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세번째

로알드 달 사후 뒷이야기들


1990년 로알드 달은 혈액에 이상이 생기는 아주 희귀한 병인 골수 이형성 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로알드 달은 "나는 요 몇 달 사이 기운이 좀 없고 안색이 좀 나빠졌다. 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자꾸 졸음이 쏟아지고, 책을 쓰고, 진 토닉을 마시고, 소녀들을 따라 다니는 등 거품처럼 솟아나던 아름다운 에너지들이 솟아나지 않는다."고 어떤 잡지에서 한 어린이 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쓰고 있다.
로알드는 1990년 11월 23일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 심술궂은 목사님(The Vicar of Nibbleswicke)>, <나의 생애(My Year)>, <로알드 달의 요리책(Roald Dahl Cookbook)> 등 계속해서 책을 썼다.

로알드 달의 사망 이후에도 그의 책들은 그 인기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영국에서 그의 책들은 한 해에 백만 권이 넘는 재판을 찍을 만큼 많은 양이 판매되고 있으며, 이제까지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남겼다.
로알드 달 생전에는 이상하게도 그다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던 것이 작가가 사망한 이후인 지금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그 판매량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와 <마틸다>는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초기에 만들어진 것 보다 더 많은 성공을 이루었다. 또 새로운 개작으로 다시 제작되는 영화 <BFG>와 리메이크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영화는 1971년에 젠 와일더 주연으로 <윌리 웡커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로알드 달의 시 <반항하는 운율(The Revolting Rhyme)>은 <환상적인 여우 아저씨(The Fantastic Mr. Fox)>라는 오페라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이 공연의 수익금은 로알드 달을 기리기 위해 로알드 달 제단에서 자선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공연은 시몬 캘로우, 티모시 웨스트, 소피 달이 주연을 맡고, 데니 데비토와 조애너 럼리가 부대 연출을 맡아 <로알드 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2000년 5월 29일에 카디프 베이(Cardiff Bay)에서 스펙터클하게 벌어졌고, 이 공연의 주요 장면은 BBC 방송의 유명한 음악 프로그램 중 하나인 <Music Live>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한편 영국 엘러스베리(Aylesbury)에 있는 로알드 달 어린이 박물관인 <벅스 카운티 박물관(Bucks Count
Museum)>에는 로알드 달의 어린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찾아와 서로 이야기도 하고, 작품들도 감상하는 상호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한편 그레이트 미센덴에서도 로알드 달 박물관 건립 계획이 추진 중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남부 웨일즈에서는 카디크 거리를 로알드 달 거리로 이름을 바꾸자는 운동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그녀의 부인 펠리시티 리시는 "로알드는 정말로 감격스러워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0년 3월 세계 책의 날 행사 때 2000명이 로알드 달은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어린이 책 작가이자 성인 이야기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2000년 7월에는 영국 도서관, 교사, 출판사들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1960년에서 79년 사이에 출판된 어린이 책 중에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하고, <케이스 바커 밀레니엄 북 상(<Keith Barker Millennium Book Award>을 수여했다.

로알드 달의 생애와 그의 작품에 지속적이고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2000년 9월에는 로알드 달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roalddahl.com)가 만들어졌다.

특히 흥미로운 일은 로알드 달의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다음 두 해 동안 로알드 달의 펜들은 로알드가 작품의 마법 같은 소재들을 찾아내고, 퀸틴 블레이크(Quentin Blake)가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고 혁명적인 로알드 달의 일연의 창작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번역 작품 리스트

▲ 찰리와 초콜릿공장 / 시공주니어
▲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 시공주니어
▲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 시공주니어
▲ 마틸다 / 시공주니어
▲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 시공주니어
▲ 내 친구 꼬마 거인 / 시공주니어
▲ 마녀를 잡아라 / 시공주니어
▲ 멍청씨 부부이야기 / 시공주니어
▲ 아북거, 아북거 / 시공주니어
▲ 창문닦이 삼총사 / 시공주니어
▲ 꼬마 빌리의 친구 민핀 / 시공주니어

 

출처 북보트

 

       

        

        

     

 

 

같은 책이라도 표지가 달라서 그냥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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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영원한 삐삐할머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스트리드 린드 그렌 소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07년 스웨덴 스모랜드 지방의 빔멜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부였던 아버지 사무엘 오거스트 에릭슨은 부지런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어머니 부지런했지만 말이 없었다고 한다.

린드그렌은 아버지를 닮아서 말이 많고 쾌활한 아이였다. 그녀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안정과 자유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뜻합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마음껏 놀게 해 주셨어요. 우리는 주변의 멋진 자연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고, 놀고, 또 놀았지요.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놀다가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지요."

부모님이 보여 주셨던 사랑과 자유는 이후 린드그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젊은 시절, 린드그렌은 잠시 반항아가 되어 방황한 적이 있었지만, 늘 자기를 믿어 주었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린드그렌은 국어와 작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였다. 열세 살 때 지은 글 <우리 농장의 정원>이 스모랜드 지방신문에서 주최하는 상을 받아서, 일약 조그만 마을 빔멜비의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까지도 린드그렌을 만나면 "네가 이번에 신문에 난 아이냐? 넌 아마 제2의 셀마 라겔레프(스웨덴의 유명한 작가로,<닐스의 이상한 여행>을 지었다.)가 될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작가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린드그렌은 반대로 '절대로 작가가 되지 않을 거야.' 라고 결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결심을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심각하게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글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내게 관심을 가지니까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겠죠?"

그런데 개성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린드그렌은 열여섯 살 무렵 문제아 대열에 끼게 된다.

대담한 성격이었던 린드그렌은 시골 마을 빔멜비에서 최초로 단발머리를 한 소녀들 중 하나였다. 보수적인 빔멜비 사람들은 린드그렌 패거리를 보면서 수군거리곤 했다. 그런 사람들의 눈초리가 오히려 린드그렌의 반항심을 더욱 부추겼다.

린드그렌은 열여덟 살 때에 결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린드그렌과 결혼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때에야 린드그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빔멜비같이 보수적인 마을에서는 미혼모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때문이다. 같이 몰려다니던 친구들조차 더러운 것을 보듯 린드그렌을 외면했다.

어른들의 평가가 어떻든, <삐삐 롱스타킹>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삐삐 롱스타킹> 원고를 되돌려보낸 보니엘 출판사는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출판사라는 비웃음을 샀습니다. 반대로 그후 린드그렌이 쓴 84편의 동화를 펴낸 라벤 앤 쉐그렌사는 큰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린드그렌은 라벤 앤 쉐그렌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웨덴 아동문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린드그렌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1958년에는 <라스무스와 방랑자>로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메달을 받는 등 온갖 종류의 아동문학상을 휩쓸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문학상, 독일 서적 평화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동화작가가 되었다.
노벨 문학상에 버금가는 라이트 라이버리후드 시상식에서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없지요. 동화도 마찬가지랍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동화를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고, 예술적인 감동을 받게 하려고 썼지요. 불행했는데 내 책을 읽고 행복을 맛 본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동화마을 삐삐마을 홈페이지의 인터뷰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 대해 궁금해하기 때문에 먼저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1907년에 사과나무로 둘러싸인 오래된 빨간 집에서 태어났다.
나는 농부인 아버지 사무엘 아우구스트 에릭슨(Samuel August Erickson)과 그의 아내 한나(Hanna)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우리는 농장에서 살았다.
그곳은 지금도 그대로 있으며 스모렌드 교외에 위치한 빔멜비라는 작은 도시 근처에 있었다.
이 농장은 1411년부터 한 교구의 영지였으며 지금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성직자는 아니었지만 그 조상이 그랬듯이 그 곳에서 계속 살아왔고, 나중에 그 아들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 후로 두 아이가 더 태어났고, 그래서 우리는 거나(Gunnar), 아스트리드(Astrid), 스티나(Stina), 잉게게르트(Ingegert) 이렇게 네 명의 형제가 되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벌비 북(Bullerby)>에 나오는 것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우리는 빔멜비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이 도시는 아주 좁아서 15분만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벌비 북(Buller Book)>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자랐고, 이 시기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이후 나는 비서가 되는 교육을 받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갔고, 한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했으며, 결혼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은 라르스와 카린이었으며 아이들은 늘 내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는 책을 쓰지는 않았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작가가 되고 싶다든가 일부러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의식적으로 작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학창시절에 사람들은 늘 내게 "너는 커서 반드시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두고 "빔멜비의 셀마 라겔."(셀마 라겔(Selma Lagerl)은 노벨상을 받은 스웨덴의 유명한 작가이다)이라고 부르며 나를 놀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이런 관심 때문에 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 일일 것으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작가가 된 개기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1941년에 일곱 살인 내 딸이 폐렴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밤, 그 애 곁에 앉아 병간호를 했는데 그애는 다른 어린애들이 다 그렇듯이 "엄마 이야기 하나만 해 주세요."하고 계속 졸라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져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니?"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해 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그 아이는 즉석에서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이름을 지어냈다. 하지만 나는 삐삐가 누군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즉석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삐삐라는 이름이 낯선 이름이었기 때문에 주인공 삐삐는 점점 낯선 모습의 소녀가 되어갔다. 이 이야기는 카린 때문에 시작됐지만, 삐삐는 점점 카린의 친구가 되어 갔고, 캐린은 삐삐에 대해 놀랄 만한 애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캐린에게 여러 해 동안 삐삐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다.

1944년 5월의 눈 내리는 저녁, 나는 스톡홀름 중심에 있는 바사 공원((Vasa Park)을 산책하고 있었다. 내린 눈으로 포장 도로가 모두 얼어버려 미끄러져 발을 다치고 말았다. 그래서 얼마 동안 집안에 머물러야 했다.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삐삐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속기 형식으로 써 보기로 작정했다. 내가 비서로 일하던 시절 나는 유능한 속기사였고 지금까지도 나는 모든 작품의 초고(礎稿)를 이 속기법으로 쓰고 있다.

1944년은 5월은 카린이 1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 때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 삐삐 이야기들을 다 써서 그 원고를 생일 선물로 주기로 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원고의 복사본을 출판사에 보냈지만, 출판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출판되었다! <삐삐>의 원고와 함께 내가 출판사 관계자에게 쓴 다음과 같은 편지 끝 부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사회기관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원고를 보냅니다. 물론 나는 한 아이의 어머니이고, 어떻게 내 아이들이 이런 책을 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원고가 예상대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벌써 두 번째 작품을 쓰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글을 쓰는 일을 얼마나 즐기고 잇는지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인 <Britt-Mari Lightens her Heart>는 소녀들을 위해 쓴 작품이다. 1944년 raben & sjogrens 출판사는 '소녀들을 위한 작품' 공모전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또 일어났다. 내가 2등 상을 받은 것이다!
나는 내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1944년 가을만큼 행복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해에 그 출판사는 '어린이를 위한 책' 작품 공모전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수정한 <삐삐> 원고를 이 출판사에 보냈다. 이 때가 내가 처음 상을 받은 해이다.

그리고 나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삐삐>를 읽은 어린이들이 모두 삐삐처럼 행동할 것으로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적지 아니 놀라긴 했지만 <삐삐>는 성공했다.

"정상적인 아이라면 절대로 생일 파티에서 생일 캐잌을 게걸스레 몽땅 먹어 치우지는 않는다."라고 쓴 성난 한 독자가 말했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정상적인 아이들도 팔을 뻗어 말을 들어 올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 아이가 말을 들어올릴 수 있다면 케잌 하나를 몽땅 먹어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1946년 raben & sjogrens 출판사는 새로이 '십대를 위한 탐정소설 공모'을 열었다..
나는 이번에는 <명탐정 블럼크비스트(Master Detective Blomkvist)>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응모했다. 이 작품은 예전에 다른 공모전에 응모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책을 계속 썼다.
이렇게 쓴 책들은 약 40여에 이른다. 이 작품들 중에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몇 편의 연극과 시들도 있다. 또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도 몇 편 썼다.
그리고 1946년에서 1970년까지 raben & sjogrens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분야의 편집장이 되었다.

나는 1952년에 미망인이 되었다.
두 아이들은 모두 결혼을 했고, 아들은 1986년 여름에 죽었다. 그리고 손자 일곱 명과 증손자 여덟 명을 두었다.
이것이 여러분이 내 삶에 대해 알고 잇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내가 받은 상들과 그 명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그래서 여기에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중요한 질문들을 나열해 보았다. 이 기사에서 사람들은 내 책이 어떤 언어들로 번역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 책이 수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그 언어들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작품 중의 하나 혹은 다른 몇몇 작품들은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어떤 질문들은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습니까?",
"<삐삐>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했습니까?",
"어린이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어떤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어떤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좋은 어린이책의 조건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등과 같은 질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문들은 대답하기가 참 곤란하다.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할 뿐이다.

"나는 <삐삐>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어떤 것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나와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쓴 것뿐이다.
나와 내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재미있어 했듯이 다른 아이들도 이 책 속에서 똑같이 재미있게 읽기를 바란다."

좋은 어린이책은 어떤 책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글을 쓸 때, 단지 예술적인 관점에서 진실한 것을 쓰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나 작품활동에 있어 유일한 지침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도 한다.

"왜 파스타(Farsta)(스톡홀름 남부에 잇는 행정구역)에 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의 이야기를 썼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 이런 답을 줄 수 있다.

"나는 단지 내가 알고 잇는 것을 썼을 뿐이다. 나는 파라스라는 곳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는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쓸 아이들이 살고 있다."

스모렌드의 시골 소녀가 되고, 작은 도시에서 자라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아니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에 대해서는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 작품들 대부분은 이 곳을 무대로 쓰여졌다.
벌비(Bullerby) 마을 아이들, 에밀, 라스무스와 다른 많은 아이들 등은 모두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과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다.
삐비와 명탐정 블롬크비스트와 문제를 일으키는 거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작은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다.
내가 스톡홀름 군도(群島)에서 서른 번의 여름을 보낸 후에야 이 곳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썼다.
지붕 위에 올라가 스톡홀름 중심부인 바사스탄(Vasastan) 주위를 날아다니는 칼슨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 그 작품이다.
60년이 지난 후에야 난 이 곳에 아주 익숙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오 나의 미오(M대, My M대)>, <사자와 형제의 모험>, <산적의 딸 로냐> 같은 작품은 왜 그렇게 먼 곳을 무대로 썼습니까? 당신은 먼 나라나 낭기야라(Nangjijala), 마티스 숲 같은 곳보다 지금 살고 잇는 파라스라는 곳을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작품을 쓴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여러 번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당신은 당신 자녀나 손자들을 통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까?"

그런 질문에 대해 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만큼의 아이디어를 어떤 아이에게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이다.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 반드시 내 자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억해 내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좋은 영향을 기치려 하거나 교육적인 효과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간절히 바란 단 한 가지는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독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민주적인 가치관이 널리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쓴 책이 책을 읽는다는 경험 자체밖에 줄 수 없어도 그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는 한 낯선 독자에게 "어두운 어린 시절에 빛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번역 작품 리스트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창작과 비평사)
▲ 사자왕 형제의 모험 (창작과 비평사)
▲ 엄지소년 닐스 (창작과 비평사)
▲ 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 라스무스와 폰투스(시공주니어)
▲ 내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시공주니어)
▲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시공주니어)
▲ 에밀은 사고뭉치(논장)
▲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논장)
▲ 산적의 딸 로냐 1,2 (시공주니어)
▲ 명탐정 칼레 1 : 비밀 문서를 지켜라 (웅진닷컴)
▲ 명탐정 칼레 2 : 명탐정과 보석 도둑(웅진닷컴)
▲ 명탐정 칼레 3 : 대평원의 살인 사건(웅진닷컴)
▲ 위험에 빠진 에바 로타(논장)
▲ 초대 하지 않은 손님(논장)

 

◈작품 속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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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상상력 충만 - 데이빗 와이즈너

 


<이상한 화요일>, <구름 공항>, <아기 돼지 세 마리>를 차례로 읽고 나서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그림책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한참 후에 다시 든 생각은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와이즈너(David Wiesner)를 이 달의 작가로 정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1956년 2월, 미국 뉴저지에서 조지와 와이즈너(George Wiesner)와 줄리아 와이즈너(Julia Wiesner)의 다섯 번째 아이가 된 데이비드! 그의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의 생애를 살펴 보다 보면, 예정된 그림책 작가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 나간 ‘창작 과정 연습기’라는 말이 꼭 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데이비드 그림의 시작은 공룡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애들이 흔히 그렇듯 데이비드 역시 공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아이여서 친구들과 뒤뜰에서 공룡을 사냥하는 놀이를 즐겼다. 원시인들이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동굴 벽에 사냥감을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그렸던 것처럼 그 역시 자기 사냥감인 공룡을 가능한 한 실재에 가깝게 그리기 위해, 방안에 공룡 책이란 책은 몽땅 널어놓고는 몇 번이고 공룡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일을 되풀이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수였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공룡에 대한 열정은 사라져 갔지만 그렇다고 데이비드에게서 그림에 대한 열정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공룡 대신 그를 사로잡은 건 뉴저지 공공 도서관에 있는 <타임 북(Time Book)>이라는 예술사 책 시리즈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듀러, 미켈란젤로, 다 빈치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 브뤼겔, 달리 등 이후 시대 화가들,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명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명화들에서 특히 와이즈너의 눈길을 끈 건 그림 속에 나타난 풍경들이었다. 그는 몇 시간이고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공룡을 그렸을 때처럼 그림을 따라 그리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곤 했다.

캔버스 위에 옮겨진 그림 하나하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몇 개의 그림들을 늘어놓으면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림들을 영사기에 옮겨 그 변화를 살펴보는 일은 데이비드에게는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친구들과 함께 박쥐가 나오는 무성영화를 만드는 걸로 이어진다.

<이상한 화요일>이나 <훨훨 날아라(Free Fall)> 같은 그의 대표작들에 나오는 그림들 하나 하나가 마치 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림처럼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진 그림들인데 이 시절의 경험들을 보면,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글 없는 그림책 세계의 문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던 와이즈너는 로드 아일렌드 디자인 학교에서 그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손에 넣는다.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만난 룸메이트는 데이비드에게 다양한 글 없는 그림책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처음 그는 이 책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1년 반쯤 후에 친구와 함께 간 어느 도서관에서 칼데콧 상을 받기도 한 린다 월드(Lynda Ward)의 작품을 보고는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글자 없는 책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이 세계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3학년에 접어들면서 와이즈너는 유화를 비롯한 본격적인 그림 기법들을 배우는 한편, ‘변신’이라는 주제로 길이 10피트, 높이 40인치짜리 벽화를 그렸다. 오렌지 조각이 녹아 요트가 되었다가, 다시 물고기가 되고, 이것마저 녹으면서 다른 것들로 계속 변해 가는 일련의 그림들은 전혀 관계없는 사물들이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하면 어떤 연결 고리가 생기고, 이 그림들간의 연결로, 이야기가 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효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원리를 터득하는데, 이 원리야말로 글자 없는 그림책의 기본 바탕이 된다. 3학년 때 벽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던 와이즈너는 이 때 터득한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4학년이 돼서는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는 이 일을 위해 학교를 다녔다.

벽화를 만들 때 톰 소로스(Tom Sgrous)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비드 맥컬리 교수는 와이즈너 뒤에 서서 문자로 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재구성하는 방법, 중요한 부분들을 화면에 나타내는 시점과 구도를 포착해 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여덟 단계의 창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은 스승들이 없었다면 데이비드 와이즈너가 과연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조한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아니다를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1992년 칼데콧 상을 안겨준 <이상한 화요일>을 톰 소로스 교수에게, 10년 뒤 두 번째 칼데콧 상을 안겨다 준 <아기 돼지 세 마리>는 데이비드 맥컬리 교수에게 바친 것으로 봐서 와이즈너에게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 시절이 작품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건 짐작해 볼 수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이제 그가 배워야 할 일은 끝났다. 4학년 때 그림책을 만들면서 ‘언젠가는 내가 만든 이야기책을 출판해 보고 싶다’라는 작가가 되고 싶은 동기까지 얻었으니 학교가 그에게 해 줘야 할 일은 더 이상 없는 샘이다.

졸업 후 데이비드 와이즈너는 다른 대부분의 그림책 작가들처럼 잡지나 책의 표지를 그리면서 자기 책이 나올 그 날을 기다렸다. 그 사이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에 그림만 그린 그림책 몇 권을 출판하기도 했고, <E.T.> 같은 영화를 그림책으로 재구성하는 일도 하면서 실제적인 경험을 쌓아나갔다.

데이비드가 바라던 그 날은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1988년에 찾아온다. 체스를 좋아하는 한 소년이 꿈속에서 이불이 장기판으로, 장기판이 사람으로, 책이 성으로 변하고, 소년이 여행하던 도시는 책장이 바람에 날리듯 떨어져 내리면서 또 다른 무언가로 계속 변해가는 이야기다. 대학 3학년 때 제작한 ‘변신’이라는 벽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 책은 책장 하나하나를 뜯어 이어 붙이면 하나로 이어진 두루마리 그림병풍이 될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으로 그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했고, 그림으로만 이야기하는 어린이 그림책의 성공 가능성을 조심스레 확인했다.

3년 뒤인 1990년에 와이즈너는 <허리케인>이라는 작가의 전기적인 작품으로 미국 서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책 상을 받으면서 또 한번 독자들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년 후에는 해가 지자 두꺼비와 개구리가 마법에 걸려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초현실적 이야기를 영화 같은 그림으로 엮어 낸 <이상한 화요일>로 칼데콧 상을 받았다. 이제 그의 작품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독자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상한 화요일> 이후에도 그는 다른 그림책 작가들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작품이 뛰어난 만큼 그 보상 역시 확실했다. 2000년에는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길을 잃은 소년이 구름공항에 가서 구름들에게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어 주는 <구름공항>으로 또 한번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고, 2002년에는 우리가 잘 아는 ‘아기 돼지 세 마리’를 새롭게 해석한 <아기 돼지 세 마리>로 두 번째 칼데콧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 살면서 환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 북보트에서 퍼옴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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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소설 속 환상세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 Arthur Rackham

 

   

 


현대 환상문학의 대가를 꼽으라면 《반지의 제왕》으로 명성을 날린 JRR 톨킨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서라면 어떨까?
아마도 영국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Arthur Rackham)이 1순위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반지의 제왕》에 묘사된, 인간계를 제외한 많은 생명체들의 기괴하고 신비한 외양은 이미 래컴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션 속에 선보인 바 있다.
 
1890∼1930년대를 통틀어 활동한 래컴의 그림은 1954년 출간된 《반지의 제왕》보다 시대상으로 앞서, 톨킨의 캐릭터 묘사에도 많은 부분 영감을 줬다.
신화와 요정 이야기, 우화, 민간전승 등 신비하고 초월적인 이야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완성되기 어려운 래컴의 그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림 아래쪽에 은근슬쩍 떨어뜨린, 양피지처럼 생긴 사인용 공백마저 멋져 보일 정도다.


 


환상문학과의 찰떡궁합

1867년 영국에서 태어난 아서 래컴은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작품활동 초기엔 낮에 보험회사의
사무원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예술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잡지에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기고하며 그림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그의 정교하고 섬세한 선묘는 학창 시절 카툰작가 레너드 레이븐-힐, 찰스 리키츠 등을 스승 삼아 습득한 재능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잘 그리기만 한 그림이라면 매력이 없었을 것이었다.

래컴의 초기 작품은 약간 지루하고 평범했지만, 워싱턴 어빙의 소설 《립 밴 윙클》 삽화(1905)를 계기로 이름을 날리며 일약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상한 산에서 한 잠 자고 일어나니 20년의 세월이 지나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표현해낸 래컴은 급격한 시대변화에 따른 혼란을 감추지 못하는 수염투성이 립 밴 윙클의 모습을 신비한 난장이들의 세계와 마을 사람들의 세계 사이에 교차시키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글과 그림이 함께 하는 즐거운 책 속 모험

우아하고 미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이 화면의 흐름을 주도하는 래컴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빛날 때는,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켄징턴 공원의 피터팬, 걸리버 여행기 등 독자의 상상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문학작품과 만났을 때다.

특히 이 같은 성향은 물의 요정 운디네, 니벨룽겐의 반지,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요정과 마녀, 난장이, 괴물, 용 등 상상 속의 대상과 의인화된 무생물이 수없이 등장하는 고전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탁월한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그의 그림은 원작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고목이 살아나 말을 하고, 날개 달린 요정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앨리스와 카드의 여왕이 말다툼을 하고, 영원한 어린아이 피터팬이 요정들과 뛰노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는 즐거움은 또 남다르다.

특히 비장한 서사시로 승화된 니벨룽겐의 반지 이야기는 글과 함께 어우러진 그림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아서 래컴의 작품집은 현재 외국서적 코너에서나 볼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 캐럴》(비룡소)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웅진닷컴) 등 두 권의 번역그림책이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준다

                   

 

-  리브로 작가파일에서 퍼옴

 http://www.bookers.co.kr/nbookers/thisbook.asp?section=19&category=03&articleno=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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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미하엘 엔데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 1929 ~ 1995

http://bookian.yes24.com/20020415/img/review/obd02.jpg

홈페이지:

약력

남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가적 기질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글, 그림, 연극 활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엔데의 예술가적 재능은 그림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특히 컸다.

이차 세계 대전 즈음, 발도르프 학교에서 수학하다 아버지에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학업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했다. 전후 뮌헨의 오토 팔켄베르크 드라마 학교에서 잠깐 공부를 더 하고서는 곧바로 진짜 인생이 있는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연극 배우, 연극 평론가, 연극 기획자로 활동했다.

1960년에 첫 작품 <기관차 대여행 Jim Knopf und Lukas der Lokomotivefhrer>을 출간하고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70년엔 <모모 Momo>를, 1979년엔 <끝없는 이야기 Der unendliche Geschichte>를 출간함으로써, 세계 문학계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엔데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엔데는 이 두 소설에서 인간과 생태 파국을 초래하는 현대 문명 사회의 숙명적인 허점을 비판하고, 우리 마음 속에 소중히 살아 있는 세계, 기적과 신비와 온기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세계로 데려간다. 1995년, 예순다섯에 위암으로 눈을 감았다.

번역된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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