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50일차
<萬法齊觀/만법제관/만법이 다 현전함에
歸復自然/귀복자연/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현생이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애를 말한다.
과거생이란 현생 이전의 생을 뜻한다.
미래생은 현생 이후의 생을 일컫는다.
불교는 전생을 기정 사실화 한다.
과학적으로 현생 이전에 전생이 확실히 있다고 증명할 수는 없으나 불교도들은 전생을 믿는다.
그래서 그 전생을 돌고 도는 윤회 또한 자연적으로 믿게 된다.
그러게 된 연유는 인과와 업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과는 인연을 낳고, 인연은 업을 형성한다.
그 업은 내 미래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과거생과 현생 그리고 미래생까지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과를 무시하고 업을 하찮게 여긴다면 불교도가 아니다.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인과를 믿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인과가 부처는 아니다. 부처는 인과의 구조를 파헤쳐고, 그 구조에서 벗어났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계를 업에 의해 돌고 도는 육도윤회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려줬다.
바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길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단 한생의 바램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전생을 통한 발원과 수행이 병행되어야 겨우 이룰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을 발견해낸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 부처 조차도 500생의 전생을 겪어다고 한다.
그럼 대답 한번 잘못한 인연의 업보로 여우가 되었던 노인의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
불매인과(不昧因果)즉, 인과에 메이지 말라는 말은 말은 경전에서는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풀이를 한다.
인과는 깜깜한 어두운 진실이 아니다.
인과의 법칙이 마치 미신처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인과의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인과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인과에 떨어지느냐 안 떨어지느냐 가 아니라, 그 인과에 얽매이는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있다.
몸이 여우가 되든, 소가 되든, 개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러한 인과에서 자유로운가를 물어야 한다.
심약불이(心若不異)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일여(萬法一如) 만법이 한결 같느니라
일여체현(一如體玄) 한결 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
올이망연(兀爾忘緣)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만법제관(萬法齊觀) 만법이 다 현전함에
귀복자연(歸復自然)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만가지 법은 하나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하나의 마음을 제대로 지켜볼 수 있다면 인과든, 업이든 두렵지 않게 된다.
하나의 마음 즉, 내 근본이 되는 마음을 제대로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생, 현생, 미래생을 알려면 내 현재 마음부터 지켜봐야 한다.
관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만 가지 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주: 萬法: 일만 만, 법 법: 만법이
齊觀: 모두 제, 지켜볼 관: 모두 지켜 봄에
歸復: 돌아갈 귀, 돌이킬 복 : 돌이켜 돌아감이
自然: 스스로 자, 그러할 연 : 스스로 그러하게 된다. 즉, 자연스럽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