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15일차
<遣有沒有/견유몰유/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從空背空/종공배공/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진다>
성현들은 우리의 마음이 극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래서 중도니 중용이니 하는 도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중도는 결코 양 극단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도는 위치나 좌표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도를 추구한다면서 위치를 찾으려 하니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양 극단은 구조적으로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 극단을 버려서는 안된다.
버릴 수도 없다.
그 ‘한 가지’라 불리는 일종(一種)을 알려면 양 극단을 버려서는 안된다.
중도를 알려면 양 변을 배척해서도 안된다.
견유몰유(遣有沒有)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종공배공(從空背空)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진다
있음과 공함.
있음이란 ‘상(相)’을 말한다.
금강경에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사상(四相)이라고 했다.
내가 있다는 상, 남이 있다는 상, 중생이라는 상, 목숨이 있다는 상을 일반적인 사상에 대한 설명이다.
금강경에서도 이 네 가지 상이 모두 공(空)하다 고 말한다.
즉 반야심경의 ‘*오온(五蘊)이 공(空)하다’ 처럼 금강경은 *사상(四相)이 공(空)하다고 한다.
신심명의 이번 구절은 참으로 독(毒)하다.
있음도 아니고 공함도 아니라고 못을 박아 버린다.
그 어떤 용납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분별하지 말고, 걸리지 말라는 뜻을 앎에도 이 구절에서 또 흠찟 놀라게 된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상에도 머물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이든 금강경이든 그리고 신심명이든 불교에서는 그 어떤 상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안다는 생각, 내가 모른다는 생각, 나 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그 어떤 대상도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 내리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나’ 라는 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나’라는 껍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척 부드럽다.
이것도 저것도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현재 신심명은 그 모든 걸 깨부수고 있다.
이제 ‘나’ 가 없는 ‘무아’의 단계로 접어들 차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매서운 소리 바람, 사실은 부드러왔다.
이제 부터는 더욱 깊어지는 공부로 들어간다.
주:遣有:버릴 견, 있을 유: 있음을 버린다.
沒有:잠길 몰, 있을 유 : 있음에 잠긴다. 즉 있음에 빠져 버린다.
從空: 쫓을 종, 빌 공: 공함을 쫓게 되면
背空:등 배, 빌 공: 공을 등지게 된다.
*五蘊(오온): 존재를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으로 물질적 형태, 느끼는 감각, 지각,행동,의식 같은 요소가 있어 ‘나’ 라는 인식을 하게 됨
*四相(사상):아상 (我相)·인상 (人相)·중생상 (衆生相)·수자상 (壽者相)으로 우리가 집착하는 네 가지 상을 뜻함.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