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존 버닝햄






존버닝햄(John Burningham)은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버닝햄은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드리기로 유명한 써머힐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아이였고 청년 시절에는 우방 야전 병원 근무로 병역을 대신하였대요. 런던의 센트럴 아트스쿨에서 미술 공부를 하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여기서 핼렌 옥스버리를 만나 1964년에 혼인하게 되었는데 이때 핼렌은 디자이너였으나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해에 첫 그림책 <보르카>로 케이트그린 어웨이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 <검피의 아저씨의 뱃놀이>로 같은 상을 한번 더 받았습니다. 그림책 외에도 1966년 이후 12인치 * 8피트 크기의 벽화도 그리는 등 그는 벽화,전시,삼차원 모형,잡지 일러스트,광고 등의 프린렌서 디자이너로도 일을 하였답니다.
존 버닝햄은 간단한 글과 단순한 구성으로 충분히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선명하지도 않고 그리다 만 것 처럼 선으로 찍어서 그린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그림책 하나를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시간을 길게 잡는 작가로 알려져있답니다. 오랜 습작 끝에 그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였고 어린이 그림처럼 서툰형태의 그림도 그가 의도적으로 어린이와 친숙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내려고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어린 시절로 돌려 보냈을 때에 우러나오는 느낌을 그대로 옮긴 것인듯 합니다.

그는 그림책 한권에 여러 가지 질감의 재료를 마구 섞어서 버무린다. 물감, 크레용, 고무수채물감, 파스텔, 목탄, 먹물, 갖가지 재료들을 사용합니다. 그림책의 언어도 갓 글을 배운 어린 아이의 말투처럼 짧고 어눌하지만,이야기의 간결한 짜임과 누적구성으로도 아이들이 쉽게 이야기에 다가설 수 있게 합니다.

아이들을 외롭게 하는 현실 세계에 반하여,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나 조화로운 놀이세계,외로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그의 환타지 세계를 다룬 작품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내여 나름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겠끔 상상의 여백을 늘 남겨두지요. 또한 관습을 비켜감으로써 통쾌함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존 버닝햄은 와일드 스미스,찰스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1937년 영국 태생으로 어린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 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고, 청년 시절에는 병역을 기피하면서까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강히 자신을 지키는 좀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는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닐섬머힐 학교를 다녔다. 미술공부는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했는데, 거기서 헬린 옥슨버리를 만나 1964년에 혼인하게 되었다. 같은해에 첫 그림책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다. 헬린 옥슨버리도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해서, 뛰어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내면을 들여다 보는 단독자


1937년 영국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서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잇기를 좋아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앗다고 한다. 초등학교도 대안학교로 유명한 섬머힐을 졸업했다. 병역의무를 지는 대신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였고 런던 센트럴 아트 스쿨을 졸업하고 이스라엘에서 인형극 애니메이션 작업을 몇 년간 하고난 뒤 1964년에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다. 첫 작품 <깃털 없는 거위 보르카>로 담번에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받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살리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간섭이나 독자의 반향을 살펴야 하는 신인 입장에서 그러했다.) 그는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하면서 극도로 글을 아꼈고 독자가 보기에 불편한 구도와 이미지를 보였다. 또한 대부분의 책이 반복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철저하게 어린이의 시각으로 세계를 본다. 심도 잇는 주제(예를 들면,  죽음, 환경문제, 장애자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늠할 수도 없는 깊이가 담겨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 할아버지>에는 다른 그림책이 그렇듯이 거의 글이 없고 예의 평면적이고 선이 흩어져 있는 일러스트레이션만이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존 버닝햄이라는 거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이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한 번 더 받았고 영국에서 작업 중이다.

그림책을 통해 전하는 즐거운 깨달음

존 버닝햄은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공상적인 아이였다. 세일즈맨인 아버지를 따라 10군데가 넘는 학교를 다녔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섬머힐 학교이다. 런던 예술 공예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여기서 나중에 부인이 된 일러스트레이터 헬렌 옥슨버리를 만났다.
존 버닝햄은 1963년에 출간한 자신의 첫 번째 그림책 <깃털 없는 거위, 보르카>가 1964년에 영국에서 전 해에 출간한 그림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주는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을 수상함으로써 일약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버닝햄의 그림책에는 소심하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자신의 분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는 또 어린이 그림책 작가로는 드물게 그림책을 통해 사회적 쟁점들을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첫 번째 작품인 <보르카>에서는 소외와 장애의 문제를, <지각대장 존>에서는 아이와 어른의 의사소통 문제를, <알도>에서는 소심한 아이의 상상 친구를,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에서는 죽어가는 동물의 문제를 기차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 내고 있다. 하지만 놀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찰스 키핑과 함께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고 있다.

자유로운상상, 자유로운 표현

‘나는 어린이 책을 만드는 것이 즐겁다. 그 과정은 내가 최대한 자유롭게 일하며 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 작품을 읽고 보는 어린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자기 나름의 상상을 펼 수 있도록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결말이 내려진 이야기를 그려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은 간결하고 쉬운 글과 소박한 그림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린이들이 꿈꾸는 세계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의 그림책에는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이 등장을 하며 환상적인 사건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실세계에 있을 때에는 태연자약하고 무표정한 어린이들이, 상상의 친구와 놀고 환상을 경험하고 모험을 떠날 때에는 어린이다운 천진함과 기쁨 가득한 표정을 띄게 되는 그의 어린이들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존 버닝햄의 생애

1963년 4월 27일에 태어난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은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영국의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유명한 썸머힐 학교(Summerhill School)를 다녔다. 자유주의적인 교육방침과 1950년대 영국의 반항적인 청년문화인 ‘앵그리영맨'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의 예술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 런던의 센트럴 예술학교(Central School of Art)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며 1959년에서 1960년까지 1년 동안 그는 중동에서 애니메이션 인형 영화의 무대디자인, 모델, 인형을 만들었으며 London transport 와 The british transport commission에서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예술가로서의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아동도서를 개발하기로 결심, 1963년 그의 첫 그림책 ‘깃털 없는 거위 보르카(Borka the adventure of goose without feathers)(1963)를 출판하였다. 이 작품은 그에게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게 주는 상인 ‘케이트 그린어웨이(Kate greenaway medal)’를 안겨주었고, 이 상은 버닝햄이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의 길을 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작품세계

존 버닝햄의 그림책에는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주인공이 등장하며, 환상적인 사건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저절로 환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작가의 세계관 - 자유로움과 상상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린 시절 자유주의 교육을 표방하는 썸머힐 학교에서의 수학은 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날카롭고 예민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그의 그림책에서도 엿보인다. 실제로 그는 부모와 어린이 사이의 소원한 관계, 자율에 대한 바람, 그리고 가끔은 어린이들이 지닌 파괴성(Destructrice)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그림책을 통해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타성에 젖은 것들이나 사회적 관습을 피하고 대신 꿈과 환상으로 아름답게 채색하여 보여주려 할 뿐이다. 버닝햄은 자유로운 상상을 극찬했으며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그림책의 형식과 내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첫째, 버닝햄의 그림책들은 독자가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추측하고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연결짓도록 하는 복잡한 ‘열린 결말(open-ended)’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이전까지의 그림책들이 독자에게 책 속의 내용에 대해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는 직선적 서술 방식을 취했던 것과는 구별되는 점이다. 본문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직접적인 글로 서술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그림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참여자가 된다. 이렇게 미완성된 구조와 모호한 결말을 지닌 그림책을 오히려 독자인 어린이들의 정신활동을 자극하여 능동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특징을 지닌다.

둘째, 버닝햄의 등장인물은 모두 다양한 형태의 환상 세계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지각대장 존>에서 존 패트릭 맥헤너시는 등교길에 여러 가지 이상한 경험을 한다. 즉 하수구에서는 악어를, 덤불에서는 사자를, 강에서는 파도를, 학교 교실에서는 선생님을 혼내주는 고릴라를 만나게 된다. <알도>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구름나라>에서도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환상세계를 선사해주며 동시에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의 진행에 참여하도록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징


버닝햄의 그림은 솔직하고 순박하다. 그의 그림책 속에 나오는 인간과 동물들의 모습은 모두 어린아이가
마구 그려놓은 듯하다. 그의 그림들은 끊긴 듯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짧은 선으로 되어 있어서 막히거나 딱딱한 느낌보다는 전체적으로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버닝햄의 작품은 매 작품마다 콜라주 기법과 크레용, 파스텔, 펜, 컬러펜슬, 분필 등의 혼합 재료를 적절히 이용하여 새로운 화풍의 그림을 담고 있다. 이것은 장난스러우면서도 멋스럽게 표현되어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버닝햄의 독특한 개성은 그가 자신의 그림책마다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는 페이지의 대비이다. 즉 <물밖으로 나와 셜리>에서는 왼쪽 지면에 부모가 심하게 잔소리 하고 있는 현실이 옅은 파스텔 색조로 제시되고, 그 오른쪽 지면에는 셜리의 상상 세계가 화려하게 채색된다. 이렇게 성인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그는 이러한 효과를 위해 순간의 표현과 자연스러운 상황은 초벌스케치를 그대로 드러내어 연출한다. 그리고 그 다른 쪽 지면에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배치한다. 이것은 두 가지 입장의 그림을 한 장면에 보여줌으로써 두 실체의 존재와 동시성을 반영해주는 효과를 갖는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내가 처음으로 버닝햄을 만난 것은 바로 이 책에서였다. 서점 한구석을 돌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버닝햄은 나의 입가에 미소를 띄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인공 꼬마소년은 기차놀이를 하다가 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는 엄마의 두 손에 이끌려 침대로 간다. 그렇지만 꿈 속에서도 기차는 계속 달리고… 우리의 주인공, 꼬마의 친구인 강아지 인형과 기차여행을 계속하게 되는데 기차가 달리면서 동물 승객들이 하나 둘씩 타게 된다. 조금 전까지도 기차에 오르기 위해 사정을 하던 그들은 이미 주인이 되어버린 양 옆구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큰 소리로 새로운 승객들에게 외친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그러나 곧 새로운 동물들을 이내 친구로 맞아들이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들이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주인 행세가 사랑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어쩜 어린이들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이런 그림책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가벼운 펜터치, 왠지 완벽하지 않은 듯한 형태, 정성껏 칠하지도 않은 듯한 그림에서도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더해준다. 나는 처음 만난 버닝햄을 마냥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서야 나중에야 그가 영국 3대 일러스트에 속하는 유명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우연한 캐릭터의 발견으로 성공을 거머쥔 행운아가 아닐까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이 그림책 속의 주인공들을 위해 6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각각 쏟아부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의 어설픈 듯한 스케치를 흉내내 본다.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너무 어려운 리얼리티(사실감)를 발견해내고는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자유분방한 터치와 색,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이야기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그림을 그리도록 나를 또 한번 유혹하는 것이다.

버닝햄의 아동관

버닝햄의 그림책은 어린이와 성인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힘’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성인과 어린이의 상호작용 중에서 어린이에게 지금까지 기대되어왔던 ‘선한 행동’이라는 인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버닝햄이 아동은 천성적으로 현명하고 현실적이며 그가 지닌 선천적인 방식으로 선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닐’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본다. 흥미로운 것은 버닝햄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성인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어린이들을 신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만 어린이의 상상세계에서는 어떠한 힘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닝햄의 그림책 속의 어린이는 태연자약하고 무표정하다. 특히 그들이 현실세계에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상상의 친구와 노는 ‘알도’, 환상을 경험하는 ‘존’, 상상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셜리’의 표정은 어린이다운 천진함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 이렇듯 버닝햄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어린이는 현실에서는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지만 상상 세계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이것은 어린이들은 선천적으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서 그 힘을 깨닫게 되며, 환상세계로의 여행은 어린이들을 진정한 배움으로 이끈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출처 산그림 http://www.picturebook-illust.com/index.html

꼬리)  한사람이 쓴 글이 아니라 존 버닝햄을 소개하는 글들을 모아놓은 글입니다.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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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자유와 상상의 작가 야노쉬 (JANOSCH)


" 나는 1931년 폴란드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자브르체(Zabrz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곰사냥꾼이었으며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를 닮았다.
1944년 나는 Fitter's Shop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1953년에는 공장으로 옮겨 일했다. 이후 사표를 제출하고 전에 없던 행복을 누리던 어느날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토리를 만들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했다.
현재 나는 날씨가 따뜻한 섬에서 살고 있으며 또 이런 식의 삶을 좋아한다.“


독일 최고의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야노쉬는 1931년 독일령이었던 오버슐레지엔의 힌덴부르크(지금은 폴란드 자브르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스트 에커르트.
집 짓는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여서 집안이 잠잠할 날이 없었으며 어머니는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열세 살 무렵부터 금속 공장, 직물 공장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힘들게 일하다가 2차 대전 이후 뮌헨의 큰스트 아카데미(Kunst Akademie)에 들어가 섬유공학과 그림을 전공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는 ‘재능 부족’이라는 이유로 1953년 퇴교 처분을 받는다.
그후 작가, 예술가, 발명가,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53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60년 친분이 있던 게오르그 렌츠 출판사에서 말 ‘Valek’에 관한 스토리의 첫그림책을 출간했는데 이때 출판사의 권유로 ‘야노쉬 Janosch’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오 아름다운 파나마는 어디 있나요 - Oh How Beautiful is Panama]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여 독일 아동도서상을 받았으며 이 책은 36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어린이 동화와 성인을 위한 소설, 연극 대본 등 3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출간했다. 그동안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메달 상을 두 번 받았고, 독일 청소년 문학상, 프랑스 청소년 도서상 등 그림책과 청소년 소설 분야에서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또한 대중적인 TV시리즈인 “Janosch's Dream Hour", ”Tiger Duck Clup"과 함께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고 인터뷰도 잘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야노쉬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외딴 섬인 테네리페에서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야노쉬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은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반항적이며 자유에 대한 애착이 리틀 타이거나 리틀 베어와 같은 캐릭터를 통해 곳곳에 녹아있다.
동화책에서는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시간의 범위를 한정시키지 않는 것이 특징이고 또한 어른들에게는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상징적인 의미의 ‘우화’로 다가가고 있다. 때때로 철학적인 수준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야노쉬의 작품들은 단순한 선과 수채화풍의 맑고 밝은 색채, 섬세하고도 따뜻한 묘사를 특
징으로 하는 일러스트, 그리고 꿈을 심어주면서도 허무맹랑하지 않은 유머로 가득 찬 텍스트가 큰 축을 이룬다. 분명한 색채와 디자인 감각을 바탕으로 펴낸 그의 책들은 아동 일러스트레이션의 교과서적인 모델이 되었다.

야노쉬의 일러스트 작품들은 쾰른의 어린이 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그 밖에 하노버의 빌헬름 부쉬 박물관,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박물관, 베를린과 함부르크의 여러 박물관 등에서 순회 전시되었다.
야노쉬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은 일명 ‘야노쉬 캐릭터’가 되어 다양한 선물
용품, 문구, 장난감, 가구 등으로 제작, 판매되고 있다.





(야노쉬 식기는 이미 우리나라에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일전에 한번 올렸드렸죠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mypaperItem.asp?UID=1805431425&CNO=793806193&PaperId=463795&CType=1

 

리틀 타이거
호기심이 많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기 호랑이로서 야노쉬 작품세계의 주요한 캐릭터이다. 때때로 부주의하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친구들로부너 강한 호랑이라는 인정을 받기를 좋아한다.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서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친구를 그리워하여 하루종일 기다리기도 한다.

 

 

리틀 베어
매사에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리틀 타이거의 단짝이며 뛰어난 요리사이다.
리틀 타이거가 아플 때 자상하게 돌봐주며 리틀 타이거가 행복해 할 때 같이 행복해 하며 슬플 땐 같이 슬퍼해주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다.

 

 

 

귄터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고 파리을 먹으며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개구리 귄터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가장 비슷한 친근한 친구이다. 그는 연못의 왕인 그의 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침대, 집, 범선, 자동차 박스를 항상 갖고 다니는 개구리 귄터는 사랑하는 타이거 덕을 끌고 다니며 쉼없이 이야기한다.

 

타이거덕

바퀴달린 나무 인형 타이거덕은 야노쉬 캐릭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언제나 말없이 조용하며 누군가 잡아 당긴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당기지 않으면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묶어 두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누구나 탐을 내며 갖고 싶어하는 사랑스런 캐릭터이다.

 

 


 

홈페이지 http://www.janosch.de/

 

그의 작품들

        

 

     

 

     

 

   

중이미지보기 중이미지보기(이 두 상품은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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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마법의 서랍에서 탄생하는 그림책 : 하야시 아키코

아름다운 녹음에 둘러싸인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하야시 아키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그녀가 털어놓는 소녀시절의 추억과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945년 도쿄 출생.
마나헤히로시 디자인사무소를 거쳐『종이비행기』(고바야시 미노루 글; 복음관서점)로 그림책 데뷔.
다수의 그림책 이외에도 많은 삽화작업을 하였다.
1998년부터 남편인 소야 키요시씨와 가루아자와에 살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즐겁게 배우던 소녀시절

-어렸을 때의 추억이 그림책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딘가에 반영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법의 그림물감』에는 그림을 배우던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어요. 아틀리에에 있는 그림물감의 냄새라든지, 그림붓이나 물감의 감촉이라든지, 모두가 새롭고 재미있어요. 선생님이 그림물감을 어떻게 섞는지, 물감 뚜껑을 닫을 때 튜브를 돌려 닫는 모습까지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죠.
그림을 손봐주실 때 선생님은 리듬감 있게 점을 찍듯이 붓을 움직이시죠. 그걸 보던 나는 나도 빨리 그렇게 그려야겠다는 조바심에 그만 죽-하고 붓이 미끄러지는 실수를 하고 말았지만 정말 재미있는 붓놀림이었어요.
선생님처럼 그런 마법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역시 자유롭고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법의 그림물감』
복음관서점 (『숲속의 요술물감』 한림출판사)


 

-정말 세세한 것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어렸을 때는 어찌되었든 여러 가지를 보게 되잖아요. 엄마가 화장하는 모습이라든지, 화장을 다 마친 후에 눈썹만 닦아내기도 하는 모습도요(웃음). 그런 모습이 좋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그냥 바라보기만 할 뿐이에요. 한순간 한순간을 느끼고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죠. 저도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신경을 써요. 아이들이 내 모습을마음 속에 새겨놓을 테니까요.




 창작의 비밀은 엄청난 갯수의 사진에 있었다.

그림책의 모델이 된 아이들의 사진.아틀리에에 있는 서랍에 정리해 두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버려서 "지금은 나의 귀중한 재산이랍니다" 라고 아키코는 말한다.

-지금 아이들을 그릴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할 때도 있나요?

내면을 묘사할 때는 기억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겉모습은 조카들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확실하게 포즈를 취하도록 하고 상으로 장난감을 사주기도 하죠.
그렇게 해서 사진을 몽땅 찍고 묶음으로 만들어서 서랍에 넣어두지요. 그림을 그릴 때 '그 사진이 있었지' 하면서 찾아봅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사진을 뒤적이는 것이 일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웃음).

-그림책이 탄생하는 마법의 서랍이군요. 사진은 몇 장정도 있나요?

글쎄요. 몇 장이나 될지. 이제는 몇 장인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예요.
모델을 세워두고 찍을 때 말고도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도 찍은 사진들이 많으니까요.
'어머, 이런 포즈도 있구나' 하는 뜻밖의 포즈말이에요. 놀고 있을 때 찍었던 사진 한 구석에 우연히 찍힌 모습들 가운데 정말 좋은 느낌의 것들이 있어요.
제가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내는 포즈는 역시나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우연히 얻은 모습들 덕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빙빙 팽이가 돌면』을 그렸을 때는 근처에 사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이 놀러와서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그 대신 집안은 엉망이 되어버렸죠(웃음). 장지문에도 발자국이 나있고 카펫은 구깃구깃. 그 연령대 아이들의 에너지를 알게되었어요.

-남자아이들 힘이 대단하지요?

맞아요. 그래도 남자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여자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데가 있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갔을 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짝을 지어 손을 잡고 동굴로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저랑 짝이었던 아이가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라면서 손을 꽉 잡아주는 거예요. 정말 감동했었어요(웃음).

-그건 하야시 아키코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모든 남자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럴까요? 저는 남자아이들이 다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콘과 아키』라는 그림책에서도 콘이 아키에게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하도록 한 거예요.



 

 

 

 

 

 

◀『콘과 아키』에서 「콘」의 모델이 된 인형.
아키코가 만든 인형인데, 그림책과 똑같다.
(『은지와 푹신이』한림출판사)


 

 

 

 

◀『10까지 셀 수 있는 아기염소』의 모델 로 만든 산양과 소인형.
(『10까지 셀 줄 아는 아기염소』한림출판사) 


그림책 속에 남겨놓은 많은 추억들

-헝겊인형 콘이 오빠가 되어 어린 아키를 할머니 집까지 데리고 가죠?

『콘과 아키』(『은지와 푹신이』한림출판사)는 편집담당자가 저한테 제안을 해서 쓴 거예요. 여자아이가 인형이랑 같이 할머니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했어요.
제가 돗토리에 사시는 할머니 이야기를 자주 했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3년 정도 지났지만 할머니를 그림책 속에 남겨두고 싶었어요. 인형이 오빠가 된다는 발상이 대단히 신선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보통은 여자아이가 "그래 그래" 하면서 인형을 귀여워하잖아요.

그렇죠. 아키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가 콘을 만들어 주면서 콘이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아키가 태어나기 전에 콘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콘이 오빠가 된 것이지요.
우리 할머니도 바느질을 무척 좋아하셔서 저에게도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러니까 그림책 속의 할머니도 콘과 같은 인형정도는 아키에게 만들어 주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콘을 만든 헝겊은 죽은 할아버지의 낡은 코트예요. 그래서 콘이 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사구 마을에서 아키네 집까지 여행을 간 거예요. "아키를 잘 지켜 주라'는 할머니의 당부를 들으면서요.
저는 뭐든지 보지 않으면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책을 만들 때도 먼저 인형을 만들고 나서 그걸 보고 그렸어요.

-하야시씨도 어렸을 때 할머니 집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 적이 있나요?

네, 제 경우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갔어요. 하지만 저는 멀미가 심해서 기차를 타면 새파래져 가지고 토하기만 해서 기차여행을 즐길 수가 없었답니다.
그렇지만 짬짬이 '차창 밖으로 풍경이 휙휙 지나가는구나' 라든지, '왜 창틀은 움직이지 않는데 밖에만 움직이는 걸까?' 하면서 꽤나 도취되기도 했었지요(웃음).
사구(砂丘)에도 할머니가 데려가 주셔서 사촌들과 놀기도 했어요. 사구란 참 신기해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 곳까지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상당히 시간이 걸리거든요. 과연 넓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사구의 좋은 점은 바다로 해가 가라앉는 거예요. 동그란 해님이 '쑥-' 하는 느낌으로 가라앉거든요.




 
『콘과 아키』의 한 장면. (『은지와 푹신이』한림출판사)
 
-아키(은지)가 콘(푹신이)을 업고 사구를 걸어가는 장면이 그런 장면이죠?

그 장면도 여자 조카를 모델로 했어요. 진짜 이름도 아키라는 아이인데 기차도 함께 탔어요. 볼을 유리창에 붙이도록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주었어요.
아키에게는 언니가 있는데 그 아이가 『처음 가는 캠프』에 나오는 나호라는 아이의 모델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키를 모델로 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아키가 내년에는 간호사가 된답니다. 소아과 병동에서 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데 『콘과 아키』를 가져오는 아이가 있다고 해요.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고 하더군요(웃음).

-그 아키(은지)가 어른이 되었다니. 『처음 가는 캠프』에 나오는 나호는 조금 큰 아이와 사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죠?

"어린애는 안돼" 라는 말을 듣고 "괜찮단 말야"하고 화를 내기도하고, 처음 겪어보는 일에 대한 두근거림, 그리고 노력한 뒤의 성취감들이 정말 현실감 있게 전해져와요.
그래요. 나호는 뭐든지 서툰 아이들의 대표격이죠. 사실 그런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무리인데 나호가 그런 아이들을 대신해서 해주고 있는 거죠.

-밤에 혼자서 화장실에 간다든지, 어린 시절에는 무서운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죠? 정말 무서운 일들이 많았어요. 주사도 무서웠고, 지하철에서 만난 술에 취한 아저씨가 무서웠고, 어른들의 '목이 잘렸다'라는 말에 해고되었다는 의미인줄 모르고 정말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이란 어른보다 백 배 정도는 더 무서움을 느끼니까 절대로 놀라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일을 겪는 뉴스들이 많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제 경우에는 부모님이 정말 상냥하셔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도 무서웠던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버지나 어머니도 상냥하고 멋진 사람들이더군요. 『오늘은 무슨 날?』이나 『외출하기 전에』에서도 그렇고요.

제 부모님도 그림책에 잠깐 등장하기도 해요. 『콘과 아키』의 표지에 보면 플랫폼에 서있는 부부라든지, 또 『산타클로스와 레이』(복음관서점)에서 레이의 이마에 대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손은 제 아버지예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찍었죠.
어린 시절에 저는 자주 몸이 아팠어요. 아파서 누워있으면 "아빠 왔다" 하며 아빠가 돌아오시고 엄마가 "아키가 말이에요..." 하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면 장지문이 '쓱' 하고 열리고 "괜찮니?" 하면서 아빠가 꼭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을 재주셨지요. 바로 그 손이랍니다. 그렇게 해서 그림 속에 남겨 두고 싶었어요.
그림책 속의 아이들도 지금은 모두들 다 커버려서 이제는 없지만, 그림책 속에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남아있어요.


한사람 한사람이 전혀 다른 아이


-아이들을 계속 보고 있다보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느끼시나요?

글쎄요. 전체적으로 이렇다할 변화는 느낄 수 없어요. 겉모습만 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요. 또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데려오신 아이들이 정말 착한 아이들뿐이라서. 그래서 '신세대'라든지 하는 느낌은 별로 없어요.
다만 한사람 한사람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조카들이 전부해서 열 명이 있지만 형제라 하더라도 전혀 다르니까요. 모두들 정말 귀여워요.

-모두를 한데 묶어서 '아이들'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보고 계시군요.

'세상에서 단 한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개성적이라니까요. 태어나기 전까지는 무(無)상태였는데 태어난 뒤에는 이 아이가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느껴져요.
하지만 모두 쑥쑥 커버리죠. 그래서 이제 작고 어린 아이들이 하나 둘 없어져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태어날 거니까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말 시댁 쪽에서나 친정 쪽의 조카들에게 또 아이들이 태어나서 한시름 놓았죠(웃음).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들을 그릴 수 있겠군요?                        

네. 서랍 속의 아이들도 살아있고(웃음). 역시 더 많이 아이들들을 그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마감날짜에 쫓겨 정신 없이 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리고 싶은 것을 천천히 그리고 싶어요. 남편과 둘이서 같이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 집에 오는 다람쥐 가운데 '꼬리 잘린 엄마다람쥐' 라고 부르고 있는 다람쥐가 있어요. 다른 다람쥐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 대단한 절약가예요(웃음). 호두 같은 것을 내놓으면 우선 자기가 먹고, 먹다가 생각이 난 것처럼 어딘가에 숨겨두러 가곤 하지요.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남편에게 나도 데생 많이 해둘 테니까 엄마에 대한 이야기 한 번 써보라고 하고 있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에 오고 나서 식물이 가진 모양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어요. 한 장 한 장의 잎이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잎을 벌레가 갉아먹고 나면 또 다른 아름다운 모양으로 변신하기도 하구요. 겨울이 되어서 잎이 전부 떨어진 나뭇가지도 정말 아름다워요.
곤충도 정말 귀엽고요. 얼마 전에 날개에 독특한 광택이 나는 호랑나비를 봤는데 세상에 이렇게 예쁜 나비가 있었다니 하고 감탄을 할 정도였어요.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지금 이렇게 여유를 갖고 볼 수 있다니. 그것들을 그림으로 남겨둘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이 가진 5가지 매력

1.어린 시절 특유의 생동감이 빛을 낸다

포동포동한 작은 손과 무심히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동자. 100% 행복한 웃는 얼굴, 천진난만한 행동들. 하야시 아키코는 어린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생명력이 가득한 빛나는 그런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

2.어른이 되어가면서 잊어버리는 마음

세상이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있고, 기쁨과 슬픔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격심한 어린 시절, 어린이 되어가면서 잊어버리고 말았던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림책.

3.따스한 관계의 건강함

상냥하신 부모님,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사이좋은 형제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 편안하고 따스한 관계가 당연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는 이 건강함은 하야시 아키코의 확실한 실력.

4.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그리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담배상자 옆에 우유와 빵이 놓여있던 작은 가게. 키 작은 상에 마시는 차가 담긴 통이 놓여있던 차 마시는 시간...... 지금보다 유유히 시간이 흘러가던 시절의 풍경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듯 그리움이 묻어난다.

5.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진지한 유머

웃기려는 의도는 아닌데 미소를 자아내는 진지한 유머도 매력적이다. 놀란 아이들의 필사적인 모습이나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동물의 포즈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키코의 그림책들

『마법의 그림물감』 복음관서점 (『숲속의 요술물감』 한림출판사)
『아사에와 어린 여동생』 즈츠이 요리코 글 / 하야시 아키고 그림 : 복음관서점(『순이와 어린동생』 한림출판사)
『숲과 숨바꼭질』 스에요시 아키코 글 / 하야시 아키고 그림 : 개성사
『첫 용돈』 즈츠이 요리코 글 / 하야시 아키고 그림 : 복음관서점
『목욕은 정말 좋아요』 마츠오카 코 글 / 하야시 아키고 그림 : 복음관서점 (『목욕은 즐거워』한림출판사)
『여동생의 입원』 즈츠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 복음관서점(『병원에 입원한 내동생』한림출판사)
『처음 가는 캠프』 하야시 아키코=작 / 복음관서점 (『나도 캠핑갈 수 있어!』한림출판사)
『오늘은 무슨 날?』 세타 테이니=작 / 하야시 아키코=그림 / 복음관서점 (『오늘은 무슨 날?』한림출판사)
『돼지 아기새』 즈츠이 요리코=작 / 하야시 아키코=그림 / 복음관서점
『외출하기 전에』 즈츠이 요리코=작 / 하야시 아키코=그림 / 복음관서점
『잎으로 만든 집』 소야 키요시=작 / 하야시 아키코=그림 / 복음관서점
『빙빙 팽이가 돌면』 미야카와 히로=작 / 하야시 아키코=그림 / 동심사 (『윙윙 실팽이가 돌아가면』한림출판사)

 

출처 동심여선 http://www.dongsi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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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첫번째


 

◈로알드 달의 전기 (Doald Dahl biography)

어린시절


로알드 달은 1916년 10월 13일에 영국 웨일즈의 릴란도프(Llandaff)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노
르웨이 사람이었고, 로알드는 그의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버지 해럴드(Harald)와 누나 아스트리(Astri)는 로알드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어머니 소피(Sofie)는 두 의붓자식과 자신이 낳은 네 아이를 양육해야 했다. 로알드는 소피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로알드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늘 반석 같은 존재가 되어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 덕분에 로알드는 늘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에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다. 로알드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할머니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어린 로알드는 이야기와 책을 아주 좋아했다. 어머니는 로알드와 형제들에게 트롤(동굴이나 지하에 사는 괴물, 흔히 난쟁이나 거인으로 묘사된다)과 노르웨이의 신화적 요소가 녹아 있는 아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로알드의 어머니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로알드는 "옛이야기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력은 끝이 없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무 소용도 없어졌다"고 이야기했다. 로알드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그는 모험 이야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단편 작가 암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나 디킨스(Dickens)와 태크래이(Thackeray)의 작품들을 읽기 전까지 메리엇(Marryat) 선장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로알드는 <소년(Boy)>에서 아버지 해럴드를 위대한 일기작가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1914년에서 1918년까지의 일차대전 중에 쓴 많은 일기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5년 동안 로알드의 아버지는 거의 매일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관찰과 나름대로의 해석이 담긴 일기를 썼다.

여덟 살 때부터 로알드는 비밀 일기를 썼다.
"나는 형제 중 아무도 내 비밀 일기장을 보거나 읽은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 일기들을 방수가 되는 얇은 상자에 싸서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아주 큰 마로니에 나무 제일 꼭대기 가지 위에 묵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절대로 그곳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까지 올라가서 나무 위에 앉아 매일 매일의 일기를 썼다."고 밝혔다.


로알드의 부모는 그의 성격 형성 과정에서 여러 부분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년(Boy)>에서 로알드 달은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기와 멋진 가구 만들기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비록 한쪽 팔이 없기는 했지만, 훌륭한 나무 조각가(wood carver)였다."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들고, 정원을 손질하는 일은 성인이 된 로알드 달이 몰두하게 된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에 대해서도 <로알드 달의 요리책(Roald Dahls Cookbook)>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어머니는 수정처럼 맑은 지성을 지녔으며 꽃가꾸기에서부터 요리, 포도주, 문학, 그림, 가구, 새들과 개들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셨다" 이것은 성인이 된 로알드의 생애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로알드 달의 학창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일곱 살에서 아홉 살까지 릴란도프 성당 부설 학교에 다녔다.
<소년>에 잘 나와 있듯이 로알드의 머리 속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 시기가 달콤한 사탕 가계를 찾아가는 여행 같은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로알드와 그의 네 친구들이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 한 가게 창가에서 서성이며 달콤한 것들이 가득 담긴 커다란 단지들을 보면서 눈깔사탕 색깔들이 대체 어떻게 바뀔 수 있으며, 또 쥐들이 어떻게 감초로 바뀔 수 있을지를 상상하곤 했다. 이런 학창 시절의 추억은 그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단초가 되었다.
셔버트 가루가 발린 막대 사탕은 로알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모든 막대 사탕은 노란 카드보드지로 쌓여 있으며, 셔버트 가루가 발려 있고, 사탕 중간에는 속이 빈 감초 막대가 꽂혀 있다. 여러분이 막대에 붙은 셔버트 가루를 다 빨아먹으면, 맛있는 감초를 먹을 수 있다. 셔버트 가루는 입 안에서 거품을 내는데, 여러분이 해 보고 싶기만 한다면, 코로 거품을 내 뿜을 수도 있고, 알맞게 날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

1925년부터 29년까지 로알드가 영국의 웨스턴 수퍼 메어에 있는 기숙사 학교인 성 페터 예비 학교에 다
니게 되면서 그의 달콤했던 경험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겨우 아홉 살에 입학한 그는 모든 권한을 틀어 쥔 끔찍한 하드케슬(Hardcastle)이라는 라틴어 교사가 주는 고통을 견뎌 내야만 했다.
이런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애들을 싫어하고,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는 <마틸다>의 트렌치불 교장 선생님과 많이 닮아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로알드는 심각한 향수병에 걸렸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버릇이 생겼고, 이 일은 32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 로알드의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지루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로알드가 열 세 살 때 그는 영국 데이비셔(Derbyshire)에서 가장 유명한 렙톤 학교(Repton School)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그는 스포츠에 아주 열광했는데, 특히 헤비급 복싱과 스쿼시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들에게는 시험지에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일들을 잘 참아냈고, 그것은 렙톤에서의 큰 경험이었다. 이 학교는 카드베리라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 공장에 의해 폐교되었는데 이 공장은 늘 아이들에게 신제품 테스트를 하곤 했다.

학창시절에 겪은 불행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그는 "대부분의 다른 어린이 책 작가들과 내가 다른 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겪은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쟁과 모험


1918년에 로알드 달은 대학 진학 대신, 뉴펀들랜드에서 열리는 공립 학교 사회탐방에 참가하여, 디 에스 살람(Dar es Salaam)이라는 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가 스물 세 살 때 전쟁이 발발하자 나이로비에서 영국 공군에 지원했다. 처음에, 신체 검사를 하는 의사들은 2미터나 되는 로알드의 키 때문에 로알드의 입대를 주저했지만, 그는 결국 공군 장교로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훈련받은 후, 주로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로알드가 탄 비행기는 리비아 서부 사막에 있는 그의 비행 중대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격추되었다.

로알드가 전쟁 중에 겪은 경험들은 그의 자서전적 작품인 <혼자가 되는 것(Going Solo)>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독일군 호송병들의 선두가 그들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것과 직면해야 했고, 인적 없는 곳에 불시착했으며(개다가 코에 부상까지 입어 이것도 회복해야 했다.), 아테네 공습에서도 살아 남아, 그가 겨우 모든 걸 회복하고 다시 전투기를 타고 날아올랐을 때, 허리케인이 몰아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병약해져 집으로 보내졌지만, 1942년에 워싱턴의 공군 무관으로 발령 받았다. 이 때 그는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아주 중요한 작가를 만났다.


로알드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다.


1942년 로알드가 워싱턴에 있을 때, <혼블라우어 선장(Captain Hornblower)>의 작가 포레스터가 로알드 달과 점심을 같이 했다.
포레스터는 미국에서 전쟁이 영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들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Saturday Evening Post>에 실을 수 있도록 로알드가 자신의 관점으로 전쟁과 그 영향에 대해 묘사하는 글을 써 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로알드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열흘 뒤에 원고를 받은 포레스터는 "당신이 작가라는 것을 아십니까? 나는 토시 하나 바꾸지 않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 왔다. 이 작품은 1942년 8월에 <리비아 너머의 공습>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이 후 로알드의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로알드가 처음 쓴 어린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가 아니라 1943년에 디즈니 만화 영화 대본용으로 출판된 그림책 <그렘린(Gremlins)>이었다.
월트 디즈니 사(社)는 스물 다섯 살인 로알드에게 자동차와 비버리 힐즈의 호텔에 묵을 수 있는 특권을 주면서 그를 헐리우드로 초청했다. 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그가 영국 공군으로 복무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장난기가 많은 그렘린이 비행기의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
이다.
결국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중간에서 취소되었지만 책은 출판되었다. 로알드는 <그렘린>을 결코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어린이 책이라고 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인 엘레오노라 루즈벨트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그는 백악관의 특별한 손님으로 초대받기도 했으며, 공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하이드 파크(Hyde Park-루즈벨트 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로알드 달이 본격적인 어린이 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아버지가 된 1960년대부터였다. 그 이전까지 로알드는 악의적으로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이 등장하는 어른들을 위한 짧은 이야기들을 썼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대가 ; 로알드 달이 어른들을 위해 쓴 작품들

로알드 달이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 15년 동안 그는 주로 성인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의 단편들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결코 작품을 빨리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섯 달에 작품 하나를 썼고, 때로는 작품의 첫 페이지를 쓰는 데도 한 달이 걸린 적도 있다고 했으며, 정말로 훌륭한 구성이 없이는 절대 작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로알드 달의 첫 작품은 1941년 포레스터(C. S. Forester)가 <Saturday Evening Post> 지에 낼 작품을 써 보라는 제의를 받아서 쓰게된 <케이크 한 조각(A Piece of Cake)>이다.
로알드는 이 작품 외에도 열 여섯 편의 기사와 소설들을 썼다. 이 작품들은 사실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허구적이다. 이를 두고 그는 "나는 허구적인 세계를 다루는 법에 눈뜨기 시작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글들은 <당신을 향해(Over To You)>라는 단편 모음집으로 출판되었다. 그 때부터 로알드는 "내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책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기대 속에 <New Yorker>, <Harper>, <Atlantic Monthly> 등의 잡지에 소개되었다.
<Western Mail>지의 마리오 바지니(Mario Basini)는 로알드 달이 쓴 작품들은 변덕이 심하고, 의심 많고, 문명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순수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인간의 본성이 사람을 압도할 만큼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잘 다듬어 지고, 짧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라고 쓰고 있다.
<Sunday Tribune>에서는 "알드 달의 작품은 기괴하고, 독창적이며, 기발한 꾀가 번뜩이며, 상상력이 넘치면서도,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는 친절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로알드 달을 좀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만일 로알드 달의 작품을 대할 때,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서 찾아낸 악으로 가득 찬 비난과 작은 유머가 로알드 달이 보여 주는 깊이 있는 독창성이라고 느꼈다면 로알드 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아마 이런 로알드 달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도살장으로 가는 양(Lamb to the Slaughter)>일 것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냉동된 양고기 다리로 남편을 때려 살해한 한 여자가 살인 흉기를 숨기기 위해 양을 구워 요리를 만들고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양고기 요리를 대접한다. 이 작품을 두고 로알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추하고 괴기스런 것이 아니라 아주 유쾌한 이야기이다. 공포스러운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다. 특히 픽션에서는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성인들을 위해 쓴 로알드 달의 작품들을 오 헨리(O. Henry)나 사키(Saki)의 작품들과 비교하곤 한다. 로알드 달은 미국에서 추리 소설 작가에게 주는 에드가 알랜 포 상(Edgar Alan Poe Award)을 세 차례 수상했다.

로알드 달의 많은 작품들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Tales of the Unexpected)>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 때 마다 존 질가이드(John Gielguid), 알랙 거네스(Alec Gunness), 저안 콜린스(Joan Collins) 같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관한 특집 기사를 썼다.

그는 또 성인을 위한 장편 소설도 두 편 썼는데 1948년에 출판된 <언제라도 결코(Sometime Never)>라는 작품은 핵전쟁을 다룬 최초의 소설인데, 이 작품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이후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우리 아저씨 오스왈드(My Uncle Oswald)>는 1979년에 출판되었다.

 

출처 북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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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두번째

 

세계가 좋아하는 아동문학 작가 로알드

브라이언 아플리어드(Brian Appleyard)는 1990년 <the Independent>지에 로알드 달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아동문학 작가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로알드 자신은 "나는 내 작품들 가운데서 성인들을 위한 작품보다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들을 대할 때 더 많은 기쁨과 긍지를 느낀다. 어린이 책을 쓰는 일은 성인을 위한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아이들은 어른들 같은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읽는 내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옆방에 텔레비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로알드 달이 어린이 책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기 딸인 올리비아(Olivia)와 테사(Tessa)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들려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이다. 이 책은 1961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1967년에는 영국에서도 출판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역시 1967년 영국에서 출판되기 전에 1964년에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대서양을 사이로 한 영국과 미국, 두 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다.
영국에서는 엘러인 모스(Elaine Moss)가 <The Times>에 "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어린이 책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었으며, 이 책에는 단순한 재미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연극 같은 요소도 담겨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이 책은 계속해서 놀랄만한 성공을 이루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책이 되었으며, 이 작품의 중국어 판은 2백만 부를 찍어내 전 세계 어느 출판본을 능가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1971년에는 이 책이 젠 와일드(Gene Wilder)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다. 로알드 달 자신은 이 영화의 펜이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 이 책을 소재로 한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BFG>, <대니, 세계의 챔피언(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멍청씨 부부 이야기(The Twits)>,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 <소년(Boy)>, <홀로 되는 것(Going Solo)> 등 로알드 달이 쓴 이런 책들은 모두 어김없이 성공했으며, <마틸다(Matilda)>의 판매량은 영국 모든 어린이 책 판매 기록들을 갈아 치우고, 6개월 동안 5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대기록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로알드 달의 어린이 책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마틸다>의 영화 대본을 함께 쓴 작가 로빈슨 스위코드(Robinson Swicord)는 "로알드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어린아이들의 정신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나 죽음으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아이들의 잠재적 공포를 밖으로 끄집어낸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작가이자 프로듀서이며 연출가인 대니 데비토(Danny DeVito)는 "로알드 달은 아이들을 일단 끔찍한 곳으로 끌어낸 다음, 그 지옥 같은 장소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내려 준다. 그러면 땅 위로 올라온 아이들은 안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Sainsbury The Magazine>에서 데이비드 그리튼(David Gritten)이 언급했듯이 로알드 달이 쓴 어린이 책에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내용의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뛰어난 구성과 어마어마한 나쁜 짓들이 담긴 로알드의 책은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어리석으며 이해심 없고, 감정이 무딘 어른들의 모습도 종종 그리고 있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은 절대로 이런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로알드가 자기 작품에서 쓰려고 하는 것들이다. 로알드는 언젠가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손을 내리고, 무릎을 꿇고 몇 주만이라도 어린이들처럼 살아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주위에서 어떤 일은 해라 아니면 어떤 일은 하지 마라 라고 늘 명령하는 거인들을 항상 올려다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로알드 달의 위력이 끝이 없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에스토니아에서 핀란드, 그리스에서 일본까지 전 세계 34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러나 로알드 달의 독보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마녀를 잡아라>로 휘트브레드 상(The Whitbread Award)을, 1988년에는 <마틸다>로 어린이 책 협회가 주는 어린이 책 상을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영국에서 주는 소규모 상들을 비롯한 아동 문학과 관련된 아주 작은 몇몇 상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토니 브래드만(Tony Bradman)이 <The Telegraph>지에서 말했듯이 "로알드의 작가 경력은 노아의 대 홍수 시절에 큰 물결 속에서 노를 젓는 백성들처럼 거만하고 4분의 1은 비판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인정받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로알드 달은 독서의 중요성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독자가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을 보면서 편안한 기분을 느끼려면 절대 책 때문에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책은 절대 아이들을 억눌러서는 안되며, 재미와 흥미, 호기심이 넘치고,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작가 로알드 달은 어린이들이 정말로 읽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써서 어린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는 일에 한 몫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이름이 <The Independent>지에 부고(缶鼓)로 실려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도, 그는 새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들은 아이들이 한번에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것들이다. 많은 어린이들에게 로알드 달의 작품은 곧 읽기를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알드 달은 어린이들이 그 책을 보자마자 여러 친구들과 돌려보고 싶어하는 책을 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1960년에 로알드와 그 가족은 영국 버킹검주(州)의 그레이트 미센덴(Great Missenden)에 있는 집시들의 집에 머물렀다. 이 집은 정원 끝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는데,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절대 잊혀지지 않을 로알드 달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곳에서 집필되었다.

사람들 말을 빌자면 이 집은 아주 작고 낡은 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알드는 이 곳이 마치 포근한 피난
처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Haper & Queen>의 크리스토퍼 시몬 지케(Christoper Simon Sykes)는 이 집 창은 더러운 플라스틱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중앙에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색이 바랜 낡은 팔걸이 의자가 있다.
로알드 달은 바닥에 상자를 놓고, 그 위에 발을 올려놓은 다음, 다리에는 격자 무늬가 있는 깔게를 덥고, 무릎에는 글을 쓸 수 있는 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물결무늬로 주름져 두껍게 말린 종이들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 벽에는 사진과 그림, 그 밖에 추억이 될 만한 여러 가지 기념물들이 핀으로 고정되어 걸려 있었으며, 그의 오른쪽에 있는 탁자에는 엉덩이 관절 뼈, 그가 어린 시절에 먹고 버린 초콜릿 바를 싼 은박자로 만든 아주 무거운 공 등 호기심을 자아내는 로알드의 수집물들이 쌓여 있다.


로알드는 절대 타자기로 글을 쓰는 법이 없이 늘 연필로 글을 썼다. 그가 작가로서 글을 쓰는 동안, 대게는 비서가 팬들이 보낸 우편물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아침 아홉시 반에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열시 반쯤에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채워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고 진 토닉을 한잔 할 때인 정오쯤까지 오두막에서 글을 썼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책을 읽고, 네 시쯤 다시 오두막으로 가서 계속 글을 썼다.

"나는 작가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어떤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이 비능률적이 되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계속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그는 "나는 단번에 작품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책을 쓸 때 여러 벌의 초고를 만들어 놓고 작품을 완성해 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로알드 달

로알드 달은 두 번 결혼했다.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성급한 마음(The Hasty Heart)>, <근원(The
Fountainhead)> 등으로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받기도 한 헐리우드와 브로드웨이 영화배우인 페트리샤 닐(Patricia Neal)이었다. 로알드와 페트리샤는 극작가인 릴리안 핼만(Lillian Hellman)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그 때 그녀는 뉴욕에서 헬만의 연극 <어린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에 출연 중이었다. 그들은 1953년에 결혼했고, 그 이후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결혼생활을 했다.

로알드와 페트리샤는 올리비아(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난), 테오(Theo), 테사, 오필리아(Ophelia), 루시(Lucy), 이렇게 다섯 자녀를 두었다. 로알드의 어린이 책들은 로알드가 그의 자녀들에게 매일 밤 잠자리에서 들려 줄 이야기를 쓰면서 시작되었다.

"내게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어린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로알드는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딸 오필리아 달이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쓴 <로알드 달의 보물(Roald Dahls Treasury)>이라는 글에서 "매일 밤마다 루시와 내가 침대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계단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뼈를 삐거덕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라고 회상했다. 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침대 벽에 기대어 상상력으로 들어가는 먼 곳을 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로알드의 두 번째 아내는 펠리시티 리시 크로스란트(Felicity Liccy Crosland)였다. 그들은 릴란도프의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지만 1972년 이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후 로알드와 리시는 곧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며, 로알드는 페트리샤와 이혼하고 1983년에 리시와 결혼했다.

"그는 결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으며 어떤 아내도 바라는 훌륭한 남편감이었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있긴 했지만, 페트리샤와 리시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로알드의 두 번째 결혼으로 가족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족에게 닥친 비극

로알드 달은 인생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남들이 겪지 못한 많은 비참한 일들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로알드의 맏딸 올리비아는 홍역이 뇌염으로 발전해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그의 4개월 된 아들 테오는 길에서 교통 사고를 당해 뇌손상을 입고 말았다.

페터 레논(Peter Lennon)이 1996년 <The Guardian>지에 썼듯이 "로알드에게 닥친 연속되는 불행과 비극이 로알드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그 때문에 로알드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좌절감과 육체에 닥친 역경은 로알드에게 그가 가진 어마어마한 열정을 긍정적인 행동으로 발산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 것 같다. 그는 마치 꼭 물리쳐야 하는 용과 싸우듯이 불행과 맞서 싸웠다."

테오에게 닥친 불행을 계기로, 로알드는 엔지니어와 신경 외교 의사인 두 친구와 함께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테오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뇌에서 고름을 빨아내는 기계를 발명하였고, 그 결과 달-와이드-틸 벨브라는 기계는 몇 년에 걸쳐 새로운 기술 발전을 이뤄 나갔다. 이에 따라 테오도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65년에, 끔찍한 가족의 세번째 비극은 첫 번째 아내인 페트리샤에게 닥쳐왔다. 그녀는 서른 아홉 살이었는데 막내 딸 루시를 임신했다.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로알드는 내가 삶의 의욕을 잃으면 내 삶이 모두 끝장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로알드는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내가 늘 바쁘게 생활할 수 있는 일들을 마련해 주었다. 또 6개월 동안 하루에 여섯 시간씩 언어 치료를 받았다.(참고로 국립 건강 서비스센터(National Health Service)가 제공하는 치료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두시간 반이다)"

로알드 스스로는 집 주변을 달리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치료해 나갔다.
"매 순간,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에 있어서도 로알드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그녀는 자기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페트리샤는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건강한 아이를 낳았으며, 무대로 복귀했다.

로알드의 불행은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의붓딸인 로리나(Lorina)가 뇌종양으로 사망한 것이다.

로알드는 살아 있는 동안 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았다.
예를 들면 1960년대에는 휴일마다 남부 이탈리아의 고아원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휴일에 가족과 함께 로알드가 사는 마을인 그레이트 미센덴에 와서 놀 수 있도록 정해 두고 실천했다. 로알드 달이 점점 더 유명해 질수록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많은 연락이 왔으며, 많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 오랜 동안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조언과 상담을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아이를 돕고, 방문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의 사망으로 미망인이 된 펠리시티 리시 달은 남편이 했던 일들을 이어 나가기 위해 로알드 달 제단(Roald Dahl Foundation)을 설립했다. 로알드 달 제단은 주로 문학, 신경학, 혈액학, 이렇게 세 분야에 걸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로알드 달 제단이 주로 보조하는 이 분야들은 그의 삶과 함께 한 분야들이라 할 수 있는데, 문학은 로알드의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며, 신경학은 로알드 가족이 테오의 뇌손상으로 인한 신경학적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고, 혈액학은 로알드 달이 몇 년 동안 혈액 장애를 앓으면서 이 특별한 의학적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열정들

로알드 달은 참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했다. 그의 미망인인 리시에 따르면 그들은 집에서 잉꼬 기르기, 의료 기기를 발명하고, 난초와 양파를 가꾸고, 도박도 하고, 골프 치고, 와인을 즐기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골동품도 모으는 등 많은 일에 대단한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모든 일에 정말로 몰입했다.

 

출처 북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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