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내겐 기린하면 생각하게 되는 두개의 이미지가  있다 . 하나는 학창시절 쯤 봤을 라이온 킹이라는 영화 속에서 마치 군무처럼 떼지어 맹수들을 피해 가젤들처럼  초원을 겅중겅중 그 긴 다리들로 뛰어 도망가던 장면이고  또 하나는 최근 동화였나에서 읽은 기억인데 아마도 개가 주인공이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에 잠시 스쳐가는 사랑(?)의 단역으로 , 개는 무척 진지(?)하게 애정을 갈구하지만 이 기린은 관심이 없었다 . 기린에게 관심사는 그저 생명의 양식인 질 좋은 나뭇잎이 적당한 높이에 있고 물좋고 안전한 곳을 찾으러 가는 중에 동행을 할 뿐인, 개의 애정사 따위는 아웃오브 안중에도 없고 , 알지도 못한다는 , 그런 이야길 기억하고 있다 . 그러므로 기린은 내게 어떤 거리의 이미지이다 . 높은 곳을 보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육식동물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 그렇습니까 ? 그런 , 기린입니다 . 제가 아는 기린은 ......

 

 

박민규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번째 동물 시리즈 랄까 ? 처음엔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가 욕탕에서등을  밀더니 이번엔  지하철 역에서 기린이 살포시 손을 포개 잡으며 은근하고 단호히 그렇습니까 ? 기린입니다 .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게 된다 .

 

한 쪽에선 고마워 눈물을 글썽이게 하더니 , 한쪽에선 왠지모를 서러움에 (그게 그건가?) 또 눈물을 쏟게 만들고 주절 주절 떠들게 만든다 . 더구나 그 기린을 승일은 아버지! 라고 생각하면서 ...

 

미안하단 말을 하며 한 쪽 다릴 못 쓰게 된 타조 ㅡ 같은 눈빛 , 그 회색의 먹먹한 눈빛을 얘기 할 때 . 젠장...어째서 불안한 얘감은 틀림이 없는건지 , 또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겐 어째서 무거울 뿐인 짐을 이렇게나 마구 어깨고 등이고 머리고 사정없이 짊어지게 하는 건지 ,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

승일은 방학이면 스스로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고 , 어떻게든 부모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집 안에 보탬이 되려 , 자기 만의 산수를 , 그러니까 자기 신수를 챙기는 애어른이다 . 이 어린 녀석에게 어머니는 병들어 쓰러지는 걸로 , (얼마나 가혹한 일상이었으면) 아버지는 어른아이처럼  돌연한 가출과 실종으로 보답을 해준다 .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 고등학생인 승일도 이제 진학이냐 , 취업이냐 진로 걱정을 해얄 때인데 , 오히려 생업같은 알바로 바쁘다 .

 

엄마가 쓰러지시곤 오히려 아침 1교시마져 담임이 빼주어 그 시간에 지하철에서 , 방학 내 하던 푸시맨을 한다 . 하아,,난 이런 일이 게임으로만 있는 줄 알았다 . 물론 해본적은 없는데 . 뭐 이런 게임이 다있냐 했었는데 . 게임이 현실이고 현실이 막장보다 더한 환상게임 속 같다 .

 

아버지의 등도 출근하는 온 인류의 몸통들도 사정없이 끊임없이 밀고 밀 뿐인 일 . 시급 3000원 짜리 .

그 걸 믿고 아버진 그냥 내빼신 걸까 ? 이 치열한 삶의 현장따위에서 ... 자신은 풀이나 뜯겠다고?

아 어디서 개 풀뜯어 먹는 소리 들리지 않나? 응?  승일이 우는 소리만 들린다고?  그, 그렇습니까?

아, 예예  ㅡ

밀지 마 , 그만 밀라니까 .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 왜 세상엔 '푸시맨' 만 있고 ' 풀맨' 이 없는 것인가 . 그리고 왜 , 이 열차는

삶은 , 세상은 , 언제나 흔들리는가 . 그렇게 (156,7쪽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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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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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타라ㅡ망 [ 因陀羅網 ]

<불교> 인타라가 사는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 그물 , 각 그물코마다 보주 (寶珠) 가 붙어서 다시 다른 모든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고 , 그 하나하나의 그림자 속에 다른 모든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으로 ,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하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는 일이 없음을 비유한다 .고 [비슷한 말]인타라주망 .


 

사실은 스릴러 적 반전을 기대했는데 , 그럼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로 가버리게 되고 주제를 벗어나는게 될까?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는데 , 내가 생각한 반전은 69일간 대소변을 받아오며 묵묵히 기다린 그 정체모를 남자가 원래의 범인인 거고 , 최후의 목격자를 , 기억을 확인하고 소멸하기 위해 있었다 . 랄까? 이유 따위는 ... 아,  어차피 이상한 나라로 가자고 한 건 작가니까 ......

 

하지만 나의 기대는 웃기지마 하듯 멋지게 빗나가 주는데 , 결과적으론 또 다른 살인의 시작이 된다 랄까 . 아니면 글 속 범인의 주장처럼 긴급피난 ,혹은 정당방위가 되려나? 그 아들의 처사는 ? 그나저나 이 69일 만에 깨어난 남자는 참 불운해 . 그저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을 뿐인데 , 아내가 갑자기 해산을 한다고 해서 말이지 .

 

뭐  늘 그렇듯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지 . 하필 눈이 그렇게 오는 날에 차는 왜 사고가 나고 , 하필 거기서 도움(?) 같을 걸 받을게 뭐람 .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피해자와 마주쳐 그 사단이 날게 뭐냐고 ...

어쩌면 , 이 남자의 죄는 출산 중의 아내를 위해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데 있는게 아닐까 ? 하지만 그 이상한 집의 분위기라면 (사건의 현장이 대게 그럴 것이듯 )발걸음이 쉬 떨어지진 않았을 것도 같아 . 혹시 도움이 될 지도 몰랐을 건데 ...

 

너무 극심한 공포 앞에 이성이 무너진 안주인은 남자를 범인으로 보고 달려들어 버리고 아무리 상황을 말해도 이해 될 일이 아니었지 . 도저히 그 상황에선 ......

모든 것이 범인의 계획이었는데 , 차사고로 그저 도움을 준거라고만 생각한 남자는 그 집이 범인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고마워 해 . (아 , 말이 이상하지만 그 남자 라고 해야하나 ? 범인이 돕고 범인이 함정에 빠뜨리기위해 남자를 데려오곤 가버린 상황인 것임) 곧 나타난 아들은 집 앞 언덕에 쓰러진 이 남자를 지금까지 (차사고가 심각했던 탓인지 후유증인지 장장 69일간 의식을 잃고) 보살펴 왔는데 , 남자는 전후 사정을 기억 못하고 그저 감사하며 이런 저런 부탁들을 하고 가까이 하게 돼 . 그 곁엔 이 남자가 죽이려한 이 아들의 어머니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고 호흡기만 떼면 바로 저 위로 갈 분위기이지 ...

 

인타라망은 아들이 이 남자에게 읽어주는 책의 내용인데 , 한치 앞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 나왔더라고 ... 그 내용도 재미있는데 섬뜩한 시간차 공격이라고나 할까 ... 죽음이 바로 앞에 당도하고 있는 걸 본인들은 모른다는 그런 얘기였는데 ..저 남자처럼 말이지 . 기껏 69일 만에 깨어나 기억까지 찾으니 이번엔 안주인의 아들이 복수라는 정당방위로 남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까 ...흔한 말로 인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 또 봤다고 ..죗 값보존법칙은 어딜가나 있고 !!

아ㅡ독특한 분위기의 이 작품 꽤 재미있게 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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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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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집은 역대 급에 최고의 소설들만 모은 그야말로 최고구나 ,  이제야 보는 것이 살짝 억울하고 이제라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고 고맙기도 한 ,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서둘러 생각을 적고도 싶고 아니면 두고 두고 다른 마음의 변화를 지켜보고도 싶고 , 갈등하다가 일단은 생각을 적는데 사실 적어나가면서  제대로 이 작품을 읽고 있는걸까 걱정하면서 마음이 조바심 난다 . 문장이 실시간으로 달아나는 것 같고 순간 느낀 감정이 날아가는 것 같아 도저히 잡히지 않는 표현이 될 것 같아서 ...안달이 나는 바람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 . 그렇게 읽어버린 책들이 얼마나 많고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 차마 어떤 시작조차 못하고 환상과 현상을 드러내는 문장들만 줄줄이 베껴 놓은 노트들을 보며 한숨이 나는 중이다 .

 

 

그건 마치 이 시대를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숨만 쉬며 보내고 있는 것과 같아서 , 지금의 내 모습과 또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들과 무력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듯이 애증을 진저릴내며 앓을 수 밖에 없어서 , 먹먹하고 막막하다 . 잃어버린게 있는데 뭘 잃었는지 기억이 잡힐 듯 생각속이 간지러운 그 것처럼 .

그러나 언제까지고 잃어버린 탓을 하며 살 수 만은 없어서 시침을 떼고 , 잃어버린 사실조차 없다는 듯이 살아야 한다 . 언제고 잃어버린게 뭔지 기억이 나겠거니 하면서 .

 

 

소설은  소설가 이선대의 고향 재종형님의 전화로 시작된다 . 재당숙모의 부음을 알리는 걸로 어릴 때 그의 기억에선 희미하지만 그 재당숙모가 집 안 어른들에게 어쩐지 입 밖에 꺼내면 안되는 은근한 압력의 느낌으로 남아있고 , 더 어릴 때 재당숙부가 유난히 울던 자신을 봐주었다는 이야길 들었었다 . 그 재당숙부 이름이 이봉한이고 이제는 독립유공자라고 한다 . 그 독립유공자까지 간 사연은 그야말로 기구하고 기이하다 . 그 기구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실은 이 선대 소설가에겐 열살무렵 자신이 어린마음에 거칠고 야박하고 무섭게 쫓아낸 재당숙네의 쌍둥이 형제에 대한 기억이 빚처럼 남아 있는게 더 크다 . 

 

그래서 먼 고향 고령까지 빈한한 상가까지 쫓아 내려온 것이다 . 어릴 때 빚진 마음을 털어내 보자고 , 어찌들 살았는지 서로 이야기라도 하며 털어낼 생각이었다 . 워낙에 재당숙부네가 살이가 기구했으므로 좋은 모양세로 살수는 없었을 거라고 짐작은 해가면서 영안실까지 내려오는 그에게 이봉한 인생에 대한 재종형의 반추가 이어지는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와 유신정권의 시대까지를 한달음에 쫓는다 .

 

이봉한은 일제시대에 일본유학까지 한 엘리트고 유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접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를 한다 . 그가 유별난 운동가도 아닌데도 계속된 감시로 다시 중국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그가 독립운동을 하는 사회주의 운동가도 민족주의 운동가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 그저 몸을 피해 살은 것뿐으로 조용히 살고자 하는 이에게  많은 부(富)는 형벌이었는지도 모른다 . 그게 아버지대에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임에도 어떻게든 가진게 없던 사람들은 있는 사람을 같은 처지로 만들지 않고는 못베기는 법이니까 .

 

이봉한의 아버지가 죽고  이봉한은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문중에 내어주고 자신을 것으로 하지 않는다 . 일한 만큼만 먹고 살려한 사람이었는데 시기마저 가혹해 한국전쟁이 닥치며 자신도 모르게 좌익으로 분류되서 보도연맹에 가입되고 그 때문에 죽음 앞에 섰다가 혼자 배에 총상을 맞고 살아 돌아오지만 , 와서도 죽은 사람인 채로 세월을 산다 . 이승만 정권 말에 자신의 신원을 복권해보려 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시간은 흘러  유신시대가 오고 그는 계속 죽은이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 결국 뇌졸중으로 죽는다 .

그가 죽자 애국지사로 독립유공자로 만드는데 열심으로 노력하는 장안 권속들 .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어려움이 행여 자신들에게도 묻을까 쉬쉬하고 ,  그들이 좀 더 가진 채 살았을 때는 있는 기둥시계하나까지 들어내가는 문중들이었다 . 그리고 그런 시절의 어디 쯤에 이선대와 만났던 이봉한의 쌍둥이 아들들 .  

그들은 보살피는 손 없이 귀찮은 입에 불과했고 이선대의 부친은 이봉한과의 그 간의 정 때문에 아이들을 잠시 맡기로 하지만  남자어른은 말만 맡을뿐이고 집안 여자들에겐 군입일 뿐이니 얼마나 가시 같았을지 ,  아마 그 눈치를 이선대는 알았겠지 . 집에서도 쫓아내고 싶어하는 분위기인데 차마 그럴 수 없어 한다는 것을 , 그래서 어린 나이에 철 없음을 빙자해  쌍둥이 형제를 쫓아내고 , 사십년이 지난 이제까지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재당숙모가 죽었다니 그 때의 미안함을 빌어 볼 량으로 온 것이었다 .

 

재종형이 궂이 전화까지해 안챙기던 안부에 상까지 챙기라고 하는데엔 모종의 죄의식 나누기 가 있는 셈이다 . 어른인 재종형과 문중어른들은 당시 이봉한 가족들의 어려움을 도왔거나 모른 척한 것에  또 , 죽어서도 애국지사를 어거지로 만들어 자신들이 혼자남은 재당숙모네를 떠안지 않으려는 꾀바름 .

그렇지 않으면 사실 그들이 붙여먹는 그땅들은 재당숙네 거니까 . 제 발저림에 대한 처사였달까 . 그리고 이선대는 문중어른들의 행위에 자신은 올곧은 척 속으로 재종형의 말들에 반발하며 땅을 돌려주거나 떼어주거나 세를 내어주거나 했어야하는게 아니었냐고 하는데 정작 말은 하지 않는다 . 그리고 생각난듯이 쌍둥이 형제들의 안부를 꺼내 묻는데 , 그런 그에게 재종형은 말하기를 몰랐냐 ? 그 애들 굶어 죽었는데 한다  .

그러니까 그때 자신이 쫓아낸 시점에 그들은 죽은 거였다 . 하나도 아닌 두 생 목숨이 , 굶어 죽는다니... 그 형제들의 길이 눈 앞에 그린듯이 보였다 . 보고도 안보이는 척 하는 사람들 . 떠나게 두는 사람들 ... 그리고 죽어 발견 된 것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 .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이제 또 모여서 죽은이를 애도 하는 척만 , 하는 것을 보게 된다 .

 

망연해 하는 이선대를 나는 냉정하게 볼 수가 없다 . 그는 말하자면 내가 잡으려 안달하는 그 표현의 어떤 것인듯해서  , 잃은 것이 뭐였더라 하고 기억이 날 듯 말듯 가물가물한 그 것같이 . 저도 모르게 가장 악한의 위치에 서 있었음을  기억해내게 되는 순간이 이렇듯 올까봐 , 그러나 아주 오지 않고 영영 모를까봐 더 두렵기도 한  , 이 어중간함 .

 

노릇만이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 겨우 시늉만 있었는데 , 그 시늉들이 지금의 체면이고 모양세가 되었다고 . 이 나라가 되었다고 . 그러니 그 안에 인간은 없다 . 아무도 ...시늉과 체 하는 무엇만 있을 뿐  ,

 

성석제 작가가 잃어버린 인간에서 들려주는 얘긴 어쩌면 아주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고 그저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 뿐이란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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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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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부터 바깥으로 나돌던 고모는 아닌 말로 되바라져 중학생의 나이에 가정 방문차 왔다가는 절름발이 선생님의 뒷 모습을 보곤 어쩐지 처연한 맘이 들어선 자기랑 어디로든 가자고 하고 그 길로 가출을 한다 . 참 당돌하고 주관 빠른 열 여섯 아닌가 ? 아주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데도 조부는  마을의 면장을 지내는 터라 집안사람들은 말 그대로 조신을 타고 나야했는데 하필 경자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고모는 박색에 마르고 볼품도 없어서 사람 취급을 못받은 탓에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란 소리까지 듣는다니 가출이 놀라울 것도 없겠다 . 층층이 잘난 형제들까지 모르는 척 , 없는 사람인 척 하는 집에서 있고 싶었을까 ,  그렇게 따라간 선생의 집에서 100일을 채우려고 애쓰다 모진 시어머니 자리에 선생까지 마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뒤부턴 스스로를 부엌에 유폐 한다 . 십여년의 시간을 . 세간의 소문이 잠잠 해질 때까지 집에서 꼼짝도 못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 나이 스물여덟이 되서 충남 보령의 역부에게 시집을 간다 .

그리고 시집 갈  당시 여덟살의 나이던 조카에게 느닷없이 삼십년만에  편지 한장을 띄워 한달정도를 머물 곳을 찾아 달라 부탁을 하는 고모 . 노인이 다되서  혼자하는 여행에 어떤 의문을 가질 법한데 부러 모른 척을 하는지 , 조카는 이유나 의도를 묻지를 않는다 .  그 집안 사람들은 예부터 원래 뭘 묻는 법이 없는지 , 고모에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들하나가 있을 뿐이고 , 분당에 아파트도 하나 장만을 해두어서 먹고사는덴 별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 역시 혼자 일만하고 산 노년이 외로운 거다 . 곁에 누구라도 좀 있으면 싶은 , 그게  자식 아닌 조카라도 지난 삶을 술한잔 담배 한대 나누며 털어 낼 수 있다면 , 하고...

아들은 어릴때 지극한 효자였다 . 똑똑하고 착하고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 갑자기 한센병이 들더니 불구가 되선 자살을 했다 . 어찌 어찌 마음 맞아 정붙인 홀아비 하나는 곗돈을 들고 날라서 그 여파를 다 뒤집어 쓰는 바람에 밤도망까지 해야했고 , 그래도 아들은 잘 키워 유명회사에 들어가 의사집안 딸과 결혼도하고 해외발령에 영주권까지 얻어 살고 있다고 한다 . 지금은 명절에 전화나 오는 정도라고  , 그런 거다 . 딸과 달리 . 물론 아닌 아들도 있지만 ,  그런데 이 나이든 고모가 유독 마음써 찾은 조카는 어릴 때 그나마 외로운 집구석에서 얼굴을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곤 하던 아이라 그 인연으로 먼 제주까지 서슴없이 온다고 ...어딜 가려니 찾아갈 사람조차 없어서 . 가족이라곤 아무도 그녀를 사람취급도 않으니 ,  자신의 신세를 부리게 하고 싶지 않고 , 괜한 말이나 나올 만남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간다 . 자 , 그런데  제목이 왜 탱자일까 ...?

가시만 많고 먹지도 못하는 것을 , 이유는 그 절름발이 선생이 고모를 돌려보내며 탱자를 들려주곤 그게 노랗게 익을 즘엔 찾으러 가마고 약속을 했었단다 . 처음엔 , 집에 돌아왔을때 끝낸 것이 아닌 달래져서 돌려 보내진 형태였는데 , 몇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걱정되 찾아가 보니 소리도 없이 선생은 어머니가 자리 지어준 여자와 벌써 혼인을 하고  둘째가 곧 나올 터라는 얘길 듣게 되버린다 , 돌아서는 그녀에게 선생은 학교 울타리의 탱자를  따서 쥐어주며 그것이 익을 즘에 한번 가겠다고  ,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탱자는 고모의 퍼렇게 멍든 마음이 누렇게 가라앉는 , 시간의 약이었다 .

또 여기서 저기로 옮겨 심어져 조금은 변화를 바라는 시간이기도 했고 , 해서  그 절름발이 선생은 약속대로 고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와 잘살라고 하고 돌아 갔다 . 그리고  고모는 이 여행을 나선 길에 그 선생의 고향엘 한번 더 찾아간다 . 수소문 끝에 마주한 선생은 퇴직해 아내는 암으로 먼저 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살고 있더라고 , 그러며 다시 합치자고 하더라며 ,  조카에게 그런 얘기들을  제주도의 넓은 배추 밭에 주저 앉아 통곡을 하고 나서 멋쩍게 해치운다 . 조카에게 탱자 몇개를 주면서 .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 ."

하는데 , 귤화위지 (橘化爲枳) 를 생각하고 놀라는 조카,  배움이 짧은 고모라고 생각한 탓도 탓이겠지만 집 안에 어쩔 수없이 흐르는 피 같은 걸 느낀게 아닐까 ?

탱자나무의 가시 같은 어떤 뾰족한 부분을 , 그내력을 . 다 늙어 귀찮은 노인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 고모의 그 긴 세월에서 학문만이 가르침의 세월은 아닌 것임을 순간 깨닫게 된 것은 ... 그럼에도 , 고모의 몸에 철철 베인 담뱃진 같은 고독은 어쩔 수 없다 . 그때엔 몰랐으나 조카를 졸라 노지의 귤을 기어이 가져가는 고모는 이후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 몇 개월 뒤 아버지와 전화 통활 하다 고모가 폐암으로 보름 전에 부음한 것을 듣게 되고 , 자신에게 다녀간 것이 마지막 인사를 겸한 여행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다  .  고모가 제주에서 가져간 귤은 무엇이 되었을까 ... 탱자 ? 가라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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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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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더는 놀라울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냐면 그렇지도 않고 , 젊은 신입사원을 보면 그 팽팽한 긴장에 피로한 느낌마저 드는 중견의 성공한 출판사 사장의 죽은 감정,감각세포가 어떻게 일부 되살아 나는가 하는 얘기려나? 성공한 사람일수록 확신에 넘치고 확신이 넘칠수록 단조로운 세계가 된다고 , 뭐, 글 속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한다 .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넣어 보면 단순해진다고"

 

그 단순한 삶을 사는 이에게 무슨일이 생겼기에 심경에 변화가 오는걸까 ? 작가는 유리 가가린을 등장시킨 습작을 집어 넣어 교차시켜 표현했지만 , 한마디로 하면 오랜 지기의 떠남 , 아닐까? 젊을 적부터 자신의 수치스런 부분부터 업적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안다면 아는 J국장은  더 늦기 전에 이 회사라는 건물 덩어리가 되기 전에 떠난다 . 그러니까 이 사장처럼 무감각증이 오기 전에 가정이며 회사를 버리고 , 우주로 간 유리 가가린처럼  ......

 

멀리서 자신을 보고자 떠났기 때문에 . 뭔가를 잃어야 빈 자리에 대한 돌아봄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랜 시간을 같이 한 사람이라면 더 그럴거란 뻔한 생각을 해본다 . 그런 뻔한 일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가 젊은 날의 회고와 습작 소설의 교차인 셈인데  , 어쩐지 씁쓸하니 웃음도 나고 이해도 가고 그랬다 .

 

젊은 날엔 또 , 저들의 시절엔 화두가 저랬구나... 실은 모두 곤궁한 시기지만 잘도 시침을 떼고 , 그저 잘도 이상과 이론을 말하던 , 자유나 혁명 , 변절과 배신을 말하면서 다리는 덜덜 떨면서 속으론  '에잇 오늘 술값은 누군가 내겠지 '하고 나 몰라 해도 어떻게든 되던 , 그러면서 저 먼 나라 소비에트의 과거 유리 가가린의 걱정을 하는 치기 .

유리 가가린은 분명 푸른 별을 보고 나라가 없어졌든 상관이 없었을 거다 . 소비에트는 없어지고 소련은 그의 기록들을  쉬쉬 했다지만 , 실제로 갔다온 최초의 1인인 그는 보고 느끼고 온 사람으로의 생생한 체험을 그들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빼앗을 수도 없는거니까 , 나라가 없어진다고 해도 벅찬 인간으로의 회한의 감정은 있었겠지만 , 그 광활한 우주를 느낀 고독한 과정을 체험한 인류로서 국적따위가 문제였을까 ?

 

그걸 문제로 한건 그 나라의 입장일 뿐이지 , 개인의 입장이었으리란 법은 없다 . 멀리서 보면 그저 푸른 별일 뿐인 지구가 들여다 보면 지구이고 , 더 자세히 끌여당겨 들여다보면 사람이며 나라며 복잡한 인과들이 보이듯 , 감각들도 멀리하면 멀어지기 마련이고 , 가까이 당기려들면 훌쩍 15년이란 시간도 접은 부채의 면들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우리가 잃었다고 하는 부분들을 생각해보자면...

 

도무지 기억에 없을 것 같은 시간이 문득 , 갑자기 찾아 올때가 있다 . 원래 있던 거니까 오는 것이다 .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찾으려 들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점점 구석으로 구석으로 그러다가 쓰레기 장으로 그런 식이 되는 거지 . 그러니 찾으려 하면 , 있다 . 단 한번 타고 꺼질 양이라도 ...

 

아, 다음 책으로 푸른 별을 나는 찾으러 가야겠다 . 읽은 느낌이나 생각의 반의 반도 못 적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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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13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멀리서 보면 희극..가까이서 보면 비극..채플린의 명언이 생각나네요.

[그장소] 2016-12-13 23:50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읽고 났을때..저도 그 문구가 생각났었는데..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