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낮부터 기온이 오를 거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흐리기만 하고 기온도 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춥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 겨울에는 눈도 적어서 심심하다. 아이들은 신발에 모래가 가득 차도록 마른 모래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굴리고 있다.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씩 먹여 내보냈으니 추워지면 들어오라지. 나는 김려령의 신작 <가시 고백>을 마저 읽었다.

 

대한민국 고2 교실을 무대로 앞뒤로 짝을 맞춰 앉은 해일, 진오, 지란, 다영이 중심을 이룬다. 학교임을 알게 해주는 담임은 짧은 말에 힘이 있으나 뒤 끝에 힘이 없는 인간적인 선생이다. 이간질과 고자질로 자발적 미운털이 되고도 제 잘못을 모르는 미연도 있음직한 인물이다.

네 명의 아이들은 나쁜 쪽으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천재적인 도둑 해일과 이혼한 아빠를 미워하는 지란의 가시가 뽑혀가는 과정을 다룬다. 진오와 다영은 이성과 감성을 갖춘 괜찮은 아이로 등장하여 해일과 지란을 돕는다. 넷이 뭉치니 막강한 드림팀이 만들어지고 나는 이 대목에서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완득이 만큼 사랑스러운 인물인 해일이는 어려서 혼자지내야 했던 일이 상처로 남은 아이다. 습득하지 않아도 물건을 귀신 같이 훔치고 돈으로 바꾸지만 쓰지는 못하는데 잘 생긴 얼굴에 미소까지 보기 좋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는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치고 집에서는 유정란을 사다가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같기도’의 대표적 인물이다. 나쁜 놈 같기도 하고 착한 놈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고구마 줄기를 까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서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해일이 엄마가 부럽기만 하다.

 

해일이 엄마 얘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는 데, 해일이네 가족 모습은 그간 책에서 보아왔던 가족 모습 가운데 가장 보기 좋은 가족이다. 감정설계를 하겠다는 해일이 형 해철이는담임과 닮았다. 그런 가족이 실재로 있던 없던 나는 이 가족의 모습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지란이 해일이네 집에서 느낀 그 따뜻함은 유정란이 병아리로 부화할 만큼 따뜻하고 적당했다.

 

친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지란이는 해일과 진오의 도움으로 친아버지 집에 몰래 들어가 낙서를 하면서 극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 와중에 해일이 또다시 지란 아빠의 넷북을 훔친 일이 진오에게 들키면서 해일의 가시가 드러난다.

거울에 비친 해일은 도둑이고, 진오가 해일을 본 것도 거울을 통해서다. 더 짜릿한 것은 반장 다영이는 이미 전자 수첩이 사라졌을 때부터 거울로 해일이를 지켜보았다. 이런 장치로 반전의 묘미를 즐기며 소설은 그만큼 재미있어 진다.

 

고2 아이들이 생각보다 보드랍고 순수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따뜻하게 읽힌다. 도둑임이 밝혀진 해일이를 단칼에 잘라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맺어질 이들의 우정이 나는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다.

 

학교 현장이 쑥대밭이 되고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떨어질 간이며 심장이 어디 있다고 그때마다 쿵쿵 떨어지는지.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위로가 되었나보다.

사건을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등장 인물의 마음을 잘 따라가 주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갈 기회를 준 것 같아 뒷끝도 깔끔하다.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감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원해서 했다기 보다는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물건에 닿는 해일이처럼 판단 이전에 벌어진 행동이다. 원하지 않았던 그 마음을 알아봐주고 믿어주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머리와 행동 사이에 벌어진 그 일을 살펴보고 설계하는 일이 그래서 꼭 필요해 보인다.

 

담임과 아이들이 상담 뒤풀이로 주고 받는 말들이나, 상담의 현장, 해철이가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담임과 해철에 대해 더 말을 해야하는 이유는 학교 안과 학교 밖 혹은 가정에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필요에 대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장을 따로 두지 않고 주제 안에서 화자를 눈에 띄지 않게 슬쩍 슬쩍 넘기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막지 않으면서 신선했다.

 

그나 저나 수정란 검사를 하는 장면. 달을 품은 달걀과 병아리를 품은 달걀의 이미지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이미 냉장고에 넣은 유정란은 어쩔 수 없고 나도 다음에 한번 하는 욕구가 생겼다. 나의 연약한 인내와 무딘 손끝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라는 게 다행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2-02-2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정란을 냉장고에 넣기 전에 어쩌시게요. 설마 품으시게요? 그러다 정말 병아리 되면 그건 도 어쩌시게요. 병아리 되면 왠지 겁날듯.. ㅡ.ㅡ;;;

수수꽃다리 2012-02-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니 망상이지요. 망상이어서 다행이고. 생명있는 것을 거둔다는 것이 저는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잘 안되구요. 으, 아이 탓으로 돌리지만 제가 보낸 이러저러한 애완용 생명들이... 화분도 꽃피는 것은 없으니. 그래도 해일이네가 부럽기는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