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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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없는 여행.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는 여행이기도 하다. 목적지가 없이 떠나고 발길 닿는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만한 여유가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매우 급하게 쫓기던 일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어쩌면 안식년을 맞이하듯 긴 호흡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주인공 질버만이 떠난 여행도 그랬으면 부러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 여행은 원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도망이었고, 독일을 떠도는 난민이었다. 외워두었던 기차 시간을 잊지 못하는, 자유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자가 되었다.


잔인한 밤이었다. 1938, 수정의 밤 사건.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유대인을 공격한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약탈한다. 이게 다 합법이라는 게 더 놀랍다.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 오토 질버만에게도 약탈의 밤은 찾아왔다. 나치 당원들은 질버만의 집에 쳐들어오고 부순다. 다행히 질버만은 그 위기를 피하고 도망쳤지만, 그날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내는 오빠 집으로 피신했고, 그의 집은 다 부서진 상태로 방치됐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도 체포되고 자유를 잃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한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한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었다. 기차를 타고 독일을 떠돌며 매 순간 긴장하며 지냈다. 아니, 이건 지냈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어느 곳이든 발을 내디뎠지만, 그 어느 곳이든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부유했던 그의 삶은 이제 독일을 떠도는 도망자로 전락했고,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안전할 거로 믿고 끝없이 티켓을 끊고 기차를 배회한다.


독일인의 외모를 가진 그가 유대인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그나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계속 떠도는 거였다. 그의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상상이나 했을까? 부유한 사업가로 살던 그가 급히 재산을 처분해 도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 도망가면서도 긍정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 사는 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곧 아내도 만나고, 파리에 있는 아들이 그의 망명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불행이 길지 않을 거로 여겼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유대인을 보면서 나치 당원의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자기 여권에 빨간색 ‘J’가 크게 쓰여있음에도 말이다.


질버만의 여행이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위태로웠던 건, 그의 외모와 여권의 ‘J’ 때문이다. 일단 그에게는 여행을 계속할 돈이 있었다. 가진 재산 전부를 처분했지만, 그 돈은 그에게 행운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하다. 이 여행을 계속할 자금이 되었지만, 언젠가 그게 잡힌다면 그 돈은 모두 몰수당할 테니까. 그의 외모가 아무리 유대인 같지 않다고 해도 그의 여권에 표시된 글자는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그는 여행하면서도 여행자로 불리지 못했다. 도망자이거나 난민이거나. 그가 기차표를 끊고 계속 다른 기차를 옮겨 타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역시 둘 중 하나였다. 나치의 열성 당원이거나 독일군 장교이거나 그처럼 불안에 떨며 도망을 다니는 유대인이거나. 나치 당원은 아니어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는 시민이거나,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수단가이거나. 그가 독일의 도시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그의 안에 머물던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그 어디로도 떠나거나 머물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독일에 갇힌 채로 여행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베를린에서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베를린, 베를린에서 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에서 아헨, 아헨에서 도르트문트,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이미 이주했어. 독일 철도로 이주한 거지. 난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야. 이건 아주 큰 차이라고. 그의 여행 음악과 같은 바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안전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214페이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행하는 질버만의 모습을 비추는 이 소설은 그의 여정 이상을 보여준다.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치 당원들을 피해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의 모든 순간을 비굴하거나 희생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의 지금 위치는 탄압을 받는 유대인이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본가였다. 기차의 일등칸을 이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가 도망치는 중에도 의아했던 것은 그가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혹시 그가 마주친 유대인들과 연대라도 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이 상황이 되기 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일어판 발행인의 설명을 보면, 작가 보슈비츠의 배경에서 비롯된 시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아버지 역시 부유한 사업가였고, 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건 질버만과 같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이어서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 유대인이라는 게 그의 가족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상기하면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은 다양하게 담겨 있다. 나치 당원이 보는 유대인, 독일인 장교가 보는 유대인, 일반 시민이 보는 유대인, 유대인이 보는 유대인. 반대로 모든 독일인이 열성적인 나치 당원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바로 앞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지만, 그들이 자기를 신고할 거로 여기며 불안하지만, 실제 그들은 질버만을 신고할 생각도 없고 그의 여정을 안타깝게 여기기까지 하는 걸 보면 모두 같은 시선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끝이 없는,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 즐거울까? 아닐 것이다. 여행은 어딘가로 향하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고, 돌아올 곳이 있어야 즐겁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끝없이 부유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질버만의 여행이 고단하고 불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그 스스로 여행을 끝내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이 읽힌다. 끝도 없는 여행을 멈춰야만 그가 살 수 있었을 테지. 그의 터전인 독일 안에서 머물 곳이 없고 끝날 수 없는 여행은 그를 미치게 했다.


질버만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슈타인을 초대했어야 하는데. 그는 메뉴판을 살피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그의 유대식 코가 두려웠어. (63페이지)


소설은 끝났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수많은 여행자(질버만)가 남았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 싸움, 여러 가지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오늘도 세계를 떠도는 난민. 오늘 봤던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난민의 예외에 어린이는 받아준다는 규정을 이용하는 이들을 봤다. 이걸 이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부모의 간절함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높은 국경의 담장 너머로 아이를 떨어뜨리는 그 손끝의 바람이 보인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낙인을 찍는 과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소설 속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견디기 위해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겠다는 질버만의 말은, 한편으로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며 이 불행에 나를 포함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바라지 않았던가. 질버만의 체포되지 않기를, 누군가 그를 숨겨주기를, 그의 불행이 어서 끝나기를. 그러면서도 내밀지 못한 손이 부끄러워지는 건, 누군가의 절망에 용기 내지 못한 마음이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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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작 2관王
추카!추카~
구단님 리뷰 페이퍼 좋아하는 1人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5-07 17:33   좋아요 1 | URL
와아~! 감사합니다. ^^
주말부터 다시 더워질 듯해요. 다음주 예보는 완전 여름의 시작 느낌입니다.
주말 즐겁게 지내시고 일교차 심한 날들 건강 조심하세요.

초딩 2021-05-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책도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오랜만에 이혜경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그늘"


<책 소개 글 옮겨옴>

이혜경의 네 번째 장편소설. 1970년대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 자란 세 자매의 이야기다. 다정하고 정밀한 시선으로 삶을 슬픔을 껴안는 소설가 이혜경은 <사소한 그늘>에서 차분한 서술과 유려한 이미지로 세 자매의 일상 속 희로애락을 그려 낸다.

경선, 영선, 지선 세 자매는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결혼이라는 같은 선택지에 다다른다.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욕망을 저버리고 꿈을 포기한 채. 좌절과 순응을 배운 어린 시절은 세 사람에게 짙은 그늘로 남는다.

그 그늘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력한 엄마에 대한 기억이고, 여성의 역할을 가정 안으로 제한하는 사회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시작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가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지는 세 자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오랫동안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핀 시리즈로 나온 소설은 읽을 기회를 놓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 작품은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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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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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이 울기 좋은 곳이라는 건 목욕탕에서 울어본 사람만이 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가 긴장하지 않고 살아갈 시간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부딪히고 저기서 치이고, 그나마 알몸으로 들어간 곳에서나마 속이 시원하게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는 거겠지.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도 목욕탕에서 울어봤다. 눈이 빨개지도록 울면서 샤워 물줄기로 흘러내렸다. 가끔 집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살면서 울고 싶은 순간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 울고 싶지도 않고, 왜 우는지 다 설명할 수도 없다. 나만의 공간에서 흘리고 싶은 눈물이라면, 집의 목욕탕이나 조금은 시끄러운 공중목욕탕은 울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공중목욕탕에서 우는 여자들은 본다라는 첫 문장 때문에라도 이 소설은 저절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엄마 오혜자는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서 딸 유라를 키웠다. 타고난 외모와 피부, 입담으로 동네에서 화장품을 팔며 제법 여유로운 삶이었다. 엄마가 남자를 만나고 사기를 당하면서 모녀의 삶을 바닥으로 내려왔다. 어린 딸을 데리고 공중목욕탕 선녀탕으로 입성한 엄마는 선녀탕에서 자고 먹고 때밀이로 일하며 악착같이 살았다. 유라는 선녀탕이 만수불가마사우나로 변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곳에서 지냈다. 우연히 무용을 배우면서 유라는 상도 타고 대학 진학까지 한다. 엄마의 고된 삶의 힘은 딸 유라였다.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고, 남자나 결혼도 의미 없으니 딸의 성공한 삶을 바랐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유라 역시 무용가로 살면서 성공하고 싶었다. 여탕을 탈출할 유일한 기회였다.


목욕탕은 계급장을 떼고 사람과 사람이 알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엄연히 서열과 위계가 존재했다. 여탕에서는 피부와 몸매 관리, 재테크, 자식 교육에 능한 여자들의 입김이 세고 서열이 높았다. 예쁘고 날씬한 데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자식 대학까지 잘 보낸 엄마를 사람들이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때밀이 아줌마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때밀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돈을 잘 벌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 엄마의 모든 행위 앞에는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것은 아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때를 밀어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내게도 마찬가지로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불과하다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를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때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106~107페이지)


엄마와 딸의 인생 대부분은 여탕에서였다. 오랜 세월 세신사로 일하며 삶을 꾸려온 엄마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어도 여탕을 떠나지 않았다. 딸은 성인이 되고 더는 여탕에서 살지도 않지만, 여탕에 드나들며 여자들을 봤다. 사실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알몸으로 들어가는 곳, 다 벗고 들어가서 몸뚱이만 있으니 다 똑같다고. 계급장 떼고 알몸으로, 오직 사람으로 만나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위계는 있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식 얘기, 돈 얘기, 정보력으로 서열을 만든다. 사람들은 오혜자의 몸매와 명문여대에 다니는 딸을 부러워하지만, 실상 그들이 보는 오혜자는 남편도 없이 딸 하나 키우는 목욕탕 때밀이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 정상에 포함되지 않는 건 목욕탕에 드나드는 오회장도 마찬가지다. 상당한 카리스마로 수입품 취급하며 부자였고, 회장님으로 불리며 우러러보는 것 같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정상의 삶이 아닌 무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혜자에게는 몸을 맡기는 모든 이가 그저 똑같은 고객이다. ‘도둑년 돈이든 갈보년 돈이든자기에게 돈이 들어오게 하는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오혜자의 태도가 가장 살기 좋은 삶의 자세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목욕탕에 드나드는 여자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보이는 계급이 아니라, 그저 때를 밀러 오는 삶이 고단한 사람들이다. 몸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오혜자를 찾고 목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팍팍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반복이 거듭되는 와중에 세상의 기준을 놓지도 않는다. 오혜자에게 딸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기도 하기에, 딸을 무용으로 성공시키기 위한 의지를 놓지 못한다. 그건 목욕탕에 모인 여자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파악되는 서열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고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일이 자기의 일이 되어 자랑이 되는 일들. 낯설지 않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장면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에게 이게 삶의 전부일까. 남들에게 보여주고 비교하며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을 만들려고 애쓰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몸은 긴장한다. 느긋하게 몸을 쉬고 삶의 긴장을 놓으려고 찾아드는 곳에서 오히려 몸의 긴장을 더 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 내용은 엄마 오혜자와 딸 유라의 일상에서 더 잘 보인다.


분홍색 가방에 담긴 키티 도시락과 보온병 세트를 생각하면 지금도 배가 고파진다. 그것은 내 허기가 아니라 엄마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내게 무용을 가르쳤던 것도 그런 종류의 허영이었다는 것을 안다. (76페이지)


엄마는 사람들의 긴장된 몸을 풀어주는 일을 한다. 힘을 쭉 빼고 누운 사람들의 때를 밀며 그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이 밖에서 긴장하고 보냈던 시간에 보상이라도 받듯이 몸의 이완을 만드는 시간이다. 오혜자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반면 딸 유라의 삶은 몸의 긴장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무용하는 딸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야만 한다. 엄마와 딸의 이런 삶이 운명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딸이 긴장을 풀려고 엄마에게 몸을 맡기지도 않는다. 같은 삶을 공유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긴장과 이완의 삶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이완을 또 찾아내는 일이 기적 같다. 이 기적은 몸의 불편함과 불완전함으로 긴장하던 사람들에게도 찾아왔다.


여탕에 자주 오던 오회장은 엄마에게 자주 몸을 맡겼다. 엄마가 자존감을 세우며 당당하게 일의 규칙을 정하며 살 수 있던 것도 오회장의 힘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 그런 오회장은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한쪽 가슴이 없음에도 여탕에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그런 오회장의 알몸을 흘긋거렸는데, 점점 한쪽 가슴이 없는 오회장의 몸은 아무 일도 아닌 게 됐다. 무슨 영험한 장소라도 되는 것처럼 만수불가마사우나 여탕에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자들의 출입이 늘었다. 다른 곳이 아픈, 아팠던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한쪽이 사라진 가슴 따위로 긴장하지 않았다. 감추고 움츠러들면서 여탕의 출입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계급장 떼고 알몸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동등한 곳이었다. 가슴 속 말이나 등급을 매기는 시선을 살짝 숨기고 있지만, 그건 누구라도 비슷할 테니까. 여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각자의 몸을 씻으면서 어디서 한 번쯤 봤을 사연의 주인공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알몸이지만 알몸 같지 않은 태도를 가진 속내를 엿보는 기분이 들면서도, 내 몸이 가장 편하게 다가오길 바라는 갈증을 담은 이야기다. 충분히 나로 살아가기에 괜찮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해준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지나고 나면 전부 아무것도 아니더라.” (163페이지)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에 대고 읊조렸다.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 (165페이지)


그동안의 삶이 만든 관조적 시선일까, 아니면 그것 말고는 다른 답을 찾을 수 없었다는 유일한 답이었을까. 굳어진 몸으로 목욕탕에 왔던 딸에게 알몸으로 누워있던 엄마가 했던 말은,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고, 인생은 지겹도록 길다는 거였다. 여탕에 드나드는 여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면서 엄마가 배운 인생이었는지도, 항상 긴장하던 딸의 삶에 누그러짐을 알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실패하지도 않은 삶이 나쁘지는 않더라고 말이다. 고달프고 쓸쓸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족할 때까지는 못 갔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바라는 곳을 향해 아등바등 살아가다가 나를 누르는 고단함이 쌓여가는 줄도 모르고 있던 순간을 지적해주는 것만 같다. 굳어진 내 몸이 조금은 풀어지기를, 내 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나를 옥죄는 것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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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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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사연을 안고 패키지여행에 모여든다. 단돈 8만 원에 대마도행 배를 탄다. 가이드의 여자친구는 그런 여행을 누가 가느냐고 비웃었지만, 그 여행에 스무 명이나 참가했다니 놀랍기도 하다. 쉬운 여정은 아닐 터, 그러기에 저마다의 사연에 의미가 있다. 암 환자, 늦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 거기에 김석일 부자가 있다.


아무리 싸구려 여행이라지만 그래도 여행인데, 조금은 설레지 않을까? 어떤 이유로 이 여행을 선택했더라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 특유의 설렘이 있었다. 약간의 들뜸, 가이드가 상술로 내려놓은 특산물 시장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그 순간을 즐겼다. 그러다가 버스의 짐칸에서 발견된 토막 난 시체로 이들의 여행은 멈춘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그들의 관광버스는 범죄의 장소가 된다. 사람들은 형사와 마주하며 진술을 한다. 도대체 이 살인은 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처음부터 범인과 피해자를 드러내고 시작한다. 토막 난 시체는 김석일과 함께 버스에 올랐던, 김석일의 아들 김도현이었다. 당연히 유력한 용의자는 김석일이다. 그는 휴게소에서 아들과 내린 후 사라졌다. 휴게소에 남은 가이드는 김석일의 행방을 찾지만 실패했고, 그다음 장소인 특산물 시장에서 사건이 터진 거였다. 김석일의 행방을 찾던 경찰은 곧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르는 김석일을 찾았고 체포했다. 자백은 없었지만, 김석일이 범인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도대체 아들이 얼마나 미웠으면 죽이고 토막을 내기까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조사해도 김석일은 자백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정에서 불리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나타난 김석일의 전 아내 정지원의 등장에 그는 흥분한다. 차분하게 보이는 피해자 정지원, 그녀는 김석일에게 무슨 할 말이 있기에 그와 만남을 요청한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거로 믿고 형사는 김석일과 정지원의 대면을 허락하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기를 바란다.


형사 박상하는 정지원을 보면서 죽은 아내와 병원에 있는 아이를 떠올린다. 이유가 다를지라도 비슷한 환경에 처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정지원에게 더 눈길이 가고 그녀의 행보에 더 집중하게 되는 건. 자기가 봤던 불행을 정지원이 똑같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박상하는 사건에 다가갈수록 이 불행의 시작과 과정, 끝을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만 관심을 보였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사건. 죽은 김도현은 평소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던 아이였다. 아버지의 분노가 아이를 향했고, 아이는 이유도 모른 채로 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동학대 사건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왜 어른의 분노를 아이에게 푸는 걸까 싶어서.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행동으로 아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이는 모르는 어른들의 문제를 왜 아이에게 풀려고 하느냔 말이다.


죽은 아이 김도현의 불행은 아버지 김석일과 어머니 정지원에게서 시작됐다. 아내에게 집착했던 남편,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편을 선택한 아내, 그 집착을 이기지 못해서 술과 폭력으로 아내를 다스리려 했던 남편, 참으면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결국 가해지는 폭력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떠난 아내. 그리고 남편은 남은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보다 자신의 불행이 더 컸던 엄마는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 아빠는 남은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었을까? 아니다. 평소 강한 집착과 폭력, 술에 의존하던 아빠가 하루아침에 변할 리는 없으니까. 그 폭력의 한가운데에 놓인 아이는 결국 아빠의 손에 살해되었다. 이 사건의 개요는 그러하다. 하지만...


아쉬운 장면들이 많다. 아동학대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볼 수 있는데, 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 살릴 수 있는 아이가 죽는 경우를 떠올리게 된다. 어른들이 선택하는 자기 안위, 자기가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 관심의 당사자에서 발을 빼는 경우, 다가오는 분노의 분풀이로 아이를 향하는 시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은 자연스럽고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면서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본능이라고 믿었지만, 그 역시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불행을 감당하다 보면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감싸고 나를 보듬는 일이 먼저였다. 작가는 소설 속 두 가정에서 비롯한 아동학대를 보여주면서, 부모의 자식 사랑이 당연한 것도 아니고 본능도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육아 우울증이 만든 아동학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시작된 아동학대. 두 가정의 끝은 참혹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였다. 아이를 낳으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모성애, 부성애는 없다. 사랑과 노력이 아니고서는 만들어지지 못할, 부모의 자세였다.


"우리 가족 말이에요. 남의 눈에는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싸구려 패키지 같은 그런 가족이었다고요." (304페이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가정 안의 일. 가정 폭력이나 아동학대는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관심 두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체면과 두려움, 그거 한 대 맞았다고 뭐 별일이냐는 시어머니의 시선 같은 것을 감당하기가 어렵기도 해서다.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남의 가정사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고민에 빠지는 일도 생긴다. 그렇다고 계속 모른 척하고만 있어야 할까? 정지원이 싸구려 패키지 같은 가족이었다고 말하는 의미를 알 것 같다. 남들 눈에 그럴싸해 보이는 가족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있으면 화목해 보이는 가정.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보이는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전히 어렵다. 아마도 작가는 이 상황을 마주하면서 겪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만드는 이 고통의 순간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감춰지고 어떻게 마무리되어가는지를. 어떻게 그 불안과 고통을 막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을 독자와 나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향해가면서 정지원이 구치소에 있는 김석일을 만난다. 줄곧 차분하게 있던 정지원이 김석일에게 한마디 하는데, 그때 눈치챘다. 이 사건의 진상을, 누가 웃게 되는지를. 반전이라면 반전인 그 부분에서 추리소설의 묘미를 느낀다. 정해연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동안 만나왔던 작품에 비하면 긴장감이나 재미는 좀 덜하다.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준 건 좋았지만, 푹 빠져 읽고 싶었던 기대를 생각하면 김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가독성은 좋아서 금방 읽힌다. 등장인물의 사연 하나하나 듣는 것도 괜찮았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형사 박상하의 다짐이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담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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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짐을 꾸리는 일부터 낯선 곳에서 고생하던 시간이 별로라면서, 그런데도 시간이 된다면 어딘가로 움직이는 마음이 참 모순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다고 여기는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던 순간이 작년 내내 계속이었다. 코로나로 변한 일상이, 처음에는 좀 견딜 수 있다고 여기던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행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진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 우울하고 슬펐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이,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된다면서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불가능해지니 코로나 이전의 날들이 감사했다. 별일 없이 지내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커피 한 잔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거기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그 소소한 날들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오늘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오늘의 인생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스쳐 보낸 일상의 단편들을 그려낸다. 어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웃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당황해서 소리 내지 못하고 나오는 웃음. 그래, 우리 이런 맛에 웃으면서 살아왔었지 싶은 이야기에 혼자 적어놓은 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인생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모여서 삶이 완성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날들의, 평범한 날의 소박한 기록이었다. 너무 특별해서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날이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순간들을 사진 찍어놓는 듯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날보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날이 더 잘 기억나는 건 맞다. 그러면서도 그 특별함 속에 자리한 평범한 날들이 잊히지도 않는다. 가끔 그렇게 별일 없는 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을 채우는 시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더 애틋하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이렇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듣다 보면 우리의 일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것. 작가가 부리는 마법일지도.


<오늘의 인생2, 138페이지>

 

오늘의 인생 2는 그 마법의 연장선에 있다. 여전한 날들의 평범함,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찾아내는 삶의 기쁨인 기록이다. 거기에 작년 한 해 우리가 고통스럽게 견디던 코로나의 일상이 담겼다. 이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던 날들일 것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식당이나 커피점에 앉아서 먹지 못 하는 일이 생기는, 매일 브리핑하는 확진자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피해야 하는 공포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을 지낸다. 하루하루 식사를 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날들을 이어간다. 평범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평범함을 살아간다. 작가의 일상을 또 한 번 마주하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특이하면서도 그럴 수 있음을 공감한다. 겨울날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드라이를 켜고 머리카락을 데우는(?) 일이라니. ^^ 이런 부지런함이 있을까 싶어 웃음부터 났는데, 차가웠던 머리카락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좋다는 말에 격한 끄덕임을 보냈다. 그럴 수 있다.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손끝에 닿는 그 느낌이 그대로 마음이 전해져온다고 생각하면, 겨울 아침의 드라이하기는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작가가 보여주는 그 간결한 선의 그림이, 많은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담아내면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작가는 우리이기도 하다. 많은 일에 지친 것 같다며 차 한잔 간절하지만 아무 가게에도 들어가기 싫은 마음을 품은 모습은 낯설지 않다. 주택가 어느 골목에서 나는 저녁밥 냄새에서 그리움을 찾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다가와서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가끔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아닌 척, 괜찮은 척,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안 듣는 척하면서, 일상의 사소함에 관심 없이 살아가고 싶어지는 마음.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계에 속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를 전한다.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가장 큰 힘은 공감일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이렇게 충만할 수도 있구나 싶은 감동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야지 하면서 향하는 걸음이 가볍고, 차 한잔에 수다 떠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전철에서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자는 아들의 모습에 언젠가 기억할 오늘을 상상하고, 꽃가루를 피해 도쿄를 떠난 여행지에서의 만족감 같은 일이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


<오늘의 인생2, 64페이지>

 

어쩌면 지나간 오늘은 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하루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종종 그들이 가진 젊음과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 나이여서 아름다운, 그 나이가 지나면 알게 될 순간들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이상하게도 인생의 많은 일은 지나고 아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때로는 후회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애틋해지기도 한다.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세월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생이기에 오늘의 인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일의 나를 기대하면서 사는 날들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휴일을 보내면서 꼬박 집 정리를 하고, 길가의 고양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갓 구워나온 빵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주문하는, 기분 전환 삼아 빨간 지갑을 사러 갔다가 그냥 나오고, 헬스장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고, 여행길에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접어두는, 아무리 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 작가의 이야기이기에 그 소박한 한 마디에 마음이 향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짐하는 작가의 바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어디로든 떠나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다. 그런 오늘의 인생이 감사하다. 언젠가 마주할 내일, 오늘의 인생을 기억하며 애틋함에 수다의 주제로 오를지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이랬다고, 그때의 불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살아온 오늘이기에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채워진 오늘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들의 제목을 메모하는 즐거움도 컸다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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