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이 책 별로다. 우연히 형수 집에 갔는데, 형수는 책을 잘 읽지 않으나 동생은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책을 들어보는 순간 너무 깨끗하여 아직 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으나, 사회구조나 현실적 조건에서 경제란 중요하다. 단순히 경제성에서 화폐자본의 움직임만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경제성이란 연료효율부터 신체능력을 낭비하지 않음도 그렇다. 실컷 낮잠을 자다가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것 역시 경제성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단시간 내에 많은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자본주의에 그저 찬양하는 사람의 책이란 사실을 알았다. 경제학의 아버지란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도덕학자였다. 그가 주장한 <국부론>을 현대 경제학자들 중에서 많이 우려먹는데, 그것은 사기꾼이다. 애덤 스미스의 경우 경제에 윤리적 가치를 집어 넣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경제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라 했다. 비정규직이나 혹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데, 힘든 일을 하여 어떻게든 벗어나는 것에서 도저히 길이 없다면, 급여에 대한 부분에서 애덤 스미스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덤 스미스는 베이커리 가게의 빵이 잘 팔릴 것에 대해 시작하는 점이다. 빵을 사는 것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란 점이다. 빵은 먹는 것이고, 생계수단에 필수적이며, 인간의 생명을 오고가게 하는 중요한 물건이다. 빵을 사는 돈을 버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다. 그것은 이익보다 더 급한 생존성이다. 생존에 대한 노동과 이익에 대한 노동은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을 두고 윤리도덕을 무시하는 자태는 오히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적 가치를 하락 시키는 것과 같다.

 

내가 알게 된 동기는 마르크스편이었다. 이 저자는 기본적으로 철학은 모른다. 철학적 관점에서 경제를 보지 않고, 오로지 돈버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경제를 보았다. 경제학적 구조에서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가? 아니면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계로 보는가에서 이 사람은 후자로 본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잘하든 못하든 시시콜콜한 사생활의 험담하는 꼴을 보고 학자로서의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여기서 존 스튜어트 밀이 나오는데, 존 스튜어트 밀이 살던 시절 영국에 마르크스가 망명온 시절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철학에서 매우 중요한데, 조금 마르크스와 다른 개념이라도 그 근본은 비슷하다. 인간의 사회구조적인 부분을 강도의 차이에 두지, 문제점을 확연히 같이 생각했다. 어째든 존 스튜어트 밀은 제레미 벤담의 가르침과 아버지 제임스 밀의 가르침을 받은 철학자 겸 경제학자다.

 

철학의 기본없이 경제학에 두고 경제사를 말한 저자에 대해 본다면 경제는 인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경제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과 같이 오랜 기간동안 철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를 지닌 국가에서 나온 책과 이 사람의 책을 보면 감이 온다. 스탈린의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결별했는데, 그런 개념조차 모르니 그저 뚜꺼운 경제학역사서라고 보면 된다.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가 나온 점과 리카도,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영국인이니 영국의 경제에 대한 역사서적이 좋을 것이다.

 

미국이 성공한 이유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의해서다. 밀턴이나 후반에 나오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아나, 케인즈주의가 제법 괜찮았기 때문으로 안다. 그러나 경제학과 경제를 바라보는 것은 조금 다르다. 경제는 정치적인 이익이 관여하므로, 존 롤즈의 <정의론>을 조금 참조해야 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정치철학 거장으로 자유주의철학에서 기라성 같은 책이다. 물론 한국에서 롤즈는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것이다. 안타까우나. 그리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퇴임교수가 존 롤즈의 연구대가인데, 이분이 롤즈의 책을 저술할 때 전두환 시절이었다. 그 속에 자유에 대한 기본개념이 나오는데, 그 책을 번역하고, 머리말 내지 여러가지 활동을 생각하면 자신의 철학적 연구가치관을 전혀 행동하지 않은 분이다. 철학자들에서 한국은 철학이 부족한데, 이론만 가득하고 권세만 누리는 철학교수가 많은 것 같다. 차라리 <만민법>을 번역한 장동진 연세대학교 교수님 라인은 그나마 활동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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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은 책을 읽으셨네요.저도 읽고 싶은데 어려운 책을 보면 자꾸 졸리는 체질이라...ㅡ.ㅡ
그나저나 늦었지만 만화애니비평님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면 새해 복많이 받으셔용^O^

만화애니비평 2014-01-08 08:4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제가 서재의 달인인가요? 아직 몰랐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최근에 영화 <변호인>에서 노무현의 인생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등장했다. 변호인이란 영화를 보고, 예전에 <여보 나 좀 도와줘>와 <운명이다>를 보면서 부림사건 때 그 치안검사와 짜고치는 고도리를 치는 판사가 지금도 공위공직에서 혹은 높은 자리에서 나라녹을 먹으며, 국민이란 이름을 말할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과거에 죄없는 사람을 가두어 때리는 것도 모자라 전기고문, 물고문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조차 서슴없이 하던 그들이 이제는 국민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대의를 말할 때마다 입가에 쓴 웃음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왜 이리 노무현이 생각나는가?

 

사실 노무현이란 사람을 나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말조심하지 않으면 끌려간다는 주변 어른 이야기만 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심취한지라 세월아 네월아 보냈다. 하지만 2001년 부산 북구에 폐기물조사 나갈 때 우연히 국회의원 사무실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름도 까먹었다. 단지 현재나 앞전 정권에 실세에 가까운 인물이고, 대단한 권력자란 사실만 안다.

 

뭐 모르고 간 대학생에게 거기 비서진인지 졸개 쓰레기 너부렁탱이 같은 자식이 와서 욕을 하며 우리를 내쫓은 것이다. 그냥 "학생 여긴 올 때가 아니야." 정도만 했다면 아무런 감정도 없다. 나에게 "야이 쌔끼야 어디라도 오는거야! 빨리 안 꺼져 쌔꺄!"라고 하였다. 덕분에 그 시대 한XX, 신XX는 나에게 철철부지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2002년 대통령 투표를 처음으로 하고, 당시 노무현이 되었다. 당시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읽어보고 선택한 것 같았다.

 

지금 우리 집에 1권 16쇄가 있는데, 2005년에 나온 것이다. 상당히 많이 팔린 도서고, 볼 때마다 자신의 자랑보단 가슴 쓰리고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이야기만 있다. 문송면 군이 15세 수은중독으로 괴로워하며 죽는 것, 노동자가 시위하여 체루탄 맞고 사망한 것, 원진레이온 이야기는 아직도 울화통이 난다. 그때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서 한 놈들이 지금도 버젓이 큰 소리 치며, 뻔뻔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이 비정상적인 공간에 그저 혀를 찰 뿐이다.

 

그래서일까? 대통령 이전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퇴임한 노무현은 너무나도 호불호가 갈린다. 아마 우리 나라 인권운동가, 노동운동가 중에 부림사건부터 국회의원 노무현, 대통령 이전 노무현 만큼 힘든 투쟁을 한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만큼 가장 욕 많이 먹고 그 만큼 퇴임 후에 사랑받을 대통령도 없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변호인이 나오고, 페루애님도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무현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적으로 대하여 좋아하지 않았으나, 노무현 서거날에 무척이나 울었다고 말이다. 페루애님도 그러하거니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학자 겸 문화평론가인 진중권 교수도 그랬다. 유시민과 토론도 하고, 참여정부시절 많은 비판을 날렸다.

 

  

 

 

 

 

 

 

 

 

 

 

 

 

<빨간 바이러스>에 노무현과 노사모에 대해 비판했고, <레퀴엠>에도 역시 노무현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글을 쓴 것이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이란 도서에서는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작성한 이성적인 글이기에 왠지 조금의 아쉬움도 남으나, 진중권은 알고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라도 비판해야 한다고 말이다.

 

진중권 교수가 처음 노사모가 나올 때,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웹툰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노사모처럼 자발적 지지자를 가진 정치인은 노무현이 유일합니다! 원래 정치는 이래야 합니다! 이게 표준이어야 합니다! 노사모 회원 수는 당비를 제대로 납부하는 민주당원 수 6천 명을 능가합니다! 이게 뭘 말하겠습니까?”

 

민주당과 구태의연함과 노무현의 참신한 개혁성의 콘트라스트(대비)지요! 게다가 이인제는 필패지만, 노무현은 후보만 되면 그 잠재력 폭발력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지요!”

 

진중권 교수는 루소의 일반의지와 더불어 정치적 자유주의적인 논조로 정치에 이야기하려고 한다. 물론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으나,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약자를 억압하고, 외면하지 않는다. 단지 입이 독설로 가득할 뿐이다.

 

그래서 페루애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순간 진중권 교수가 생각이 났다. 개인적으로 내가 진짜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권변호사? 노동운동가? 보다는 군대시절이다. 국내에서 반대하던 이라크파병에 관련된 일이다. 내가 있던 부대에 공군수송기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이라크에 몇 개월 동안 갔다. 내 사무실 직속 고참도 자이툰부대로 가고, 내가 전역 전에 온 다른 고참 역시 자이툰부대에서 돌아왔다. 이라크 파병 생활을 옆에서 직접 간 사람에게 들었으니, 너무 고마웠다.

 

어느 장병을 끌어안아 주는 모습에서 안아주는 것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전쟁의 중앙에 가서 그것도 좋은 비행기도 아니 공군수송기를 반나절 이상 타고 갔다는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국민보단 예비역 공군 부사관으로서 노무현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진보적인 가치만 아니라 보수적인 가치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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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2-28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이 등장했네요... ㅎㅎㅎㅎㅎ. 많은 공감을 얻어서 핫 코너에 등록되어으면 하네요... 전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비판을 하겠다고, 어디에다 쓴 적이 있습니다. 진중권도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날카롭게 비판하기 시작했죠. 전 이게 옳은 태도라고 보여집니다. 박근혜 지지자가 무서운 것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에 실패했기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뭐.. 그냥 개인적 생각입니다.. 헤헤...

만화애니비평 2013-12-28 18:35   좋아요 0 | URL
그네보나파르트 내지 루이 그네파르트라고 생각합니다..ㅋㅋ

비로그인 2013-12-31 16:5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서재지수 높은 두 분 비판하러 알라딘으로 왔써염..

비로그인 2013-12-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묘하죠.
사람들이 노무현 관련해선 어떤 드라마적인 추억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총각 때 제가 살던 지역구 의원 출마하신 적 있어요.
당시 종로구를 꽉 잡고 있던 터줏대감 격 후보한테 밀렸지만 그때 우연히 유세 보고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인간적으론 여러 모로 끌리는 사람은 분명한 것 같아요.

만화애니비평 2014-01-01 13:43   좋아요 0 | URL
노무현 자체가 인간드라마입니다. 신화적 욕망에서 오히려 이명박이 더 신화적 욕망에 부여받을 수 있으나, 일종의 억압에 대한 해방에 대한 욕망을 노무현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죠. 그래서 인간드라마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그것을 이룬 사람, 노무현 대통령하고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의 강의를 듣거나 직접 대화해보니, 정말 옆에 있던 사람 맞아? 라고 할 정도로 권위적인 요소는 없고, 진짜 인격적으로 대해주더군요.
그가 잘하고 못하고의 공과 실은 분명하나, 우리나라 사회구조적인 여건과 현실을 생각하면 저만큼 잘한 대통령은 없습니다.

비로그인 2014-01-01 16:24   좋아요 0 | URL
제 덧글은 폄하가 아니에요.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굴곡을 겪었고 인간적이라는 점은 사실이죠.
또한 당시 그 자리에 그나마 노무현이란 사람이 있어서 이 정도였다는 생각도 들구요.

허나 너무 신격화(? 어폐가 있지만 마땅한 다른 어휘가 안 떠오르네요)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히딩크가 떠오를 정도.
세상에 접사해서 보면 삶이 인간드라마 아닌 사람 없습니다.

참,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명박을 끌어다 비교를 하세요?
제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지 않는 한.. 이거 섭섭하군요.

만화애니비평 2014-01-01 21:2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오해를 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글의 맥락을 제가 잘못 잡았군요. 이명박을 두고 비교한다는 자체가 논센스이나 신화적인 욕망, 즉 한국사람이란 특유의 신화적 심리로 접근한다면 하는 개인적인 논평이죠.
당연히 새벽님의 덧글이 펌하가 아니란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혹시라도 오해하여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드릴게요.

비로그인 2014-01-02 05:19   좋아요 0 | URL
오해 풀렸습니다. :)
바로 그 이명박,을 성공신화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욕망..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루레이] 설국열차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설국열차>를 보면서 생각한 점은 어느 정도 사전에 내가 판단하던 내용이 들어맞은 것과 그 이상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다른 내용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설국열차>에서 제일 중요한 갈등 요소는 바로 계급적 요소로 생각하는 것보다 그 계급이 구성된 원인에 대한 고찰이었다. 시놉시스부터 차량의 제일 뒤편에 탑승하는 승객들이 섭취하는 음식은 재료가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든 단백질 블록이다. 인간의 식량 문제에서 단백질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성장과 더불어 인간의 생체조직을 이루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영양소는 다른 영양소인 지방과 탄수화물처럼 유산소 운동으로 통해 에너지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은 당장의 생존문제가 달려있으며, 인간 번식에 필요한 정자 및 난자와 같은 생식활동도 단백질의 보충이 필수적이다. 그런 단백질이 <설국열차>에서는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된다. 왜냐하면 영화 후반부에 가면 34세의 커티스의 17세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인류의 오만함과 어리석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했다.

 

 

그리고 설국열차가 등장한 원인은 바로 윌포드가 만든 유람열차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존이 불가하기 때문에 존재한 것이다. 이때 설국열차는 이미 탑승하고 있던 승객이 있는 반면 탑승하지 않은 승객이 있다는 점이다. 빙하기가 찾아온 후에 열차 밖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있는 되기 위해 설국열차에 탑승해야 했다. 승객정원은 천 명 정도, 이 많은 인구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살아남기 위한 숙제이다. 

  

왜냐하면 정해지지 않은 승객이 탑승할 때 이미 탑승한 승객들과 그 승객의 부하들이 뒤늦게 탑승한 승객들의 짐을 모조리 빼앗았고, 식량이 부족한 사태에서 뒤늦게 탑승한 승객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있었다.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 식량이 존재할 리가 없다. 이때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원인은 최후의 인간으로서 모습을 상실할 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량이나 재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정상적인 세계에서 그런 비난을 듣지,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인간을 사로잡아먹는다는 것은 이미 문화인류학적인 연구에서도 들어난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나는 도서는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이었다. 문화인류학에서 문화유물론은 자연환경적인 하부구조가 문화적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설국열차에 탑승한 불청객들은 밀림 속의 원시부족이 아니나, 그들이 되어야 했다. 원시민족 내지 혹은 원시부족이 아니더라도 남미의 아즈텍문명의 식인문화는 바로 단백질의 관건이었다. 커티스가 17세가 될 때 어느 산모를 죽였고, 그 산모의 아이를 먹으려고 했을 때 길리엄의 희생으로 그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커티스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에드가였다.

 

 

커티스는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어야 연명이 가능한 지옥과 같은 시기를 견딘 사람이었다. 그리고 길리엄을 비롯한 원로들은 팔이나 다리 일부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당시 아비규환과 같은 식인의 향연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자기희생이란 숭고함과 더불어 불청객 탑승 1달 뒤에 단백질 블록이 난민들에게 공급된다. 그 덕분에 난민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탑승객들 중 일부는 2세를 생산하여 인류를 영속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이들에 대해 윌포드는 억지로 인구수를 점호하여 아이들 몇 명을 억지로 데리고 간다. 이들의 생사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윌포드는 인구통제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고, 커티스가 윌포드를 만났을 대 윌포드로부터 설국열차의 비밀을 듣는 순간 그에게 납득 당한다. 이것은 설국열차는 지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류라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 이외에는 그 어떤 인간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새해가 다가오면서 유치원에서 7인의 도주자에 대한 내용을 복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설국열차에서 내려 땅을 밟자말자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얼어 죽고 만다. 결국 설국열차가 아니면 그 어떤 인류는 추위와 배고픔으로부터 보호받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설국열차 시스템은 모든 것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달리는 열차는 영구적으로 달릴 수 있는 영구적인 엔진을 가지고 있었고, 열차 내부에는 물을 만드는 시설, 생선을 키우는 수족관, 고기를 저장할 수 있거나 또는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정원이 존재했다. 결국 승객들에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교육기관을 비롯하여 여가 및 오락 등과 같은 여러 문화시설도 구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택된 인간이기보단 처음부터 승객인 것이다.

   

  

그러나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불평등은 2가지로 나오는데, 그것은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설국열차의 불평등은 분명 후천적인 것으로 시작(그것은 빙하기가 올 때 미리 탑승한 승객과 그렇지 못한 승객)하여 선천적으로 구분 짓게 만들었다. 그것은 열차의 어느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조건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불평등에 대해 커티스는 불만을 느끼고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것의 결론은 결국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열차가 아무리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달려도 물을 정수할 수 있는 능력이 정해져 있다는 점과 식량이 될 식물과 동물 역시 종족 번식 및 성장에 어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식량이 모든 기차 안의 사람들에게 열람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모두 공멸하지 않은가? 결국 인구조절은 필수불가결이고, 윌포드는 마지막까지 자기에게 찾아온 커티스에게 열차의 주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앞으로 자기 수명이 다하면 그 자리를 커티스에게 이양할 계획이었다.

 

 

커티스는 처음에는 윌포드의 제안에 긍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설국열차는 사회구조적인 요소로 보면 식량과 재원이 정해져 있는 밀림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의로 윌포드가 커티스에게 메모를 전해주는 이유는 인구조절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7인의 탈주자와 4년 전의 반란 역시 윌포드가 계획한 내용이었다. 누군가 꾸준히 선동하여 분쟁 내지 투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식량부족에 모두 공멸하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하여 불청객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앞 칸에 승객들도 계속 늘어나면 그만큼 인구통제의 영역은 불청객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설국열차는 계급체계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구조는 화폐가 존재해야 하며, 이익과 이윤을 추구해야 하나 그 추구할 수 있는 수단적 요건이 없었다. 식량도 윌포드의 부하가 임명한 사람이 직접 만드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19세기 독일수상인 비스마르크가 독일통일을 이끌던 국가사회주의체계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을 지닌 윌포드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인구통제를 끊임없이 시도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아니고 대신 문화유물론적으로 밀림의 세계이기에 커티스는 윌포드의 사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열차가 멈추는 순간 인류는 모두 멸망할 것이고, 지나치게 많은 인간들에게 공급할 식량과 물조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설날 기념으로 인구조절인원에서 74% + 18인은 설국열차 최하층 인간에게 부당하나, 설국열차라는 생태계에서는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에서 제시된 생태 환경적 조건이 자연계가 아니라 문화 생태적으로 인간의 세계에서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문제가 조금 있었다. 열차에 대해 완벽성을 추구한 윌포드였으나, 열차 역시 영구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엔진이 영구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단지 그 관리요소에서 기계부품의 교체만 이루어지면 되나, 사실은 그렇지 아니했다. 설국열차 초반에 소년 2명이 억지로 통제요원에게 잡혀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원인은 바로 열차 엔진의 기능을 유지해줄 부품이 필요했다. 빙하기로 인해 지구문명은 더 이상 만들 수가 없었다.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하여 인간의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력이 존재하더라도 그 노동을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공장은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파묻히고, 시설물들은 동파되거나 눈사태로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노동을 투입할 수 없어서 부품을 얻을 수 없기에 윌포드는 결국 5세 미만의 아이들을 하여금 열차의 정비를 하도록 한다.

 

 

워낙 기계가 미세하고 예민하기에 작은 몸을 가진 아이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은 마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어린아이에게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하고 착취하는 공장주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구조는 아니나,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열차 그 자체가 생태계라고 하던 윌포드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커티스는 혁명의 중단에서 다시 혁명의 재장전으로 이어지고, 열차의 엔진은 멈추고 모든 열차 안의 사람들은 죽고 만다. 

 

 

오로지 살아남은 사람은 흑인소년 1명과 남궁 민수의 딸인 요나, 서구적인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거북할지도 모를 요소다. 왜냐하면 백인남성중심이 서구사회와 게다가 그 열차의 주인은 백인남성이 윌포드다. 자본가였던 그가 그 생태계의 정점에 있었고, 그의 사상은 결국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어 그것을 부정해야할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2명의 어린 소년과 성숙한 소녀에서 인류는 이 2명만 존재했다.

 

새로운 인류의 기원이 되어야 할 사람이 동양여성과 흑인남성이란 점은 아마 미국 헐리웃 영화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말이다. 설국열차에서 그런 기존 가치관의 붕괴는 이미 작품 초반부터 나와 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걱정하여 많은 나라에서 오존층이 형성되어 있는 성층권에 새로 개발한 가스를 살포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문명화에 따른 환경오염은 인간 스스로 자신이 살아갈 터전을 파괴했다는 변증법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조차 위협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욕망하기 위해서는 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실존적인 존재가 필요하다.

 

 

자신의 실존 없이 결코 인간은 욕망할 수 없다. 욕망의 주체가 사라진다는 것만으로 인간은 욕망을 누리기 위해 생존을 누려야 한다. 생존하게 되면서 그 자신에 대하여 순간적인 욕망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생존에 대해 투쟁의식에서 남궁 민수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보안설계 전문가였으나, 한편으로 지구환경 시스템에 대해 꾸준히 고찰하고 연구하고 있었다. 같은 궤도를 18번을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추락한 비행기를 보면서 처음에 후미만 보이고, 그 다음에 동체부위가 보인다면 다음에는 분명 비행기 전방도 보일 것이란 점이다.

 

 

인류의 어리석은 빙하기가 자연 스스로 해빙기를 맞이하는 점이고, 지구 지표면을 감싸는 얼음이 녹게 될 정도면 인간은 얼어 죽지 않고 얼마든지 2다리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남궁 민수가 그렇게 Kronol을 원한 이유는 그것이 환각물질이란 점도 있어나, 한편으로 강력한 인화물질이란 점이다. Kronol이란 물질이 실존하지 않더라도 nol이란 단어가 후미에 들어가면 메탄올, 에탄올, 프로판올과 같은 탄화수소 결합물질인 알코올을 의미한다. 알코올의 경우 인간에게 환각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마취제로 사용된다.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알코올램프 역시 탄화수소가 강력한 인화력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여 설국열차 출입문을 부수고 나가려는 남궁 민수는 인류의 생존에서 대안지점은 설국열차의 생태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해빙기를 맞이하는 지구환경시스템에 맞추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인구통제는 결국 열차 내에서 생기는 에너지의 한계성이다. 그 에너지는 달리는 열차의 동력이다. 동력의 한계와 더불어 그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들의 노동착취라는 이율배반 속에서 인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비로소 속박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작품의 연출적인 요소에서 운 좋게도 2013년 BICOF(부천국제만화축제) 행사에서 <설국열차> 영화제작자인 봉준호 감독을 비롯하여 만화원작가인 쟝-마르크 로셰트(그림)와 뱅자맹 르그랑(글)을 초빙하여 대담을 본 것이다. 영화연출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이 남는 부분은 커티스가 사람들을 이끌고 정수시설이 있는 곳에 갈 때 윌포드의 부하와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도끼를 들고 있던 경비대는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보자 생선 한 마리에 도끼로 배를 가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물러나지 않으면 바로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말이다.

 

 

그리고 그 경고를 뒤로 한 채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커티스를 중심으로 클로즈업이 되어 슬로우 모션으로 찍히는 장면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실존적 가치를 찾는 그의 여정이 보인다. 자신의 살인과 식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속박된 커티스에게 유일한 그 해방구는 설국열차의 엔진을 점령하는 것이다. 그런 여정에서 그의 격렬한 싸움과 그것을 본 경비대가 터널에 들어갈 때 모든 조명을 끄고, 적외선 스코프로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살할 때이다. 그 후에 인류에게 최고의 선물과 최악의 재앙을 준 프로메테우스의 선물 불이 도착하자 커티스는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문명의 발전은 불의 발견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처럼 투쟁에서도 문명의 우세(총, 도끼, 적외선 스코프와 같은 도구)를 가진 경비대에게 역시 문명적 조건(횃불)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인류 스스로 멸망은 문명에 의해 시작하고, 그 문명에 의해 인류는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문명의 소재적인 요건에서 카메라의 클로즈업, 슬로모션, 적외선 촬영은 인간의 투쟁의 긴박함을 제시해준다. 조금 아쉬운 부분인 점은 요나의 선지능력이다. 왜냐하면 몽타주적인 요소에서 요나의 능력으로 인해 제거되어야 했다. 가령 문 앞에 도끼부대가 있다면 문을 열려고 하는 커티스 일행과 도끼를 들고 커티스 일행을 노리는 부대들의 모습을 각각으로 비춘다면 격렬한 싸움이 되거나 혹은 엄청난 위기가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문을 열면 안 된다는 요나의 대사와 도끼를 들고 생선의 배를 가르는 장면은 몽타주적인 요소를 배제한 미쟝센적인 요소에 치중했다. 좁은 공간이란 열차 속에서 공간적 상황과 어두운 화면, 좁은 통로 등과 같은 요소는 분명 커터스의 위기를 강조하기 좋은 장면이었다. 또한 지배계급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경우도 좋은 표현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 장면은 워킹 인사이드로 통해 윌포드야 말로 자신들의 구세주라는 표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급박한 회전 내지 빠른 전환, 또는 롱샷(주로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외부에서 달리는 열차를 촬영하는 장면에 치중)의 비율이 적었기 때문에 좁은 공간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여준 방법이었다. 상황은 분명히 급박하나 카메라의 연출은 왠지 모르게 급박한 느낌보단 순서를 꾸준하게 이어가는 느낌이 강한 것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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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2-2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 공모작이군요. 이거 나랑 라이벌 관계네...ㅋㅋ 전 이 영화 안 봐서 모르겠네요. 내가 봉준호 영화를 개봉관에서 놓치다니 ....

만화애니비평 2013-12-27 16:32   좋아요 0 | URL
그냥 닥치는대로 올리는 중입니다~!ㅎㅎㅎ
 

 

 

 

 

 

 

 

 

 

 

 

 

 

 

 

전에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밀양 송전탑에 대해서 말이다. 밀양 송전탑이 어떻게 되었든, 자신과 무관한 일이므로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은 것이 현대인이다. 우리가 접하는 생활고로 죽거나 혹은 무척 어려운 사람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내가 가장 증오하고 싶은 인간이 바로 나만 잘 되면 된다거나 혹은 자신의 우리한 떡밥만 찾는 인간이다. 물론 인간은 이성을 따르기 전에 본성적인 이익에 따른다.

 

인간이 비록 사회적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해도 결국 사회적이기 전에 동물이다. 동물적 본능이 결국 인간을 하나의 동물보다 더 동물적으로 만든다. 최소한 동물은 자기 종족에 대해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공격하거나 죽이지 않으나, 인간은 서로 죽이기를 한다. 만인 대 만인이라는 인간형의 투쟁의식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던 시절,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을 어느 정도 동의 하였으나, 반대한 부분이 민주주의적인 요소에서 이성을 중시한 그로서 정치적 참여권을 전 국민참여적인 민주제가 아니라 귀족적 민주주의로 하기를 바란 것이 있었다. 분명 나는 그것을 반대한 이유가 일종의 계급의식에 따라 부르주아만 정치참여권에 해당된다는 인식이 잘못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나 역시 정치권에 대한 참여에서 제한을 두는 것이 맞다고 여겨진다. 정치적인 행보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프랑스인권선언문에서 개인의 자유나 이익을 침해되서는 아니되나, 오직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공사업이란 것이 진정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며, 정치적 입장에서 정경유착이란 부분이 계속 뒤따라오며, 특히 지역감정에 따른 이분법적인 형태에서 전혀 무관한 것에도 아전인수격인 파렴치한 정치인들을 볼 수 있다.

 

가령 지역사회에서 개발하거나 유치한 사업이나 행정계획이 국회와 무관하고 시의회나 구의회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좋은 일은 자신의 것으로 하나 막상 행정적 절차나 업무진행은 그 담당기관이나 부서 혹은 밑에 고생하는 말단이란 점이다. 관료주의적인 부패한 사고방식이 바로 이런 점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올바르지 못한 정치인을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그런 정치인이 나와도 여전히 표를 준다는 사실이다.

 

지역감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대립구도에서 올바른 정치적 참여를 위해서는 투표권을 제한하는 게 바르다는 점이다. 자치 민주주의국가의 대의 속에서 그것은 특혜와 이권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심정이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투표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투표할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차를 이행하여 그것에 만족해야 하는 점이다. 까막눈 할머니나 혹은 무조건 1번이나 또는 정치인의 부도덕함을 보지 않고 당락만 보고 결정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국가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토크빌의 말처럼, 정치인에 대한 선거, 출마, 지정 등을 선거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해야 하는 점이다. 투표할 권리를 남용하는 것만큼 위험한 발상은 없다. 선거를 할 수 있는 시험을 보되, 시험에 합격하면 5년 동안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시험을 보지 않으면 투표를 시행할 수 없다. 또한 투표권을 가지고 투표하지 않으면 남은 기간동안 투표권을 회수하고, 5년의 투표권을 얻을 수 있는 시험1회를 유보한다.

 

시험문제는 기본적으로 헌법을 중심으로 한 국가에 대한 의식과 국민에 대한 의무와 자격, 그리고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기본소양이 필요하다. 존 롤즈의 <정의론>을 시작하여 <만민법>이란 정치적 자유주의 국가사회에서 지식인이 가지야할 시민윤리의무를 적은 도서가 있다. 칸트주의에서 비롯한 정치적 자유주의에 도달은 결국 이성의 자유라는 점이다. 이성의 자유가 없는 현실에서 내가 제기한 담론은 무리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정착되어야 어느 정도 나라가 발전을 할 것이다.

 

기본소양과 윤리의무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어설프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나의 표현에 대한 자유를 말한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 한국에서 그것조차 어려운 세상이니 참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론은 "모에를 얻는자 만이 세계를 구한다!"처럼 마음에서 나오는 진정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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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할라스의 <동물농장>과 러시아혁명

   

 

1. 서론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사용된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처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로 제작된 OVA(Original Video Animations), 또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는 만화와 게임, 최근에 흥행하고 있는 라이트노벨 등과 같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필요한 시나리오를 만화, 게임, 라이트노벨 등과 같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만 아니라 신화 및 설화, 역사 및 소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실사영상과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이 없으며, 실사영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부분까지도 보여줄 수 있으므로 다양한 콘텐츠, 신화 및 설화, 역사 및 소설 등을 이용하여 제작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효과적으로 제작한 작품이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이다.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토대로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 특성상 주요등장인물들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농장의 돼지, , , 양과 같은 동물이란 점에서 마치 동물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 미학의 독특한 방식을 볼 수 있다.

1999년 미국감독 존 스티븐슨의 <동물농장>의 경우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이보다 45년 전 1954년에 제작된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이 표현력이 더 좋다는 점이다. 하지만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이 제작되던 시기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기 전에 제작된 작품이고, 존 스티븐슨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 후에 제작된 점에서 원작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본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 체계에 대한 모순과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면 만든 풍자적인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더불어 스탈린 체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3대 소설이다. 이중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다른 작품에 비해 분량이 적은 것과 풍자적으로 묘사하여 재미를 준 점이다.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과 동시에 서사의 전개와 결말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본 리뷰는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비교하면서 작품에서 보이는 러시아혁명에 대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본 리뷰 본론에서 작품에 대해 다룰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물농장 혁명과 외양간전쟁

둘째, 나폴레옹과 스노볼의 대립

셋째, 풍차전쟁과 동물농장 혁명

 

2. 본론

2-1 동물농장 혁명과 외양간전쟁

매너농장의 농장주인 존스가 동물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매너농장의 동물들이 불만을 느낀다. 이때 매너농장의 최고 연장자인 메이저 영감이 농장 안의 모든 동물을 소집하여 자신이 죽기 전의 유언으로 매너농장에서 동물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지적하고, 여기에 대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이저 영감이 죽은 후에 매너농장의 존스는 계속 동물들을 돌보지 않게 되자 매너농장의 동물들이 불만에 쌓여 결국 스노볼의 지휘아래 존스를 몰아낸다. 존스는 자신이 매너농장에 쫓겨난 이후 다른 농장주와 함께 다시 찾아오나 스노볼이 지휘하는 동물들에 의해 다시 쫓겨난다.

애니메이션 <동물농장>의 동물혁명과 외양간전쟁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러시아혁명과 내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존스는 러시아 군주인 차르이고,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 스노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이다. 돼지들은 러시아 10월 혁명 시기에 주도적 역할을 하던 볼셰비키들이고, 기타 동물들은 러시아 국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매너농장의 주인과 동물이지만 알레고리적 배치로 통해 우화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러시아혁명은 1904~1905년 러·일전쟁의 피해로 인해 국가재정이 어려워지고, 물가가 올라가자 190519일 일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이 생활안정을 요청하는 평화시위를 벌이고 이에 대해 군대가 발포를 하여 수 백 명이 죽고 수 천 명이 부상당하는 피의 일요일이 발생한다. 그 후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가 참전하였고, 참전한 러시아군인들은 보급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희생당해야 했다. 전쟁참전으로 러시아는 물가상승, 고용불안, 물자공급에 차질을 겪게 되었고, 이에 대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빵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이에 대해 군대가 시민들에게 발포하자 19172월 혁명이 발발하고 차르 체제는 마감한다.

19177월 사태 후 케렌스키는 임시정부의 수상이 되면서 코르닐로프 장군을 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코르닐로프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케렌스키는 볼셰비키에게 쿠데타 제지를 요청하였고, 코르닐로프의 쿠데타는 저지된다. 그 후에 케렌스키는 볼셰비키 및 노동자, 농민에게 강압정치를 실행하고, 191710월 볼셰비키혁명이 발발한다.

애니메이션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의 혁명은 1917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하나로 일축한 것으로 2월 혁명에서 차르인 존스만 등장하고, 10월 혁명에서 케렌스키와 레닌을 상징하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레닌과 같이 주도하여 볼셰비키혁명을 이끈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 트로츠키가 <동물농장>에서 동물혁명을 이끈 스노볼로 등장한다. 동물혁명 성공 존스는 이웃 농장 주인을 데리고 습격하는 장면은 외양간전쟁으로 볼셰비키혁명 이후 차르정권 시절의 귀족, 장교 등으로 구성된 백위군이 다른 국가의 지원을 받아 소비에트연방을 위협한다. 트로츠키는 군사인민위원이 되어 내전을 승리로 이끌게 되고, <동물농장>에서는 스노볼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서서 외양간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2-2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대립

농장혁명과 외양간전쟁에서 승리한 후 스노볼은 동물들을 이끌고 존스의 집안에 들어간 후에 존스의 집이 살기가 부적당하고 여기고 돌아간다. 그리고 스노볼 존스가 운영하던 매너농장의 이름을 동물농장이라고 짓고, 스노볼은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에 따라 동물농장의 규칙을 만든다. 이에 반해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이 스노볼을 따르고 있을 때 사냥개의 새끼들을 몰래 거두어 기른다.

스노볼은 존스가 없는 동물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동물들을 이끌고 농장을 관리한다. 스노볼의 지휘 아래 농장은 잘 번창되어 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스노볼과 다른 동물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스퀼러와 식량을 몰래 훔쳐 먹는다. 스노볼의 농장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스노볼은 동물농장 이외에도 다른 농장에도 동물혁명이 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비둘기들을 다른 농장에 파견한다.

스노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물농장에 있는 동물들을 소집하여 공부를 가르치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스노볼은 계속 동물농장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고, 동물농장의 미래를 위해 풍차계획을 준비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풍차계획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동안 자신이 몰래 감추어 기른 사냥개를 이용하여 스노볼을 내쫓고 죽인다.

볼셰비키혁명과 러시아내전 이후 트로츠키는 열악한 후진국인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경제적 진행을 위한 NEP(Novaya Ekonomicheskaya Politika)라는 신경제정책을 펼친다. 차르가 지배하던 러시아는 아직까지 농경사회가 중심이었던 점과 소비에트연방과 다른 국가 간의 군사 및 외교적 대비를 위해 공업화가 필요했다. 이때 공업화를 위해 사회주의 이념이던 소비에트연방은 자본주의적인 생산체계인 테일러주의1를 도입하고, 공업화 과정에서 기존 러시아의 부농인 쿨라크 등을 비롯한 농부의 수확물을 필요했다. 처음에 농부들에게 강제로 일정 양을 징발하였으나, 농부들의 반대로 식량을 자유롭게 팔 수 있으면서 쿨라크를 비롯한 많은 농부들이 이익을 보았다.

<동물농장>에서 스노볼이 동물들을 직접 지휘하며 농장을 꾸리는 과정은 실제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에 큰 경제적 성과가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혁명을 반가워하지 않은 농민들은 트로츠키의 진영 반대편인 스탈린에게 지지를 보냈으며, 스탈린은 레닌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카메네프, 지노바예프와 삼두체제를 갖추었고, 트로츠키가 이들 삼두체제에 대해 비판할 때부터 정치적인 대립이 시작된다.

트로츠키가 스탈린과 최초로 엇갈린 사건은 러시아내전에서 트로츠키가 백위군과 싸우기 위해 차르 시대의 장교들을 적위군 지휘관으로 임명과 동시에 강고한 그의 태도다. 그의 권위주의적인 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이 때문에 19193월에 열린 제8차 당 대회에서 붉은 군대의 가차 없는 중앙 집권화에 반대하는 군사반대파가 형성되었다. 스탈린은 이 군사반대파의 지지자였다.2

이후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직책에서 쫓겨내고, 1927년 소비에트 당위원회에서 강제 출당시켰으며, 1929년 강제로 해외로 추방한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 사냥개를 이용하여 스노볼을 강제로 내쫓는 것은 공권력과 소비에트 당위원회를 장악하여 트로츠키를 내쫓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농장>에서 스노볼은 사냥개에게 쫓겨나 바로 죽는 것처럼 나오나, 실제 트로츠키가 사망한 것은 19408월 멕시코에서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암살당한다.

<동물농장>에서 스노볼은 동물농장의 식량과 경제 그리고 현실을 고려하여 일에만 몰두하지만, 결국 나폴레옹이 뒤에서 몰래 키운 사냥개에게 암살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지 오웰의 원작에서는 스노볼은 암살되지 않고 추방당했으며, 나폴레옹은 동물농장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스노볼과 스노볼의 첩자들이 꾸민 계략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2-3 풍차전쟁과 동물농장 혁명

동물농장의 주인이 된 나폴레옹과 나폴레옹의 추종자이자 심복이 된 스퀄러는 스노볼이 존스를 데리고 오려는 배신자라고 말하며, 스노볼이 준비한 풍차계획이 자신이 만든 것처럼 동물들에게 말한다. 동물들은 풍차계획을 위해 언덕 위에 풍차건축공사에 동원되었으며, 돼지들은 동물들을 감시하면서 새벽부터 늦을 밤까지 감시한다. 동물들의 식사는 예전보다 양과 질이 줄어들었으나 이에 반해 돼지들의 식사의 질과 양은 좋아졌으며, 게다가 존스의 침대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힘들게 일을 해도 농장의 물자는 부족하고, 이것을 알게 된 윔퍼는 나폴레옹과 돼지가 좋아할만한 물건을 들고 온 후에 계란을 가지고 간다. 나폴레옹은 외부와 물자교환을 시작했으며, 물물교환이 되는 물자는 암탉의 계란이어서 암탉들은 불만을 품는다. 불만을 품은 암탉과 몇몇 동물들이 나폴레옹에게 반항하자 나폴레옹은 이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반역자로 몰아 처형시킨다.

동물혁명이 일어난 뒤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축사에서 메이저 영감이 알려준 노래를 부르자 나폴레옹은 혁명이 끝이라며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만약 부르면 사형에 처한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독재 아래 동물농장은 외부와 교역이 활발해졌으며, 윔퍼가 계속 동물 벌자 다른 농장의 주인들은 모두 질투한다. 다른 농장주는 동물농장에 다시 공격하러 왔으며, 동물들은 이에 반격을 가한다. 그 와주에 존스는 언덕 위에 풍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여 파괴시킨다.

풍자전쟁 이후 풍차재건축을 위해 다시 동물들은 일을 시작했으나, 많은 동물들이 죽고 다쳤으며, 이 중 힘이 센 말 복서가 풍차전쟁의 후유증으로 쓰러지자 나폴레옹은 박스를 윔퍼에게 팔아넘기고 술을 받는다. 몇 년 후에 나폴레옹이 운영하는 농장은 꾸준히 다른 동물들은 착취당하고 있었고, 돼지들은 계속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다른 농장의 돼지들은 나폴레옹이 운영하던 동물농장에 방문하여 연회를 즐기고 있으며, 이 모습을 바라본 당나귀 벤자민은 돼지들이 모두 매너농장의 주인이었던 존스처럼 보였다. 벤자민이 이 사실을 다른 동물들에게 알리자 동물들은 모두 돼지들이 모여 있는 저택으로 들어가 혁명을 일으키면서 막은 내린다.

스탈린은 트로츠키 축출 이후 기존의 볼셰비키와 프라우다 신문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처음에 신경제정책인 NEP를 실시할 때 농민의 입장을 지지하던 그가 1930년대부터는 오히려 쿨라크를 비롯한 농민들의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한다. 스탈린은 소베이트연방에서 최고 권력을 지게 되면서 처음에 러시아혁명을 주도하던 볼셰비키에게 우호적이었으나 뒤로 가면서 그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숙청을 시도한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 동물에게 고된 노동과 착취를 시작하자 이에 대한 불만이 나타나듯이 스탈린도 그런 불만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1936년부터 1938년까지 모스크바재판이라고 공포정치로 통해 정치적 대숙청을 시작했다.

이때 재판에서 스탈린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두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하였으며,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도 자신에게 반항하던 동물에게 존스와 스노볼 같은 존재라며 처형시킨다. 동물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나폴레옹과 주변 돼지들이 계속 특권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윔퍼라는 외부 상인과 교역을 시작한다. 본래 조지 오웰의 원작에서는 물물교환은 프레데릭이란 농장주고, 그는 독일나치였다.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을 코민테른3에 제시했다면,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를 제시했다.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를 위해 1939년 독일 소비에트연방 불가침 비밀조약을 맺었으나, 2년 뒤인 194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나치는 소비에트연방을 침공하여 소비에트연방에 큰 피해를 준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는 동물들이 프레데릭과 그의 수하들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나, 많은 동물들이 죽고 다치는 피해를 보았으며, 풍차도 프레데릭에 의해 파괴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동물농장>에서는 다른 농장주에게 동물들이 큰 피해를 보았고, 풍차는 프레데릭 대신 존스에 의해 파괴되었다. 존스로 묘사된 차르 니콜라이 2세는 19172월 혁명 이후 왕에서 쫓겨나서 19187월 러시아내전에서 암살당한다.

러시아혁명사와 더불어 본래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상이한 내용으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전개되고 있었으나, 여전히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은 계속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많은 동물들은 힘든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동물농장> 결말에서 동물혁명이 다시 발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원인은 박스가 풍차전쟁에서 부상당한 후 힘든 노동을 하는 도중 쓰러지는 것을 벤자민이 목격하면서부터다.

나폴레옹이 박스를 동물병원에 치료해주는 게 아니라 윔퍼에게 팔아넘겼고, 몇 년이 지나도 힘든 노동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다른 농장의 돼지들이 동물농장에 모여 연회를 베푼 것을 벤자민이 보고 동물농장과 다른 농장의 동물에게 알리고, 모두 돼지가 있는 존스의 저택에 공격하는 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다른 전개방식이다.

본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42월 탈고를 마쳤고,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비에트연방은 독일과 계속 전쟁 중이었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다른 농장주들이 서로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모습에서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1954년에 상영된 점을 고려하면 19537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의 모델이 된 스탈린은 19533월에 사망한 점에서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미소 냉전시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존스의 농장에 모인 돼지들은 나폴레옹처럼 독재로 통해 국민을 괴롭히는 공산권 국가의 지도자로 묘사한다. 결국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냉전시기에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이 지배자로 있던 소비에트연방뿐만 아니라, 소비에트연방 연합국도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독재정치로 인해 대다수의 죄 없는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므로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다시 혁명을 일으켜서 돼지들을 타도해야 하는 점에서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당시 공산국가의 체계 전복을 원하고 있었다.

 

3. 결론

<동물농장>의 서사적인 구분으로 나누면 발단과 전개는 동물혁명과 외양간전쟁, 위기는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대립, 절정과 결말은 풍차전쟁과 동물혁명이다. <동물농장>의 서사에 맞추어 실제 러시아혁명사로 따지자면 발단과 전개는 볼셰비키혁명과 러시아내전, 위기는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정치적 대립, 절정과 결말은 1936년부터 1938까지 이루어진 대숙청과 2차 세계대전의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의 전쟁이다. 물론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원작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실제 러시아혁명사와 차이점이 존재한다.

러시아혁명 이후 스탈린체계에 대해 우화적으로 묘사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스탈린의 소비에트연방과 공산권 체계에 대해 우화적으로 묘사한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은 모두 풍자적인 작품이란 점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풍자는 무엇보다 당대성의 서사 장르이다. 풍자가 물어뜯고 비꼬고 우스갯감으로 만드는 것은 그 풍자가 생산되어 나온 당대 사회의 실존인물, 사회 환경과 제도, 이데올로기, 사건, 편견, 같은 것들이다. 당대의 것들에 대한 비판, 공격, 회화화가 아니라면 풍자는 사실상 무의하다. 풍자는 동시에 약자의 서사이다. 이 약자는 권력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기 때문에 궁지로 몰리는 약자다. 약자의 이야기이므로 풍자가 두들기는 대상은 권력을 쥔 부당한 강자,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기, 지배적 제도와 관행이다.4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에서 약자란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물들이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약자는 동물을 비롯하여 스노볼의 모델인 된 트로츠키도 포함한다. 결말이 상이하더라도 차리즘에 의해 억압당하던 러시아 국민이 결국 스탈린주의에 의해 새로운 억압이 대체되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동물과 인물을 알레고리적인 배치에서 비단 그 동물들이 상징하는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폴레옹이 존재할 수 있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란 이름은 프랑스대혁명에서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1799년 브뤼메르 18일에 쿠데타를 일으킨 나폴레옹 1세보단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인 루이 보나파르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독재자 1인이 행정부를 통제하여 국가를 지배하는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동물농장>에서 보이는 나폴레옹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존 할라스의 <동물농장>에서 등장하는 나폴레옹과 돼지들은 존 할라스만의 <동물농장>이 아니라 새로운 알레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4. 참고문헌

존 할라스, 한창완 역, 존 할라스 유럽 애니메이션 이야기, 한울, 1999.
조지 오웰, 도정일 역, 동물농장, 민음사, 1998

조지 오웰, 정희성 역, 1984, 민음사, 2003

조지 오웰, 오증자 역,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2000

아이작 도이처, 김종철 역,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필맥, 2005

아이작 도이처, 한지영 역,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필맥, 2007

아이작 도이처, 이주명 역,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필맥, 2007

루이 알튀세르, 서관모 역, 철학에 대하여, 동문선, 1997

레온 트로츠키, 김성훈 역, 배반당한 혁명, 갈무리, 1995

레온 트로츠키, 정민규 역, 레닌 이후 제3 인터내셔널, 풀무질, 2009

스티브 스미스, 류한수 역, 러시아혁명-1917년에서 네프까지, 박종철출판사, 2007

카를 마르크스, 최형익 역,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 비르투, 2012

그레고리 엘리어트, 이경숙 역, 알튀세르, 이론의 우회, 새길, 2012

<동물농장>(Animal Farm, 1954, 존 할라스)

<동물농장>(Animal Farm, 1999, 존 스티븐슨)

<트로츠키 암살사건>(The Assassination Of Trotsky, 1972)

 


 

  1. 테일러의 경영체계는 일관작업 배치 매뉴팩쳐와 대량생산의 초기 발전에 조응하는 것이고, 노동에 대한 감독과 극단적 노동자 훈련과 기계와 같은(규칙적인) 반복 작용(공정)으로 노동의 전화, 노동 분업의 극단적 정교함이 특징이고, 상품의 생산 시간 단위의 최소화를 목적으로 한다.
  2. 스티브 스미스, 류한수 역, 『러시아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 박종철출판사, 2007, p66
  3. Communist International의 약어인 comintern으로서 제3 인터내셔널로 국제 노동자연합이 아닌 공산주의 국제연합으로 1917년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창건했다.
  4. 조지 오웰, 도정일 역,『동물농장』, 민음사, 1998,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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