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두번째
세계가 좋아하는 아동문학 작가 로알드
브라이언 아플리어드(Brian Appleyard)는 1990년 <the Independent>지에 로알드 달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아동문학 작가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로알드 자신은 "나는 내 작품들 가운데서 성인들을 위한 작품보다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들을 대할 때 더 많은 기쁨과 긍지를 느낀다. 어린이 책을 쓰는 일은 성인을 위한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아이들은 어른들 같은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읽는 내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옆방에 텔레비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로알드 달이 어린이 책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기 딸인 올리비아(Olivia)와 테사(Tessa)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들려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이다. 이 책은 1961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1967년에는 영국에서도 출판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역시 1967년 영국에서 출판되기 전에 1964년에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이 책은 대서양을 사이로 한 영국과 미국, 두 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다.
영국에서는 엘러인 모스(Elaine Moss)가 <The Times>에 "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어린이 책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었으며, 이 책에는 단순한 재미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연극 같은 요소도 담겨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이 책은 계속해서 놀랄만한 성공을 이루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책이 되었으며, 이 작품의 중국어 판은 2백만 부를 찍어내 전 세계 어느 출판본을 능가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1971년에는 이 책이 젠 와일드(Gene Wilder)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다. 로알드 달 자신은 이 영화의 펜이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 이 책을 소재로 한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BFG>, <대니, 세계의 챔피언(Danny The Champion of the World)>, <멍청씨 부부 이야기(The Twits)>,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 <소년(Boy)>, <홀로 되는 것(Going Solo)> 등 로알드 달이 쓴 이런 책들은 모두 어김없이 성공했으며, <마틸다(Matilda)>의 판매량은 영국 모든 어린이 책 판매 기록들을 갈아 치우고, 6개월 동안 5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대기록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로알드 달의 어린이 책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마틸다>의 영화 대본을 함께 쓴 작가 로빈슨 스위코드(Robinson Swicord)는 "로알드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어린아이들의 정신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나 죽음으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아이들의 잠재적 공포를 밖으로 끄집어낸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작가이자 프로듀서이며 연출가인 대니 데비토(Danny DeVito)는 "로알드 달은 아이들을 일단 끔찍한 곳으로 끌어낸 다음, 그 지옥 같은 장소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내려 준다. 그러면 땅 위로 올라온 아이들은 안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Sainsbury The Magazine>에서 데이비드 그리튼(David Gritten)이 언급했듯이 로알드 달이 쓴 어린이 책에는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내용의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뛰어난 구성과 어마어마한 나쁜 짓들이 담긴 로알드의 책은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어리석으며 이해심 없고, 감정이 무딘 어른들의 모습도 종종 그리고 있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은 절대로 이런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로알드가 자기 작품에서 쓰려고 하는 것들이다. 로알드는 언젠가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손을 내리고, 무릎을 꿇고 몇 주만이라도 어린이들처럼 살아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주위에서 어떤 일은 해라 아니면 어떤 일은 하지 마라 라고 늘 명령하는 거인들을 항상 올려다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로알드 달의 위력이 끝이 없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에스토니아에서 핀란드, 그리스에서 일본까지 전 세계 34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러나 로알드 달의 독보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1983년에 <마녀를 잡아라>로 휘트브레드 상(The Whitbread Award)을, 1988년에는 <마틸다>로 어린이 책 협회가 주는 어린이 책 상을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영국에서 주는 소규모 상들을 비롯한 아동 문학과 관련된 아주 작은 몇몇 상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토니 브래드만(Tony Bradman)이 <The Telegraph>지에서 말했듯이 "로알드의 작가 경력은 노아의 대 홍수 시절에 큰 물결 속에서 노를 젓는 백성들처럼 거만하고 4분의 1은 비판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인정받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로알드 달은 독서의 중요성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독자가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을 보면서 편안한 기분을 느끼려면 절대 책 때문에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책은 절대 아이들을 억눌러서는 안되며, 재미와 흥미, 호기심이 넘치고,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작가 로알드 달은 어린이들이 정말로 읽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써서 어린이들을 책에 붙잡아 두는 일에 한 몫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이름이 <The Independent>지에 부고(缶鼓)로 실려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도, 그는 새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들은 아이들이 한번에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것들이다. 많은 어린이들에게 로알드 달의 작품은 곧 읽기를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알드 달은 어린이들이 그 책을 보자마자 여러 친구들과 돌려보고 싶어하는 책을 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1960년에 로알드와 그 가족은 영국 버킹검주(州)의 그레이트 미센덴(Great Missenden)에 있는 집시들의 집에 머물렀다. 이 집은 정원 끝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는데,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절대 잊혀지지 않을 로알드 달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곳에서 집필되었다.
사람들 말을 빌자면 이 집은 아주 작고 낡은 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알드는 이 곳이 마치 포근한 피난
처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Haper & Queen>의 크리스토퍼 시몬 지케(Christoper Simon Sykes)는 이 집 창은 더러운 플라스틱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중앙에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색이 바랜 낡은 팔걸이 의자가 있다.
로알드 달은 바닥에 상자를 놓고, 그 위에 발을 올려놓은 다음, 다리에는 격자 무늬가 있는 깔게를 덥고, 무릎에는 글을 쓸 수 있는 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물결무늬로 주름져 두껍게 말린 종이들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 벽에는 사진과 그림, 그 밖에 추억이 될 만한 여러 가지 기념물들이 핀으로 고정되어 걸려 있었으며, 그의 오른쪽에 있는 탁자에는 엉덩이 관절 뼈, 그가 어린 시절에 먹고 버린 초콜릿 바를 싼 은박자로 만든 아주 무거운 공 등 호기심을 자아내는 로알드의 수집물들이 쌓여 있다.

로알드는 절대 타자기로 글을 쓰는 법이 없이 늘 연필로 글을 썼다. 그가 작가로서 글을 쓰는 동안, 대게는 비서가 팬들이 보낸 우편물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아침 아홉시 반에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열시 반쯤에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채워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고 진 토닉을 한잔 할 때인 정오쯤까지 오두막에서 글을 썼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책을 읽고, 네 시쯤 다시 오두막으로 가서 계속 글을 썼다.
"나는 작가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어떤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이 비능률적이 되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계속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그는 "나는 단번에 작품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한 책을 쓸 때 여러 벌의 초고를 만들어 놓고 작품을 완성해 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로알드 달
로알드 달은 두 번 결혼했다. 그의 첫 번째 아내는 <성급한 마음(The Hasty Heart)>, <근원(The 
Fountainhead)> 등으로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받기도 한 헐리우드와 브로드웨이 영화배우인 페트리샤 닐(Patricia Neal)이었다. 로알드와 페트리샤는 극작가인 릴리안 핼만(Lillian Hellman)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그 때 그녀는 뉴욕에서 헬만의 연극 <어린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에 출연 중이었다. 그들은 1953년에 결혼했고, 그 이후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결혼생활을 했다.
로알드와 페트리샤는 올리비아(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난), 테오(Theo), 테사, 오필리아(Ophelia), 루시(Lucy), 이렇게 다섯 자녀를 두었다. 로알드의 어린이 책들은 로알드가 그의 자녀들에게 매일 밤 잠자리에서 들려 줄 이야기를 쓰면서 시작되었다.
"내게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어린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로알드는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딸 오필리아 달이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쓴 <로알드 달의 보물(Roald Dahls Treasury)>이라는 글에서 "매일 밤마다 루시와 내가 침대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계단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뼈를 삐거덕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라고 회상했다. 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침대 벽에 기대어 상상력으로 들어가는 먼 곳을 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로알드의 두 번째 아내는 펠리시티 리시 크로스란트(Felicity Liccy Crosland)였다. 그들은 릴란도프의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지만 1972년 이전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후 로알드와 리시는 곧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며, 로알드는 페트리샤와 이혼하고 1983년에 리시와 결혼했다.
"그는 결코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으며 어떤 아내도 바라는 훌륭한 남편감이었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있긴 했지만, 페트리샤와 리시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로알드의 두 번째 결혼으로 가족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족에게 닥친 비극
로알드 달은 인생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남들이 겪지 못한 많은 비참한 일들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로알드의 맏딸 올리비아는 홍역이 뇌염으로 발전해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그의 4개월 된 아들 테오는 길에서 교통 사고를 당해 뇌손상을 입고 말았다. 
페터 레논(Peter Lennon)이 1996년 <The Guardian>지에 썼듯이 "로알드에게 닥친 연속되는 불행과 비극이 로알드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그 때문에 로알드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좌절감과 육체에 닥친 역경은 로알드에게 그가 가진 어마어마한 열정을 긍정적인 행동으로 발산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 것 같다. 그는 마치 꼭 물리쳐야 하는 용과 싸우듯이 불행과 맞서 싸웠다."
테오에게 닥친 불행을 계기로, 로알드는 엔지니어와 신경 외교 의사인 두 친구와 함께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테오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뇌에서 고름을 빨아내는 기계를 발명하였고, 그 결과 달-와이드-틸 벨브라는 기계는 몇 년에 걸쳐 새로운 기술 발전을 이뤄 나갔다. 이에 따라 테오도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65년에, 끔찍한 가족의 세번째 비극은 첫 번째 아내인 페트리샤에게 닥쳐왔다. 그녀는 서른 아홉 살이었는데 막내 딸 루시를 임신했다.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로알드는 내가 삶의 의욕을 잃으면 내 삶이 모두 끝장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로알드는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내가 늘 바쁘게 생활할 수 있는 일들을 마련해 주었다. 또 6개월 동안 하루에 여섯 시간씩 언어 치료를 받았다.(참고로 국립 건강 서비스센터(National Health Service)가 제공하는 치료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두시간 반이다)"
로알드 스스로는 집 주변을 달리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치료해 나갔다.
"매 순간,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에 있어서도 로알드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그녀는 자기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페트리샤는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건강한 아이를 낳았으며, 무대로 복귀했다.
로알드의 불행은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그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의붓딸인 로리나(Lorina)가 뇌종양으로 사망한 것이다.
로알드는 살아 있는 동안 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았다.
예를 들면 1960년대에는 휴일마다 남부 이탈리아의 고아원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휴일에 가족과 함께 로알드가 사는 마을인 그레이트 미센덴에 와서 놀 수 있도록 정해 두고 실천했다. 로알드 달이 점점 더 유명해 질수록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많은 연락이 왔으며, 많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 오랜 동안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조언과 상담을 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아이를 돕고, 방문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의 사망으로 미망인이 된 펠리시티 리시 달은 남편이 했던 일들을 이어 나가기 위해 로알드 달 제단(Roald Dahl Foundation)을 설립했다. 로알드 달 제단은 주로 문학, 신경학, 혈액학, 이렇게 세 분야에 걸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로알드 달 제단이 주로 보조하는 이 분야들은 그의 삶과 함께 한 분야들이라 할 수 있는데, 문학은 로알드의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며, 신경학은 로알드 가족이 테오의 뇌손상으로 인한 신경학적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고, 혈액학은 로알드 달이 몇 년 동안 혈액 장애를 앓으면서 이 특별한 의학적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열정들
로알드 달은 참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했다. 그의 미망인인 리시에 따르면 그들은 집에서 잉꼬 기르기, 의료 기기를 발명하고, 난초와 양파를 가꾸고, 도박도 하고, 골프 치고, 와인을 즐기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골동품도 모으는 등 많은 일에 대단한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모든 일에 정말로 몰입했다.
출처 북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