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가깝고 먼 사이. 대개 이런 사이는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서 지켜본바, 대개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다. 모녀처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 반면, 그 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 수 있는 불안을 아는 사이.

 

처음 제부가 집에 인사를 왔을 때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나)는 어머님이랑 정말 친한가 봐.' 단 몇 시간 만에 분위기 파악을 끝낸 제부 말처럼, 엄마와 나는 친구처럼 마치 세상에서 서로 의지할 단둘만 남은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먼저 상대를 평가하는 마음을 가진 때였다. 믿을 사람 없다고, 일단은 의심하고 보자는 눈으로 살아갈 때였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였으니, 유일하게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여겼다. 언제까지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고...

 

누가 누구를 소개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착한 사람의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나에게 잘하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나와 싸우거나 여러 가지로 어긋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닌 거다. 철수는 영희에게 착한 사람일지 몰라도, 철수는 나에게 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착해서 바보처럼 누군가한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내가 인연 맺고 사는 모든 상대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모두에게 그럴 수 없었을 테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상대에게 착한 사람이 아닌 채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평생. 엄마에게 잘하지 못해서 나 자신을 죄인처럼 여길지라도, 나는 엄마에게 좋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다. '그래도 내 딸이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공감을 가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남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왔다고 믿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같이 견뎌온 동지애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우리'가, 더는 '우리'가 아닌 것만 같다. 폭발하듯 두 여자가 울며불며 터졌다. 발단은 다른 사람의 오지랖 때문이었지만, 언제고 터질 일이 이때다 하고 터져버린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거다. 대책 없는 인생에 아픈 기억에, 어떤 기억으로 내일을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한껏 예민해지고 고조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그런 순간을 맞이했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가슴 속 말들을 터트렸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나의 잘못임을 안다. 이번 일로 누군가에게 사과도 해야 했다. 나에게 상처받은 그분은 괜찮다고, 잘 아는 사이이니 그 맘을 왜 모르겠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그분께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터트리며 어른으로 대하지 못한 것까지 사과해야 했다. 이상했다. 오히려 사과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음의 씻어지지 못한 감정이 그 사과를 온전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하다. 다음 주에 찾아뵙겠다고 말하면 약속을 잡았지만, 그것도 안다. 엄마와 내가 이번 일로 더는 동지애가 쌓아질 수 없는 것처럼, 그분과 나도 존중하고 감사하는 사이로 더는 묶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건 한순간인데, 그 미안함은 참 오래도 갈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등 돌리면 바로 외로워질 사이가 되어버린 거다. 다른 딸들은 결혼해서 나가 살아도, 한번 보러 오려면 몇 시간씩 걸리는 곳에 살아도 별말씀 없던 엄마가, 내 결혼에 관해 얘기할 때면 늘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 볼 수 있는, 그런 지척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랬던 우리였는데...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3일을 굶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갈 데까지 가봐야 이 불편함이 끝이 나겠지. 그래도 자식이라고, 엄마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늦은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건 엄마였다.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바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눈이 빨갛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렇게 들어오고서도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비어버린 위장이 배고픔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버린 오늘. 거의 일주일 만에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했다.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서로가 어색하게 말을 섞고 있지만, 우리는 안다. 예전과 같지 않음을. 동지에서 동거인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사이가 되었음을.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화해가 어려운 가장 먼 사이가 된다는 걸 증명하는 관계다.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엄마와 딸은 그렇다. 가장 밀접하고, 아끼고, 친해서 유지되던 관계가 한 번의 어긋남으로 친하기 전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방송이나 책에서 보던 여러 사례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로 여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던 거다. 다만, 그동안 내가 겪지 않았고, 겪을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했던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장 많이 가진 서로인,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사이였던 것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몇 권을 꺼내 들었다. 그중에서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신달자의 책을 가장 먼저 펼쳤다. 작가의 말처럼, 엄마 역시 딸의 행복을 바라며 했던 많은 행동, 말이었을 거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기 위해 뭐라고 읽어야 했다. 평소에 열 마디를 하는 우리였다면, 지금은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실없는 말 한마디조차도. TV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하던 일도, 영화 예고편을 보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도,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일도, 가끔 낮술을 같이 즐기는 것도. 그동안 우리가 같이하던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순간의 아픔을 건너가지 못한다면, 나는 영영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다. 엄마와, 엄마에게 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말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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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4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0-24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자식이 뭔지..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말하는건 항상 엄마 ㅠㅠ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출간 때부터 보관함에 담아둔 작품이다.

물론, 역시나, 담아두기만 했다. 읽지 못했다는 결론은 똑같다.

그 책을 구매하면 내가 당장 읽을 수 있을까?

똑같은 고민을 몇 년을 했으나....

답은, '아니오' 였다.

내가 나를 좀 아는데, 못 읽었을 거라는 걸...

늘 생각나는 책이고, 해마다 도서관에서 무슨 연중행사처럼 대출해오곤 하는데,

매번 읽지 못하고 반납한 횟수만 해도 여러 번이다.

그러니, 이 책의 중고 알림을 신청해놓고도 한번도 구매하지 못했지... ㅠㅠ

 

그런데, 좀만 기다려주지.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응?) 내가 읽을지도 모르잖아. ㅠㅠ

 

전작도 못 읽었는데 새 책이 나오면 어떡하라고...

<볼티모어의 서> 역시 기다리는 독자가 많은가 보다.

여기 저기서 계속 이 책을 말하고 있어...

 

전작 못 읽었는데, 이 책 살까말까 또 귀가 팔랑거린다.

전작은 두 권이어서 빨리 못 읽은 거 아닐까?

이번에는 한권짜리니까 내 손에 들어오면 바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응? 아니라고? 안 읽을 거라고? 혹시 모르니까 일단 주문하라고? 응? )

아, 심각한 결정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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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장판들.

요즘 계속 뭔가가 나오던데, 리커버, 한정판, 개정판, 특별판. 등등등.

이런 거 볼 때마다 '또 나와?'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안 산 거 있거나, 사고 싶었던 책이거나 하면 눈길이 가거나, 솔깃하거나 한다는 거. 습관처럼...

 

K서점에서는 이석원의 책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나왔고, (이미 읽었음. 안 사.)

은근, 정유정의 7년의 밤 특별판을 안 산 게 가끔 후회되고, (중고 알림이 뜨긴 하는데 매번 놓침. 그래서 안 사.)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나간 책들이 새옷 입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컬렉션이당.

 

 

 

 

 

 

 

 

 

설국,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페스트.

한 권도 안 읽었거나, 이 세 권을 모두 살 계획이 있던 독자라면 이번에 세트로 구매해도 좋겠지만,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중 한 권이라도 읽은 독자가 많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혹시 이번 특별판을 두고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 또 있지 않을까 하는...?

이 중에 끌리는 것만 살까? 아니면 세트로 다 살까? 아예 안 살까?

(근데 나는 세 권 다 안 읽었는데 한 권을 두고 고민하는 거임. ㅎㅎ)

 

이럴 거면 며칠만 빨리 내주지, 하는 원망 살짝... ㅡ.ㅡ;;;

바로 며칠 전에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샀거든. ㅠㅠ

(그거 팔아버리고 이걸로 다시 살까? 아, 고민 되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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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이즈. 휴대하기 편한 크기. 저렴한 가격.

쏜살문고 시리즈는 여러 가지로 선택이 쉬운 도서다.

장바구니에 여러 권 담겨 있는데,

그 중에 <외투>를 가장 먼저 구입했다.

읽고 싶은 이야기가 딱 골라서 담겨 있는 책이더라는...

지난 주에 이 책이 도착했는데...

흐음...

책의 작은 사이즈만큼이나, 글씨도 작아. ㅠㅠ 글씨가 이렇게 작을 줄 몰랐어.

뭐, 남들이 보기에 보통 크기인 것 같은데,

시력이 안 좋아서 그런지 이제는 작은 글씨가 너무 밉다...

같은 책이라면 이왕이면 열린책들 도서를 피하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

 

 

근데 또 슬쩍 가방에 넣었다.

휴대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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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쭈욱 진열해놓으면 뿌듯해지는 희한한 시리즈입니다. 몇권을 겹쳐서 한 손에 쥐면 든든하기도 하고요.

말해놓고 보니 살짝 변태같긴 하지만....

구단씨 2017-09-25 20: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ㅎㅎ
목록에 넣어둔 건 많은데 구입한 건 <외투>뿐이라서요.
몇 권 더 구입하고 쭉 진열해놓고 살펴보겠습니다.
그 뿌듯함 저도 한 번 맛보고 싶습니다요. ^^
 

두 달 전부터 비공개로 ‘절망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보는 거다.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슬쩍 책 제목을 언급하며 주변 이웃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아, 진짜. 그 책 나랑 안 맞더라.' 하면서 말이다. 육두문자 섞인 욕을 대놓고 쓰지는 못하겠어서, 그 책이 왜 그렇게 별로였는지 혼자 적고 혼자 누르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그동안은 게을러서 아예 그런 목록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작성하고 싶더라. 누구에게 대놓고 전달할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제목, 이런 표지, 이 작가의 글은 피해야겠다.’는 나만의 기억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기껏 골라서 읽은 책이 ‘절망’의 기분을 안겨준다는 게 슬퍼서 자꾸 곱씹게 된다. 가만 안두겠어! (이미 읽고 나서 기분 나쁜데 가만 안 두면 뭐 어쩌려고? 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려고?)

 

곰곰 생각해보니, 사실 그런 느낌(별로였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책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취향인가 하는 고민, 그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펴보려고 하는 노력, 무슨 목적으로 그 책을 선택하려고 하는지 하는 확신이나 이유 같은 거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특히 외형만 보고 골랐던 책에서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던 것 같다. 책이 목적이 되지 않고 다른 이유가 책을 고르는 목적이 되어버리니, 그 책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특히 책의 디자인, 책의 제목 때문에 골랐던 경우 후회할 때가 많았다. ‘어머, 이 표지 너무 예뻐!’라던가, ‘무슨 책의 제목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라는 듯한 호기심과 호들갑에 맞이했던 책들. 말하고 보니 모두 예쁘다는 이유로 골랐던 게 되어버렸네. 쩝~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외형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어느 날 가슴을 파고 들어온 제목에 설렐 수밖에 없는데, 역시 사람이나 책이나 외형보다는 내면의 것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산문집 <책이 입은 옷>을 읽으면서, 책의 외형을 대하는 마음이 더 오락가락해졌다. 독자가 아닌 작가가 보는 책의 디자인을 대하는 자세를 듣고 보니 책의 외형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거다.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 이렇게 다른 느낌을 받는 건가 보다. 그동안 줌파 라히리의 작품을 펼친 적은 많았으나 완독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작품이 어떤 느낌이라고 한마디로 말하는 건 어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작품 분위기가 어떤 느낌일 것이다.’ 라는 추측은 가능하게 됐다. 시니컬하고, 담백하다. 뭔가 할 말 다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지나고 나서,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라고 머리 콩콩 찧어가며 후회하거나, 끝까지 말해도 관철될 수 없는 일에 양보하면서 속상해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의 말을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책의 표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가 그랬다. ^^

 

완벽한 표지는 뭘까?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대부분은 우리의 옷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표지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날짜가 새겨지고 난 뒤 특정한 시간 동안에만 사랑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면 옛날 번역을 다시 번역해야 하듯 표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바꿀 필요학 있다. 책에 활력을 주기 위해, 책을 좀 더 현실감 나게 하기 위해 새 표지를 입어야 한다. 새로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는 것은 바로 원래 언어로 적혀진 오리지널 텍스트다. (책이 입은 옷 79페이지)

 

'책이 입은 옷'이라는 제목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책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특히 그녀가 자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작가로서 그녀가 책의 표지에 많은 관심과 애착을 두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그녀가 자라면서 겪었을 많은 혼란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의 미국 소녀처럼 입기 원했던 그녀에게 엄마는 인도 전통 의상을 강요했다. 엄마의 사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미국에서 사는 인도 사람, 이방인으로 보였을 그녀가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을지 저절로 그려진다. 때와 장소에 맞게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일은 일상인데, 그녀에게는 그 '옷을 고른다.'는 고민이 계속됐다.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 옷으로 남들이 보는 나를 생각한다. 옷과 책표지. 다르지만 닮은 두 가지를 작가는 참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책이 입은 옷 25페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책표지와 그녀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책표지의 의미는 닮았으나, 독자와 작가의 차이만큼 다른 점도 있더라. 예쁘고 책의 내용과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 표지를 보면 만족스럽고, 책표지와 내용이 다른 느낌이어서 와 닿지 않는다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한 건 독자의 마음이다. 내가 쓴 글의 많은 것을 표현해주는 이미지를 표지로 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내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못해서 포기해야 하거나,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만족스러운 표지를 만나는 건 작가의 기쁨인 것 정도의 차이. 둘을 모두 만족하게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다. 어떨 때는 책표지가 충동구매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글과 책표지가 하나의 길로 독자에게 가는 길은 꽤 어려운 듯하다.

 

<책이 입은 옷>은 작가의 글과 책표지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작가와 표지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책표지와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글 쓰는 과정이 꿈이라면 표지는 꿈에서 깨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글과 표지의 만족도가 같아지는 게 어렵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작가는 글과 책표지를 자신의 성장 과정의 옷 입기와 연결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보게 되는 인식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나로 보이는 유니폼이어서 좋은 점, 또 그렇게 일률적이어서 찾기 어려운 차이점들을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작가는 어렸을 적 도서관에서 봤던 '발가벗은 책'을 그리워하기도 하는데, 도서관 이용자들이 많이 공감할 듯하다. ^^ 내가 찾던 책이 비치 중인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사서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착각한 거였다. 책표지가 있던 상태의 책 색깔만 생각하고 찾다가, 책표지가 벗겨진 채로 서가에 꽂힌 책을 못 본 거였다. 작가는, 자유롭게 책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꺼낸 말이겠지만, 나는 나의 실수담으로 더 와 닿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모든 책을 책표지를 입은 채로 비치해달라고 하면, 책의 비닐커버를 씌우는 또 한 번의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서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못하겠던데, 그건 도서관만의 차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 도서관은 본관 포함해서 5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같은 책도 어느 도서관에서는 커버를 벗기고 비치해놓고, 어느 도서관은 책표지 그대로 비닐커버 씌워서 비치해놨더라는. 각 도서관의 입고 담당자가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많은 도서관의 책은 줌파 라히리가 말한 것처럼 옷을 벗은 책 상태로 비치되어 있을 거다.

 

표지의 역할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할 감정을 떠올려본다. 작가가 말하는 책표지의 상업적인 역할도 충분히 공감한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지만, 아름다운 표지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것. 책과 표지가 말하는 게 달라 진실과 거짓이 대립할 수도 있기에 작가는 바란다. 표지가 자신의 책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해주기를.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보는 책과 표지의 관계로 작가가 평생 겪어왔던 갈등을 연결하며 하는 이야기에 불편함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그 갈등을 계속 확인하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표지가 단순히 책의 의미나 내용을 반영하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오늘날 표지는 책에서 또 다른 비중을 차지한다. 표지는 미적인 목적보다 상업적 목적이 더 크다. 표지가 책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한다. (책이 입은 옷 41페이지)

 

 

 

 

 

 

 

 

 

 

 

나는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을 읽었으나 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마리몬드 콜라보 버전으로 나온 책표지가 예뻐서 사고 말았다.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이미 읽었지만 굳이 사고 싶기도 했어, 가끔 생각나기도 했거든, 그런데 굳이 살 필요까지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지 않았는데, 이번 표지는 너무 예쁘잖아, 그러니 이번에 사야 해, 원래 다시 읽고 싶었던 거잖아?!' 이런 마음으로 그 책을 사는 것에 후회나 충동구매보다는 기쁨과 만족을 끼워 넣었다. 절망의 리스트를 열심히 작성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표지의 상업적 목적에 충분히 빠져든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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