 증, 할 위, 참을 인, 욕 욕, 춤출 선)

다겁증위인욕선 / 다겁생 동안 인욕선인이 되셨다.


연등불, 즉 연등부처님은 석가 여래가 현세에 오기전 과거생에 존재했던 24분의 부처님 중의 한 분이시다.

붓다가 고타마 싯다르타로 환생하기 아주 오래전 '수메다(sumeda 한문으로는 선혜: 善慧)' 라는 수행자로 살았었다.

어느날 그 시대의 부처님이신 연등불이 자기가 머무는 지역을 지나간다고 하자 수메다는 곧바로 연등부처님을 뵙고자 뛰쳐 나갔다.

그런데 때마침 마주친 연등불 께서 지나는 길이 진흙 길이라 수메다는 자신의 머리를 풀고 땅에 엎드려 버렸다. 

연등부처님을 뵙자 저절로 올라오는 공경심으로 인해 차마 부처님으로 하여금 진흙 길을 밟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스스로가 진흙 땅 위에 엎어져 자신을 밟고 가시라고 한 것이다.

그런 후에 일곱송이 연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치자 이에 탄복한 연등불은 그자리에서 수메다에게 수기(受記)를 내리셨다.

수메다는 내세(來世)에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 부처가 된다는 예언이었다.


금강경(金剛經) 17분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끝간데 없이 내가 없음이라) 에서 이러한 일화가 자세히 나온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법이 있었느냐?"

"있지 아니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법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면,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부처가 되리라'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내리시면서, '너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부처가 되리라' 말씀해 주신 것이다.> (17 구경무아분 중에서)


금강경은 () 대한 핵심이 부처님과 제자 수보리 간의 대화 형식으로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금강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 으로 삼았다.

이러한 금강경에서 과거 연등불과 현세의 석가 여래불의 인연이 언급된 것이다.

그런데 설사 연등불에게 내세에 석가모니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해도 단박에 부처를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없이 많은 생을 지나며 인욕선인이라 불려 만큼 몸이 찢겨지는 고통을 견디며  둘로 보지 않는 수행 했었기 때문이다.


금강경 14 이상멸적분(離相滅寂分 상을 떠나야 적멸함 이라)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나의 뿌리 자성왕에게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행을 했어도 그때에 나는 모든 상을 무심으로, 정신과 물질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나다, 내가 했다, 내가 위대하다든가 그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의 육신이 내면 부의 채찍에 사지가 마디마디 찢기는 듯 아파도 만약에 모든 상이나 물질에 치우쳐 둘로 생각했다면 자기 탓인줄도  모르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행 스님의 뜻으로 금강경  중에서)


이러한 일화들을 보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것은 단지 한 생의 수행만으로 얻어지는 성과가 아닌 것이다.

아득한 과거생에서 부터 이어져온 인과(因果) 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일일 소견>

모든 것이 나로 부터 벌어진 일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로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를... 아직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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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5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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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4

오늘의정진: 縱遇鋒刀常坦坦 (종우봉도상탄탄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 100일 정진, 41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마흔번 째 구절은 

<行亦禪座亦禪 語默動靜體安然 /행역선좌역선 어묵동정체안연

다녀도 참선이요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하게 되리라> 였다

 

수레는 내 몸을 뜻하고 소는 내 마음 자리를 뜻한다.

내가 수레를 모는 마부라면 나는 수레를 쳐야 하는가소를 쳐야 하는가?

내 몸을 끌고 다니는 마음을 쳐야 한다.

앉아 있는 부처의 형상만을 따라하는 것이 참선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고밥을 먹고차를 마시고오줌 싸고일을 하고누군가를 만나고책을 읽고운전을 하고빨래를 하고청소를 하고잠을 자는 모든 일들이 참선이 되야 한다

아니 본래 참선 아님이 없다.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만이 참선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참선이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일상이 깊어지면 선이 된다

생활이 곧 선이란 선지식의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 이다

 

오늘은 마흔 한 번 째 구절

縱遇鋒刀常坦坦 (세로 종만날 우뾰족할 봉칼 도항상 상평탄할 탄평탄할 탄 )

종우봉도상탄탄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假饒毒藥也閑閑 (거짓 가넉넉할 요독할 독약 약어조사 야한가할 한한가할 한)

가요독약야한한 / 만일 독약을 마실지라도 한가롭고 한가롭다.

 

행주좌와(行坐卧)에 구애됨이 없으며어묵동정(語默動靜)에 자유로운 사람은 곧 수처작주, 입처개진(随处作主,立处皆真) 한 사람이다.

즉 가는 곳 마다 주인이 되고서는 곳 마다 진리가 되어진다.

우리는 각자가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가는 곳마다 진리가 되게 하는 대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이에게는  설사 창칼이 난무하는 곳에 가더라도 탄탄(坦坦하고또한 독약을 마시는 경우가 생길 지라도 한한(閑閑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경우에서 걸림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老子b.c 571~471) 의 도덕경(道德经)에도 이와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개문선섭생자(盖闻善摄生者)듣건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륙행불피시호(陆行不避兕虎)육지에서 코뿔소나 호랑이을 만나지 않고

입군불피갑병(入军不被甲兵)전쟁터에서 창칼에 상해를 입지 않는다.

시무소투기각(兕所投其角)그 뿔로 들이 받을 곳이 없고

호무소조기조(虎所用其爪)호랑이의 발톱이 할퀼 곳이 없으며

병무소용기인(兵所容其刃)창칼이 파고들 곳이 없다.

부하고(夫何故)어찌 그러한가?

이기무사지언(以其死地焉)그에게는 죽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생사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무수히 많은 총알을 쏴도 전부 피하는 것처럼깨달은 도인에게는 전쟁터의 쏟아지는 화살과 찔러대는 창 끝을 전부 빗겨가는 것과 같다

걸림 없이 사는 주인공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일일 소견>

설연휴도 이제 끝났다.

다시 시작하는 한 해걸림 없이 살기 위해오늘도 마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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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3

오늘의정진: 行亦禪座亦禪 (행역선좌역선다녀도 참선이요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 100일 정진, 4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아홉번 째 구절은 

<自從認得曹溪路了知生死不相干 /자종인득조계로요지생사불상간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였다

 

영가스님(永嘉665713)은 마침내 혜능선사(慧能 638713)를 만나 본래 마음자리는 생사를 초월 하였음을 확실하게 인가를 받았다

이제 영가스님은 더이상 조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지체 없이 곧 바로 혜능선사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다

혜능선사의 영가스님을 향한 마지막 점검이 시작되었다.


왜 그리 빨리 돌아 가려는가?”.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걸 아는가?”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있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장하구나창과 방패를 들었구나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하고 혜능선사는 만류했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혜능선사의 문중에 딱 하룻밤을 묵고 가게 된다.


영가스님과 육조혜능과의 인연은 단지 하루 뿐이었다

이후 이런 영가스님을 두고 일숙각(一睡이란 별칭이 생겼다.

그후 두 스님은 세상에서 더이상의 연()은 없었다고 한다.

713두 분 모두 같은 해에 원적(圆寂) 하였다

 

오늘은 마흔번 째 구절

行亦禪座亦禪 (행할 행또 역고요할 선자리 좌또 역고요할 선 )

행역선좌역선 /다녀도 참선이요앉아도 역시 참선이니

語默動靜體安然(말씀 어침묵 묵움직일 동고요할 정몸 체안정 안그러할 연 )

어묵동정체안연 /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하게 되리라

 

영가스님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조계에서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스승에게 확실한 깨달음에 대한 증명을 받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함이 없이 하게 된다

고요하고 깊어진 마음 자리가 바로 참선이다

행주좌와(行走坐卧), 어묵동정 (語默動靜의 상태즉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에서 또 말하고침묵하고움직이고고요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본체가 편안하니 아무 걸림이 없다


혜능선사 이후 수 많은 선의 대가들이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마조스님이 가장 출중 했다고 알려진다

마조도일(马祖道一 709~788 스님이 깨닫기 전에 아주 열심히 참선을 하며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악회양(南岳怀让 677744) 선사가 곁에 와서 보더니 물었다.

그대는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 가?”

마조는 답했다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답을 들은 남악회양 선사는 어디서 벽돌 하나를 가져 왔다.

그리고는 마조스님 옆에서 벽돌을 갈기 시작했다.

마조는 남악회양의 이상한 행동에 묻기 시작했다,.

스님은 지금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시렵니까?”

이걸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네.”

아니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하며 마조는 어이가 없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될 수 없다면그대는 어찌 좌선을 한다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말에 마조는 깨닫는 바가 생겼다.

그럼 어찌 해야 합니까?” 마조는 물었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다앉아 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이 머무르지 말아야 한 다네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 부처가 있는데 그대는 어찌 좌선에 집착하는가?

수레를 칠 것인가소를 칠 것인가?”


<일일 소견>

묵묵히 좌선을 한다고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무엇을 칠 것인가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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