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첫번째

◈로알드 달의 전기 (Doald Dahl biography)
어린시절
로알드 달은 1916년 10월 13일에 영국 웨일즈의 릴란도프(Llandaff)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노
르웨이 사람이었고, 로알드는 그의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버지 해럴드(Harald)와 누나 아스트리(Astri)는 로알드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어머니 소피(Sofie)는 두 의붓자식과 자신이 낳은 네 아이를 양육해야 했다. 로알드는 소피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로알드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늘 반석 같은 존재가 되어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 덕분에 로알드는 늘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에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다. 로알드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할머니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어린 로알드는 이야기와 책을 아주 좋아했다. 어머니는 로알드와 형제들에게 트롤(동굴이나 지하에 사는 괴물, 흔히 난쟁이나 거인으로 묘사된다)과 노르웨이의 신화적 요소가 녹아 있는 아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로알드의 어머니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로알드는 "옛이야기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력은 끝이 없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무 소용도 없어졌다"고 이야기했다. 로알드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그는 모험 이야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단편 작가 암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나 디킨스(Dickens)와 태크래이(Thackeray)의 작품들을 읽기 전까지 메리엇(Marryat) 선장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로알드는 <소년(Boy)>에서 아버지 해럴드를 위대한 일기작가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1914년에서 1918년까지의 일차대전 중에 쓴 많은 일기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5년 동안 로알드의 아버지는 거의 매일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관찰과 나름대로의 해석이 담긴 일기를 썼다.
여덟 살 때부터 로알드는 비밀 일기를 썼다.
"나는 형제 중 아무도 내 비밀 일기장을 보거나 읽은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 일기들을 방수가 되는 얇은 상자에 싸서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아주 큰 마로니에 나무 제일 꼭대기 가지 위에 묵어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절대로 그곳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까지 올라가서 나무 위에 앉아 매일 매일의 일기를 썼다."고 밝혔다.

로알드의 부모는 그의 성격 형성 과정에서 여러 부분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년(Boy)>에서 로알드 달은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기와 멋진 가구 만들기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비록 한쪽 팔이 없기는 했지만, 훌륭한 나무 조각가(wood carver)였다."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들고, 정원을 손질하는 일은 성인이 된 로알드 달이 몰두하게 된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에 대해서도 <로알드 달의 요리책(Roald Dahls Cookbook)>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어머니는 수정처럼 맑은 지성을 지녔으며 꽃가꾸기에서부터 요리, 포도주, 문학, 그림, 가구, 새들과 개들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셨다" 이것은 성인이 된 로알드의 생애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로알드 달의 학창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일곱 살에서 아홉 살까지 릴란도프 성당 부설 학교에 다녔다.
<소년>에 잘 나와 있듯이 로알드의 머리 속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은 그 시기가 달콤한 사탕 가계를 찾아가는 여행 같은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로알드와 그의 네 친구들이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 한 가게 창가에서 서성이며 달콤한 것들이 가득 담긴 커다란 단지들을 보면서 눈깔사탕 색깔들이 대체 어떻게 바뀔 수 있으며, 또 쥐들이 어떻게 감초로 바뀔 수 있을지를 상상하곤 했다. 이런 학창 시절의 추억은 그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단초가 되었다.
셔버트 가루가 발린 막대 사탕은 로알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모든 막대 사탕은 노란 카드보드지로 쌓여 있으며, 셔버트 가루가 발려 있고, 사탕 중간에는 속이 빈 감초 막대가 꽂혀 있다. 여러분이 막대에 붙은 셔버트 가루를 다 빨아먹으면, 맛있는 감초를 먹을 수 있다. 셔버트 가루는 입 안에서 거품을 내는데, 여러분이 해 보고 싶기만 한다면, 코로 거품을 내 뿜을 수도 있고, 알맞게 날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
1925년부터 29년까지 로알드가 영국의 웨스턴 수퍼 메어에 있는 기숙사 학교인 성 페터 예비 학교에 다
니게 되면서 그의 달콤했던 경험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겨우 아홉 살에 입학한 그는 모든 권한을 틀어 쥔 끔찍한 하드케슬(Hardcastle)이라는 라틴어 교사가 주는 고통을 견뎌 내야만 했다.
이런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애들을 싫어하고,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는 <마틸다>의 트렌치불 교장 선생님과 많이 닮아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로알드는 심각한 향수병에 걸렸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버릇이 생겼고, 이 일은 32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 로알드의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지루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로알드가 열 세 살 때 그는 영국 데이비셔(Derbyshire)에서 가장 유명한 렙톤 학교(Repton School)에 입학했다. 이 곳에서 그는 스포츠에 아주 열광했는데, 특히 헤비급 복싱과 스쿼시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들에게는 시험지에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일들을 잘 참아냈고, 그것은 렙톤에서의 큰 경험이었다. 이 학교는 카드베리라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초콜릿 공장에 의해 폐교되었는데 이 공장은 늘 아이들에게 신제품 테스트를 하곤 했다.
학창시절에 겪은 불행은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그는 "대부분의 다른 어린이 책 작가들과 내가 다른 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겪은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쟁과 모험

1918년에 로알드 달은 대학 진학 대신, 뉴펀들랜드에서 열리는 공립 학교 사회탐방에 참가하여, 디 에스 살람(Dar es Salaam)이라는 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가 스물 세 살 때 전쟁이 발발하자 나이로비에서 영국 공군에 지원했다. 처음에, 신체 검사를 하는 의사들은 2미터나 되는 로알드의 키 때문에 로알드의 입대를 주저했지만, 그는 결국 공군 장교로 입대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훈련받은 후, 주로 이라크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로알드가 탄 비행기는 리비아 서부 사막에 있는 그의 비행 중대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격추되었다.
로알드가 전쟁 중에 겪은 경험들은 그의 자서전적 작품인 <혼자가 되는 것(Going Solo)>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독일군 호송병들의 선두가 그들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것과 직면해야 했고, 인적 없는 곳에 불시착했으며(개다가 코에 부상까지 입어 이것도 회복해야 했다.), 아테네 공습에서도 살아 남아, 그가 겨우 모든 걸 회복하고 다시 전투기를 타고 날아올랐을 때, 허리케인이 몰아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병약해져 집으로 보내졌지만, 1942년에 워싱턴의 공군 무관으로 발령 받았다. 이 때 그는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아주 중요한 작가를 만났다.
로알드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다.

1942년 로알드가 워싱턴에 있을 때, <혼블라우어 선장(Captain Hornblower)>의 작가 포레스터가 로알드 달과 점심을 같이 했다.
포레스터는 미국에서 전쟁이 영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들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Saturday Evening Post>에 실을 수 있도록 로알드가 자신의 관점으로 전쟁과 그 영향에 대해 묘사하는 글을 써 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로알드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열흘 뒤에 원고를 받은 포레스터는 "당신이 작가라는 것을 아십니까? 나는 토시 하나 바꾸지 않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 왔다. 이 작품은 1942년 8월에 <리비아 너머의 공습>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이 후 로알드의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로알드가 처음 쓴 어린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가 아니라 1943년에 디즈니 만화 영화 대본용으로 출판된 그림책 <그렘린(Gremlins)>이었다.
월트 디즈니 사(社)는 스물 다섯 살인 로알드에게 자동차와 비버리 힐즈의 호텔에 묵을 수 있는 특권을 주면서 그를 헐리우드로 초청했다. 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그가 영국 공군으로 복무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장난기가 많은 그렘린이 비행기의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
이다.
결국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중간에서 취소되었지만 책은 출판되었다. 로알드는 <그렘린>을 결코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어린이 책이라고 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인 엘레오노라 루즈벨트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그는 백악관의 특별한 손님으로 초대받기도 했으며, 공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하이드 파크(Hyde Park-루즈벨트 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로알드 달이 본격적인 어린이 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아버지가 된 1960년대부터였다. 그 이전까지 로알드는 악의적으로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이 등장하는 어른들을 위한 짧은 이야기들을 썼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대가 ; 로알드 달이 어른들을 위해 쓴 작품들
로알드 달이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 15년 동안 그는 주로 성인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의 단편들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결코 작품을 빨리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섯 달에 작품 하나를 썼고, 때로는 작품의 첫 페이지를 쓰는 데도 한 달이 걸린 적도 있다고 했으며, 정말로 훌륭한 구성이 없이는 절대 작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로알드 달의 첫 작품은 1941년 포레스터(C. S. Forester)가 <Saturday Evening Post> 지에 낼 작품을 써 보라는 제의를 받아서 쓰게된 <케이크 한 조각(A Piece of Cake)>이다.
로알드는 이 작품 외에도 열 여섯 편의 기사와 소설들을 썼다. 이 작품들은 사실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허구적이다. 이를 두고 그는 "나는 허구적인 세계를 다루는 법에 눈뜨기 시작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글들은 <당신을 향해(Over To You)>라는 단편 모음집으로 출판되었다. 그 때부터 로알드는 "내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책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기대 속에 <New Yorker>, <Harper>, <Atlantic Monthly> 등의 잡지에 소개되었다.
<Western Mail>지의 마리오 바지니(Mario Basini)는 로알드 달이 쓴 작품들은 변덕이 심하고, 의심 많고, 문명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순수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인간의 본성이 사람을 압도할 만큼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잘 다듬어 지고, 짧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라고 쓰고 있다.
<Sunday Tribune>에서는 "알드 달의 작품은 기괴하고, 독창적이며, 기발한 꾀가 번뜩이며, 상상력이 넘치면서도,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는 친절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로알드 달을 좀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만일 로알드 달의 작품을 대할 때,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서 찾아낸 악으로 가득 찬 비난과 작은 유머가 로알드 달이 보여 주는 깊이 있는 독창성이라고 느꼈다면 로알드 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아마 이런 로알드 달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도살장으로 가는 양(Lamb to the Slaughter)>일 것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냉동된 양고기 다리로 남편을 때려 살해한 한 여자가 살인 흉기를 숨기기 위해 양을 구워 요리를 만들고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양고기 요리를 대접한다. 이 작품을 두고 로알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추하고 괴기스런 것이 아니라 아주 유쾌한 이야기이다. 공포스러운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다. 특히 픽션에서는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성인들을 위해 쓴 로알드 달의 작품들을 오 헨리(O. Henry)나 사키(Saki)의 작품들과 비교하곤 한다. 로알드 달은 미국에서 추리 소설 작가에게 주는 에드가 알랜 포 상(Edgar Alan Poe Award)을 세 차례 수상했다.
로알드 달의 많은 작품들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Tales of the Unexpected)>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 때 마다 존 질가이드(John Gielguid), 알랙 거네스(Alec Gunness), 저안 콜린스(Joan Collins) 같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관한 특집 기사를 썼다.
그는 또 성인을 위한 장편 소설도 두 편 썼는데 1948년에 출판된 <언제라도 결코(Sometime Never)>라는 작품은 핵전쟁을 다룬 최초의 소설인데, 이 작품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이후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우리 아저씨 오스왈드(My Uncle Oswald)>는 1979년에 출판되었다.
출처 북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