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풀거리는 치마를 입고 빙그르 돌 때가 좋아
아빠의 커다란 발 위에 내 발을 올려 놓고,
이 방 저 방 쿵쾅거리면서 걸어다니는 게 좋아
무릎에 난 상처의 딱지가 떨어질 때 쯤, 손톱으로 살살 떼어내는 게 좋아.
솜 위에 올려 놓은 강낭콩에서 싹이 트는 걸 볼 때가 좋아
엄마의 뾰족 구두를 신고서 집안을 한 바퀴 도는 게 좋아
싫어해! 좋아해! 사랑해!! 데이지 꽆잎을 한 장 씩 뜯으며 사랑점 치는 게 좋아
차를 타고 가면서 간판에 적힌 글자를 큰 소리로 읽는 게 좋아
새로 산 공책 겉장에 내이름을 쓸 때가 좋아
엄마의 빨간 립스틱을 바를 때가 좋아. 그것도 몰래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갈 때가 좋아.
지하철을 타고서 우리 칸에 몇 명이나 있는지 세어보는 게 좋아
나비 핀, 무당 벌레 핀, 파랑 핀, 노랑 핀, 초록 핀...
온갖 머리 핀을 한꺼번에 다 꽂을 때가 좋아. 내 머리가 마치 핀들의 무도회장 같아.
엄마 옷에서는 엄마 냄새가 나서 참 좋아.
* 출처: <속눈썹 위에 올라 앉은 행복>, 민느 나탈리 포르티에 지음, 이정주 옮김, 삼성 출판사, 2004.6
***************************************************************************
한 숟가락의 설탕이 수박만한 솜사탕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 솜사탕을 받아드는 것도, 그 솜사탕을 떼내어 혀끝에서 살살 녹여 먹는 일도 좋았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색색의 고운 무지개를 담고 있는 커단 비눗방울을 하늘로 띄어 보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하교길 학교 앞에서 백 원 주고 산 노란 병아리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것도 좋았습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 때 선생님이 손목에 써주시는 숫자, 그리고 상품으로 받은 공책 한 권도 좋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렸을 땐, 정말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매 순간,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리고 궁금합니다.
왜 나이가 들면서 좋은 일은 점점 찾기가 힘들어져만 가는지....
아마 커져버린 욕심 때문일 겁니다.
사람들은 그걸 잃어버린 '순수'라고들 하더군요...
잃어버린 순수를 ..... 를 찾아서.....
어린 시절, 속눈썹 위에 올라 앉은 행복들을 떠올려 보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