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51일차
<泯其所以/민기소이/그 까닭을 없이 하여
不可方比/불가방비/견주어 비할바가 없음이라>
관(觀) 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새(隹: 새 추)가 풀(草: 풀 초) 들 사이에서 주둥이 (口: 입구)로 쪼으며 보는(見:볼 견) 것이다.
새가 부리로 먹이를 쪼으려면 먹이가 보여야 한다.
견(見)은 보려는 의지가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새가 먹이를 구하는 수단은 주둥이 부리이지만 그 부리가 아무렇게나 쪼을 수는 없다.
먹이가 보여야 한다.
그래서 관이란 능동과 수동이 함께 작용하는 행이다.
견(見)이 수동적으로 보여지는 것, 간(看)은 보고자 노력하는 능동이라면 관(觀)은 보여지는 것을 더욱 깊이 세밀히 보려는 의지가 포함된 것이 아닐까.
마음 공부에서 견이나, 간이라 하지 않고 관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좀 더 세심한 의지 작용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에게 먹이를 구함은 생존이다.
새의 주둥이는 생존의 도구이다. 죽지 않기 위해 온 부리에 집중해 먹이를 쪼아 먹어야 한다.
수행자에게 관은 바로 온 집중을 다해 깊이 몰입해야 하는 새의 부리와 같다.
내 안의 마음 속에 담겨진 수 많은 먹이들을 쪼고 또 쪼아야 한다.
결국 관한다 함은 바로 수행자에게는 치열한 몸 부림의 수행이다.
그러나 관은 내가 보려고만 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먼저 내 마음의 형상이 스스로 보여져야한다.
그것은 내 의지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다.
만법제관(萬法齊觀) 만법이 다 현전함에
귀복자연(歸復自然)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민기소이(泯其所以) 그 까닭을 없이 하여
불가방비(不可方比) 견주어 비할바가 없음이라
신심명의 이 구절은 관의 깊이에서 돌아가는 도리를 말하고 있다.
만법을 모두 관할 수 있는 경지라면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도 없다.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만 알 뿐이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즉 깨친 경지에서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경계로 알 수 없다.
깨달음은 구하는 것이라고 말 하지만 사실은 구한다고 얻을 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 찾아와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
오직 관 할 뿐...
주: 泯其: 면할 민, 그 기: 그것을 면하여
所以: 바 소, 까닭 이: 까닭을 즉, 이유를
不可: 아닐 불, 가히 가: 가히 아니다.
方比: 모 방, 견줄 비 : 견주어 비하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