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저자임은 뭐....ㅋ
잘 알겠다.
동시대성이 존재하는 ˝혐오발언˝이 많은 사유를 제공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면, 글을 이렇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볼만하다.
혐오를 야기하는 발언들에 대한 제재가 필요치 않다. 이른바 상처주기에서 시작되는 의미파악과, 그로 인한 사유와 수행이 단절되는 규제는 오히려 부정적이라 보기 때문인데.
혐오 발언의 발화자가 차별의 언어로 수신자에게 공격을 가했다는 생각 자체가 수신자의 열등성이나 취약함을 부각하는 것으로, 그 차별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고, 약자로 상정된 이들의 발언을 위축시킨다는 전제를 한 것.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이 아마도 혐오 발언의 발화자들에게 주어진 국가적 권위의 후원이라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혐오 발언을 할수 있는 분위기와 혐오발언 발화자들의 수적, 권력적 우세에 관한 문제인 것 같은데.
글쎄다.... 라고 생각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혐오 발언에 반론은 규제에 해당되지 않는지에 대한 짧은 생각도 들게 되고,
권위의 후원이라는 부분도 전반적으로 인정하기가 싫어지고(현실과 별개로 인정 자체가 싫어진다는)
저자가 아우르려는 범위가 나의 범위를 넘어서서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괴로운 독서다. 주디스 버틀러 좋아할 순 없는 저자.
초반에 번역의 문제일 것이라 의심했던 것을 사과하고 싶어질 정도.
결국은 활자를 눈으로 읽고 뇌로는 미쳐 보내지 못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오독의 향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이 휘몰아친다.
2016. O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