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가깝고 먼 사이. 대개 이런 사이는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서 지켜본바, 대개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다. 모녀처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 반면, 그 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 수 있는 불안을 아는 사이.

 

처음 제부가 집에 인사를 왔을 때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나)는 어머님이랑 정말 친한가 봐.' 단 몇 시간 만에 분위기 파악을 끝낸 제부 말처럼, 엄마와 나는 친구처럼 마치 세상에서 서로 의지할 단둘만 남은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먼저 상대를 평가하는 마음을 가진 때였다. 믿을 사람 없다고, 일단은 의심하고 보자는 눈으로 살아갈 때였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였으니, 유일하게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여겼다. 언제까지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고...

 

누가 누구를 소개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착한 사람의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나에게 잘하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나와 싸우거나 여러 가지로 어긋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닌 거다. 철수는 영희에게 착한 사람일지 몰라도, 철수는 나에게 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착해서 바보처럼 누군가한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내가 인연 맺고 사는 모든 상대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모두에게 그럴 수 없었을 테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상대에게 착한 사람이 아닌 채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평생. 엄마에게 잘하지 못해서 나 자신을 죄인처럼 여길지라도, 나는 엄마에게 좋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다. '그래도 내 딸이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공감을 가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남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왔다고 믿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같이 견뎌온 동지애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우리'가, 더는 '우리'가 아닌 것만 같다. 폭발하듯 두 여자가 울며불며 터졌다. 발단은 다른 사람의 오지랖 때문이었지만, 언제고 터질 일이 이때다 하고 터져버린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거다. 대책 없는 인생에 아픈 기억에, 어떤 기억으로 내일을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한껏 예민해지고 고조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그런 순간을 맞이했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가슴 속 말들을 터트렸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나의 잘못임을 안다. 이번 일로 누군가에게 사과도 해야 했다. 나에게 상처받은 그분은 괜찮다고, 잘 아는 사이이니 그 맘을 왜 모르겠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그분께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터트리며 어른으로 대하지 못한 것까지 사과해야 했다. 이상했다. 오히려 사과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음의 씻어지지 못한 감정이 그 사과를 온전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하다. 다음 주에 찾아뵙겠다고 말하면 약속을 잡았지만, 그것도 안다. 엄마와 내가 이번 일로 더는 동지애가 쌓아질 수 없는 것처럼, 그분과 나도 존중하고 감사하는 사이로 더는 묶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건 한순간인데, 그 미안함은 참 오래도 갈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등 돌리면 바로 외로워질 사이가 되어버린 거다. 다른 딸들은 결혼해서 나가 살아도, 한번 보러 오려면 몇 시간씩 걸리는 곳에 살아도 별말씀 없던 엄마가, 내 결혼에 관해 얘기할 때면 늘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 볼 수 있는, 그런 지척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랬던 우리였는데...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3일을 굶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갈 데까지 가봐야 이 불편함이 끝이 나겠지. 그래도 자식이라고, 엄마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늦은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건 엄마였다.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바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눈이 빨갛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렇게 들어오고서도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비어버린 위장이 배고픔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버린 오늘. 거의 일주일 만에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했다.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서로가 어색하게 말을 섞고 있지만, 우리는 안다. 예전과 같지 않음을. 동지에서 동거인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사이가 되었음을.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화해가 어려운 가장 먼 사이가 된다는 걸 증명하는 관계다.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엄마와 딸은 그렇다. 가장 밀접하고, 아끼고, 친해서 유지되던 관계가 한 번의 어긋남으로 친하기 전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방송이나 책에서 보던 여러 사례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로 여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던 거다. 다만, 그동안 내가 겪지 않았고, 겪을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했던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장 많이 가진 서로인,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사이였던 것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몇 권을 꺼내 들었다. 그중에서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신달자의 책을 가장 먼저 펼쳤다. 작가의 말처럼, 엄마 역시 딸의 행복을 바라며 했던 많은 행동, 말이었을 거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기 위해 뭐라고 읽어야 했다. 평소에 열 마디를 하는 우리였다면, 지금은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실없는 말 한마디조차도. TV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하던 일도, 영화 예고편을 보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도,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일도, 가끔 낮술을 같이 즐기는 것도. 그동안 우리가 같이하던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순간의 아픔을 건너가지 못한다면, 나는 영영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다. 엄마와, 엄마에게 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말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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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4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0-24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자식이 뭔지..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말하는건 항상 엄마 ㅠㅠ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