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른 나이부터 바깥으로 나돌던 고모는 아닌 말로 되바라져 중학생의 나이에 가정 방문차 왔다가는 절름발이 선생님의 뒷 모습을 보곤 어쩐지 처연한 맘이 들어선 자기랑 어디로든 가자고 하고 그 길로 가출을 한다 . 참 당돌하고 주관 빠른 열 여섯 아닌가 ? 아주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데도 조부는  마을의 면장을 지내는 터라 집안사람들은 말 그대로 조신을 타고 나야했는데 하필 경자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고모는 박색에 마르고 볼품도 없어서 사람 취급을 못받은 탓에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란 소리까지 듣는다니 가출이 놀라울 것도 없겠다 . 층층이 잘난 형제들까지 모르는 척 , 없는 사람인 척 하는 집에서 있고 싶었을까 ,  그렇게 따라간 선생의 집에서 100일을 채우려고 애쓰다 모진 시어머니 자리에 선생까지 마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뒤부턴 스스로를 부엌에 유폐 한다 . 십여년의 시간을 . 세간의 소문이 잠잠 해질 때까지 집에서 꼼짝도 못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 나이 스물여덟이 되서 충남 보령의 역부에게 시집을 간다 .

그리고 시집 갈  당시 여덟살의 나이던 조카에게 느닷없이 삼십년만에  편지 한장을 띄워 한달정도를 머물 곳을 찾아 달라 부탁을 하는 고모 . 노인이 다되서  혼자하는 여행에 어떤 의문을 가질 법한데 부러 모른 척을 하는지 , 조카는 이유나 의도를 묻지를 않는다 .  그 집안 사람들은 예부터 원래 뭘 묻는 법이 없는지 , 고모에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들하나가 있을 뿐이고 , 분당에 아파트도 하나 장만을 해두어서 먹고사는덴 별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 역시 혼자 일만하고 산 노년이 외로운 거다 . 곁에 누구라도 좀 있으면 싶은 , 그게  자식 아닌 조카라도 지난 삶을 술한잔 담배 한대 나누며 털어 낼 수 있다면 , 하고...

아들은 어릴때 지극한 효자였다 . 똑똑하고 착하고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 갑자기 한센병이 들더니 불구가 되선 자살을 했다 . 어찌 어찌 마음 맞아 정붙인 홀아비 하나는 곗돈을 들고 날라서 그 여파를 다 뒤집어 쓰는 바람에 밤도망까지 해야했고 , 그래도 아들은 잘 키워 유명회사에 들어가 의사집안 딸과 결혼도하고 해외발령에 영주권까지 얻어 살고 있다고 한다 . 지금은 명절에 전화나 오는 정도라고  , 그런 거다 . 딸과 달리 . 물론 아닌 아들도 있지만 ,  그런데 이 나이든 고모가 유독 마음써 찾은 조카는 어릴 때 그나마 외로운 집구석에서 얼굴을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곤 하던 아이라 그 인연으로 먼 제주까지 서슴없이 온다고 ...어딜 가려니 찾아갈 사람조차 없어서 . 가족이라곤 아무도 그녀를 사람취급도 않으니 ,  자신의 신세를 부리게 하고 싶지 않고 , 괜한 말이나 나올 만남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간다 . 자 , 그런데  제목이 왜 탱자일까 ...?

가시만 많고 먹지도 못하는 것을 , 이유는 그 절름발이 선생이 고모를 돌려보내며 탱자를 들려주곤 그게 노랗게 익을 즘엔 찾으러 가마고 약속을 했었단다 . 처음엔 , 집에 돌아왔을때 끝낸 것이 아닌 달래져서 돌려 보내진 형태였는데 , 몇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걱정되 찾아가 보니 소리도 없이 선생은 어머니가 자리 지어준 여자와 벌써 혼인을 하고  둘째가 곧 나올 터라는 얘길 듣게 되버린다 , 돌아서는 그녀에게 선생은 학교 울타리의 탱자를  따서 쥐어주며 그것이 익을 즘에 한번 가겠다고  ,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탱자는 고모의 퍼렇게 멍든 마음이 누렇게 가라앉는 , 시간의 약이었다 .

또 여기서 저기로 옮겨 심어져 조금은 변화를 바라는 시간이기도 했고 , 해서  그 절름발이 선생은 약속대로 고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와 잘살라고 하고 돌아 갔다 . 그리고  고모는 이 여행을 나선 길에 그 선생의 고향엘 한번 더 찾아간다 . 수소문 끝에 마주한 선생은 퇴직해 아내는 암으로 먼저 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살고 있더라고 , 그러며 다시 합치자고 하더라며 ,  조카에게 그런 얘기들을  제주도의 넓은 배추 밭에 주저 앉아 통곡을 하고 나서 멋쩍게 해치운다 . 조카에게 탱자 몇개를 주면서 .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 ."

하는데 , 귤화위지 (橘化爲枳) 를 생각하고 놀라는 조카,  배움이 짧은 고모라고 생각한 탓도 탓이겠지만 집 안에 어쩔 수없이 흐르는 피 같은 걸 느낀게 아닐까 ?

탱자나무의 가시 같은 어떤 뾰족한 부분을 , 그내력을 . 다 늙어 귀찮은 노인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 고모의 그 긴 세월에서 학문만이 가르침의 세월은 아닌 것임을 순간 깨닫게 된 것은 ... 그럼에도 , 고모의 몸에 철철 베인 담뱃진 같은 고독은 어쩔 수 없다 . 그때엔 몰랐으나 조카를 졸라 노지의 귤을 기어이 가져가는 고모는 이후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 몇 개월 뒤 아버지와 전화 통활 하다 고모가 폐암으로 보름 전에 부음한 것을 듣게 되고 , 자신에게 다녀간 것이 마지막 인사를 겸한 여행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다  .  고모가 제주에서 가져간 귤은 무엇이 되었을까 ... 탱자 ? 가라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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