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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 어울림으로 비평으로 숲으로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그의 비밀(?)을 이제서야 하나 알아냈다. 글 속에 숱한 철학자들의 말과 글이 단 한 순간도 멈춤 없이 오르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표절을 손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는 이미 축구 선수가 아니라는 말로 대신하는 그를 읽으면서 그의 말과 그의 말이 아닌 것을 분명히 가르는 것이다. 학인으로서(그는 학자라는 말 대신 학인이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그의 모습을 본다.
알면서도 모른체 하기라든가 몸을 끄-을-고, 산책 혹은 몸이 좋은 동무라는 말의 속뜻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 보다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잘 들으면 곧 알아 들을 수 있다.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글을 잘 들여다'보고' 잘 '듣게'한다. 아마 내가 그의 글이 읽기가 힘들면서도 읽고 싶은 이유가 이런 훈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그의 글에 나타난 그의 면면을 더듬어 보자면 그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고 센 사람이다. 그것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가령 "우리의 산책은 오직 체계와의 창의적 불화의 형식이며 그 형식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이 곧 자본제적 도시다. 도시를 정화할 힘이 없으면 이미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 곳곳에 있다. "산책 하지 않는 자는 결국 인식의 고리나 내성적 자아의 반성에 머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에도 밑줄이 그어져 있다.
공부와 삶이 어긋나지 않게 이드거니 어울리며 어리눅어 가기를 희망하는 것 또한 내 공부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카데미 좀비 조차 아닌 평범한 주부지만 주부라고 공부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내 지적 능력으로는 그의 숲 언저리조차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허나 몸을 끄-을-고 나서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러고 나니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읽게 되었다. 역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직도 그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단 한 발자국도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의 책을 몰래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를 그는 뭐라고 할까. 여보쇼 어렵고 이해도 안되는 것 그만 내려놓고 차라리 아침 드라마나 보라고 면박을 줄까. 그렇게 몸을 끄-을-고 읽는 나를 동무로서 봐줄까.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것이 나의 실재고 나는 내 실재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읽을 권리조차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젠가는 산책길에 나설지도 모르지 않는가.