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2 대한민국 스토리DNA 27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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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작가는 결론을 어떻게 내릴까? 어찌나 궁금하던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힘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선뜻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박정희대통령은 핵을 개발하려 했고, 

그로 인해 저격 당했다는 이야기에 나의 눈이 똥그랗게 되었다.

북한은 동포이며,

일본은 그런 나라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소제목이 이 책의 주제이며, 결론이 아닐까!

<거룩한 용서>, 이만하면 정말이지 <거룩한>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이 세상이 추구해야 하는 이념은 <거룩한 용서>가 아닐라나!

이 책의 우수함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기보다는 그래도 거룩한 용서가 지배하는 세상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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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 대한민국 스토리DNA 27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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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후반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반공교육을 많이 받았다.

북한 괴뢰군, 무장간첩 등의 단어들이 주는 두려움은 반공방첩 교육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했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던 이승복 어린이를 생각하면서 같은 어린이였던 나는 얼마나 북한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는지 모른다.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던 나는 성인을 한참 넘긴 어떤 날 김일성<주석> 이라는 호칭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괴뢰군 앞잡이 김일성>으로만 배웠던 내게 김일성 다음에 오는 <주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은, 나는 거짓을 배웠던가? 라는 비약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런 비약을 여기서 또 만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핵을 개발하려 했었다니!

천인공노할 김일성에서 부드럽고 묵직한 인품의 김일성이라니!


소설은 허구인데, 등장인물이 역사적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르겠다. 


1993년에 이런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도 경이롭고, 당시 작가의 나이는 더욱 경이롭다.

지금 읽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데 출판 당시 일으켰을 센세이션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나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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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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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잡아보는 책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될 줄이야!!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은 기행문일거라 생각했다. 


수도원을 찾아가는 여정, 

수도원의 수도사들, 

수녀님들, 

깊어질대로 깊어져 아름다운 수도원 건물과 그 건물의 역사, 

그에 걸맞을 풍광들, 

인내와 헌신, 희생, 겸손, 봉사, 사랑, 은혜, 축복 등등 

뭐 이런 이야기와 단어들을 기대했는데, 

내가 읽은 것은 관심없는 한 여자의 사생활과 그 사생활에 대한 그 여자의 징징거림 뿐이었던 듯 싶다.


지인이 읽어보라고 주신 책이 아니었다면 초장에 벌써 덮어버렸을텐데, 

책 표지의 아름다운 사진이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게는 해 주신 것 같다.


"세상 끝의 집"이란 제목으로 봉쇄수도원에 대한 tv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때의 그 충격과 감동은 영화 "위대한 침묵"까지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들었을때는 들떠있었다.

아, 다시 그 수도원이라니!!!


그런데 웬걸!

역시 <고등어>를 읽었을 때의 그 느낌, 뭔가 어슬펐던 그 느낌과 비슷해서 그녀의 책은 나와는 잘 맞지 않나 싶다.


책 표지의 사진만 봐도 아름다운 이 수도원을 어찌 감히 그녀의 어줍잖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생활과 연결지어서 내내 징징대며 글을 적을 생각을 했을까! 

하느님께 <어찌 감히!>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던가,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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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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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예수는 없다, No such Jesus!

이 책의 제목이 무척 적절하다 싶어 백번 공감하게 된다.

 

친구가 성경책을 선물로 주어서 창세기부터 읽다가 사사기에 와서 결국 덮어버렸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정복자이며, 모든 사람을 죽이면 신이라 했던가!

하느님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그저 죽여 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온화한 사랑의 신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쳐다볼 수가 없다.

그의 손과 발에 박힌 못, 가시관들은 곧 나의 고통이 되어서 잔인한 인간의 포악만이 느껴질 뿐이다.

예수님은 빼고 단지 십자가만으로는 상징이 안되는 것일까?

 

찬송가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러나 간혹은 그 가사가 전투적일 때도 많아서 의아하다.

 

타종교는 배척하고 오직 본인의 종교만이 구원이라 말하며 나를 포섭하기위해 전도를 시도하는 교인들은, 교인이 아닌 나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로 인한 그들의 설득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간 가져온 이러한 나의 의문들을 일축하고 이제 다시 성경책 읽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모든 신앙인들의 필독서로 꼽아야할 것 같다.

철수를 비롯해 허스키와 진돗개 등등의 예시로 든 이야기들은 무척 설득력이 있어 보였고, 전체적인 설명이 상당히 쉬운 말로 되어있어서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은 이 책의 백미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김형석 교수의 책들을 읽고 예수의 부활을 믿었듯이, 이런 훌륭한 책들이 나의 미혹을 끊어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올바른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쌓여간다면 참 좋겠다.

 

그런 예수는 없고,

그런 부처도 없다.

 

 

 

 

 

 

 

*우리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이 내 인간적인 생각에 들어와 구체화되었을 때는 이미 순수한 의미로서의 신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내 특수 입장에서 내 식대로 이해한 신의 뜻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어느 한 가지 일에 대해 내가 가진 신의 뜻은 다른 사람이 이해한 대로의 신의 뜻과 다를 수도 있고, 또 정면으로 상치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은 모든 것이 거울로 보는 것과 같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신의 뜻을 밝게 알고 싶으면 고요한 중에 기다리는 자세, 내 뜻을 비우는 일에 더욱 정진할 일이다.

 

*틱낫한 스님은 교회에서 예수님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만 보이는 것은 예수님께 좀 미안한 일이 아니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나무 밑에서 조용히 좌선하는 모습을 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이웃이, 그리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나도 분담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일이다.

 

*신앙은 힘입니다. 말이나 생각 또는 사상이 아니며, 지식이 아닙니다. 이론도 아니고 학설도 아닙니다. 신앙은 또한 述도 아니요 방편도 아닙니다. 신앙은 인간을 살리는, 구원하는 힘입니다. 나는 말로써 영혼을 구원했다거나 사상이나 지식이나 이론이나 학설이나 무슨 술이나 어떤 방편이 한낱 영혼을 구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살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들을 뿐 아니라 보았습니다. 볼 뿐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죽을 자로 살게 하는 것은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힘입니다. -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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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라, 나 이 생에도 그대를 만났네
덕현 지음 / 법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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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이나 뭔 소설을 읽은 듯한 몽롱함이 자리한다.

숨김없이 거침없는 스님의 글들에서 어떤 희열이 느껴지는 것은 뭘까?

법정스님의 글들에서 느꼈던, 남자가 오히려 여성보다 훨씬 더 섬세할 수 있다는 것을 덕현스님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던가, 말투도 비슷한 것 같다.

 

수행공동체, 법화림, 아~ 나도 가보고 싶어라.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자기도 출가하고 싶다고 하면서 도대체 언제가 출가를 결행해야 할 결정적 시점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출가란 마치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지, 자기가 할까 말까 하는 생각이 추호라도 남아있으면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는 치명적인 전환의 계기들이 여기저기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를 덮친다.

 

*행복이란 간단히 말해 만족감이다. 만족이란 외부적인 조건만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내면이 감지하는 속일 수 없는 느낌이다. (...) 만족감의 느낌이 차고 넘칠 때 일어나는 느낌이 '감사함'이다. (...) 내면에서 행복감이 일어 넘쳐흐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분에 맞게 그릇을 줄여야 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거창한 무엇인가를 찾아

어딘가로 허겁지겁 떠나려 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어도 인생은 빈 여행길임을 알고

그 중심에 고요한 휴식이 있는 사람,

마치 침묵의 나무그늘처럼

지친 나그네의 땀 들이고 쉬게 하는 사람,

번지르르하고 장황한 말을 늘어좋기보다

한번 멋진 미소를 날려

열린 가슴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게 하는 사람.

열매를 너무 탐내지 않고

진정 꽃답지만 스스로 꽃 대신 꽃대가 되어도 좋고

 진흙탕에 더 깊이 내리는 뿌리여도 좋다고 여기는 사람.

소유와 쟁취에 서툴고 더딜지라고,

다 주고 남은 것을 슬기롭게 쓰고

결핍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

누가 뭘 잘하면 함께 즐거워할 줄 알지만

너무 잘하기를 채근하지 않으며

자기가 뭘 못해도 그냥 함께 괜찮은 사람.

생각해보면 모래서 샇기 같은 이런 덧없고

시시한 일에도 선뜻 동참하여

서툴러도 기쁘게 일하며

일할 때 얼굴이 빛나는 사람.

썩 좋은 길이 아니어도 바로 나와 함께 가는 것을 좋아라 하는,

길이 틀려서 되돌아도는 동안에 오히려 한번 더 손잡아주는,

다시 길 찾고 있을 때

자기가 아는 길을 우월감 없이, 될수록 표시 안 나게 가르쳐주는,

그냥 동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승인 사람.

너무 멋진 동행 속에서

목적지와 방향조차 별 의미 없어지게 하는,

그리하여 이 생사의 포행길에서

마침내 그를 위해

천하를 버리게 되는 사람

나를 잊게 하는 사람, 죽여주는 사람.

 

*세상의 큰 행복은 그저 잘 살다가 나만큼 잘 사는 또 한 사람을 만나는 일.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이 굉장한 복은 내가 온갖 고초를 이기고 혼탁한 세류를 거슬러, 외로워도 꿋꿋이 잘 살고 있어야 예기치 않은 순간에 문득, 내게도 차례가 오는 것이다.

 

*마음이 탐욕이나 분노,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의도에 사로잡히면 본연의 고요함과 한가로움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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