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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싶다..."

늦은 저녁, 가끔 집 뒤로 산책하러 갈 때가 있다. 그 길을 기찻길과 나란해서 거의 30분 정도 걷다 보면 몇 번이나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게 된다. 어떤 날은 기차 안이 텅 비어 있기도 하고, 어떤 기차는 입석까지 꽉 차서 지나가기도 하고... 이런 감정은 코 흘리며 놀던 어린 시절에나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기차 타고 싶다고 말하면, 나도 덩달아 저 기차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엄마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기차 타고 통학했다고 한다. 집 근처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역 근처에 학교가 있어서 그랬다고. 그때는 버스보다 기차가 더 편한 통학 수단이었다고 했다. 요즘엔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되는데, 기차는 장거리 이동에 타게 되는 수단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진짜 옛날 일이구나 싶다. 그러면서 생각이 이어진다. 통학하는 게 아닌 기차를 타고,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었던 걸까.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을 가방에 넣어서 다니면서 밖에 있는 시간에 천천히 읽었다. 분량이 길지도 않아서, 집중해서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글인데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아서 한참을 들고 다녔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는지 처음부터 보여서다. 순간순간 울컥해지고, 미안해지고, 바로 옆에 있는데도 엄마가 그리워졌다. 오랜 시간 엄마와 함께 살아왔는데도,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다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일상의 틈틈이 비집고 들어왔다.

 

오래전부터 엄마에 관해 쓰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엄마의 삶이 궁금했다.

그때는 써야 할 이야기가 넘쳤으므로, 엄마는 자꾸 밀렸다. 언제나 내 뒤에 서 계실 거니까. 이번이 아니라도, 곧 돌아와 쓰면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한번 미루니 두서너 해가 휙휙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장편작가가 되었고 등단 20년이 지났지만, 엄마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며 문장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옮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너무 늦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이. (엄마의 골목, 8페이지)

 

그랬다. 엄마는 자꾸, 언제나 뒤로 밀렸다. 친구나 애인이랑 놀러 다니느라, 공부한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진심은 숨긴 채 '다음에'라는 변명으로. 그렇게 뒤로 미루다 보니 이제는 엄마가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다리가 아파서 어렵고, 멀미가 나서 힘들고, 병원에 다니느라 시간이 안 난다고. 작가도 그랬을까. (아마 그랬을 거로 생각해야 내 맘이 좀 편할 것 같다) 엄마와 함께 걷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일. 쉽지도 않지만 어렵지도 않은 그 일을 그가 미룬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는 동안 다가오는 감정은, 미안함이 제일 앞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도 엄마가 몸과 마음 의지하고 지내왔을 그곳을 이제야 같이 걸으며 적는 작가의 마음을 계속 따라갔다. 작가는, 언제 가더라도 늘 따뜻한 밥상을 내놓는 엄마의 마음을, 번거로운 일을 왜 하느냐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늦게 배운 하모니카를 부르는 엄마의 표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을 거다. 일찍 부재한 아버지 자리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살아온 그 시간을 걸으며 엄마의 표정을 담는 작가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아마 이 책을 몇 번을 읽어도 다 알지 못할 것 같다. 작가가 적어낸 글로는 그 마음이 다 표현되지 못했을 것을 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 맘의 모든 것이 그대로 표현되지 않을 감정의 크기를 우리는 아니까 말이다. 그 감정의 크기를 재단해야 하는 대상이 엄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작가는, 엄마와 진해를 걷기로 했을 그 순간 오직 한 가지만 떠올리지 않았을까.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를 비껴갔던 엄마의 시간 듣는 일을 이렇게 시작한 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단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엄마의 골목, 156페이지)

 

작가의 엄마는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도 감사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있나? 엄마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쌓아두고 있을까. 아마도 엄마가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시간은, 할 얘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야기할 기회'가 너무도 찾아오지 않아서는 아닐까. 고작 내가 듣는 엄마의 이야기는 이런 건데. TV에서 나오는 신작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저거 재밌겠다!' 하는 엄마의 혼잣말을 듣고 무슨 영화인지 기억해두었다가 예매하는 것, 피부과에서도 완치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머릿속 질병에 마사지를 해주는 것, 옷 사러 가서 직설적으로 말하며 엄마의 선택 장애를 완화해주는 것. 홈쇼핑을 보면서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주문하지 못해서 밖에 있는 나에게 전화하는 엄마를 귀찮아하지 않는 것? 너무 사소하다. 사소해서 기억에서 잘 지워진다. 그냥 그랬던 일이 있는 하루로 지나가버린다. 엄마의 이야기는 대개 그런 거였다. 물론 우리가 자랄 때는, 가장인 엄마가 고민하고 꺼내야 할 이야기는 너무 거대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우리가 들어도 모를 일, 안다고 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들이었을 거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늙어가는 이 순간에, 엄마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사소했다. 뭔가 먹고 싶다던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하라던가, 처방받아온 약을 먹기 싫다던가, 하는 그런, 그냥 휙 지나가버리면 들었는지도 모를 말들. 아주 몰랐던 것도 아니 텐데,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사소해서 부담 없는 게 아니라, 사소해서 슬퍼지는 말이 되고 말았다. 뭐가 그리 어려웠다고...

 

되풀이하는 후회와 부끄러운 반성으로 『엄마의 골목』을 읽다 보면, 저절로 생각나는 책이 있다. 한설희의 『엄마, 사라지지 마』다. 처음 『엄마의 골목』을 펼쳐 들었던 날, 집에 들어와 『엄마, 사라지지 마』를 찾았다. 출간 때 읽었으니 몇 년 만에 꺼낸 거다. 그동안 다시 꺼내어 볼 만큼 별로였던 책이 아니다. 두 번은 읽기 힘들어서다. 그런데도 그 순간에는 꺼내지 않을 수가 없더라. 밖에 있는데 계속 생각이 났다. 엄마의 길을 걷고, 엄마의 모습을 찍는 두 책이 닮았다.

 

노모를 찍는 늙어가는 딸. 지금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두 사람은 69세와 93세였다. 69세의 딸이 93세의 노모의 모습을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 담는 순간 어떤 감정이었을 지가 고스란히 전해져와 한 컷 한 컷에 담긴 그 모습을 독자와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인공인 엄마의 표정을 계속 보게 되는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노모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을 쉽게 찾을만한 표정이 없었다. 아니, 표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 표정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고 해야 하나.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분위기에 뭐라도 하나 붙잡고 싶었다. 아마 작가도 비슷한 바람이지 않았을까.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는 작가의 말이 사실이니까, 그 순간이 빨리 오지 않게 간절하게 붙잡고 싶은 뭔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작가는 엄마를 찍는 모든 순간에 아파하고 있었는지도.

 

 

 

 

엄마는 찍으면 찍을수록 쓸쓸해진다.

엄마의 고요한 적요가 사진에 남겨질수록 두려워진다. (엄마 사라지지 마, 215페이지)

 

엄마가 나를 두고 멀리 떠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이 사진을 보면 조금 슬퍼진다.

하지만 그 일이 곧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도, 나도. (엄마 사라지지 마, 47페이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 '찰칵'하는 순간 손이라도 떨렸는지, 작가가 찍어놓은 사진이 흐리다. 종이에 눈물이 떨어져서 번진 것처럼 선명하지 않은 페이지가 됐다. 그런데도 그 감정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엄마의 뒷모습이 하는 많은 말을 그대로 듣게 된다. 김탁환 작가가 엄마와 같이 걸으며 보았던 엄마의 많은 표정과 말을 한설희 작가도 엄마를 찍는 매 순간 그대로 들었을 거다. 그러면서 이별의 순간을 연습하는지도 모르겠다. 연습한다고 해서 이별이 이별이 아닌 게 되지도 않고, 이별이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폭풍을 만난 것처럼 이별이 거대해질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두 작가가 그려낸, 언젠가 마침표가 되어도 끝나지 않을 엄마의 기록들이 뜨거운 이 여름에 서늘하게 다가온다. 봄날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고 또 후회했다. 얼마 전에야 알았는데, 내가 사는 이곳 시에서 하루 코스 투어버스가 있더라. 작은 동네에서 '투어'라는 말이 우스웠지만 궁금해서 찾아봤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지명들이었는데,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몰랐나? 마침 그중에 몇 곳이 엄마가 궁금해 하던 곳이라 투어 신청하려고 했더니, 더워서 싫단다. 이 더위에는 그 어디도 가고 싶지 않다고. 엄마와 나는 입맛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더위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건 또 닮아서, 이 작은 투어 버스를 타는 건 가을로 미뤄졌다. 여름보다는 걷기 좋은 계절일 거다, 가을은... 덥다 덥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이 여름도 금방 가겠지. 조금이라도 바람의 느낌이 달라지는 그때가 되면 작정하고 걸어야겠다. 살 게 없는데도 저녁에 산책 삼아 가는 동네 마트도, 무서워서 미루고만 싶은 병원도,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 길도, 같이 걸어야겠다, 엄마랑...

 

 

잠든 엄마 얼굴을 머리맡에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죽은 엄마 얼굴도 이러할까. 잠든 얼굴과 죽은 얼굴은 어떻게 차이가 날까. 질문 두 개가 연이어 떠올랐을 때, 엄마가 눈을 떴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엄마는 처녀처럼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죽음이란 단어를 걷어내기라도 하듯. (엄마의 골목, 17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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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7-07-2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만 하고 아직 펴보지도 못한 책인데..... ^^

구단씨 2017-07-24 15:05   좋아요 0 | URL
엄마의 골목 읽으면 엄마랑 어디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예요.
저희 엄마가 귀찮다고 하시면서도 남동생 오면 잘 따라나서시거든요. 귀찮은 게 아니라 아들이랑 같이 가고 싶은 거였어요... OTL

노란장미 2017-07-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해도 힘드네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된 저는.
한번도 엄마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후회로 남아요.
멀건히 방바닥을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프네요.
기억은 시시때때로 기억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기억들까지 어디서 찾아들고 나타나네요.

구단씨 2017-07-26 15:50   좋아요 0 | URL
그쵸?
엄마가 화두가 되는 이야기는, 늘 그래요...
말이 없어지는...

나와같다면 2017-07-2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도 새벽 별보고 기차타고 통학했다고 했는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네..
그리고 내가 엄마의 어린 시절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ㅠㅠ

구단씨 2017-07-26 15:52   좋아요 0 | URL
지금과 많이 다른 시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추측하자면요...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다 알 수 없는 대상이 아닐까 싶어요.
 

 

결혼을 앞둔 사람, 혹은 이미 부부가 된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 사실, 그다지 관심 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냥 궁금해질 때가 있거든. (이 책을 읽으면 특히 더, 그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어~!) 프러포즈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서로가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결혼날짜까지 다 정해진 상태에서 굳이 공식적인 프러포즈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을 했었거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익숙해진 관계처럼 그냥 흘러가는 분위기에 결혼까지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 그러면서도, 언젠가 정말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먼저 말해보려고 생각한 적도 있어. 나는 진짜 애교가 꽝인 인간이라 평소에도 무뚝뚝함이 넘쳐흐르지만, 그래서 (뻘쭘) 별건 아니고, 딱 한 문장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싶었지. 그냥 "같이 살자"고 말해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 누가 먼저 하라고 정해진 건 아니니까, 내가 먼저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잖아? 괜찮아, 뭐. 암튼 내 맘이 그렇다면 참지 말고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어. 근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더라고. 곧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 프러포즈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프러포즈가 있었는지 말이야. 나처럼 무뚝뚝 심드렁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거 말고 말이야. (왜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이따가 말해줄게) 이벤트 대행사에 의뢰했는지, 아니면 며칠을 머리 싸매고 자기만의 색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순간을 만들었는지 하는 그런 거. 아, 원래 진심만 담으면 되니까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진심을 담은 그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느냐고.

 

 

 

 

 

 

 

 

 

마중 나와 주겠어? 어떤 모습으로든 좋아.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많이 슬플 것 같아.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예식장에 갈 거야. 가서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26페이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 대. 4년 4개월 후에... 알파 센타우리에서 오는 여자 친구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해야 해. 아, 4년 4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니? 안 되겠다.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 남자는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광속 우주선을 타기로 했어. 광속을 돌파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두 달 동안 우주에 있다가 지구로 돌아오면 딱! 결혼날짜에 맞출 수 있다, 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 그녀가 탄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서 두 달 늦게 도착한대. 그에 남자는 두 달 늦게 지구로 돌아가는 다른 배로 갈아탔어. 그런데 그게 망할 일이 되어버린 건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좋니. 갈아탈 우주선에 문제가 생겨 도착이 한참 늦어진대. 지구에 도착하면 3년은 지나 있을 거라는데, 어떡해?!

 

남자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달라고, 제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물론 그녀는 그를 버리지 않았지. 다만, 문제가 조금 더, 조금씩 더 생겼을 뿐이야. ㅠㅠ 3년, 11년, 그렇게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지연되고 있어. 이렇게 슬픈 일이 왜 생겨야만 하는 거니? 왜 이러는 거야 자꾸!!

 

도대체 이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왜 이렇게 됐을까. 만나기는 하는 거야? 왜 자꾸 만남이 어긋나기만 하는 거지? 멀쩡하게 잘만 굴러가던 배가, 꼭 이럴 때는 작정이나 한듯 고장 나고 그러더라. 그래서 자꾸 바라면서 읽게 되잖아. 이 짧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이 만날 수는 있는 거냐고 물으면서 읽게 되잖아. 지구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달라서 그런 것도 알겠어.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배에 오른 것도 알겠어. 좀 더 빨리 만나고 싶어서 배를 갈아탄 것도 알겠어.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라면 벌써 수천 번을 만나도 만났을 시간을 만들어줘야지. 안 그래? 왜 그렇게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거냐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면서 기다린다는 게 어떨 거로 생각하기에 자꾸 훼방을 놔? (가만 안두겠어!)

 

이번에는 그녀가 왔을까? 이번에 도착한 배 안에 혹시 그녀가 있을까? 그는 계속 시간을 셌어. 하나, 둘... 기다림에 애가 타서 그랬지. 그렇게 시간이라도 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결국, 그는 시간을 세다가 멈췄어. 잊었어. 일 년, 십 년, 몇백 년이 흐르면서 다 잊고 말았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셀 수가 없어졌어. 하지만 여전히 항구에 나가는 걸 멈추지도 않았어. 그럴 수 없었어. 시간을 세던 것을 잊었지만, 그녀가 올 거라는 바람을 놓지는 않았거든. 그는 여기에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76~77페이지)

 

 

손바닥만 한 이 책을, SF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어. 나도 모르게 자꾸 같이 기다리게 되더라고. 그가 기다리는 그녀를 보고 싶었거든. 너무 많이 어긋난 그 순간들이 어쨌든 끝을 봐야 하잖아. 몇 백 년이 더 흘렀어. (그때까지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나이를 먹었겠지? 만나도 괜찮을까? 서로 많이 변했을 거잖아. 외모부터 많은 게 변해 있겠지? 앞으로도 달라질 거잖아.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그가 하는 말은 이런 거였어. 하루하루, 10년 전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내일도 모레도, 아주 먼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건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바람으로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의 마음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래서 더 보고 싶었나 봐. 그를, 그녀를.

 

(만났어? 만났을까? 못 만난 거야? 뭐야?)

 

아, 이거였어! 작지만 크고, 가볍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있어서잖아. 더 무슨 말이 필요해...

 

 

:)

결혼을 앞둔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맘에 드는 프러포즈가 생각이 안 나던 차에,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는 SF소설 작가에게 프러포즈용 소설을 한 편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에 작가는 흔쾌히 쓰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설을 읽고 녹음을 하고 그녀에게 들려주고. 뭐, 그렇게 프러포즈는 성공했다는 얘기. 남자가 직접 이 소설을 두 권 만들어 한 권은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소장하고 다른 한 권은 작가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이 소설은 태어났다. 아마 처음부터 출간용은 아니었겠지? 그런데도 이렇게 출간된 이유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

뭔가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게 참 괜찮은 방법이구나 싶기도 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의 감정이 녹음된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날 거잖아. 그것 역시 진심일 테고. 아, 그런데... 그럼 목소리가 좀 예쁘면 참 좋겠다. 흠흠. 큼큼.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들리는 내 목소리가 녹음된 목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어떠냐고. ㅎㅎ

 

 

 

눈에 들어오는 신간 한 권을 보고 궁금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니 김보영이다.

어디서 많이 봤던 이름인데 무슨 책이었더라? 궁금증이 계속 머리 속에 두둥실 떠돌기만 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장르도 SF다. 내가 즐겨 읽는 취향도 아닌데 작가 이름이 낯익어서 검색해보니 김보영이네.

전작 목록을 보다가 알았다. 지난 번에 읽은, 손바닥만한 그 작은 책의 작가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얼마나 몰입해서 읽었는지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야 말았는데...

그때 생각했다. 아, SF도 조금씩 즐기는 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겠구나.

물론 그 이후에도 그 장르를 많이 읽지는 않았다. 여러 권 읽을 때 한권씩 끼어들 틈을 준 것뿐이다.

 

그렇게 내 취향의 눈길을 옆으로 돌리게 해준 작가의 새책 소식이 반가웠다.

 

 

 

 

 

 

 

저 이승의 선지자.

저승에 물리적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 불명의 생물의 모습까지?

소개 글이 전부이진 않을 터, 김보영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우주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월요일이다.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이 보여줄 삶의 한 모습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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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모시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만...)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 나와서 같이 출연한 여성 중에 며느리 삼고 싶은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다. 물론 젊은 여성들도 같이 상대를 관찰한다. 말, 행동, 분위기로 어머니들을 파악한다. 같이 지내면서 어떤 어머니가 시어머니로 괜찮을지 보는 거다. 물론 이건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의 평소 있는 그대로의 성격이 보일 수도 있고, 조금 더 오버해서 나타내는 제스처나 말투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 분담이 있었다. 처음부터 본 건 아니고 지나가다 눈에 들어와서 30분 정도 보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계속 눈에 거슬리더라. 아무래도 내가 아직은 시어머니가 될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 자주 엄마한테 시어머니 노릇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자기 자식이 예쁘지 않으랴. 최고가 아닐 수가 있나. 그런데 그 어머니들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더라. 오로지 자기 위주다. 자기 아들만 최고다. 자기 사업을 물려받는 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한다. 자기 아들과 결혼할 사람은 며느리인데, 며느리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거나 자기와 평등하게 살아간 사람임을 생각조차 안 하는 듯하다. (시어머니들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 아들 소중한데 며느리 될 사람(가상이지만)의 성품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 프로그램에서 젊은 여성들은 탈락시킬 시어머니를 고른다. 누가 탈락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거기까지만 보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젊은 여성들이 탈락시킬 시어머니를 고르는 의논을 하는데, 잠깐씩 언급되는 시어머니 한 명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30분 정도 보면서 엄마와 계속 얘기했다. 0번 시어머니가 떨어지겠군.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시어머니의 탈락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그 시어머니가 탈락하든 말든, 누가 최종적으로 남아 있든 말든. 몇 시간 혹은 며칠, 그만큼의 시간만 본 사람에게 생기는 호감과 비호감이 무서워졌다. 그러면서 그런 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보는 상대의 면면들이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끊어내는 이유와 근거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도 이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멀어지게 되는 거고, 불과 1시간 전에 만난 사람도 ‘이 사람은 이런 면이 좋구나.’ 싶은 순간 앞으로 이어갈 관계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연을 맺고 끊고 하는 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고, 더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사소하지만 어떤 한 가지 때문일 것이다. 당신을 내 옆에 두거나 당신을 내 옆에서 밀어내게 하는 사소한 한 가지.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만화에서 '음식점에서 무조건 종업원에게 반말하는' 애인을 보며 이 남자랑 계속하는 게 옳은가를 고민하는 여자를 보여주는데, 황정은은 멀쩡한 남자가 쓴 요강을 아내가 비워주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이 남자에 대해 고민하는 나나를 보여준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려고 해도 자꾸 그게 눈에 걸린다면, 돌아서야 하지 않을까. 내가 눈 딱 감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나는, 요강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도 그런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그런' 모세를 결국 받아들이지 않는 나나를 응원한다. (잘 지내나요 238~239페이지)

 

그렇다. 어떤 관계였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건 정말이지 사소한 한 가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라면, 그 사소한 한 가지가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만나면서 쌓인 시간 때문에 마음을 전하는 깊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사실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분위기라는 게 있다. 이 정도 봤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맞는지 아닌지 정도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반말하는' 애인의 말투를 확인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가능한 일이니까. 황정은의 소설에서, 요강을 아내가 비워주는 게 당연하다는 남자의 태도를 고민하는 나나도 마음이 바로 정해지지 않았을까. 돌아서야 하는 이유는, 남자의 아내가 요강을 비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그 순간 확실해진 거다. 나에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으니까.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데도,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다른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암담하다. 특히 가족이라면 더더욱. 서로를 보는 눈에 신뢰는 사라지고 거부감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까 싶어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내 의견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상대가 가족이 되는 순간 매우 아프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계속 생길 거다. 왜 하나의 마음이 되지 못할까,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가족 사이에 생겨난 그 감정의 골은 남과 생긴 골과 다른 깊이로 새겨진다. 그만큼 상처가 커지는 거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치료가 되면 좋으련만, 내 경험상 그런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지는 않더라. 상당히 오랜 시간, 이 관계의 골이 얕아지기를 바라면서 보낼 것 같다.

 

공감이라는 게, 이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확인하는 요즘이었는데, 이 책 속의 이 문장에서 한참 시선이 멈췄다. 다양한 주인공,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지만,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는 순간은 아니다. 그래서 답을 얻고 싶어서 그 책을 펼치기도 하고, 답이 없는 걸 알기에 그저 공감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읽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든, 그 순간에는 그 책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로맨스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대개 그런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현실 속 많은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지 못해서 현실인가 싶으면서도, 마냥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잘되겠지, 잘되어야지, 그래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놓지 못하겠다고.

 

사실은, 이 책을 웃고 싶어서 펼쳐 들었다. 책이 새끼를 치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전작에서 받았던 어떤 느낌 때문에 이번 책에서도 그때 내가 느꼈던 유쾌함을 기대했다. 웃기면 그냥 웃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책과 더불어 일상이 유쾌함과 재미로 가득했던 전작을 기억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글의 깊이가 또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전작과 같은 발랄함에 무거움이 더해졌다.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수록된 도서 목록 때문에 그 분위기가 어느 정도 연상되기도 하면서, 저자의 독서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그 안에서도 여전히 놓지 않는 위로와 사랑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는 편안함과 아픈 순간들에도 찾아올 행복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마음이 저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게, 괜히 내 편 한 명 더 생긴 것만 같다. 책 속 한 문장에서 파생한 일상의 기억들과 생각들이 이렇게 풀어져 나올 수 있어서 좋다.

 

처음에 인용했던 문장에서 느꼈듯이, 유독 그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글이다. 어떤 책이 등장하는지는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 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는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태도와 감정에 시선이 간다. 고백하지 못한 순간을 후회하는 데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오랜 짝사랑. 나는 고백했는데 차이니까 감당이 안 되던데... ^^ 그런데 막상 고백하지 않고서는 안 될 마음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거절로 돌아온 답에서는 잠깐 주눅이 들었었지. 그렇게 짝사랑은 끝났지만 후련했다. 아닌 건 아닌 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나니, 감당할 수 없던 마음은 개운해지고, 더는 내 것이 아닌 상대에 미련조차 두지 않을 마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같이 울고 웃는 일. 그건 소설을 읽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소설 속 이야기에 공감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그런 느낌을 너무 잘 아는 사람 같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클레어(『가든 스펠스』)가 얼마나 힘들지 느끼면서 같이 화내고 슬퍼한다. 이런 감정, 이런 표현. 공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들. 그 말을 참 편하게 한다. 바로 옆에서 조잘조잘 말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마치 수다를 떠는 것처럼, '맞아 맞아' 하면서 옆자리 사람의 팔을 툭툭 치며 말하는 것처럼, '이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챌 사이인 것처럼... 그러니 이 상황을 두고 마음껏 욕하고, 화내고, 울고, 웃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생긴다. 나, 좀 이래도 괜찮지? 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다 아는 것처럼.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저자가 고르고 읽은 책으로 알 수 있다. 세상이 전하는 뉴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동안 말로 꺼내지 못한 위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드러내지 못한 당당함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었는지를. 여전히 그 생각과 표현이 충분하지 못하고, 용기 내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항상 드러내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오래전 기억까지 꺼내면서 여성이기에 받은 차별과 성추행을 언급하며, 여성이기에 겪는 많은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시사한다. 저자가 읽은 책 중에서 내가 읽다가 만 책도 있던데, 그러다 기억에서 잊힌 제목인데, 생각난 김에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이, 사회가,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바뀌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한 권의 책으로 인식의 변화가 하나씩 쌓인다면 변화의 길은 멀지 않은 거, 아니겠나?

 

사람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해럴드가 퀴니에게 닿기 위해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걷듯이, 우리는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향해 걷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모든 행위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게 아닐까. 해럴드가 올 거라는 믿음으로 퀴니가 기다리듯이, 퀴니에게 가기 위해 걷고 있는 해럴드를 모린이 기다리고. (잘 지내나요 191페이지)

 

지금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기다림의 의미는 안다. 그건 그 사람을 그만큼 아끼고 또 아낀다는 말과 같다. 그 '아낌'의 단어를 꺼낼 수 있는 관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와 나 사이에 쌓이는 것들 때문에 만들어지는,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 사는 모든 순간에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무게를 느낀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서로에게 무엇으로든, 그렇게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매번 책 속의 문장에서,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 배경이 되더라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겪어가는 여러 관계, 이해와 해결, 공감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읽기를 멈추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게으른 독자이지만, 특히 요즘에는 책을 거의 안 읽고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이렇게 책 속의 문장 하나 때문에 되찾아오는 감정이 있다면, 더디더라도 책을 계속 읽고 지내고 싶은 마음을 놓고 싶지 않다.

 

점점 말이 줄고, 그러다 보니 표현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나도 모르게 검열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가슴속 하고 싶은 말이 줄지는 않는다. 목소리로 얘기할 수 없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저자 때문에 많이 했다. 글에서, 단어에서 문장에서 누군가를 읽는 일이 생각보다 괜찮더라. 조심스럽게,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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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0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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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1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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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곳이라며 누군가를 이끌고 우세모노 여관을 향한다. 하지만 정작 우세모노 여관으로 사람들을 인도한 그는 여관의 문을 넘지 않는다. 여관 문 앞에서 그를 따라온 이를 여관의 지배인에게 인도할 뿐이다. 어쨌든.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간절했던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잃어버린 무엇 혹은 잃어버린 사람을... 그래야 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발걸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부터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펼치자마자 그냥, 좋아해 버렸으니... 별거 없었다. 잘생긴 그 남자 마츠우라가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우세모노 여관으로 온다. 마츠우라를 따라 여관에 들어선 사람은 여관에 머물면서 그들이 찾는 것을 떠올린다. 무엇을 찾으러 왔을까? 찾고 싶은 게 있긴 한가? 아니, 그들이 찾는 것과 이 여관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여관의 사장은 어린 소녀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사장이라면 연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 같은 거라도 기대하겠는데, 이 어린 소녀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하란 말인지... 그런데 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무슨 질문을 하면 사장에게 물어보란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자꾸 사장에게 물어보래? 여관의 손님은 그런 사장에게 관심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찾으러 온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궁금증이 늘어날 수밖에. 궁금증이 늘면서 여관에 온 그들의 사연에 귀가 열린다. 그렇게 하나씩 펼쳐지는 이야기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그러니까 이 부분, 여관의 손님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인생을 되짚어보는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던 거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되는 것 같아서 긴장했다. 예상되면 되는 거지 무슨 긴장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냥, 막, 무슨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고요함 같은 거?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낼 때마다 눈물이 고였다. 기억을 더듬고 아쉬운 것들을 찾아내어, 후회를 후회가 아닌 것으로 만든 다음에 떠나는 사람들. 여기서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의 임무가 겹쳐 보이면서, 누군가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 한 잔이 그려졌다. 저승사자는 자기를 찾아오는 망자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쪽에서의 기억은 다 지우고 편한 마음으로 저쪽 세계로 가라고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망자들은 이곳, 그들이 살면서 겪었던 슬프고 기뻤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홀가분하게 저쪽 세상을 문을 열고 걸어간다. 아마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을 못 하는 건 저승사자가 내어준 차 한 잔 때문이겠지. 이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이건 우세모노 여관 3권에서 등장하는, 여관 사장 사키의 이야기 때문에라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다) 저승사자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저승사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지워진 전생을 생각하려 애쓰기 보다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구백 년 넘게 살아온 도깨비를 제외하곤, 아무도 자기 전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혼란의 시간이 온다. 주인공들은 어쩌다 보니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전생의 기억 따위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하겠다. 가끔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전생의 우리 모습에 대해 상상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고 슬픈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면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거라고... 그러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에 오는 이들은 망자다. 죽은 사람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세모노 여관으로, 수상한 그 남자 마츠우라의 손에 이끌려 찾아왔던 거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오는 곳.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는데,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여관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은 미련을 남기고 죽은 자들이고,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자들은 여관에 남아 종업원이 되어 계속 찾아다닌다. 그렇게 여관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으면 떠난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여관의 일을 계속 하는 거고. 여관에 찾아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이렇게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죽은 다음 후회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대개 그렇잖아. 죽음에 다다르면 후회스러운 것들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는데, 죽고 나서도 그 후회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후회하지 않는다던 그들은 어떤 인생이란 말이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 삶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이승을 떠난 슬픔을 덮을 수 있는 걸까.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에는 그 후회를 지우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로 생각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세모노 여관>의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그게 부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슬픈 거다. 왜 있잖아, 그런 거... 분명 후회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기적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은 간절함. 잃어버린 것 따위 없다고, 그러니 찾아야 할 것도 없어서 이 여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는 아직 죽어보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도깨비>의 저승사자 앞에 도착했을 때나 <우세모노 여관>에 찾아갔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지 모르는 지금 마음 상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다는 상상, 죽은 후에 마츠우라를 따라간 우세모노 여관, 여관에 들어서며 마주한 어린 소녀 사장의 눈빛 찌르기 같은 직설을 견디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여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죽었다는 상상부터 쉽지 않았고, 잃어버린 게 한 개뿐일까 싶어 가늠할 수 없더라.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후회하고) 살아왔을지 계산을 할 수가 없어서다. 지금도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은 다음에 찾아간 우세모노 여관에서, 나는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후회하고,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여관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글쎄. 뭘, 얼마나 후회하고 잃어버린 상태일까. 얼마나 많이 찾아야 그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울었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면서 계속 울었다. 후회하는 순간을 찾을 때마다 울었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또 울었다. 작정하고 그런 게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마음이었지만, 후회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전부였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한 번 지나간 그 순간을 불러내고 지켜보면서, 후회든 기쁨이든 확인하면서, 이제 더는 그때 그 순간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복기한다. 개운하게 눈물도 쏟아내고, 웃음도 찾아내면서,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은 그 끝에서 반드시 자기가 찾아야 할 것들을 찾아서 떠나곤 했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든 각인되었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결국에는 찾았다. 그게 우세모노 여관의 마법이다. 여관의 마법이 통할 때마다, 읽는 이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에 눈물이 고이는 건 자동이다.

 

'우세모노(うせもの)'는 '잃어버린 물건', '유실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관의 이름에 너무 잘 어울리고,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에 잘 맞는 의미인 것 같다.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의 사연에 따라 바뀌는 계절도 신비하다. 찾아오는 손님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곳이라니. 겨울이었다가 겨울일 수도 있고, 가을이었다가 여름일 수도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은 마음에 얼마나 더 깊게 다가올까. 여관의 손님들이 자기의 유실물을 찾을 때마다 잃어버린 진심을 마주한다. 아니라고 거부했던 것들, 아니라고 말해야만 했던 진심을 마주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는 장면과 닮았다. <우세모노 여관>에서 여관이나 여관 사장이 찾아준 유실물을 앞에 둔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이걸 마셔야겠지, 그래, 이걸 찾았던 거지. 이제 됐다. 홀가분하게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구나...

 

이제 궁금한 거 한 가지 더 남았을 거다. 여관의 사장 사키는 누구인가, 여관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마츠우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3권이다. 여관의 손님들과 여관 종업원들의 사연까지 다 지나가고 나니, 정작 남은 이들은 여관 주인과 마츠우라다. 그들의 사연이 없을 수가 없지. 과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는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기억을 잃은 사키가 등장한다. 이 부분 때문에 기억의 여부를 두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기억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태인 아무 기억도 없는 이와 잊은듯했지만 결국엔 다 기억나버려 잊을 수 없는 이, 둘 중 누가 더 아플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계속되는 거다. 영원히 분명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그 순간에 최선이라 여기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때마다 후회가 찾아오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찾으면 되겠지.

 

만화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장르다. 어렸을 적에 보던 순정만화 몇 편이 전부였는데, 몇 년 전에 우연히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호즈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매력적인 만화 단편집이었다. 그림도 예뻤고 스토리가 소설을 읽는 느낌 그대로였다. 몇 컷의 그림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그러다가 다음 작품 『안녕, 소르시에』까지 샀고, 이번 작품 『우세모노 여관』은 완결판이 나오기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구매했다. 망자들의 후회를 덜어주고 편한 걸음 만들어주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판타지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는 현실이었다. 읽는 이들과 마음이 닮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즈미의 다음 작품을 고민 없이 구매하게 만드는 매력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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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2-1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즈미님의 만화 저도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안녕 소르시에‘도 읽었는데, 저도 구단님 따라 이제 우세모노 여관을 읽어야할 차례인가봅니다.^^

구단씨 2017-02-15 10:34   좋아요 0 | URL
만화를 잘 모르는데, 호즈미의 만화는 기다려집니다. ^^
이야기가 참 예뻐요.
 

남의 나라 대통령인데,
오바마를 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냐...
4년 더 하라고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어떤 건지 상상해본다...

 

사실, 오바마를 더 좋아했던 건 돌아가신 외삼촌을 닮은 이유도 있다.
한국에 남은 엄마 형제 중에서 가장 자주 왕래하셨기에...
나이 든 여동생에게 여전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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