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번 작품집은 역대 급에 최고의 소설들만 모은 그야말로 최고구나 ,  이제야 보는 것이 살짝 억울하고 이제라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고 고맙기도 한 ,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서둘러 생각을 적고도 싶고 아니면 두고 두고 다른 마음의 변화를 지켜보고도 싶고 , 갈등하다가 일단은 생각을 적는데 사실 적어나가면서  제대로 이 작품을 읽고 있는걸까 걱정하면서 마음이 조바심 난다 . 문장이 실시간으로 달아나는 것 같고 순간 느낀 감정이 날아가는 것 같아 도저히 잡히지 않는 표현이 될 것 같아서 ...안달이 나는 바람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 . 그렇게 읽어버린 책들이 얼마나 많고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 차마 어떤 시작조차 못하고 환상과 현상을 드러내는 문장들만 줄줄이 베껴 놓은 노트들을 보며 한숨이 나는 중이다 .

 

 

그건 마치 이 시대를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숨만 쉬며 보내고 있는 것과 같아서 , 지금의 내 모습과 또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들과 무력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듯이 애증을 진저릴내며 앓을 수 밖에 없어서 , 먹먹하고 막막하다 . 잃어버린게 있는데 뭘 잃었는지 기억이 잡힐 듯 생각속이 간지러운 그 것처럼 .

그러나 언제까지고 잃어버린 탓을 하며 살 수 만은 없어서 시침을 떼고 , 잃어버린 사실조차 없다는 듯이 살아야 한다 . 언제고 잃어버린게 뭔지 기억이 나겠거니 하면서 .

 

 

소설은  소설가 이선대의 고향 재종형님의 전화로 시작된다 . 재당숙모의 부음을 알리는 걸로 어릴 때 그의 기억에선 희미하지만 그 재당숙모가 집 안 어른들에게 어쩐지 입 밖에 꺼내면 안되는 은근한 압력의 느낌으로 남아있고 , 더 어릴 때 재당숙부가 유난히 울던 자신을 봐주었다는 이야길 들었었다 . 그 재당숙부 이름이 이봉한이고 이제는 독립유공자라고 한다 . 그 독립유공자까지 간 사연은 그야말로 기구하고 기이하다 . 그 기구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실은 이 선대 소설가에겐 열살무렵 자신이 어린마음에 거칠고 야박하고 무섭게 쫓아낸 재당숙네의 쌍둥이 형제에 대한 기억이 빚처럼 남아 있는게 더 크다 . 

 

그래서 먼 고향 고령까지 빈한한 상가까지 쫓아 내려온 것이다 . 어릴 때 빚진 마음을 털어내 보자고 , 어찌들 살았는지 서로 이야기라도 하며 털어낼 생각이었다 . 워낙에 재당숙부네가 살이가 기구했으므로 좋은 모양세로 살수는 없었을 거라고 짐작은 해가면서 영안실까지 내려오는 그에게 이봉한 인생에 대한 재종형의 반추가 이어지는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와 유신정권의 시대까지를 한달음에 쫓는다 .

 

이봉한은 일제시대에 일본유학까지 한 엘리트고 유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접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를 한다 . 그가 유별난 운동가도 아닌데도 계속된 감시로 다시 중국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그가 독립운동을 하는 사회주의 운동가도 민족주의 운동가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 그저 몸을 피해 살은 것뿐으로 조용히 살고자 하는 이에게  많은 부(富)는 형벌이었는지도 모른다 . 그게 아버지대에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임에도 어떻게든 가진게 없던 사람들은 있는 사람을 같은 처지로 만들지 않고는 못베기는 법이니까 .

 

이봉한의 아버지가 죽고  이봉한은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문중에 내어주고 자신을 것으로 하지 않는다 . 일한 만큼만 먹고 살려한 사람이었는데 시기마저 가혹해 한국전쟁이 닥치며 자신도 모르게 좌익으로 분류되서 보도연맹에 가입되고 그 때문에 죽음 앞에 섰다가 혼자 배에 총상을 맞고 살아 돌아오지만 , 와서도 죽은 사람인 채로 세월을 산다 . 이승만 정권 말에 자신의 신원을 복권해보려 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시간은 흘러  유신시대가 오고 그는 계속 죽은이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 결국 뇌졸중으로 죽는다 .

그가 죽자 애국지사로 독립유공자로 만드는데 열심으로 노력하는 장안 권속들 .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어려움이 행여 자신들에게도 묻을까 쉬쉬하고 ,  그들이 좀 더 가진 채 살았을 때는 있는 기둥시계하나까지 들어내가는 문중들이었다 . 그리고 그런 시절의 어디 쯤에 이선대와 만났던 이봉한의 쌍둥이 아들들 .  

그들은 보살피는 손 없이 귀찮은 입에 불과했고 이선대의 부친은 이봉한과의 그 간의 정 때문에 아이들을 잠시 맡기로 하지만  남자어른은 말만 맡을뿐이고 집안 여자들에겐 군입일 뿐이니 얼마나 가시 같았을지 ,  아마 그 눈치를 이선대는 알았겠지 . 집에서도 쫓아내고 싶어하는 분위기인데 차마 그럴 수 없어 한다는 것을 , 그래서 어린 나이에 철 없음을 빙자해  쌍둥이 형제를 쫓아내고 , 사십년이 지난 이제까지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재당숙모가 죽었다니 그 때의 미안함을 빌어 볼 량으로 온 것이었다 .

 

재종형이 궂이 전화까지해 안챙기던 안부에 상까지 챙기라고 하는데엔 모종의 죄의식 나누기 가 있는 셈이다 . 어른인 재종형과 문중어른들은 당시 이봉한 가족들의 어려움을 도왔거나 모른 척한 것에  또 , 죽어서도 애국지사를 어거지로 만들어 자신들이 혼자남은 재당숙모네를 떠안지 않으려는 꾀바름 .

그렇지 않으면 사실 그들이 붙여먹는 그땅들은 재당숙네 거니까 . 제 발저림에 대한 처사였달까 . 그리고 이선대는 문중어른들의 행위에 자신은 올곧은 척 속으로 재종형의 말들에 반발하며 땅을 돌려주거나 떼어주거나 세를 내어주거나 했어야하는게 아니었냐고 하는데 정작 말은 하지 않는다 . 그리고 생각난듯이 쌍둥이 형제들의 안부를 꺼내 묻는데 , 그런 그에게 재종형은 말하기를 몰랐냐 ? 그 애들 굶어 죽었는데 한다  .

그러니까 그때 자신이 쫓아낸 시점에 그들은 죽은 거였다 . 하나도 아닌 두 생 목숨이 , 굶어 죽는다니... 그 형제들의 길이 눈 앞에 그린듯이 보였다 . 보고도 안보이는 척 하는 사람들 . 떠나게 두는 사람들 ... 그리고 죽어 발견 된 것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 .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이제 또 모여서 죽은이를 애도 하는 척만 , 하는 것을 보게 된다 .

 

망연해 하는 이선대를 나는 냉정하게 볼 수가 없다 . 그는 말하자면 내가 잡으려 안달하는 그 표현의 어떤 것인듯해서  , 잃은 것이 뭐였더라 하고 기억이 날 듯 말듯 가물가물한 그 것같이 . 저도 모르게 가장 악한의 위치에 서 있었음을  기억해내게 되는 순간이 이렇듯 올까봐 , 그러나 아주 오지 않고 영영 모를까봐 더 두렵기도 한  , 이 어중간함 .

 

노릇만이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 겨우 시늉만 있었는데 , 그 시늉들이 지금의 체면이고 모양세가 되었다고 . 이 나라가 되었다고 . 그러니 그 안에 인간은 없다 . 아무도 ...시늉과 체 하는 무엇만 있을 뿐  ,

 

성석제 작가가 잃어버린 인간에서 들려주는 얘긴 어쩌면 아주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고 그저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 뿐이란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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