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요제프 빌콘(Jozef Wilkon)

요제프 빌콘(Jozef Wilkon, 1930~)은 1955년 크라쿠프 야기엘로인스키 대학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일했으며, 폴란드 대규모 국영 출판사에서는 그가 작업한 다양한 어린이 책이 출판되었다.

1963년부터 빌콘은 파리 플라마리온과 쾰른 미델하우베, 취리히 보헴 프레스 등 대형 외국 출판사와 일하기 시작했다. 100권이 넘는 어린이 책을 펴냈으며, 그의 그림책은 20여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션 이외에도 조각과 타피스트리와 무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조각과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은 폴란드와 외국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고, 일본 오이시마 그림책 박물관은 250점이 넘는 빌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그는 바르샤바 근교 잘레시에에서 글 작가이며 교육자인 아들 피오트르 빌콘과 함께 살고 있다.

요제프 빌콘이 브라티슬라바에서 전시할 작품을 고르고, 한국에서 출판하고 싶은 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해박한 미술 지식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빌콘 작품이 여러 회화 전통을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빌콘은 수채화에서 먹이 번지는 효과를 연구한 바 있고, 중세 미니어처 필사화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참고한 바 있다. 또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당시 그래픽 아티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팝과 싸이키델릭 회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 일러스트에서 퍼옴 http://www.illusthouse.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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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작가 - 이와사키 치히로

                                        

치히로가 죽은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공기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가장 주목할만한 업적은 어린이를 그리는 일을 계속했던 아티스트였다는 점입니다. 치히로는 모델이 없이도 한 살 배기 아이와 10살 먹은 어린이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묘사해냈습니다. 예리한 관찰력과 훌륭한 스케치 기술을 이용해서 서로 다른 포즈의 아이들을 1,000여 점이나 그렸지요.

그녀는 대강의 스케치 작업 없이 붓을 집어 들어 물에 적신 후 종이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이들의 피부를 실제로 부드럽고 탄력있게 느낄 수 있게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치히로는 "아이들이 나의 손가락을 잡을 때 나는 그 움켜쥐는 힘에서 기쁨을 느낀다. 참으로 부드럽고 토실토실한 손이 놀라울 정도로 힘이 있다. 단지 관찰하기만 해서 스케치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러한 본질적인 움직임을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 때문에 20년 넘게 아이들을 그림으로써 어린이를 생동감있게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마치 실제 아이들인 양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한번은 치히로가 말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그릴 때, 나는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는 것 같이 느낀다." 그녀의 그림 속에 있는 작은 소녀들은 아마도 그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겁니다.

치히로는 서양식 수채화기법과 일본식, 중국식 전통 테크닉을 섞어서 구사함으로써 독특한 스타일의 미묘한 표현을 창출해냈습니다. 이렇듯 정교하고 흐르는 듯한 테크닉은 치히로의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특성입니다. 일찍이 후지와라 코제이 학교에서 일본 서예 수업을 받았던 경험은 그녀의 이러한 기술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림들은 치히로의 눈에 띄는 테크닉과 모성애, 살아있는 애정이 함께 결합된 산물입니다.

그녀의 일생 전반에 걸쳐서 치히로는 평화를 동경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온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을..."이라는 말이 반영하듯,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여교사와 건축기사의 3자매 중 장녀로 태어나 도쿄에서 유복하게 성장, 도쿄여대 교수로부터 데생을 배웠습니다. 20살에 데릴사위를 얻어 결혼식을 올렸으나 아무리 해도 상대를 사랑할 수 없었고, 마음 약한 남편의 자살로 1년도 못되어 결혼생활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침략전쟁의 실태를 앎에 따라 가해자의 입장이었다는 죄의식에 괴로워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즉 상대를 깊이 상처 입혔다는 것, 자신의 혜택받은 생활 뒤엔 많은 타국민의 괴로움이 있었다는 자각을 계기로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까지의 인생과 결별하여 괴로움과 슬픔 모두를 받아들이는 삶을 결심하게 됩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은 이와사키 치히로는 자력으로 산다는 기쁨을 지닌 채 낮에는 인민신문의 기자를 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처음 그린 안데르센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문부대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후에 공산당 국회의원이 된 인권변호사와 결혼, 인권운동을 하는 남편을 대신해 평생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의 그림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 받는 이유는, 단지 언뜻 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푸근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과 슬픔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간애가 녹아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주는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자료 : 월간 디자인 1999년 5월호)

 

1918년

12월 15일 일본 후쿠이 지방의 다케푸에서 건축기사인 아버지 마사카츄 이와사키와 여학교의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후미에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1919년

도쿄의 시부야로 가족 모두가 이주했다.

1927년

소학교 시절 그림을 사랑하던 구보다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학예회 등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다.

1932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 농구, 수영, 활쏘기 뿐 아니라 스키, 등산도 즐겨했다.

1933년

사부 로스케 오카다 밑에서 스케치와 유화공부를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여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93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요여자 서양화전에 출품하여 입선했다.

1939년

첫 번째 결혼을 하여 남편의 근무지인 중국 만주, 대련으로 갔으나 그 해 겨울 남편의 자살로 귀국한다.

1941년

5월 도쿄 대공습으로 집이 전소되어 나가노현의 마쯔모토로 이주한다.

1946년

5월 나가노현에서 일본 공산당에 입당. 일본 공산당 선전예술학교에 입학한 뒤토시코 아카마츠로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었다. 이후 인민신문의 기자가 되어 기사와 함께 삽화를 그렸다. 보육원이나 고아원에서 스케치를 한다.

1947년

일본 미술회, 일본 아동회 회원이 되었다. 5월 '나쁜 여우, 그 이름은 라이케'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뒤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화가의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1948년

각종 신문과 잡지, 교과서에 작품을 게재했다. 유화도 자주 그렸다.

1949년

일본공산당의 활동 중에 젠메이 마쯔모또와 알게 된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출판하고 이듬해 '문부대신상'을 수상한다.

1950년

젠메이 마츠모토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1951년

아들 다케시를 낳는다.

1952년

도쿄 심모샤쿠지에 집을 짓고 이후 22년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곳은 현재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미술관'이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1956년

어린이 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소학관아동문화상을 수상했다. 첫 번째 그림책인 '나 혼자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를 출간한다.

1958년

'달님은 몇 살?'을 그려 이듬해 후생대신상을 수상한다.

1960년

알파벳 그림책 '아이우에오' 출간, 이듬해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한다.

1963년

잡지 '아이들의 행복'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한다. 6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여성회의'에 참석한다.

1966년

어머니와 유럽 여행을 후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책'을 그린다.

1967년

'내가 어렸을 적에'를 그린다.

1968년

'비 오는 날 혼자서 집 보기'를 그린다.

1973년

'귀여운 새'로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그래픽 상을 수상한다. '전쟁 속의 아이들'을 출간한다(사후에 1974년 라이프치히 국제 도서전에서 동상 수상). 월간지 '어린이의 행복'의 표지그림을 모아 '어린이의 행복 화집'을 출판한다. 가을, 암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1974년

8월 간암으로 사망한다. 사후에 '빨간 양초와 인어아가씨'가 출간된다.

(자료 : 도쿄 치히로 홈페이지, 월간 일러스트 2000년 8월호)

- 치히로 월드에서 퍼옴 http://chihiro.hihome.com

 

 




치히로의 그림은 치히로 월드에 가셔서 갤러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치히로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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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상투성을 깬 작가 - 레이먼드 브릭스 (제1부)

 

 

불만에 찬 두꺼비가 토해내는 환상의 세계

 




“대체로 나는 우울하고 비관적이고 부루퉁해 있다. 모든일이 성가시게 느껴진다. 언제나 세상 살기 괴롭다고 느껴왔고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느껴진다. 언제나 뚱해 왔고 지금은 더 불만투성이다. 난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이 불만에 찬 고백을 읽기 전에는 난 별로 그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꼼꼼한 묘사, 숨쉴 틈 없이 빡빡한 그림. 그리고 파격이나 통쾌함 보다는 성실한 세부묘사와 그 뒤에 숨어 있을 법한 - 읽다보면 꼭 찾아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만드는 교훈, 그런 것들이 숨막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의 책은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지만 그래서 매력도 없는 모범생의 일기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신문기사에 난 의외의 고백을 읽고 그의 자서전 - 이라기 보다는 그의 부모의 전기 - 에 가까운 [에델과 에른스트 Ethel  & Ernest]를 사서 본 뒤에 약간 다른 시각으로 그의 책들을 들여다 볼수 있게 되었다. 난 언제나 작품에 담긴 철학세계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이나 숨은 뒷이야기 따위에 지나친 흥미를 느끼는 저질독자이므로 먼저 [에델과 에른스트]를 통해 그의 출신성분을 추적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어느 집의 하녀였고 그의 아버지는 우유배달부였다. 어느날 창문 밖으로 먼지를 털다가 지나가는 우유배달부와 눈이 마주치게 되고 눈이 마주친 김에 헬로우 인사를 하다 보니 둘은 어느새 극장구경을 같이 가게 된다. 이 가난한 연인이 결혼을 해서 힘겹게 얻은 (그의 어머니가 레이먼드를 낳은 뒤 의사가 아버지에게 충고하기를 “더 자식을 바라다간 아내를 잃게 될거요” 라고 한다) 아들이 바로 레이먼드 브릭스이다.
아직도 귀족이 건재하고 여왕이 품위를 지키는 대영제국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아주 밑바닥 출신인 셈이다.






또하나의 불운은 그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제에 도에 넘치게 똑똑한 바람에 그래머 스쿨에 가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머 스쿨은 2차 대전 뒤 영국에서 가난한 수재들에게도 고급교육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일종의 영재교육 학교다. 그뒤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이 그래머 스쿨이 계급간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의견에 따라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그래머 스쿨에서 레이먼드는 아마 자기처럼 ‘가난한 똑똑한 아이‘뿐만 아니라 ’똑똑한 귀족아이‘도 만났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라에도 숱하게 있을 법한 가난한 집안의 똑똑한 아이.
그를 환대하는 착한 부모님 - 이것이 레이먼드 브릭스의 출신성분이다.

[에델과 에른스트]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골수 노동당 지지자이고 어머니는 과격한 노동당 보다는 보수당을 은근히 믿고 따르는 온건주부였다.정치적 견해 차이가 가끔 부부 사이에 말다툼을 일으키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사이좋은 두 부부 사이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레이먼드가 이 착한 부모님을 가장 크게 실망시킨 일은 의사나 선생님이 되는 길보다는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벌거벗은 여자나 그리는 미술대학에 진학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부모님들이 머리를 싸매고 눕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약간 슬퍼했을 뿐.

과연 이런 출신성분이나 성장과정이 그의 책들과 무슨 연관이 있기나 한 걸까?
이런 그이 개인사를 알기 전에는 지나치게 꼼꼼한 일산생활 묘사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려대는 가구며 찾잔, 주전자. 물건의 상표들, 옷차림 따위가 모두 그가 일부러 지독하게 고수하는 보통사람들 (귀족도 중산층도 아닌 노동자 계급)의 생활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책에는 그 흔한 영국신사의 옷차림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이 쓰는 찻잔이나 가구들을 보면 영국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귀족적인 세련됨이나 골동취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 흔한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시키는 일도 없다. 산타할아버지는 노동자 계급의 전형처럼 그려진다. 뚱뚱한 몸 하나면 가득 차는 좁은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역시 상자곽처럼 답답한 거실에서 겨우 발을 펴고 휴식을 취한다.



특별한 정치적 신념을 지녔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의 불만스런 고백을 들어보면 그는 무슨 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비관적인 듯 하다) 다만 많은 그림책들이 대충 담아내는 거짓된 일상들을 그는 정신 바짝 차리고 쳐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독한 태도가 어쩌면 영국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 계급 수재가 느꼈을 법한 좌절감과 부당함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뿐이다.

두 번째로 흥미있은 개인사는 그가 독신남이라는 점.(이건 아마 나에게만 해당하는 흥미로운 점이겠지만)
거의 모든 어린이책 작가들의 소개글을 보면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두 마리의 개를 기르며 평화로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게 전형적인 끝맺음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레이먼드 브릭스는 독신. 게다가 (방년 64세의) 남자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의 책들을 보니 그 어디에도 작가에 대한 소개글이 없다.

물론 그가 결혼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다. 미술대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 진과 결혼을 했지만 결혼할 때부터 이비 여자친구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2년 뒤 진은 백혈병으로 죽게 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레이먼드 브릭스에게는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 TV를 보는 여자친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 비극적인 결혼생활이다. 특히나 사십여년을 해로한 뒤 몇 달 사이로 함께 이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의 결혼생활에 비하자면.

어쨌든 이런 개인사의 색안경을 쓰고 그의 책을 들여다보면 새삼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계속.....)

 

- 꿀밤나무 제2호에 올리신 조은수님의 글입니다.

다소 긴 내용인지라 일단 앞부분 레이먼드 브릭스의 출신과 관련된 부분까지 먼저 올립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죽 이어집니다.  축약을 할까 했는데 제가 또 축약하고 그러는 걸 워낙 못하기도 하고 조은수님의 글이 물흐르듯 재미있으셔서 한부분이라도 놓치기가 아까와 중간에 [사람 The Man]과 [곰팡이 귀신 Fungus thr Bogeyman]에 대한 코멘트만 빼고 전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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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 이태수

 

세밀화가 이태수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미술고문으로 있는 <도토리> 출판기획을 찾았다.
조용한 주택가 2층에 위치한 사무실. 그의 방은 의외로 평범했다. 대단한 그림 도구가 흩어져 있거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스케치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작업실을 예상했던 기자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스탠드 돋보기와 동식물의 사진으로 가득 찬 10권 이상의 사진첩은 역시 세밀화가의 방답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기자와 인사를 나눈 이태수씨는 할 말이 별로 없다며 검게 그을린 인상 좋은 얼굴에 겸손의 웃음을 가득 담아냈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서 태어난 이태수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상경했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붓글씨를 잘 썼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대에 진학할 꿈을 가진다. 화실에서 지도해주시던 선생님은 가난하지만 완벽한 작품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그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태수씨는 한동안 스스로 '전시장 미술'이라 부르는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그를 붙들어 두지 못했고, 10년 넘게 매달린 미술교육 과정을 통해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전시장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버렸다고 한다. 

이런 그가 세밀화, 그것도 아이들의 그림책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된 계기는 현재 9살인 첫 아이 '휘조'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골라 주기 위해 여러 책방을 다녔는데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더군요. 단순화시킨 그림도 너무 엉망이었고, 그나마 좀 나은 것들이 외국 그림책이었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모두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것들이었어요."

우리 실정에 맞는 그림책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적잖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리라.

"아이가 처음 보는 그림인데, 아무것이나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제대로 된 우리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바로 세밀화라는 독특한 장르의 그림이다.

세밀화는 기존 그림의 양식으로 분류한다면 '자연 다큐멘터리 일러스트레이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태수씨의 세밀화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선 기존의 그림 작업들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전례가 없는 미개척의 영역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작업한 그림만을 세밀화로 부르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많은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말이 달리는 모습을 하나하나의 세분된 컷으로 나누어서 세세하게 관찰한 사진이나 그림들이 두꺼운 책 여러권 분량이 될 정도입니다. 얼핏 보면 같은 동작으로 보이지만 발의 위치나 모양들이 조금씩은 다르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그런 자료가 없어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은 이런 기초적인 자료들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 정확한 그림을 보여주겠다는 목적 뿐만이 아니라 기본이 되는 정밀한 자료를 축적하는 것. 이 말을 들으니 그의 단단한 어깨위에 짊어진 사명이 무척 중요해 보인다.

이태수씨는 개인적으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단순한 그림이면서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기술적인 노력의 면에서는 칭찬하고 본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색깔을 갖고 싶어」라는 CD-ROM 제작 과정에서 간단한 에니메이션 작업을 맡았던 이태수씨는 이런 기술적인 면의 부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고 한다.

"몇 개의 컷으로 나누어진 그림을 받아 그 그림들을 다시 그리는 작업에 참여 했는데 그림이 잘 되었는가 못되었는가를 떠나서 각 컷들이 전혀 사실적이지 않았던 겁니다. 하는 수 없이 기본 움직임만 참고를 하고 대부분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이태수씨의 세밀화는 사진보다도 더 정밀하고 정감이 간다. 사진이란 속에 갇힌 식물이나 동물들 보다 훨씬 생생하게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세밀화를 하나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열흘에서 보름정도.

"우선 무엇을 그릴 것인지 대상을 정하면 그것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가장 먼접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많은 자료들을 모아야 합니다. 가령 민들레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면 진짜 우리 민들레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많이 피는지 아는 것이 급선무죠. 그렇게 모아진 정보를 가지고 직접 산과 들을 누비며 찾아내는 거지요. 특히 우리 민들레를 그리기 위해서 2년 정도를 찾아 헤맨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낸 식물들은 뿌리가 상하지 않게 정성껏 채집을 합니다. 그래서 요모조모 꼼꼼하게 관찰하고 밑그림을 그립니다. 여기까지가 가장 어려운 작업입니다. 나머지 채색은 오히려 쉬운 작업이죠."

세밀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지 사물과 똑같이 그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진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그의 세밀화에는 바로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포함된 연출력이 있기 때문에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꽃의 경우 피는 꽃이냐 지는 꽃이냐, 아침의 꽃이냐 저녁의 꽃이냐에 따라 달라지고, 동물의 경우 수시로 변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조합해 내는 것이 바로 생명력을 부여하는 연출력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어려움은 많이 있습니다. 각 사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적당한 모델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나름의 연출.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를 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모든 작업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전문가들에게 감수를 부탁한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이태수의 세밀화다.

"세밀화가 모든 것의 최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작업은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예비작업이죠.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를 함께 해나갈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겁니다."

작업 초기 일할 것이 없는 어려움 보다 열악한 경제적 사정이 그의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이태수씨는 살짝 털어놓는다. 그리고 현재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급화된 세밀화 책들이 처음 예상했던 계층보다 부유한 계층에 더 가까이 가있는 현실을 꼽았다.

"원래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좋은 그림을 접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저희 작업에서는 절대로 수입품을 쓰지 않아요. 순수하게 국산만을 추구하죠. 종이도 가장 좋은 국산을 선택하고, 인쇄도 국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맡기고. 하다보니 책의 가격이 어쩔 수 없이 비싸져버린 거죠. 의도하지 않았던 고급화로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책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부분에 대한 대안으로 이태수 씨는 '흑백그림'을 이야기한다.

"조금 거칠고 투박하지만 제대로 그린 그림, 그리고 부담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가설 수 있는 그림을 고민하다가 흑백그림을 찾게 된 겁니다. 앞으로 거친 종이에 힘있게 흑백그림을 많이 그려볼 참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충실한 것으로 꾸며야죠."

그를 보고 있으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장인'이란 말이 스스로 떠오르게 된다. 순탄한 앞날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던 화가의 길을 박차고 나와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던 어려운 길을 택한 것에서부터 그는 영락없는 장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의미와는 좀 다른 장인으로 불려야 할 것 같다. 보통의 장인들이 자신의 예술적인 완성을 위해 살았다면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예술혼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어린이 책을 고르기 위한 방법을 일러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정성이죠. 정성을 들여 그린 그림은 그림의 완성도를 떠나서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그림에 그만큼 정성이 깃들었다면 글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얼마나 제대로 알고 그렸는지,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그렸는지 따져보고 고른다면 좋은 책을 고를 수 있을 겁니다."

도시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인상과 말투로 처음의 '할 말 없다'는 발뺌과는 달리 구수하게 풀어내는 그의 말투는 차라리 정겨웠다. 자연과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자연을 닮아버린 것일까? 그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다는 부모님의 삶을 소재로 한 또 다른 그림의 세계를 기대해 봐도 좋으리라. 

- 웹진 부꾸에서 발췌

 

 

오늘도 딸과 눈을 마주치며 소리 없이 웃습니다. 다른 부모들도 그렇듯이 내게는 아주
소중하고 스승과 같은 딸입니다. 딸이 태어나면서 내게 할 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딸이 태어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어떤 아버지로 있어야 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다가 딸에게 보여줄 책을 고르려고 책방에
갔다가 내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림책을 고르다 보니 좋은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세밀화 쪽으로는 아예 없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늘 질 좋은 그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오던 터라 출판미술은
내 생각을 실천하는 데 좋은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판미술을 하려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 것은 기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자연스럽게 밖으로 취재를 나가게 됐습니다.
기초 자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딸이 자라면서 실제로 필요한 우리 자료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림책을 그릴 때 "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태수 선생님은 1961년 3월 15일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경기도 백학마을(경기도
연천군)로 업혀가 그곳서 중학 2학년까지 보냈습니다.
백학 마을은 벼농사를 주로 짓는 전형적인 농촌이었고 그의 부모님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세 명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 이태수 선생님은 어린 시절 비교적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골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이태수 선생님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농사일을
거들거나 자연에서 놀았습니다. 마을의 형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물가로 돌아다니며 놀았던
추억은 현재의 그림 그리기에 정서적인 받침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시골아이였던 이태수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말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왔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환일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림을 잘 그리고 붓글씨를 잘 써서
주변에서 "손재주 있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미대에 진학할 마음을 먹은 그는 1978년엔 화실에 다니는 미대 지망생
이었는데 이때 만난 화실의 미술선생님은 그에게 화가로서의 자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는 홍익대에 진학하여 서양화과에 다니게 되었는데 이때엔 세잔이나 모딜리아니를 꿈꾸고,
곰브리치의 미술사를 읽는 평범한 미대생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전시장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책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미대를 졸업한 뒤
얼마간 미술학원에서 미술지도를 하던 끝이었습니다.
대학 때 시작한 아르바이트까지 10년 넘게 미술교육을 한 결과, "거꾸로 가는" 제도권
미술교육에 심각한 회의를 느꼈고, 그와 함께 "전시장 그림" 그리기도 끝을 냈습니다.

"책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중에는 그의 딸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로서 그가 딸에게 보여줄
그림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딸이 스승이자 자신에게 할
일을 준 소중한 존재라고 합니다.

최근 그는 계절그림책의 봄편을 그리고 있지만 시간이 나면 흑백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흑백그림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합니다.

이태수 선생님의 책 그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도감이나 사물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이고 또 하나는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
입니다.

도감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작가의 감성은 최대한 자제한 채 개념을 중심에
놓고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는 "최대한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에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엔 비교적 작가의 감성이 들어가는 편이라고 한다.
가령 그는 "우리끼리 가자"에서 동물들을 사실에 충실하게 그리되 동물들의 몸짓이나
자세, 표정을 통해 최대한 의인화시키고 이야기 그림책으로서의 재미를 살리려 애썼다고
합니다.

"세밀화"는 처음부터 어린이를 위해 그린 것은 아니었으나 좋은 그림을 일상적으로 보고
자라야할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 우선 중요했기 때문에 "세밀화"는 현재 유아들이나
어린이가 보는 책으로 우선 편집되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태수 선생님의 작품으로는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그림책 (보리(1994)], [할아버지 요강/
보리(1995)],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보리(1997)],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보리(1997)], [심심해서 그랬어 /보리(1997)], [우리끼리 가자 /보리(1997)], [우리
순이 어디 가니 /보리(1999)]가 있습니다.

- 애기똥풀의 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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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우리 정서를 그리는 그림 작가 이억배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이정표를 읽습니다. 좌전, 원삼, 용담 저수지, 고삼, 서삼……. 이억배 선생님 사시는 곳, 풍정 마을이 점점 가까워 옵니다. 산모롱이를 돌아 풍정 마을 입석과 급히 눈인사를 나누고 마을 고샅으로 들어섭니다. 언덕처럼 나지막한 산 옆에 선생님 사시는 집이 있습니다. 환히 웃으시며 마당으로 나오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수원 살다가 풍정 마을로 삶터를 옮긴 지 사 년 되었다는 선생님 집 마당은 어디 한 군데 허술한 데 없이 잘 손질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집을 가꾸고 삶을 가꾸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딸 한솔이의 작품과 가족 신문이 붙어 있는 마루에 앉아 역시 그림책 작가이신 정유정 선생님께서 내 주신 차를 마십니다. 두 분 선생님의 정겨운 미소와 따스한 햇살이 알맞춤하게 퍼지는 마루가 편안합니다.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글을 쓰고 그린 『솔이의 추석 이야기』의 주인공이던 한솔이는 벌써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종익이는 봄이 되면 3학년이 됩니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그대로 있는데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은 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갑니다. 두 아이 모두 학교에 다니니 학부형으로서 걱정이 많은 선생님 부부와 저 또한 학부형으로서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주고받다가 작업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작업실 들어가는 문에 글라데스코 물감으로 선생님이 그린 호랑이 한 마리가 눈높이에 맞추어 앉아 있습니다. 호랑이는 퉁방울 눈을 뜨고 장난스레 입을 벌리고 그 방이 ‘이억배 정유정 작업실’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 얼굴 가득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는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작업실 문을 열자 널찍한 마루 바닥 왼쪽으로 나지막한 책꽂이가 있습니다. 책꽂이 널을 지탱하는 기둥에도 선생님이 그린 닭 두 마리가 장난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책꽂이 위 한지로 바른 벽에는 새벽을 알리는 늠름한 수탉이 담장 위에 서서 인사합니다. 1997년에 그린 도서관 그림은 책을 사랑하는 작업실 주인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 옆에는 방문이 있고, 또 책꽂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온 벽 가득 책이 꽂힌 책꽂이입니다. 직접 마름질하여 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사랑을 듬뿍 받아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책꽂이 옆에는 선생님의 보물 창고인 오래 된 장롱이 있습니다. 장롱 문을 열면 켜켜이 지른 선반 위에 그림책 원화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맨 아래 칸에는 선생님의 그림책과 그 그림책으로 만든 기념품이나 인형 등이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세상에서 더 소중한 보물이지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에 나오는 솔이 인형도 누워 있습니다. 미국에서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만든 인형이지요. ‘Make Friends around the World’라는 시리즈로 나온 그 책은 미국의어린이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했을 터이지요. 인형 솔이는 선생님의 딸 한솔이가 입었던 돌복을 본따 만든 색동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한솔이의 돌복을 미국에 보내 주어 만들었다는 색동 저고리와 치마는 안타깝게도 서양식으로 마름질이 되어 우리 한복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했다며 정유정 선생님께서 안타까워하십니다.

보물은 옷장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방을 작은 공간과 큰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 책꽂이 옆의 서랍장 안에도 보물이 꽁꽁 숨어 있습니다. 열 다섯 단이나 되는 널따란 서랍장 안에는 한지와 수채화 종이 등 여러 가지 종이가 종류별로 들어 있기도 하고, 최근에 그린 그림책의 그림, 그림책을 만들기 전에 고심한 흔적인 스케치와 더미 책들과 행사 때 그렸던 포스터 그림들, 자료 슬라이드들,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 둔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보물 서랍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의 더미 책이 나옵니다. 처음에 만든 더미 책에서 주인공 수탉은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골목길 끝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을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골목길의 선이 살아난 장면이어서 아주 오랫동안 이 구도에 마음을 뺏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보니, 동네 모습은 마음에 드는데, 술에 취한 수탉이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 것 같아 구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더미 책에서 주인공 수탉은 다른 수탉들이 술을 마시는 천막을 벗어나 산길을 걸어 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선생님의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하지 않았나 봅니다.

결국 더욱 크게 그려진 천막 옆에서 술을 마시며 비틀거리는 수탉을 그리고 나서야, 주인공 수탉의 성격의 변화를 도드라지게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셨나 봅니다. 그림책에는 세번째 더미 책에 그려진 그 장면이 실려 있습니다. 수탉이 팔씨름하는 장면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보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장면은 마치 서양의 원형 경기장을 보는 것 같고, 양계장의 닭장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 문화와 우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로 배경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합니다.

서랍 속에서 나온 또 다른 주인공은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의 할머니입니다. 평소에 눈여겨본 여러 할머니들의 표정과 몸피, 옷차림, 유난히 커다란 손이 있는 할머니들이 서랍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할머니 가운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가 책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서랍 속에는 풍정 마을에 삶터를 꾸밀 때 마당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정유정 선생님이 그린 나무지도도 있습니다. 지금 마당에는 그 지도에 그려진 자리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제법 주인티를 내고 있습니다. 이억배 선생님의 다른 그림들도 서랍 안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풍경도 있고, 놀아 달라며 아빠에게 떼쓰는 종익이 모습도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입니다. “80년대 후반 들어 작가들이 스스로 기획하여 출간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백두산 이야기』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가 그런 책이지요. 저도, 작가인 제가 작업을 시작해 출판사를 교섭하는 식으로 책을 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든 책이 『솔이의 추석 이야기』예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전통 그림 기법을 섞어 그렸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그림에는 입체감이 없고 선이 살아 있습니다.

“우리 그림은 선으로 그리는 그림이지요. 형태와 형태의 경계를 선으로 정확히 나타내 줍니다. 동양화에서 입체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사물을 보는 관점 때문에 그랬지요. 서양에서는 그리는 대상을 물질로 보아 그대로 그리려 애쓰다 보니 빛의 변화에 따른 입체감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지요. 반면에 동양에서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인격이나 정신의 표현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정조 시대에 청나라에서 서양의 원근법과 명암법이 도입되었는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수원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 「삼세여래체탱」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민화, 풍속화, 불화 등 우리 옛그림에 빠져 들었는데, 국립 박물관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았을 땐 가슴이 뻥 뚫리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선생님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고구려 벽화나 옛 그림의 ‘행렬도’에 매료되어 작업을 시작한 현대판 행렬도로, 우리 식 풍속화입니다.

“문학이 모국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림도 시각적인 공감대를 이루려면 자기 삶의 근거에서 나오는 구체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영정조시대부터 그런 그림이 그려졌지요. 근대에 들어 서양화되면서 우리의 시각물들이 정리되거나 보존되지 않은 채 사라지게 되었지요. 생활사 자료 연구가 잘 안 되어 그림 그리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장독대를 보기로 든다면 독의 쓰임새와 놓인 장소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른데 그런 자료가 없으니 우리 그림이 세부 묘사에 약할 수밖에 없어요. 세부 묘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무척 중요한 것인데 이것이 잘 안 되어 있으니 사실주의 그림이 발전하기 더욱 힘든 것이지요.

사실주의는 그리는 대상의 본성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감수성이나 정신이 배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주의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대상의 세부묘사를 사실주의로 오해하여 자칫 배경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주제인 땀냄새나 때, 시각적 흔들림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에즈라 잭키츠의 그림책 『안경』의 경우에도 그림이 추상적인 것 같아도 사회적 배경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림책은 삶의 리얼리티를 바탕에 깔고 가는 것이기에 사실주의는 그림책 작업에서 무척 중요한 것이에요.

문화를 생각할 때, 민족 의식과 미술이 만나는 자리에 민화가 있어요. 우리 민화는 그리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움직이는 아주 특이한 그림이지요. 민화의 그림은 아이들 그림과 같아요. 아이들은 제가 그리고 싶은 주제를 부각시키지요. 즉 그리고 싶은 대상만 그립니다. 그래서 주제가 강하고 주관적인 그림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게 객관적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그림은 바로 아이들이 그리는 그런 방식으로 그린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 수탉은 다른 닭보다 훨씬 더 크게 표현되었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을 왜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민화가 자연주의와 표현주의를 다 안고 있다고 봐요. 민화가 장식적이고 발상이 자유로운 까닭은 그리는 이가 아는 세계를 그려서 그래요. 당시 사람들의 삶이 자연에 기반했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것을 주로 그렸지요. 민화나 아이들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진실되어요. 그래서 민화가 주는 힘은 바로 진실이 주는 힘이지요. 그림이 끌고 가는 힘은 인문학적 기본과 예술적 감동인데 그림책 혜택을 못 받고 자란 사람들이 그림책을 끌고 가니까 힘들지요. 그림책을 빨리 발전시키고 싶은 욕구가 높은 만큼 그림책에 대한 논의도 발전시키고, 작업 체계도 제대로 잡아나가야지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두 작품 다 한지에 그렸어요. 한지에 그림을 그리면 서양의 수채화지에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서양 수채화 종이는 종이 위에 물감이 덧씌워지고, 동양화 한지는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어 중첩되어 쌓이지요. 마치 얇은 옷감 사이로 속살이 비칠 때처럼 아련하고 그윽한 느낌을 주거든요. 물감을 여러 번 얹어 많이 쌓일수록 더욱 그윽하고 은은한 맛이 나는 것이 한지에 그리는 그림의 특징이에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나온 95년에만 해도 한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출판사 편집자들이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짓곤 했어요. 인쇄를 전제로 하는 그림책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한지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 난감했기 때문이었지요. 농담을 조절하여 그리는 수묵화든 물감을 여러 번 올려 그리는 채색화든 편집자들에게는 더없이 골치 아픈 원화였던 거지요. 많이 변하긴 했지만 한지 그림은 지금도 편집하는 분들이 골치 아파하죠.”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 그림을 살리고자 고민한 편집자가 있었기에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한지의 장점을 살린 그윽한 그림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다른 나라에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대학에 입학하여 전공으로 조소를 택했지만 사회가 혼란했던 그 시절, 거의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갈 때쯤에는 민중 예술에 눈을 돌려 현장 미술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졸업한 후에는 안양에서 문화 운동 단체인 ‘우리 그림’과 ‘안양 문화 예술 운동 연합’에서 일하였고, 미술동인 ‘우리들의 땅’에도 참여하셨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공간으로 가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장 미술 운동 쪽에서 활동했지요. 나름대로 미술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했어요. 예술의 민주화와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록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린이 그림책은 어쩌면 운동과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림책은 대중화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문화 예술이 엘리트화되고 고립되어 있는데, 이런 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그림책 분야라고 생각해요. 판화 운동, 시민 문화 학교, 미술 학교 활동 등을 할 때, 살아가면서 즐겁게 활동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요. 이런 생각이 어린이와 연결되면서, 한솔이에게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레 그림책을 그리게 되었던 겁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지요. 삶에 활력이 생겼고, 처음에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상처받은 정신을 위로받아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즐겁게 그림책 그림을 그렸어요. 어린이 그림책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치료사가 되어 스스로 치유하게 되었지요. 그림책은 사막에서 얻은 물 한 모금처럼 나를 끌어당겼어요. 정말 매력적인 작업이었어요.”

선생님은 『떼굴떼굴 떡 먹기』『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새 하늘을 연 영웅들』『금덩어리에 깔린 욕심쟁이』에 삽화를 그렸으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으로 BIB (Biennale of Illustrations Bratislava Slovakia) 선정작가로 뽑히기도 했고 그림책『솔이의 추석 이야기』 『반쪽이』『쏙쏙 배움놀이 1』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그림책을 낸 지 참으로 오래 되었습니다. 까닭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지요, 오랫동안 그림을 못 그렸지요. 동네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통 작업을 못했어요. 동네에서 불과 1.2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진 곳에다 재벌 회사에서 납골당을 포함하여 40만 평이나 되는 묘지를 조성하려 했어요. 안 그래도 주변에 천주교 공원 묘지가 50만 평, 또 다른 교회 공원 묘지가 있는데, 그 묘지까지 들어서면 동네가 어떻게 되겠어요? 돈 되는 일이라면 지역 주민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고 그런 일을 하려 하면 안 되지 않겠어요?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반대 운동을 했지요. 조직을 만들고 만화 전단을 만들어 안성 시내의 여론에 호소했지요. 그 일을 일 년 넘게 했더니 마음도 몸도 아주 지쳐 버렸어요.”

그랬습니다. 삶터를 아름답게 지키는 일을 하느라 선생님은 일 년이 넘도록 그림도 못 그렸던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날에 하던 일, 불의와 부당을 참지 못하는 선생님의 정신이 동네 일에 그토록 오랫동안 선생님은 붙들어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풍정 마을 사람이 되어 여기 이곳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니 새로 시작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지요. 시 그림책이든 옛이야기든 단편 동화든 여유를 갖고 작업하고 싶어요. 표현 방식은 여러 방면으로 시도를 해 봐야 되겠지만 추구해야 할 주제나 관심 분야는 우리 그림, 우리 전통을 살린 그림이에요. 우리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정신적인 가치관이나 느낌, 우리만의 어떤 것들을 그리고 싶어요. 우리 문화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아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파괴한 행동에는 자기 비하가 깔려 있는데, 이것을 극복해야지요.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와 다른 어떤 것, 배타적 민족주의의 견지에서 보는 우리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에게 쌓여 온 어떤 것을 그리고 싶어요. ‘새벽에 우는 수탉’을 보고 느끼는 정서 같은 것이 바로 우리 것, 우리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치가 없으면 잘 못 먹는 밥 등, 무언가 우리다운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불화나 민화도 공부해 보고 싶고 현실 속에서 버리려 해도 안 버려지는 어떤 것을 찾아내어 표현하고 싶어요. 노력한다고 될지는 모르겠는데 스스로에게 내 준 숙제이지요. 여태까지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피상적인 부분도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생활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을 살려 내려고 해요.”

창 아래 자리한 선생님의 작업대 옆으로 작업중인 그림과 화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널찍한 책상 위에는 활을 든 작은 사람이 물이 휘감아 도는 커다랗고 널따란 바위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무슨 그림이냐고 하니 심심해서 그린 그림이라며 빙긋 웃으십니다. 그 옆 높다란 책꽂이 위에 오래 전에 만든 장서표 세 장이 사이좋게 앉아 있고, 또한 그 옆으로는 딸 한솔이가 빚은 인형들이 이울어가는 햇님이 보내준 빛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손수 나무를 마름질하고, 전기대패로 밀고, 지금도 가끔 매끈하지 못한 부분이 손에 만져지면 샌드페이퍼로 매끈매끈하게 다듬기도 한다는 마루 바닥 가운데 놓인 나지막한 상 옆에도 붓과 작은 접시와 그림책을 그릴 때 살펴야 하는 자료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얼마 전에 그리기 시작한 삼국유사 전집 가운데 ‘선화공주와 서동’ 얘기에 쓰인 물감들이 앙증맞은 작은 접시에 제 흔적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접시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놓인 작은 장 안에는 유리병에 얌전히 담긴 동양화 물감이 들어 있습니다. 진채 작업을 하실 요량으로 사다 둔 물감들입니다. 아교, 백반, 접착제와 발색제를 섞어 그리는 동양화 진채 물감이 고운 한지 위에 제 몸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슥해진 밤,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자동차에 올라 선생님 부부의 따뜻한 배웅을 받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선생님이 찾는 우리다운 것을 생각합니다.

- 웹진 열린어린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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