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어린이처럼 투명한 수채화의 작가 - 이와사키 치히로

                                        

치히로가 죽은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공기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가장 주목할만한 업적은 어린이를 그리는 일을 계속했던 아티스트였다는 점입니다. 치히로는 모델이 없이도 한 살 배기 아이와 10살 먹은 어린이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묘사해냈습니다. 예리한 관찰력과 훌륭한 스케치 기술을 이용해서 서로 다른 포즈의 아이들을 1,000여 점이나 그렸지요.

그녀는 대강의 스케치 작업 없이 붓을 집어 들어 물에 적신 후 종이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이들의 피부를 실제로 부드럽고 탄력있게 느낄 수 있게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치히로는 "아이들이 나의 손가락을 잡을 때 나는 그 움켜쥐는 힘에서 기쁨을 느낀다. 참으로 부드럽고 토실토실한 손이 놀라울 정도로 힘이 있다. 단지 관찰하기만 해서 스케치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러한 본질적인 움직임을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 때문에 20년 넘게 아이들을 그림으로써 어린이를 생동감있게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마치 실제 아이들인 양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한번은 치히로가 말했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그릴 때, 나는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는 것 같이 느낀다." 그녀의 그림 속에 있는 작은 소녀들은 아마도 그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겁니다.

치히로는 서양식 수채화기법과 일본식, 중국식 전통 테크닉을 섞어서 구사함으로써 독특한 스타일의 미묘한 표현을 창출해냈습니다. 이렇듯 정교하고 흐르는 듯한 테크닉은 치히로의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특성입니다. 일찍이 후지와라 코제이 학교에서 일본 서예 수업을 받았던 경험은 그녀의 이러한 기술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그림들은 치히로의 눈에 띄는 테크닉과 모성애, 살아있는 애정이 함께 결합된 산물입니다.

그녀의 일생 전반에 걸쳐서 치히로는 평화를 동경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온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을..."이라는 말이 반영하듯,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여교사와 건축기사의 3자매 중 장녀로 태어나 도쿄에서 유복하게 성장, 도쿄여대 교수로부터 데생을 배웠습니다. 20살에 데릴사위를 얻어 결혼식을 올렸으나 아무리 해도 상대를 사랑할 수 없었고, 마음 약한 남편의 자살로 1년도 못되어 결혼생활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침략전쟁의 실태를 앎에 따라 가해자의 입장이었다는 죄의식에 괴로워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즉 상대를 깊이 상처 입혔다는 것, 자신의 혜택받은 생활 뒤엔 많은 타국민의 괴로움이 있었다는 자각을 계기로 아무 것도 몰랐던 그때까지의 인생과 결별하여 괴로움과 슬픔 모두를 받아들이는 삶을 결심하게 됩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은 이와사키 치히로는 자력으로 산다는 기쁨을 지닌 채 낮에는 인민신문의 기자를 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처음 그린 안데르센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문부대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후에 공산당 국회의원이 된 인권변호사와 결혼, 인권운동을 하는 남편을 대신해 평생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의 그림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 받는 이유는, 단지 언뜻 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푸근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과 슬픔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간애가 녹아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주는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자료 : 월간 디자인 1999년 5월호)

 

1918년

12월 15일 일본 후쿠이 지방의 다케푸에서 건축기사인 아버지 마사카츄 이와사키와 여학교의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후미에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1919년

도쿄의 시부야로 가족 모두가 이주했다.

1927년

소학교 시절 그림을 사랑하던 구보다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학예회 등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다.

1932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 농구, 수영, 활쏘기 뿐 아니라 스키, 등산도 즐겨했다.

1933년

사부 로스케 오카다 밑에서 스케치와 유화공부를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여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93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요여자 서양화전에 출품하여 입선했다.

1939년

첫 번째 결혼을 하여 남편의 근무지인 중국 만주, 대련으로 갔으나 그 해 겨울 남편의 자살로 귀국한다.

1941년

5월 도쿄 대공습으로 집이 전소되어 나가노현의 마쯔모토로 이주한다.

1946년

5월 나가노현에서 일본 공산당에 입당. 일본 공산당 선전예술학교에 입학한 뒤토시코 아카마츠로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었다. 이후 인민신문의 기자가 되어 기사와 함께 삽화를 그렸다. 보육원이나 고아원에서 스케치를 한다.

1947년

일본 미술회, 일본 아동회 회원이 되었다. 5월 '나쁜 여우, 그 이름은 라이케'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뒤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화가의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1948년

각종 신문과 잡지, 교과서에 작품을 게재했다. 유화도 자주 그렸다.

1949년

일본공산당의 활동 중에 젠메이 마쯔모또와 알게 된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출판하고 이듬해 '문부대신상'을 수상한다.

1950년

젠메이 마츠모토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1951년

아들 다케시를 낳는다.

1952년

도쿄 심모샤쿠지에 집을 짓고 이후 22년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곳은 현재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미술관'이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1956년

어린이 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소학관아동문화상을 수상했다. 첫 번째 그림책인 '나 혼자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를 출간한다.

1958년

'달님은 몇 살?'을 그려 이듬해 후생대신상을 수상한다.

1960년

알파벳 그림책 '아이우에오' 출간, 이듬해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한다.

1963년

잡지 '아이들의 행복'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시작한다. 6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여성회의'에 참석한다.

1966년

어머니와 유럽 여행을 후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책'을 그린다.

1967년

'내가 어렸을 적에'를 그린다.

1968년

'비 오는 날 혼자서 집 보기'를 그린다.

1973년

'귀여운 새'로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그래픽 상을 수상한다. '전쟁 속의 아이들'을 출간한다(사후에 1974년 라이프치히 국제 도서전에서 동상 수상). 월간지 '어린이의 행복'의 표지그림을 모아 '어린이의 행복 화집'을 출판한다. 가을, 암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1974년

8월 간암으로 사망한다. 사후에 '빨간 양초와 인어아가씨'가 출간된다.

(자료 : 도쿄 치히로 홈페이지, 월간 일러스트 2000년 8월호)

- 치히로 월드에서 퍼옴 http://chihiro.hihome.com

 

 




치히로의 그림은 치히로 월드에 가셔서 갤러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치히로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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