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더워도 너무 덥고
새벽에는 4시쯤부터 환해지더니
5시 반쯤 되면 서서히 해가 보이는 것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든 사람인데
더위 때문에 새벽에 해 뜨는 걸 본다.
하루에 거의 2~3시간 자는 듯...

밖에 일보러 다녀야 하는데도 겁이 나서 나설 수가 없다.
샤워를 하면서도 동시에 땀이 흐르는데 어째야 하는 건가?
겨울이 힘들지만 올해 여름은 진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택배 기사님 꼭 3~4시에 오셔서,
가장 더운 시간이라 물건 받으면서도 죄송하고 그래서
이제는 500ml 생수 얼려놨다가 드린다.
마트에 가니 300원 하더라.
당연히 자기 할일 하면서 돈 버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 있겠지만,
그 말도 맞는데,
이 살인적인 더위에 당연한 일도 힘든 건 힘든 거 아니겠나...
얼음물 드리면서 죄송한 마음 달래 봄.

최고 온도 35도라는데
체감온도는 도대체 얼마만큼인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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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18-07-2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어컨없이 살아낸 그동안의 여름을 덧없네요. ㅠㅠ
올해를 버틸수 있을지....;;;;;;

구단씨 2018-07-27 23:55   좋아요 0 | URL
아 진짜 덥네요.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에어컨을 그리 많이 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올해는 에어컨 고장 날까봐 무서워요. (이미 며칠 전에 한번 점검 받은 터라 더 무섭다는...)
한번 서비스 접수하는데 최소 일주일 후에나 수리하러 온다는 말에 식겁...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빈말로라도 마음에 없으면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스치듯 우연히 만나는 사이가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을 일이 일어나는 건 드물다. 그래서 그런 빈말에 마음을 두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언제였던가. 서른 즈음에 중학교 동창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인지 자주는 아니어도 그렇게 어쩌다 한번, 몇 달에 한 번 정도 우연히 마주치곤 했다. 그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내는 정도. 어느 날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 언제 시원한 생맥주나 한잔하자고 그러면서 인사하고 지나갔다. 그 친구가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사하고 지나갔다. 그 친구의 제안이 씁쓸했던 건 빈말이라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언제 한 번 시원한 생맥주 한잔하자고 하면서 내 연락처를 묻지 않고 갔다. 몇 년 동안 몇 번을 지나치며 인사했어도 그 친구와 나는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그런 상대에게 내가 '다음에'라는 가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술 한 잔'이라는 '다음에'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 거다.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에 '다음에'가 있을 수 없을 거, 아닌가

 

전작들을 꾸준히 챙겨 읽고, 개정판 특별판 한정판 등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기존 출간작도 관심 두게 하는, 인터넷서점의 출간 알림을 설정해놓은, 나에게 이도우는 그런 작가다. 6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이번 작품 소식이 반갑다. 느려터진 내가 다행히도 선착순 사인본을 놓치지 않았다. 힘들었던 건, 받아놓고도 바로 읽지 못하고, 이제 좀 읽어보려고 하니 폭염에 책을 손에 들 수 없었다는 거. 힘들지만, 읽어냈다. 사람을 읽고,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전하는 삶의 모습들을 읽었다. 아마도 특별한, 아주 특별한 뭔가를 기대하고 읽었다면 밋밋하고 재미없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런 기대를 한 독자가 있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기대했다. ^^) 이야기는 평범했고, 잔잔했다.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던 여자가 어렸을 적 자랐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그곳에서 고교 동창이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싶던 순간에 시골 동네의 작은 서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듣는 시간 때문에, 오래전 해묵은 상처부터 기억 속에서 잊으려고 애쓰던 상처까지 같이 찾아오고야 말았던, 하지만 이곳에서 다시 찾은 것들 때문에 상처는 비워지고 마음이 채워진다다는 내용

 

 

 

 

 

 

 

 

 

듣고 보니, 별거 없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에서 높낮이가 심한 감정을 읽는다거나 사건의 출렁임을 자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잔잔한 흐름에서 발견하는 사람들의 한마디, 의외의 장면에서 삶의 뭉클함을 찾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아아, 속이 시원하다."

이제 해원은 추운 것도 못 느꼈다. 실내복에 맨발엔 은섭의 슬리퍼만 꿰신고 나왔는데도 몸에서 이상하게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명여가 통쾌하게 외쳤다.

"그래, 다 망가져버려라! 내가 망가지는데 집이 멀쩡하면 되겠니, 같이 고장 나야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145페이지)

명여 이모의 낡은 펜션으로 찾아온 해원은 이모가 왜 펜션을 방치하는지 몰랐다. 이 장면을 읽고 있던 나도 몰랐다. 그러나 명여가 통쾌하게 외치는 그 순간의 감정은 알 것 같았다. 답답함이 폭발하듯, 본인은 닫아두고 꼭꼭 눌러두면서 그 감정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단속하고 살아온 것 같은데, 고장이 난 수도가 폭발하듯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순간, 명여의 마음도 폭발했으리라.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감정은 작은 틈새로라도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이건 뭐, 새어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폭발했으니 얼마나 거대했을까. 이렇게 소리치고 싶던 순간이 명여에게 얼마나 많았을까? 담고 있자니 아프고 답답하고, 쏟아내자니 그게 감당이 안 될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자책의 순간을 조금은 더 끌어안고 있었으리라. (명여가 왜 자책하면서 15년을 살아왔는지는 소설의 후반부에 나온다) 이 장면을 읽는데, 몇 문장 안 되는 명의 외침을 듣는데, 갑자기 뭔가 확 터지는 것 같은 기분에 은근슬쩍 개운함마저 들었다. , 한파에 수도는 터지고, 물은 분수처럼 튀어 올라온 집을 얼음 왕국으로 만들었지만, 명여의 속은 시원했을 것만 같다. 그러면서 감정이 이입된다. 누구나 그런 순간 담고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차마 꺼내놓을 수 없는 말에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 어디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외치고 싶은데 그래서도 안 될 일들, 그게 담아두고 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니까.

 

이게 시작이었나 보다. 서울 생활이 지친 해원이 강원도 시골의 이모 집을 찾아든 이유도 명여 이모가 외치던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시원하게 쏟아냈으니, 이제 회복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거다. 이야기는 그 길을 참 천천히 걷게 한다. 당장 뭔가를 전환하는 게 아니라 서서히 걷는 길을 여는 것만 같다. 고장이 난 수도 때문에 펜션 호두하우스의 수리 기간은 열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명여 이모는 친구 수정의 집으로, 해원은 은섭의 집으로 임시 피난처로 삼는다. 그리고 서서히 상처를 비우고 마음을 담는 시간을 연다. 해원은 은섭의 서점 굿나잇책방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은섭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서점 일에 몰두하면서 피곤했던 서울에서의 시간을 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섞이는 법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얼음 왕국이 되어 흉가처럼 보이던 호두하우스는 일주일의 시한부였지만 굿나잇책방의 이벤트 상품으로 활용된다

 

소설 곳곳에서 묘사되는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진다.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의 분위기를 그리면서 읽게 되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 모여든 나이 성별 불문한 책모임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작고 허름한 기와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펼쳐질 작은 서점 내부, 여름 내내 푸르게 자랐던 벼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겨울 논의 스케이트장,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리어카의 뒷자리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승호, 뭔가를 계속 만들면서 손을 놓지 않는 소녀 감성 수정 씨, 엘이디 전구로 바꾸라며 영업에 열을 올리지만 그래도 책이 좋아서 책방을 찾는 거라고 믿고 싶은 근상 씨, 반항하는 이미지 뒤로 속이 꽉 찬 아마추어 래퍼 현지. 그중에서도 명여 이모의 표정을 계속 그리면서 읽게 되는데, 내가 바라보는 명여 이모의 얼굴은 항상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나날들 때문에 명여 이모는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해원의 인생에 책임까지 느끼지는 않았을까? 상당히 복잡한 표정의 명여 이모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한밤에 창으로 비친 달빛에 의지해서라도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할 말이 너무 많지만 할 수 없어서 곧 죽어도 계속 써 내려가야만 하는 사람, 그렇게까지 했건만 다 쏟아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전에 이모가 했던 말을 생각해봤어.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 건 너무나 기약이 없다는 거. 그러게, 좀 더 때가 되면, 상황이 좋아지면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일들이 내게도 있었어. 이젠 조금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401페이지)

 

어쩌면 우리에게 화해나 용서, 상처를 덜어내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무게가 없는 말들이 그 순간을 만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잔뜩 날 선 마음을 둔해지게 하기 싫었나? 나를 방어하기 위해 계속 뾰족하게 있어야 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더는 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의 제목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는 말은,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과 같다고 명여 이모가 그랬다. 그건 만나지 말자는 말이라고. 그랬다. 그런 빈말들. '다음에'라며 약속 시각을 못 박지 않고 흐지부지 잊어주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말. 해원이 보영에게 지금은 너무 춥다면서 날씨가 좋으면 만나자는 말을 했을 때, 아마도 해원은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 속 상처를 들추는 시간을, 그 상처를 다시 꺼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어쩌면 영원히 기억에서만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그런 상처들이 안에서 머물기만 한다고 좋은 걸까? 그대로 있어도 괜찮을 걸까? 아니다. 괜찮지 않으니까 우리는 매번 그 상처를 조금씩 들추고, 싸우고 화해하고,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는 거 아닐까. 그 괜찮아지는 시간은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는 건가 싶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갈 게 아니라, 먼저 찾아가서 그날 날씨를 좋은 날로 기억하라는 듯이. 결국은 그 상처도 치유도 내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이, 세월이 흐르니까 이렇게 용기를 내게 하기도 하는구나' 싶은 조금은 늦어버린 안심.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손을 내밀어야 하는 순간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날씨가 좋은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니까.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것으로 시작한 빈말(?)'우리가 같이 밥을 먹은 그 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는 마음 가득한 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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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0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0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장미 2018-07-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말말고 꽉찬 말로..... 우리도 밥 한번 먹어요.ㅎㅎㅎㅎㅎ
완전 진심!

구단씨 2018-07-28 00:11   좋아요 0 | URL
속을 꽉 채울 수 있는 음식을 골라봐야겠어요~!! ^^

다락방 2020-02-2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 채널 돌리다 이 드라마를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어? 이건 이도우 작가 책인데?! 저는 읽지 않은 책이지만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고, 오, 이거 분명 구단씨 님의 리뷰 있을거다! 하고 찾아왔어요. 역시 있었습니다! 헤헷 :)

구단씨 2020-02-28 15:38   좋아요 0 | URL
아... ^^
언젠가부터 드라마 방영 시작 예고도 많이 하더라고요.
알면서도 드라마는 못 봤는데, 반응은 궁금합니다. ^^
 

 

어린이 책을 좋아하는데, 예전만큼 어린이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조카가 분가한 뒤로 조카랑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책 읽기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고,

요즘에는 어떤 책이 나왔는지 먼지 찾아볼 기회가 줄어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작년에, 페미니즘 검색하다가 발견한 이 동화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꺼내본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제목부터 익숙한 이야기가 굳이 다시 읽을 필요를 못 느끼고,

그냥 지나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기돼지 삼 형제>인줄 알고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아주 깔끔했다. 엄마 돼지한테 가정교육도 아주 잘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과 다른 아기돼지의 연령이다. 아기돼지 세 자매는 사실 아기가 아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어른 여자 돼지다. 어느 날, 엄마 돼지는 세 자매 돼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예쁜 돼지 아가씨가 되었구나.

자, 이 금화 주머니를 하나씩 받아라. 가서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아보도록 하거라……."

 

엄마돼지는 아기돼지들에게 자기만의 인생을 찾아 떠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신랑을 찾아 떠나라고 한 거다.

 

 

 

 

엄마돼지에게 돈주머니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세 자매는 헤어진다.

(같이 떠날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났다.

 

 

여기서부터 『아기돼지 삼 형제』와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떠날 때 엄마 돼지는 금화 주머니를 준다.

원작이 무작정 길을 떠난 돼지 삼 형제가 집 지을 재료를 얻어 집을 지었던 것에 비하면 돼지 세 자매는 금화를 들고 떠난다.

그렇게 받은 금화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사는 거다. (오~ 이 방법이 더 간단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보니 어느 정도는 변화해가는 사회에 맞게 구성된 게 아닐까 싶다.

돈이 없으면 뭘 못하잖아. 누가 집 지을 재료를 그렇게 준다고?

그렇게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의 행보가 기가 막힌다.

 

편안한 걸 좋아하는 첫째 돼지는 가진 금화 모두 털어서 커다란 벽돌집을 산다.

어느 날 아침, 첫째 돼지가 창밖을 내다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돼지 한 마리가 청혼하는 거였다.

"아리따운 아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제가 귀부인이 되게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돼지는 문을 열어주면서 생각했다. 예의 바르고, 돈도 있는 것 같고, 마음에 드니까 저 정도면 좋은 신랑감이라고.

그러나 그 돼지는,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다. 첫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지.

 

둘째 돼지는 가진 금화 반만 들여서 나무로 된 예쁜 집을 샀다.

첫째 돼지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돼지의 청혼을 받는다.

잘생기고 힘도 세어 보이고, 겨울에 땔나무 걱정은 없겠다는 판단에 그 돼지를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러나 역시 돼지의 탈을 쓴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결론.

 

이제 셋째 돼지가 궁금하겠지?

 

늑대는 돼지 가면을 쓴 채로 보리수나무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돼지 두 마리로 포식하고 나니 배가 불러서 좀 쉬어야겠다. 소화도 시키고 낮잠도 좀 자려고.

그런 돼지를 지켜보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으니, 굉장히 사나워 보인다. 상황이 역전된 거다.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늑대 가면을 쓴 돼지'에게 자기가 사실은 돼지가 아니라 늑대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쓰는데,

그에 '늑대 가면을 쓴 돼지'가 말한다.

"그래? 저기 가서 지푸라기로 만든 집에 숨어 있는 셋째 돼지를 잡아먹으면 네 말을 믿어 주지."

'돼지 가면을 쓴 늑대'는 지푸라기 집으로 뛰어들면서 셋째 돼지를 후식으로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셋째 돼지 캐릭터가 그렇게 쉽게 잡아먹히는 것이더냐.

지푸라기 집은 셋째 돼지가 늑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었다.

그렇게 늑대를 포획한 셋째 돼지는 늑대를 사로잡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래서인지 셋째 돼지와 결혼하겠다는 돼지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 ^^

하지만 셋째 돼지가 가장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아기돼지 세 자매>가 훨씬 재밌게 읽힌다. 글로 보면 A4 종이의 절반이나 채워질까 하는 정도의 분량인데, 그 흐름이 통쾌해서다. 독립하라고 집에서 내보냈던 돼지 삼 형제와는 아주 다르다. 돼지 세 자매에게 신랑감을 구하러 내보낸다는 설정은 참 구닥다리 같지만, 그 여정에서 보이는 돼지 세 자매의 태도는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비춘다. 외모나 태도로만 판단한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 정도면 뭐, 하는 계산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다. 돼지의 탈을 쓴 늑대였으니, 늑대의 손이나 발만 보았어도 돼지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신중하고 세세하게 상대를 살펴볼 생각을 못 한 거다. 반명 셋째 돼지는 늑대가 쓴 가면을 똑같이 이용한다. 늑대가 돼지 가면을 쓰고 돼지를 잡아먹었으니, 돼지도 늑대 가면을 쓰고 늑대를 잡아먹어야지!

 

 

 

 

(늑대를 포획하고 난 후의 셋째 돼지 표정 좀 봐라. 저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돼지 자매 두 명은 죽었지만, 신랑감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길을 떠난 돼지 세 자매가 얻은 교훈은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아마도 그건 당하지 않고 세상을 사는 법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내가 똑바로 서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동화였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 역시.(이 부분은 경쟁 사회에서 필요한 자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참 대단했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났던 여자 돼지에게 좋은 신랑감을 찾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나.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처음 길을 떠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거다.

신랑감을 구하러 떠난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신랑, 결혼이라는 것은 삶을 차지하는 많은 의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니까.

여자의 행복이 결혼만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나, 어떤 남자를 선택하느냐에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나

요즘 세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아니니까.

사실 이건 여자 남자 따로 놓고 볼 일은 아닌데 말이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결혼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건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다.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파고드는 메시지가 강하고,

통쾌한 결말에 큰소리로 웃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이야기다.

이 짧은 동화 한 편으로 요즘 시대의 많은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뭔가를 해결하고 찾아가는 느낌이 좋다.

 

 

페미니즘 동화를 검색하다가 같이 발견한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는데,

당당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 주인공들이 멋있어서 아직은 코딱지만한 조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들이다.

그동안 우리가 만났던 동화 속 공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색다른 캐릭터들,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여자 어린이들에게 필독서로 보여주고 싶은,

굳이 어린이가 아니어도, 엄마가 아니어도, 만나보면 좋을 책들이다.

 

 

 

 

 

 

 

특히 <종이 봉지 공주>는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이다. 너무 멋있었던 사이다 공주 때문에 박수를 막 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린이(청소년)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참고하면 좋을 책 한권 더.

 

 

 

 

 

 

 

아이들 책을 바라본 최윤정 작가의 평론집인데, 어린이 문학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책 속의 구절에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감정들, 실수들, 웃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몇 가지 주제를 정해서 골라놓은 책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굳이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아이들에게 보여야 할 태도, 말 같은 것을 배우는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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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06-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흥미롭네요!!

구단씨 2018-06-29 10:08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읽고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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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덥고,

이상하게 비도 정신없이 퍼부어대고,

책은 잘 안 읽지만,

여전히 관심 가는 책들은 늘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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